호크마 주석, 에스더 0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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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이 밤 -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참여했었던 날 밤이다(5:5). 또한 하만이 모르드개를 그 다음 날 죽일 목적으로 높은 나무를 세웠던 날 밤이기도 하다(5:14).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폭군들은 불면증을 갖고 있었다(박윤선). 로마 황제들의 경우만 하더라도, 갈리굴라(37-41년)와 유스티니안(527-565년) 등이 그러하였다. 폭군들의 이러한 증상은 양심의 가책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당신의 섭리 전개를 위하여 심지어 잠까지도 주관하신다는분명한 사실을 확신해야만 한다(창 41:1-8;시 127:2;잠 21:1;단 2:1). 역대 일기를...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 그 날 밤 아하수에로 왕은 처음에는 잠을청해 보려고 무진 애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잠이 오지 않자 잠자기를 포기하고'역대 일기'를 낭독시켰다. 물론, 아하수에로 왕은 '역대 일기'가 낭독되는 것을 듣다가 자연스럽게 잠들게 되기를 바랬을 것이다. '역대 일기'는 영역 성경에서 '역대기'(NIV, the book of the chronicles). '기억할 만한 행위나 연대를 기록한 책'(RSV,the book of memorable deeds, the chronicles), '주요 사건 일지'(NEB, thechronicle of daily events)등으로 번역되고 있으며 국가적으로 중요한 역사 사실을일지(日誌)방식으로 기록한것을 가리킨다(2:23;스 4:15). 한편, 아하수에로 왕이 '역대 일기'를 직접 읽지 않고 대신 낭독시킨 까닭은, 그가 글을 읽지 못하는 무식자였기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고대 국가의 군주들 중 무식한 사람들이 많기는 했다(Rawlinson). 그러나 아하수에로가 역대 일기를 직접 읽지 않고 신하들에게 대신 읽게한 것은 페르시아 왕실의 관행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많다(스 4:18). 한편, 여기의'읽히더니'(* , 니크라임)가 분사인 사실은, 역대 일기의 낭독이 장시간 게속됐었음을 시사해 준다(Keil).

=====6:2
왕을 모살하려 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 이는 에스더가 왕후에 오른 아하수에로 왕 즉위 7년(2:16)의 일이었다(2:21-23).

=====6:3
모르드개의 밀고를 통해서 모살 계획이 좌절됐던 그 사건은 그 당시로부터 불과 5년 전의 일이었다. 따라서 비록 아하수에로 왕이 그 동안에는 까맣게 잇고 지냈겠지만, 역대 일기에 적힌 그 사실을 신하의 낭독(1절)을 통해 듣는순간 그 기억이 되살아났을 것이다. 무슨 존귀와 관작을...베풀었느냐 - 모반 계획을 밝혀내어 고발한 사람에게는 높은자리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이 특별한 명부에 등재되는 영광도 주었던 것이 페르시아의 관행이었다(Herodotus. viii, 85). 본 문구는 아하수에로 왕이 위와 같은 관행에 따라서 모르드개에게 적절한 상급이 당연히 주어졌을 것으로 믿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본문은 의심이 아닌 확인의 차원에서 제기된 질문일 뿐이다. 한편, '존귀'(* , 예카르)는 '고귀함', '명예'의 뜻으로서 여기서는 신분과 지위를 높여주는 일을 가리킨다(6절;삼상 18:30). 그리고 '관작'(* , 게둘라)은 '큰일' 혹은 '광대함'의 뜻이지만 여기서는 앞의 '존귀'와 본질상 동일한 의미이다.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 - 모반 계획을 고발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큰 상급을 하사하는 것이 관행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모르드개에게 아무런 보상이 베풀어지지 아니한 것은 그 일을 담당하던 관리들의 어떤 횡포로 볼 수 있다. 즉, 그 관리들은 모르드개의 인사 기록을 통해서 그가 유대인임을 알고는(10절) 그를 무시하여 아무런 상급도 내리지 아니했던 것 같다. 그러나 모드드개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봄으로써, 자신의 그 억울함을 참고 견딜 수 있었다(시 37:1-9).

=====6:4
왕이 가로되 누가 뜰에 있느냐 - 왕의 신하들은 예고없이 하달되는 왕명을 받들기위하여 항상 교대로 왕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여기의 '뜰'(* , 하체르)은 에스더가왕에게 나아가기 위하여 왕궁으로 향했다가 잠시 섰었던 '안 뜰'을 가리킨다(5:2). 왕이 신하를 부른 때는, 마침 왕의 내실 밖에 하만이 와 있었던 때였다는 점에서 이른 아침이었음이 분명하다. 아무리 하만이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라고 하더라도(3:1), 새벽 혹은 한 밤중에 자신의 요구관철을 위하여 왕의 침소를 찾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왕이 역대 일기의 낭독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모르드개의 활약 사실을 확인하고 상급 수여 여부를 질문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아하수에로 왕은 거의 밤 새워서 역대 일기의 낭독을 청취하다가, 새벽녘이 되서야 모르드개와 관련한 사항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만이...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 '하만'은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왕과 함께 참석한 자리에서 자신의 요구를 올릴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시라도 빨리 모르드개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찌감치 왕을 찾아갔다. 그는 오전 내에 모르드개에게 복수를 해야만 오후의 잔치(14절)에 기쁜 마음으로 참석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음직하다.
왕궁 바깥뜰에 이른지라 - 여기의 '바깥 뜰'(* , 하체르)은 앞의 '뜰'과 동일한 단어이다. 그리고 여기의 '이른지라'(* , 바)는 완료형 시제로서 차라리 '이르러있었다'로 번역함이 더 좋다. 그렇다고 한다면. 하만은 꼭두 새벽부터 왕궁에 들어와있었던 셈이 된다. 아무튼, 이처럼 모르드개에게 복수하려는 하만의 열심은 그야말로특심하였다.

=====6:5
시신(恃臣)이 고하되 하만이 뜰에 섰나이다 - 그때 왕과 함께 있었던 '시신'은 최소한 두 명 이상이었다(3절). 따라서 그중 한 명은 왕의 방 바깥쪽 형편을 계속 살필수 있었다. 허쩌면 왕의 방문이 열려 있었을지도 모른다(5:1, 2). 한편, '섰나이다'에해당되는 히브리어 '아마드'( )는 3:4에서는 '고하다'는 뜻으로도 번역되었으며,7:7에서는 '일어서다'(혹은 '머무르다')의 뜻으로 옮겨졌다.

=====6:6
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 이것은 라만이 왕에게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아매는일과 관련된 요구(4절)를 하기도 전에 곧장 왕의 질문이 먼서 던져졌음을 보여준다. 왕이...기뻐하는 사람 - '존귀케 하기를'(* , 야카르)은 3절에 나오는 '존귀'의 동사형이다. 그리고 '기뻐하는'(* , 하페츠)은 일반적으로 '즐거워하다'의 뜻이지만, 특별하게는 '사모하다'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신 25:8;시 34:12;73:25).그런데 왕이 모르드개의 이름을 단도직입적으로 거명치 아니하고 대신 '존귀케 하기를기뻐하는 사람'이라는 간접적 표현을 사용한 까닭은, 왕의 질문을 받는 하만이 어떤편견을 갖고 대답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하만은 이와 같은 왕의의도를 잘못 읽음으로써, 오히려 모르드개를 극도로 존귀케 하는 실수(8,9절)를 범하고 말았으니 이 장면이야말로 본서 중 가장 아이러니컬한 부분이다. 왕...기뻐하시는 자는 나외에 누구리요 하고 - 하만이 대단히 아전 인수(我田引水)적 성격의 소유자이며, 또한 매우 교만한 사람이었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구절이다. 그는 바로 이같은 교만 때문에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고 있었다(잠 16:18).

=====6:7
여기서부터 9절까지는, 원문상으로 한 문장이다. '왕께서...하시려면'을원문에 가깝게 번역한다면, '왕께서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이다(NIV). 이처럼하만은 왕이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표현을 써서 스스로의 특권욕을 한껏 만족시키고있다.

=====6:8
왕의 입으시는 왕복 - 이것은 왕이 입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옷이 아니라, 실제로왕이 입고 있었던 옷 그 자체를 가리킨다(Paton). 왕의 신하는 왕의 인격 그 자체를상징하는 이 같은 의복을 하사받아 입음으로써, 자신이 왕의 대단한 은총을 받고 있음을 과시할 수 있었다(Paton). 반면 왕의 입장에서는, 그 같은 의복을 하사함으로써 그신하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호의를 모든 사람에게 표시할 수 있었다(삼상 18:4). 이처럼 왕의 의복을 입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 최고의 특권이었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플루타크(Plutarch)는 한 왕이 중신 한 사람으로부터 겉옷을 벗어달라는 간청에따라 벗어주기는 하였으나 그것을 입는 일은 엄금했었다는 사실을 자신의 영웅 전(英雄傳)에서 언급하고 있다(Artax, 24).
왕의 타시는 말 - 왕의 말이 신하에게 하사된 것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없다. 그러나 '왕의 옷'에 해당되는 의미가 있었을 것은 분명하다(Paton).
머리에 쓰시는 왕관 - 이것은 관계대명사 '아쉐르'(* )에 이끌리는 수식절로서 앞의 '말'을 꾸며준다. 따라서 '머리에 왕관이 씌워진'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의 '왕관'은 왕이 쓰고 다녔던 것이 아니라, 왕이 타고 다니는 것임을 드러내 보이기 위하여 말에게 씌워진 치장용 관(冠)임이 분명하다(Rawlinson). 사실, 왕이어떤 사람을 존귀케 할 마음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왕권을 상징하는 '왕관'을내어줄 리는 없었을 것이다(Rawlinson). 그리고 왕관을 요구하는 일은 곧 왕의 자리를넘보는 역적 행위로 간주되었을 터였다. 이처럼 여기의 '왕관'이 말의 치장품에 불과하나는 사실은, 9절과 11절에서 오직 '왕복'과 '말'만이 언급되고 있음을 통해서 분명해진다.

=====6:9
방백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붙여서 - 하만은 왕의 가장 높은 신하에 의해서'왕복'등이 전달되고 또한 그로 하여금 자신의 말 고삐를 잡게 함으로써 자신의 존귀함이 백성들에게 선전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지나친 공명심(功名心) 때문에,그는 자신이 모르드개에게 '왕복'을 입혀주고 또한 그의 '존귀케 됨'을 백성들에게 선전해 주는 치욕적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11절). 그 당시 왕으로부터 가장 신임받았으며, 그래서 가장 존귀케 됐던 사람(3:1)이란 바로 하만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교만하고 사악한 꾀를 꾸미는 자는 자기가 쳐 놓은 올무에 스스로 걸려 넘어지기 마련이다(시 9:16). 성중거리로 다니며...반포하여 - 여기에는 (1) 어떤 사람을 존귀케 하려는 왕의 뜻이 백성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어 그 사람이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게끔하며, (2) 그렇게 함으로써 그 사람을 백성들의 모범으로 제시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왕에게 보다 충성스런 삶을 살도록 유도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하만은 이미 페르시아 제국 내에서 최고의 직위에 있었으므로 벼슬 자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다만 가시적인 영예와명예를 누리고자 한 것이다. 한편, '거리'(* , 레호브)는 군중이 모일 수 있을만한 광장 혹은 넓은 길을 의미한다(Keil).

=====6:10
이처럼 왕이 모르드개를 존귀케 하는 의식의 담당자로서 하만을 지정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9절). 대궐 문에 앉은...모르드개에게 행하되 - 하만은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6절) 뜻밖에도 자신이 죽이려고 벼르던(4절) '모르드개'라는 말을 듣고 실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12절). 그러나 그는 그 같은 감정을 왕에게 나타낼 수 없었다. 고대 국가에서 군주의 명령은 곧 필히 지켜야 할 법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하만은 자신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나타난 역전(逆轉) 상황 앞에서 자신의 파멸을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한편, 왕이 모르드개라는 이름을 거명하면서 굳이 '유다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단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왕은 아직하만과 모르드개사이의 피튀기는 적대감을 모르고 있었고, 문맥상으로 볼 때 하만에대한 왕의 신임은 여전하며 더욱이 유다인을 전멸시키게끔 조서를 내리도록 요청한 자가 바로 하만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상황의 역전에 관한 극적 긴박감과 아이러니를 부각시키려는 본서 저자의 숨은 의도가 여기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있겠다.

=====6:11
하만은 왕의 명령을 절대로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비록 마음으로는 전혀 내키지 않았지만 모르드개를 존귀케 하는 담당관(9절)의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6:12
모르드개는...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맡겨진 본연의 직분으로 원상복귀했었음을 뜻한다(2:19). '모르드개'는 특별한 의식(11절)에 따라 상당한명예를 얻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급이 높아지지는 못했다.그러나 되어가는 일 속에서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발견하고서 큰 기쁨과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 지극히 높아지기를 염원했던 하만이 오히려 처참하게 낮춰 버리려고 했던 모르드개(4절;5:14)를 존귀케하는 도구로 사용됨(11절)에 따라서 나타낼 수밖에 없었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여기서 '번뇌하여'(* , 아벨)는 일반적으로 '슬퍼서'혹은 '애통스러워서'의 뜻으로 번역된다(창 37:35;욥 29:25).한편, '머리를 싸고'는 히브리 사람들에게 뿐 아니라 페르시아 사람들에게도 보편적이었던, 고뇌와 슬픔을 의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적 행동이었다(7:8;삼하 15:30;렘 14:4).따라서 앞의 '번뇌하여'가 슬픔의 내면적측면을 강조한다고 한다면, '머리를 싸고'는슬픔의 외면적 측면과 관계가 있다.
급히 집으로 돌아와서 - 이것은 자신의 수치(11절)와 주체할길 없는 감정을 자기의조언자들(5:10)에게 토로하려는 목적에서였다(Paton).

=====6:13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고하매 - 모르드개의 불경스런 태도로 인해 전에도그랬듯이(5:10), 여기서도 하만은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모사들에게 털어놓고 있다.하만은 이같이 함으로써, 그 모사들로부터 자신의 미래와 그 대비책을 알고자 하였다. 모르드개...유다 족속이면...엎드러지리이다 - 하만의 모사들이 이 같은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까닭은, (1)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대제사장 가야바처럼 비록 이교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의 입술을 사용하셨기(요11:49-52)때문이거나(C. S. Lapide), (2) 그들이 악령으로부터 어떤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거나(T. Malvenda), (3) 그들이 유대인들로부터 지난 날까지의 오랜기간 동안 하나님이 베푸셨던 놀라운 일들을 들었기 때문이거나(J. Mariana, Keil, Baldwin, J. S.Menochius), (4)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아말렉 자손 곧 아각 자손의 멸망에 관한 예언적 말씀(3:1;출 17:16;민 24:20;신 25:17-19;삼상 15:2;삼하 1:8)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Grotius). 그러나 우리는 첫째, 고대 중근동의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놀라운 권능을 행하셨던 사실을 목도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특별성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았으며(수 1-11장) 둘째, 그러나 이교도들이 당시로서는 오직 유대인들의 경전으로 사용되던 하나님의 말씀의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심히 적으며(Paton) 셋째, 하나님이 불신자 혹은 이교도의 입을 빌어 당신의뜻을 전달하는 것은 대단히 특별한 경우에 국한된다는 점 등을 감안해 볼 때, 위의 네이유 중 (3)의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 모사들은 유대 민족이 여호와의특별한 보호를 받는 민족임을 알고 있었으나 그것을 구태여 믿으려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르드개를 죽이려는 자신들의 계략이 완전히 빗나가고 도리어 하만이 '모르드개'에 의해서 수치를 당하기까지 하는 상황(11절)을 목도함으로써, 그들은 유대 민족에대한 하나님의 초월적인 보호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분명히...엎드러지리이다'(* , 나폴 티폴)는 뒤의 '티폴'(* )이강조를 나타내는부정사 절대형이므로 '완전히 넘어지다'의 뜻을 갖는다(Keil).

=====6:14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 상황의 긴박성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비록 하만의 모사들이 하만의 불행한 미래를 점쳤지만(13절), 그들은 하만을 구출해낼 계책을강구하지는 못했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 왕의 내시가 하만을 부르러 왔던 것이다.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 - 내시들의 이 같은 행동은, 잔치 배설자가 손님을 모시러 갔던 동양의 관습(1:10;5:10;눅 14:17)과 잘부합된다. 따라서 여기의 '왕의 내시들'은 왕을 섬기던 내시들이라기 보다는 에스더를섬기던 내시들이었을 것이다. 한편, '빨리 나아가니라'는 표현은 에스더가 하만의 음모를 왕에게 고발하는 새로운 상황 전개로 신속하게 나아가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와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Schultz).

 

 

 

   이스라엘 백성을 하만의 음모로부터 구원하려는 에스더의 노력에 대해서 언급한 전
장(前章)에 이어지는 본장은 모르드개의 영광스런 등용과 수치스런 하만의 모습을  대
조적으로 기록한 부분이다. 즉, 본장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역사
하심을 사건으로전환 방법을 통해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대목이다(4, 5, 10절).
   이러한 본장은 모르드개의 충성심에 보상하려는 왕의 계획을 다룬 전반부(1-9절)와   
치을 당한 하만의 멸망을 예견하고 있는 후반부(10-14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러한 본장의 내용을 '한님의 섭리'라는 암시적 주제하에 재구성하면 (1)잊혀졌던 모르
드개의 공적(功積)이 발견된 사건(1-5절), (2)하만의 계획으로 모르드개가 존귀케  된
사건(6-11절), (3)수치를 당한 하만의 몰락을 에견한 사건(12-14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즉, 본서 저자는 본장의 사건을 기록하면서 '하나님'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대신
오히려 극적인 상황 전개와 풍자적인 표현법(1, 4, 14절).
   또한, 본장은 앞의 4, 5장과 매우 대조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
다. 왜냐하면 전장까지는 하나님께서 백성을 구원하식 위해서 부르신 사람들, 즉 모르
드개와 에스더(4:14)의 노력을 중심으로 기술한 반면, 본장부터는 이러한 사람들의 노
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적극 개입하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이 묵시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내용의 분문을 통하여 우리는 첫째, 전지(全知)하시고 역사를  주
관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하만이 계획한  유
대인 학살 음모(3:1-6)를 아시고 본장의 우연한 듯한 사건을 발생시키셨던 것이다. 사
실 하루만 지나면 하마이 세운 장대에 모르드개가 달리도록 계획되어  있었으나(5:14)
그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한 것과 역대 일기를 가져와 낭독하도록 하는 일이  발
생하였다(1절). 뿐만 아니라 모르드개의 공적이 기록된 부분을 읽게 된  일이나(2,  3
절), 마침 그때 하만이 왕궁에 들어온 일(4, 5절)로까지 발전됨은 이러한  사건  뒤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음을 독자들에게 강격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둘째, 이와 더불어 본장은 하나님께서 이방 국가에 포로된 유다  백성들을  어떻게
사랑하시는가를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본장에는 특별히 모르드개나 에스더와  같은
지도자들의 노력이 축소된 반면, 오히려 이방인인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 그리고 하만
의 아내와 친구들의 행위(1, 6, 13절)가 두드러지게 확대되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
다. 결국 이러한 의도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으나,
오히려 그 대적들의 게획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조차 기대하지 못했던 구원의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본장에 계시되고 있음을 본서 저자가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충만히 드러나게 되었다. 그는 비록 원수들의 계획과 모략에 의해 십자가에 달
리셨으나 오히려 그 방법을 통해서 만민을 구원하는 '십자가의 도'를 세우셨기 때문이
다(행 2:36; 골 2:14, 15).
   이 같은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1)악인의 계획은 치밀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
해서는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잠 12:7), (2)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은  지역이나
영토을 초월해 이방 나라에서까지도  그  백성들을  보호하시는  것으로  나타난다(단
3:24-30)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 발견된 모르드개의 공적(6:1-5)
   본문은 아하수에로 왕이 모르드개읜 공적을 발견하게 된 과정을 묘사한  부분이다.
즉, 본문은 하만이 모르드개를 매달기 위해 장대를 세운 사실을 언급하고 마친 전  단
락(5:14)에 이어지는 사건으로 모르드개의 공로가 왕의 불면증을 계기로 발견되는  장
면을 기록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왕을 움직인 하나님의 섭리를 암시적으로 기록한 본문은 (1)역대 기록
을 통한 모르드개의 공로 발견(1-3절)과, (2)하만을 불러들인 왕(4, 5절)에 대한 언급
으로 구성되어, 시기 적절학 맞아떨어진 두 사건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즉, 본문의
연속된 두 사건이 시기 적절하게 맞아떨어진 것은 우연인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저
자는 배후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암시적으로 드러내려고 한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본문을 기록함에 있어서 저자는 왕이 갑자기 불면증에 시달린  일(1
절), 모르드개를 처형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기 위해 그 밤에 궁중을 찾은 하만의 조급
함(4절), 그리고 모르드개를 상 주기 위해 즉각 명령을 내리는 왕의 모습(4, 5절)  등
을 대조시킴으로써 풍자적인 극적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본문의 내용은 특징적으로 보면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왕이 잠들지 못한 이유이다(1절). 상사 상황은 아하수에로 왕이 페르시아 제
국 내의 문제로 고심하던 때였다. 제국 내의 백성들은 민생고(民生苦)에 시달려 왔고,
이러한 백성들의 원성은 반란으로까지 화개되었던 듯할. 그러나 본문에서  아하수에로
왕이 잠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이런 주변의 상황 때문이 아니었음이 확실하다. 왜냐하
면 저자는 '이 밤에'(1절)라는 표현을 써서 왕이 습관저으로 불면증을 갖고 있지 않다
는 것을 시사함과 동시에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사건이 발생되고 진행됨을  강
하게 암시적으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역대 일기를 통해서 모르드개의 공훈을 발견하게 된 사실이다(2, 3절). 실제
로 왕궁 사가(史家)는 왕궁의 중요한 사건이나 행적 등을 글로써 기록해 남겨놓곤  했
었다(스 4:15; 말 3:16). 그래서 모르드개가 왕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고발했을 때에도
그의 공적을 궁중 일기에 기록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2:21-23). 그런데 이렇게 왕
에게 잊혀졌던 모르드개의 공로가 '이 밤에' 발견된 것은 결국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벌어진 우연의 사건이 아니라 치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셋째, 때마침 하만이 왕궁에 들어왔다는 사실이다(4, 5절). 물론 하만은  모르드개
를 죽여도 된다는 왕의 허락을 받으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걸음은  살
의(殺意)에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그 발걸음은 자신을 멸망에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11절).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의 몰락을 위한 계기로 이 일을 섭리하심으로써  본문의
이야기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될 것임을 암시해 준다.
   이 같은 본 단락을 통하여 우리는 (1)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해
인간의 감정과 신체적 변화까지 허락하신다(창 41:1-8; 단 2:1)는 사실과,  (2)성도의
의롭고 정직한 삶을 하나님께서는 빠짐없이 기억하시고 또한 보상해 주신다는 사실(잠
11:18; 히 10:36)을 깨닫게 된다.

   *평범한 일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 신자들은 보통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
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신자들이 하나님께서는 큰 일만 담당하신다고  생각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 생활 가운데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은 과
연 우연한 것들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눈에 우연으로
보여지는 일들까지도 직접 섭리하시기 때문이다(마 10:29; 눅 12:6, 7). 그렇기  때문
에 하나님께서는 사소한 듯한 일을 실마리로 하여 큰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  이처럼
작은 일과 큰 일은 유기적(有機的)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작은 일에 부
주의하면 큰 일을 황망(慌忙)중에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자신에게 닥쳐오는 일 하나하나가 갖는 영적 의미에 모든  관심
을 기울여야만 한다. 이같이 할 때, 신자들은 그 일 배후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깨
달을 수 있고, 또한 자신을 위해 하나님께서 어떠한 섭리를 펼치고 계시는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만 자신의 환경에 지배되지 않을  수
있다. 비록 슬픈 일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그러한 형편을 주신 하나님의  섭
리를 깨달음으로써 당면항 슬픔을 극복하고 하나님께서 에비하신 기쁨의 날을  기대하
게 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신자들은 항상 깨어 있음으로써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세
미한 음성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왕상 19:12; 마 26:41).

                    2. 하만의 수치(6:6-11)
   본 단락은 하만의 교만함 때문에 하만 자신이 수치를 당하게 되는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한 부분이다. 즉,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로 말미암아 아하수에로 왕이  모르드개의
공적을 발견하게 된 이야기를 기록한 전 단락(1-5절)에 이어 본문은 하만이 착각 때문
에 하만 자신이 당한 굴욕감과 그와는 반대로 존귀함을 받게 된 모르드개를  대비시켜
묘사하고 있다(10, 11절).
   이러한 본문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는 (1)하만이 왕에게 존귀케 할 방법을 제시하는
장면(6-9절)과, (2)하만이 자신이 제안한 방법대로 모르드개를 존귀케 하는 일에 사용
되는 장면(10, 11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는 본문의 주제가 '교만-실패'라는 형식
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하만의 교만(6절)과 그 결과로서 수치와  굴
욕(10, 11절)이라는 단순한 표면상의 구성을 통하여 저자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일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묵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르드개를 장대에 달기로 음모했던 하만이(5:14) 결
국은 모르드개를 존귀케 하는 일에 앞장서서 활동하고 있음(11절)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반면에 모르드개가 자신의 존귀케 됨을 위해  노
력한 모습은 본문에 나타나 있지 않고 있다. 결국 이와 같은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본
문에서부터 유대인의 운명이 비국에서 영광으로 전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태의 역전은 본서의 그적 전환점을 이루어 급박하게 하만의 몰락으로 어어져
가는 동기가 된다(7:10).
   한편 본문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만의 교만함이다. 그의 교만은 (1)마음에서부터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고(6
절), (2)왕의 옷을 입는 최고의 영광을 생각하며(8절), (3)왕의 말을 타고 백성들에게
높임을 받으리라 계획했던(9절) 사실에서 드러난다. 당시의 고대 국가  관습상,  왕의
의복을 입는 행위는 특별한 총애와 영화를 표현하는 것이었다(삼상 18;4). 뿐만  아니
라 왕이 자신의 후계자를 알릴 때에는 말에 태워서 보내는 상징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도 했다(왕상 1:33). 그러므로이러한 생각들은 결국 하만의 교만함이  얼마나  철저한
것이었는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이러한 그의 교만이 결국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가게  될
성이라는 사실을 묵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모르드개가 받은 영관의 모습이다(11절). 사실 그의 공로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발견되지 않았다면 이러한 영광은 없었을 것이다(2, 3절). 더구나 자신의 의도와
노력이 아닌 하만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기에 우리는 이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
하심을 발견하게 된다. 반면에 하만에게는 이러한 장면이 수치가 아닐 수 없었다.  이
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는 예수를 제거하려는 원수들의 게획을 사용하셔서 예수를 부활
의 영광에 이르게 함으로써 대적자들에게 심한 패배감을 안겨 주었던 사건에서도 드러
난다(빌 2:5-11).
   그러므로 이러한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1)악인은 자신이 쳐놓은 올무에 제 스스로
걸려 넘어진다(시 9:16)는 사실과 (2)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한 자의  말로는  비참한
멸망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잠 16:18)는 교훈을 배우게 된다.

                    3. 예견된 하만의 몰락(6:12-14)
   본문은 아하수에로 왕이 모르드개의 공로를 발견하여(1-3절) 하만의 계게획으로 그
를 존귀케 한 사건(4-11절)에 이어지는 부분으로 하만의 볼락에 관한 예언을 그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특히 하만이 당한 수치로 인해 실의와 참담에 처한 그의  감정적
반응을 묘사해 놓은 부분(12절)은 그의 몰락을 예언하는 장면(13절)과 더불어 묘한 조
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조화는 본장 초두에서부터 진행되기 시작한 하만의 몰락 징
조가 급격히 발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저자는 본
단락 마지막 부분에 하만이 에스더의 잔치에 급히 참석한 사실을 기록함으로써 본문의
사태가 하만의 몰락이라는 주제하에 숨가쁘게 전개되도록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14
절).
   한편 이러한 상황, 즉 사태의 역전은 하만의 치눅와 아내에게 놀라운 위기감을  불
러일으켰다(13절). 그를른 하만이 당했던 납득키 어려운 일들을 결코 우얀으로 돌리지
않고 심각한 사태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평소 그들은 유대인의 하나님에 대
해서 들어왔던 바가 있었고, 또 하만의 계획이 오히려 모르드개를 위해  사용된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그들은 그 정황을 유대인의 하나님이 행한 능력의 결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을 통해서 두드러지게 강조되는 사실은 하만의 예비적 패배(10-12절)
에 뒤이어 완전한 패배가 피할 수 없는 결과로 나타나리라는 것이다(13절; 7:10).  그
리고 이러한 예견적 사실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한  유대인의  승리
(9:11-16)라는 사실까지도 암묵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본서  저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에스더의 계획이 성사될 것(7:4-7)과, 유다 민족이 대적들을 이기게  될  것을
본문을 통해 미리 예측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1)하나님의 능력은 이방인들의 입술을  통해서
도 증거되며(겔 38:23), (2)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세력은 잠깐  득세하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에는 망하게 된다(시 1:6)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악인들의 멸망.  유대인의 대적, 하만의 몰락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이었기에 당
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께서 하만이 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몰락시키신
것은 아니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께서 작정하셨다는 것 때문에, 까닭없이 어떤 특
정한 사람을 멸망케 하신다면 하나님은 불의한 분으로 인식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께서는 결코 그런 분이 아니시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사람을  멸망시키셨
다고 한다면 멸망당한 그 사람에게는 그럴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가룟  유
다의 경우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로마 사람들에게 팔아넘기는 악역을 맡기셔서 그를 멸망시키셨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그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아니하였다.  다만 가룟 유다는 자신의 죄악의 대가를 받았던 것이다(마 27;3-5; 행 1:26:14-16). 그러므로 결국 그는 자가의 죄악의 대가를 받았던 것이다(마 27;3-5; 행 1:18).
   이처럼 하만의 멸망은 하나님의 뜻이요 섭리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반면 그  자신의 교만이 가져다 준 결과이기도 하다. 비록 그가 아말렉  족속이었다고  하더라도, 지극히 겸손하여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에 대한 박해를 시도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결코 몰락케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를 높여 그의 영화를 더학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만은 하나님의 그 같은 뜻을 알지 못하고 대살륙극을  벌이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야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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