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느헤미야 0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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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외부적으로 산발랏 일당의 방해 공작이 점점 거세어지는 와중에, 이보다 더 심각한문제가 이스라엘 민족 내부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다. 본장은 이렇듯 심각한 사회, 경제적 내우(內憂)를 느헤미야의 과단성있는 결단과 주도하에 극복해가는 장면을기록하고 있다.
백성이 그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 '차아카트 게돌라'(*), 즉 '큰 부르짖음'은 성경에서 대개 극한적인 고통의 결과로서 나타난다(창18:21;27:34;출 11:6;12:30). 따라서 본 문구는 일부 백성들이 심각한 환난 가운데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또한 본절에서 여자가 부르짖음의 주체(主體)로 나오고 있는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특히 백성의 환난이 한 가정의 생계문제와 직결된 절박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왕하 4:1;6:26;8:3).
그 형제 유다 사람을 원망하는데 - '원망하는데'(* , 엘)는 '-에 대해서' 혹은'-을 대항하여'의 뜻으로서 앞의 '백성'과 '그 아내'가 '형제 유다 사람'을 향하여 부르짖었음을 말해준다. 한편, 본절의 '형제 유다 사람'은 구체적으로, 가난한 백성을상대해서 고리 대금(高利貸金)을 한 사람들을 가리킨다(7절). 여기서 느헤미야가 그들을 굳이 '형제 유다 사람'이라고 한 까닭은, 그 고리 대금업자들이 피해자와 동족들이라는 점을 부각시켜서 그들의 몰인정성을 강조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사실 동족들에대해서 고리대금을 하는 일은 율법도 금하는 일이었으며(레 25:35-37;신 23:19), 또한상식적 판단으로도 지탄을 받아 마땅했다.

=====5:2
2-4절에 나오는 불평은 모두 심각한 빚 문제와 연관된 것이며, 이러한 빚더미에 눌리게 된 이유나 배경은 세 가지 유형으로 달리 나타난다. 문맥상으로 볼 때 여기서 열거되는 불평들은 몇몇 개인의 사례들이라기 보다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두루퍼져 있었던 일반적인 문제를 대표한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다(Williamson). 본절은고리 대금업자를 원망한 빈민들의 첫 번째 유형이다. 그들은 '가족수(家族數)'가 많음으로 인하여 빚을 지게 되었다.
곡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다 - 빈민들이 반드시 돈만을 빌린 것이 아니었음을시사해준다. 그들은 돈 뿐만 아니라 '곡식'과 '새 포도주', '기름'도 빌렸었다(11절).

=====5:3
고리 대금업자를 원망한 빈민들의 두번째 유형이다. 본절에 빚의 원인으로서 언급된 '흉년'은 사실 첫 번째 유형(2절)과 세 번째 유형(4절)의 빈민들이 빚을 지게 된근본적 혹은 간접적 원인이 됐을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흉년의 시기에 도탄에 빠지는자들은 대다수의 가난한 백성들이었다. 반면에 부요한 자들은 창고에 저장된 곡식이있었으므로 어지간한 흉년에도 버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중에서 그것을 고액에 팔아 넘겨 폭리를 취하는 자들이 생겨났으며, 결국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게되었다.
밭과 포도원과 집 - 이 세 가지는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생명 만큼이나 귀중히 여겨지던 전재산(全財産)이었을 것이다.
흉년을 위하여 - 문자적으로는 '그 흉년 동안에'이다. 따라서 본절의 '흉년'은 로린슨(Rawlinson)이 주장하듯이 과거의 흉년이라기 보다는 그 당시에 진행되던 흉년으로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팔레스틴에 큰 흉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학1:6, 9-11). 아무튼 페르시아 시대에 흉년이 잦았다는 사실은 너무도 분명하다.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팔레스틴, 특히 기브온 지역은 이스라엘 초기 시대만 해도 엄청난 포도의 생산이 있었으나 페르시아 시대에 들어서서는 그 생산량이 급강하했었다고한다(Fensham). 분명 이와같은 현상은 포도 생산에만 국한되지 않았을 것이다.

=====5:4
고리 대금업자를 원망한 빈민의 세 번째 유형으로서 그 원인을 '세금'으로 언급하고 있다.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어 세금을 바쳤도다 - 문자적으로는 '밭과 포도원에 대한 왕의 세금을 위하여 돈을 꾸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개역 성경의번역은 약간 잘못이 있다. 한편, '밭과 포도원에 대한 왕의 세금'은 그 땅에서의 평균산출량에 근거해서 거둬 들였던 토지세의 일종이었다(Fensham, Williamson). 이외에도이스라엘 사람들은 페르시아 정부에게 또다른 세금들을 바쳤다(스 4:13).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민족보다 세금 부담이 더 과중했기 때문에 곤경에 처했다고는 볼수 없다(Rawlinson).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납세 문제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까닭은, 이스라엘 사회의 경제적 형편이 극도로 피폐했던 때문이었다. 이 같은 경제적형편에 처하게 된 것은 흉년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3절). 물론 백성들이 성벽 재건 공사에 동원되어 농사를 짓는일 등의 경제 활동을 영위치 못한 것도 한 이유였을것이다. 그렇지만 그 공사가 불과 '오십이 일'만에 끝났음을 감안한다면(6:15) 성벽재건 사업은 이스라엘 경제를 피폐하게 만든 중요한 요인이 결코 아니었다.

=====5:5
본절의 내용은 위의 세 가지 유형의 빈민들(2-4절)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될 것이다. 즉, 본절은 이들이 빚을 갚지 못함으로써 다다르게 된 극단의 상황인 것이다.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 이것은 채무자나 체권자 모두 동족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결국 이같은 말을 통해서 가난한 채무자들은 채권자들의 무자비함을확연히 드러내려고 향다(1절).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 사실 채권자들이 빚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들의 자녀를 노예로 데려가는 그 자체는 죄가 아니었다. 율법은 부득이한 경우에는 동족의 자녀를 노예로 데려올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경제적인 곤경에 처했을 경우 유대인들은 가족 구성원을 담보로 삼아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이 경우에 돈을기한내에 갚지 못하면 채무자의 딸이나 아들, 그의 아내, 심지어 채무자 자신이 채권자의 종으로 봉사해야 했으며(레 25:39, 40), 제7년째 되는 해에는 다시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이다(신 15:12-18). 따라서 만일 채권자들에게 죄를 묻는다면, 그들이 가난한자들로부터 고리(高利)를 취했다는 것일 게다(7절).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으나 - 본절에서 '종 된 자가 있으나'는 문자적으로 '종으로 복속됐으나'의 뜻이다. 그런데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 니크바쇼트)가 '성적(性的)으로 정복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는 점에서(에 7:8) 이는(1) 채권자의 성적 욕구 해결을 위한 대상이 되는 일(Williamson). (2) 채권자의 첩이되는 일(Fensham)등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다. 사실 빚 때문에 팔려간 여종은 남종과는 달리 성적(性的)인 문제에 있어서 채권자의 처분을 따라야 했다(출 21:7 이하).한편, 여기서 주목을 끄는 것은, 채무자의 자녀들이 채권자의 노예가 된 것이, 빚을갚지 못해서 소유물을 빼앗긴 다음에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즉, 채무자들이 빚을 갚지못하는 경우 일차적으로는 토지 등의 재산을, 그 다음에는 자녀들까지 채권자에게 빼았겼던 것이다.

=====5:6
이런 말 - 이것은 부자들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경제적 가혹 행위, 즉 고리 대금을통한 재산 및 자녀들의 탈취 사실을 뜻한다.
크게 노하여 - 이것은 산발랏 일당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쌓는 일에 대해서 가졌던 것과 동일한 감정이다(4:1, 7). 결국 이것은 온유한 인물 느헤미야가, 그 어느때보다 일치 단합이 요구되는 때에 그것을 깨뜨리는 부자(富者)들의 횡포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5:7
중심에 계획하고 - '계획하고'(* , 말라크)는 '심사 숙고하다'의 의미가 있는아랍어에서 온 단어로서, 여기서는 느헤미야가 (1) 가난한 유대인들의 불쌍한 형편을반전(反轉)시킬 수 있는 방도를 연구하는 일, (2) 고리 대금을 한 유력한 자들을 거기서 돌이키게 할 방법을 연구하는 일 등을 가리킨다(Fensham). 본절은 경제적 횡포를자행하는 부자들을 향해 분노의 감정이 솟구치는 중에서도 차분하게 사태의 해결책을강구하는 느헤미야의 주도면밀하고 냉철한 성품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귀인과 민장을 꾸짖어 - 본절의 '꾸짖어'(* , 리브)는 '다투다', '뒤흔들다','꾸짖다' 혹은 '변론하다' 등을 뜻하는 단어로서, 여기서는 '고소하다'의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NIV, Fensham). 사실 (1) 이 단어가 칠십인역에서는 상당수 사법적 의미를함축한 '크리노'(* )로 번역된다는 점, (2) 본절이 '귀인과 민장'의 죄를 거론하는 문맥이라는 점 등으로 볼 때, '리브'라는 단어를 '고소하다'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편, '귀인과 민장'은 앞에서는 '그 형제 유다 사럇'으로 언급된 자들이다(1절). 이들은 자신의 권세를 이용하여 치부(致富)하였고, 또한 그 부(富)를 이용해서 자기의 재물을 늘려간 자들이다.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취리(取利)를 하는도다 - '취리를 하는도다'(* , 마솨 노쉬임)에 대해서는 (1) '짐을 지우다'(Fensham, Myers, JB), (2) '빚쟁이 노릇을 하다'(Williamson), (3) '이자를 거두다'(RSV, Rawlinson), (4) '이자를강요하다'(NIV) 등의 여러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이같이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는 까닭은 위의 두 히브리 단어들의 의미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첫째, 뒤의 '노쉬임'이라는 단어가 결과적으로 타인과 원한 관계를 형성켸 하는 행동을 주로 나타낸다는 점과(Kidner, 삼상 22:2) 둘째, '마솨'는 '이자'를 뜻한다는 점(BDB)등으로 볼 때 (4)의 견해가 가장 적절한 듯하다.
대회를 열고 저희를 쳐서 - 이것은 느헤미야의 일차적 '꾸짖음'이 '귀인과 민장'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었음을 암시한다(Rawlinson). 이에 따라 느헤미야는 공개적인 모임에서 그들을 책망할 수밖에 없었다(마 18:15-17). 한편, '대회'의 '회'(* ,케힐라)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언약공동체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로서(신 33:4)'카할'(* )과 동일한 의미이다(스 2:64;10:8). 한편, '저희를 쳐서'는 문자적으로는 '그들을 향하여' 혹은 '그들을 대항하여'의 뜻이지만 구체적으로는 귀인과 민장들을 공개적으로 정죄하고 책망하는 것을 가리킨다.

=====5:8
우리는...유다 사람들을...속량하였거늘 - 이에 대한 언급은 에스라 및 느헤미야서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 있었을 때 이루어졌던 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즉, 바벨론이나 페르시아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동토 중 가난한 사람이 그 땅의 이방인에게 노예로 팔렸을 경우 율법의 명령에 따라(레 25:47-49) 그 속전을 지불하고 거기서 해방시켜 주었던 것이다. 한편,여기서 '속량하였거늘'(* , 카나)은 '바로 세우다', '획득하다', '소유하다'.'사다'등과 같은 여러 의미를 지니며 특히 돈이나 기타의 대가를 주고 무엇을 되사는행위를 가리킬때 주로 쓰인다(창 25:10;삼하 12:3;전 2:7;렘 13:1).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 이것은 느헤미야 등이 페르시아에서 자신의동족을 노예 생활 중에서 속량한 것과는 너무나도 대조되는 야만적 행위이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동족의 종살이를 했던 히브리인들도 제7년 째 되는 해에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으며(레 25:40, 41), 동족인 히브리인을 이방인에게 노예로 파는 일은율법상으로 엄금되었다(출 21:8). 결국 본문과 같은 물음을 통하여 느헤미야는 '귀인과 민장'(7절)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도록 시도하고 있다.
저희가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 이것은 고리 대금을 한 귀인과 민장들이 느헤미야의 논리에 설복되었음을 암시해 준다(Rawlinson). 사실 그들의 죄악이 너무도 명백했기 때문에 아무런 변명의 여지도 없이 다만 침묵했을 것이다(요 8:7-10).

=====5:9
앞절에서 자신의 선행을 근거로 해서 귀인과 민장들의 악행을 간접적으로 책망한데 이어, 본절에서 느헤미야는 그들을 직접적으로 책망한다.
내가 또 이르기를 - 귀인과 민장들은 소극적인 의미에서는 이미 자신들의 잘못을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소극적 인식으로는 그들을 완전히 악행에서 손떼게하기에 심히 미흡하였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처럼 자신의 책망을 계속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Rawlinson).
대적 이방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들의 부도덕 혹은무자비함에 대해서 이방인들의 비방이 실제로 있었음을 보여준다(롬 2:23, 24).
하나님을 경외함에 행할 것이 아니나 - 이것은 곧 최소한 노예에 관한 율법 규정을지켜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과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일은 불가 분리(不可分離)의 관계라는 점에서 그렇다.

=====5:10
내 형제와 종자들 - '형제'는 느헤미야의 친 형제들을 뜻할 것이다(1:2;4:23;7:2).그리고 '종자들'은 느헤미야의 측근 혹은 그의 직계 부하들을 의미한다(4:16).
우리가 그 이식받기를 그치자 - 이것은 순수한 동기, 즉 동족들을 도우려는 동기에서 돈 등을 꾸어줄 것을 강조하는 권면이다. 여기서 '우리'는 느헤미야가 자신도 백성들을 향한 선한 일에 적극 참여할 당위성을 절감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출 22:25;레 25:36;신 23:19) 누구보다 뼈저리게 인식하고, 또한 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솔선하여 이행하고자 했기때문에 그의 권면은 더욱 큰 호소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재물을 꾸어주고 그에 따른정당한 이자를 받는일 자체는 정죄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이윤을 추구하는 탐욕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책망한다(시 119:36;사56:9-12;57:17;렘 6:13;8:10;22:13-19;겔 22:12-14;33:31). 특히 본문과 같은 다급한상황 속에서, 느헤미야는 아예 이자를 기대하지 말고 꾸어줄 것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아테네의 위대한 개혁자인 솔론(Solon)도 B.C. 594년경 이와 유사한 정책을 채택한 사례가 있다(Edwin Yamauchi).

=====5:11
10절의 권면을 구체화 시킨 실천 방법이다.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 - 이것들은 본래 가난한 채무자들의 것이었으나, 그들이 빚을 갚지 못해서 채권자에게 넘어간 담보물이었다. 그런데 '감람원'은, 백성들이채권자에게 빼앗겼다고 한 것들(3, 5)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감람', 즉 올리브가 그 당시 유대 지방에서 중요한 농산물 중의 하나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감람원'도 채권자들에게 필요시 능히 제공될 수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취한 바돈이나...기름의 백분지 일을 돌려 보내라 - '취한바 돈이나...기름'은 채권자들이 채무자들로부터 받아낸 이자였던 것 같다. 그리고 '백분지 일'은 그 당시 채권자가 자기들이 준 빚에 대해서 적용했던 월리(月利)였던 것 같다. 이 같은 금리는사실상 당시 페르시아의 금리가 연 20% 이상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별로 높지 않다고말할수도 있을 것이다(Williamson). 그러나 (1)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가난한 자에게서이자를 취하는 일을 율법으로 금했으며(출 22:25;레 25:36). 그 당시에는 흉년과 성벽재건하는 일로 백성들의 경제 형편이 대단히 좋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월 1%,즉 연 12%라는 금리는 매우 가난해서 먹을 것조차 없는 백성들에게는 과중하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돌려 보내라'는 '밭'과 같은 담보물에 대해서는 문자적으로적용될 수 있는 단어이다. 그러나 '곡식'등의 '이자'에 관련해서는, 이미 받은 것은돌려보내며 또한 앞으로 받을 것은 포기하라는 의미로 이해된다(12절).

=====5:12
본절은 느헤미야의 노력이 열매를 맺었음을 보여준다.
돌려 보내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 - '돌려 보내고'는 채권자들이 채무자들로부터 빼앗은 담보물과 이미 부당하게 취했던 이자에 대해서 사용된 단어이며'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는 앞으로 받을 이자의 포기를 뜻한다.
제사장들을 불러...맹세를 시키게 하고 - 느헤미야의 이 같은 조처는, 채권자들의결단을 종교적으로 승화시켜서 그들이 자신의 결단을 번복치 못하게끔 하려는 데 그의미가 있었다. 사실 공중 앞에서의 결단은 체면이나 분위기 등의 불순한 동기에 의해서 이뤄질 수 있었으므로 다시 번복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다. 어쨌든 채권자들은제사장 앞에서 신앙적 차원의 서원을 했던 관계로, 그 서원이 신실하게 이행될 때까지제사장의 감독을 받아야만 했다(룻 3:6-13 주제 강해, '맹세에 대한 바른 이해' 참조).

=====5:13
내가 옷자락을 떨치며 - 여기의 '옷자락'은 물건을 나를 때 흔히 사용되는, 마치앞치마와 같이 생긴 겉옷의 무릅 부분을 가리킨다(Keil). 한편, '떨치며'(* , 나아르)는 '흔들어 비우다'의 뜻으로서 무엇을 운반하고자 옷자락의 아랫 부분을 손으로쥐었다가 그것을 뿌리치듯이 세게 놔버리는 행동을 가리킨다(Keil). 이렇게 할 경우그 옷자락에 담긴 것은 땅에 쏟아져 내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본절의 다음부분이 시사하듯이 저주를 선포하는 상징적 행동임이 분명하다(마 10:14;행 18:6). 한편,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은 그들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예언의 메시지의 확실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백성들에게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주지시켰다(왕상 1130-32;렘 13:1-11;27:2-11;겔 4:1-17 등).
하나님이...그 집과 산업에서 떨치실지니 - 하나님께서 고리 대금을 하고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사람들의 모든 소유물을 거둬가시는 것을 가리킨다. 결국 '집과산업'은 그 고리 대금을 한사람이 자랑으로 여기던 그의 전재산을 뜻한다.
여호와를 찬송하고 -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불미스럽다(9절)고 할 수밖에 없는 고리 대금 및 그에 따른 노예의 양산(量産) 사건이 말끔히 해결되기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Fensham).

=====5:14
여기서부터 본장의 마지막부분(19절)까지는 느헤미야가 자칫 잘못하면 이스라엘의상류 계급층과 충돌을 빚을 소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앞부분(6-13절)에서와 같이 사회,경제적 개혁을 도모할 수 있었고 또한 성공할 수 있었던 근저에 대해서 말해주고있다. 그 근저는 곧 그의 청렴결백이었다.
내가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 느헤미야 자신이 페르시아 왕에 의해 임명된총독임이 처음 밝혀지고 있다. 물론 그에게 상당한 권력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앞에서이미 언급되었다(2:9). 그런데 본절의 '총독'(* , 페함)은 '페하'(* )의 오류임이 분명하다(Fensham, 학 1:1, 14). 이 같은 단정은 18절의 '총독'이 '페하'로 표기되고 있다는 사실로써도 분명해질 것이다.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 - 이것은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를 떠났던 때로서, B.C. 444년이었다.
삼십 이 년까지 - '삼십 이 년'은 B.C. 433년이다. 느헤미야는 이 '삼십 이 년'에예루살렘을 떠나서 다시 페르시아로 돌아가서 페르시아 왕실의 주관(酒官) 역할을 하다가 B.C. 432년경에 예루살렘으로 다시 귀환하였다(13:6).
나와 내 형제가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 이것은 백성들의 경제적 형편이 너무도 비참했었던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에게 백성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이해하고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사도 바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당한 대가를 받을 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이기위해 헌신적이고 희생적으로 봉사하였다(고전 9장:살후 3:8). 한편, 페르시아 제국 내의 지방 총독들은 중앙 정부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몫을 위해 세금을 징수할권리를 갖고 있었다 한다(Frye). 본절에서 '내 형제'(* , 아하이)는 문자적로는'내 형제들'로서 느헤미야와 함께 총독부의 일을 맡아 수행했던 관리들 전체를 가리킬것이다(Fensham, Rawlinson). 물론 여기에 느헤미야의 친동생 하나니가 포함된 것은자명하다(1:2;7:2). 한편, '총독의 녹' 중 '녹'(* , 레헴)은 문자적으로는 '떡'의의미로서 총독에게 마땅히 돌아갈 생활비 전체를 의미한다.

=====5:15
이전 총독들은 백성에게 토색(討索)하여 - 에스라서를 통해 느헤미야가 귀환하기전에는 스룹바벨(세스바살)이 유일하게 유대 총독으로 묘사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스 1:8;3:8;4:2;학 1:1). 어떤 학자들은 실제로 스룹바벨과 느헤미야와의 사이에는 유대에 다른 총독이 파견되지 않았다고 단정한다(Alt, Rudolph, Galling). 반면에 아비갓(N. Avigad)이라는 학자는 고고학적 자료에 근거하여 이 두 총독 사이에 엘나단(Elmathan), 예호에셀(Yehoezer), 아자이(Ahzai) 등의 총독이 있었고 느헤미야 이후에는 바고히(Bagohi), 에헤즈키야(Yehezgiah) 등의 총독이 부임했다고 주장한다. 이두 가지 견해 중 어느 하나를 고집할 만한 확정적인 증거는 다소 희박하지만, 당시 페르시아의 행정적 한계를 고려하건데 유대 땅에 일시적으로 총독 부재 현상이 있었다고해서 큰 의문점을 남기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그렇다고 하면, 본문의 '이전 총독들'이란 유대 지방에까지 행정적 영향력을 행사한 사마리아 총독들을 가리킨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사실 산발랏만 하더라도(2:10) 느헤미야가 유다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곳 백성들에 대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바로 그런 영향력의 행사로 인하여 유다 백성들은, 그 필요성은 절감하면서도 예루살렘 성벽을 복구하지 못했었다(스4:21). 한편, '토색하여'(* , 히크비두)는 '무겁다' 혹은 '누르다' 등의뜻이 있는 동사 '카베드'(* )의 사역형으로서, 세금 징수나 노역등의 많은 짐을지우거나 강압적으로 다스리는것을 가리킨다(왕상 12:10, 11;사 9:1).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취하였고 - '양식'은 음료로 사용됐던 포도주와 대조되는 것으로서 구체적으로는 18절의 '소'와 '양'과 기타 곡식을 뜻할 것이다.'또'(* , 아하르)는 '-워에도' 혹은 '-에 덧붙여서'(besides)의 의미이다. 결국본 문구는 '은 사십 세겔'이 먼저 기본적으로 징수되었고 여기에 더해서 '양식과 포도주'가 각 개인의 밭이나 포도원 등의 재산소유 정도에 따라서 별도로 징수되었음을 뜻한다(Fensham). 그런데 본절의 '은 사십 세겔'은, 한 세겔이 보통 노동자의 나흘치 품삯이었으므로 무려 석달여의 품삯에 해당하는 많은 액수였다. 그리고 이토록 많은 액수에 해당하는 '은'과 '양식과 포도주' 등은, 본절의 '토색하여'와 '하나님을 경외하여'라는 문구들을 통해서 볼때, 징수되어 총독 자신의 개인적 용도로 사용됐음이 분명하다. 한편, 이것들은 한 가정에서 매년 징수됐던 것이라기 보다는, 전 백성들로부터사사로이 징수됐던 것들의 하루 평균 분량일 것이다(Rawlinson).
그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 본절의 '압제하였으나'(* )는 원래 '통치하다' 혹은 '지배하다'의 뜻으로서, 여기서는 상전 노릇을 톡톡히 하면서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을 가리킨다(시 109:16;전 8:9).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 이것은 느헤미야가 전임 총독들과는 달리 폭정(暴政)을 행하지 않을 수 있었던 으뜸되는 원동력이었다. 즉,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그분의 백성들에게 짐을 지울수 없었던 것이다. 그 두 번째 이유는 곤궁에 처한 백성들에 대한 형제애 때문이었다(18절). 결국 느헤미야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는 가장 크고 귀한 두 계명(마 22:37-40)을 나름대로 실천하고자 애썼던 셈이다(Kidner).
이같이 행치 아니하고 - 이것은 느헤미야 자신이 사리 사욕을 취하는 등의 폭정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부하 관리들의 월권 행사를 금지시킨 것까지를 말한다.

=====5:16
이 성 역사에 힘을 다하며 - 이 같은 모습은 (1) 이전 총독들이 '성 역사'를 적극방해한 것(스 4:17-20), (2) 백성의 지도자들이 '성 역사'에 참여치 아니한 것(3:5)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사실 느헤미야는 '이 성 역사'를 위하여 (1) 페르시아왕의 술관원이라는 편안하고 영화로운 자리(2:1)를 포기하고 그 먼 곳 예루살렘까지 왔으며,(2) 그 일을 시행하는 동안 옷도 못벗고 감독과 경비를 하는 등 수고를 하였으며(4:23), (3) 심지어는 그 일을 방해하는 무리로부터 죽음의 위협까지도 받았다(6:2).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 느헤미야가 백성들에게 고리 대금을하여 그들로부터 땅을빼앗지 않았던 사실을 가리킨다(10절).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땅은 하나님이 주신선물이었으며, 그것을 상실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조차 파기되는 것으로 여길 정도였다(민 27:1-11 주제 강해, '토지의 사유 재산과 세습 제도' 참조). 따라서당시 유대사회에 횡행했던 토지 몰수 사례들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악이었는지가자명해진다.
나의 모든 종자도 모여서 역사를 하였으며 - 이것은 앞에 언급된 총독의 '종자들'이 백성들의 상전 노릇을 한 것과 너무도 대조된다(15절). 사실 느헤미야의 종자들은'성 역사'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성 역사에 참여하고 있던 백성들을 군사적으로 보호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었다(4:16, 23).

=====5:17
내 상에는...일백 오십 인이 있고 - 통치자가 자신의 참모나 신하를 부양하는 것은고대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풍습이었다(왕하 25:29). 따라서 느헤미야가 많은 사람들을자기의 상에서 함께 먹게 한 것은 그 당시로서는 지극히 당연하였다. '유다 사람들과민장들'은 오히려 '유다 사람들 즉 민장들'(KJV, the jews and rulers; LB, Jewishofficials)로 이해된다(Rawlinson, Williamson). 사실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공동체의일반적 구성원으로서의 '유다 사람들'을 자신의 상에서 먹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면 이방인 중에서 우리에게 나아온 자들 - 여기에 대해서는 (1) 계속 이방땅에 살다가 새로이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유대인들이라는 견해(Keil, Rawlinson,Batten, 박윤선), (2) 특별한 일 때문에 예루살렘에 들린 이방인 외교관이라는 견해(Fensham, Williamson)등의 두 가지 해석이있다. 그러나 첫째, 본절의 '우리 사면'이라는 말은 그 당시에 귀환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주로 바벨론 지역에서 살았음을 감안한다면 새로 귀환한 유대인으로 보기 곤란하며 둘째, 만일 해외에서 귀환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포로기 이전 조상의 연고지로 가서 살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 등으로 보아 위의 두 해석중 나중의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사실 페르시아정부에 의해 임명된 총독 느헤미야가 (1) 예루살렘을 목적지로 하는 페르시아 외교 관리나, (2) 페르시아 중앙 정부를 목적지로 하는 애굽등지(等地)의 외교 관리가 업무차왔거나 잠깐 경유하여 쉬었다가 가려고 할 때 그들을 환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였다(Fensham).

=====5:18
사실 본절에 언급되고 있는 음식의 양은 그 밖의 보조적 음식을 더할 경우 4, 5백명은 능히 먹일 만한 것이었다. 느헤미야는 이 많은 양의 음식을 대기 위해서 엄청난비용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백성들로부터는 합법적인 돈일지라도 받지 아니하였다.
살진 양 - 여기서 '살진'(* , 베루로트)은 '깨끗이 하다', '선택하다'의의미를 갖는 동사 '바라르'(* )에서 온 단어로 '선택한'혹은 '손으로 뽑은'이란뜻이다.
닭(* ,치포림) - 이것은 가금류(가금류)로서의 '닭'이 아닌 들새 종류를가리킨다(Fensham, 신 4:17;시 8:8).
열흘에 한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 이것은 포도주를 마실 기회가 열흘에한 번씩 주어졌음을 뜻하지 않는다. 포도주는 중근동 사회에서는 일종의 음료였음을볼 때, 항상 식탁 위에 올려졌을 것이다. 다만 총독부가 그것을 열흘에 한 번씩 한꺼번에 준비하였음이 분명하다. '각종 포도주'(* , 베콜 아인)에 대해서는다음과 같은 두 가지 해석이 제시된다. (1) 여기의 '베콜'이 포도주의 용기(用器)를가리키는 '네벨'(* )의 오류로 보고 '포도주 여러 부대'라는 해석(Fensham,Rudolph, Myers), (2) 맛소라 본문에 근거하여 여기처럼 '각종 포도주'라고 해야 한다는 해석(Rawlinson, Williamson)등이 있다. 그러나 첫째, 분명한 증거도 없이 맛소라본문을 고치는 것은 무모하며 둘째, 개역 성경의 번역에는 생략됐지만 '각종 포도주'다음에는 별도의 수량을 표시하는 단어(* , 레하르베, '많이'의 의미)가 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두 견해 중 두 번째의 것이 보다 타당한 듯하다. 여기의포도주의 종류에 대해서는 본장 주제 강해를 참고하라.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 - 이것은 느헤미야 자신이 합법적으로 지출하는비용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로부터 거둔 세금이 아닌 자기 자신의 사재(私財)로 충당했음을 뜻한다(14절).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니라 - 이것은 느헤미야가 자신의 필요를 위해 백성들로부터세금을 징수치 않았던 중요한 이유였다. 느헤미야는 15절에서 이같이 한 이유를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한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부역'(* , 아보다)은구약 성경에서 '봉사' 혹은 '노동'등으로도 번역되는 단어이다(창 29:27;민8:11;28:18). 따라서 여기의 '부역'은 백성들이 성벽 재건에 동원되서 애쓰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단어를 좀더 넓게 문맥적으로 보면 (1) 성벽 재건에 따른 백성들의수고 뿐만 아니라, (2) 페르시아 왕실에 바쳐지던 각종 세금(4절;스 4:13)등 모두를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Fensham).

=====5:19
느헤미야는 이 기도를 통해서 (1)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상급을 베풀어 주실 것과(Rawlinson), (2)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실을 옹호해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다(Schultz). 그러나 느헤미야는 자신의 선행을 근거로 보상을 간구하고 있지는 않다.4:4, 5과 13:22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그는 하나님의 용서와 축복이 오직 그분의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임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다고 이해된다. 이러한 영적 자각 속에서, 하나님과 동료 유대인들을 향한 자신의 헌신이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Williamson).

 

 

 

   성벽을 재건하는 과정(3-6장)에서 지금까지는 건축자들의 명단과 그들이  담당했던
지역(3장), 그리고 이방인들의 방해 공작(4장)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이에  이어지는
본장은 이스라엘이 당면했던 내적 문제를 기술한 것으로 앞서 서술된 외적  문제(4장)
와는 그 성격상 정반대의 것이다. 즉, 앞장에서는 유다 백성을 중미으로 보았을 때 그
외적인 곳으로부터 발생한 문제를, 그리고 본장에서는 유다 백성들의 내부에서 생성한
난제를 다룬다. 그래서 본서 저자인 느헴이야는 성벽 재건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외적, 내적 문제에 직면해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내외 문제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내적 난제를 언급하는 본장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즉, (1)원망의 형태로 표출된 사회 문제를 기술한 전반부(1-5절), (2)
느헤미야로 말미암을 문제의 제의와 해결을 서술한 중반부(6-13절),  그리고  (3)문제
해결의 한 요인으로서 언급된 느헤미야 자신의 청렴성을 그린 후반부(14-19절)로 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를 통하여 본장에서 느헤미야는 당시 유다 백성들이 직면해 있던 사
회문제를 드러냄과 동시에 그 해결 과정이 어떠했음을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 본장의 사건은 성벽 재건 공사가 진행되고 있던 중간에 발생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때만 해도 성벽 재건 공사와 관련한 대부분의 어려운 고비들은 많이  해결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벽도 어느 정도 높이까지는 쌓아졌기 때문에  산발
랏 일당의 무력 시위로 인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대외적
인 문제는 거의해결되어 마무리되는 단계에 와 있었을 시점에서 상류층 인사들의 횡포
로 인한 내부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본장의 문제는 느헤미야가 팔레스틴으로 귀
환하기 전분터 잠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귀환한 후 성벽 재건 이 이스라엘
공동체 전반의 경제 형편을 어렵게 하는 한 요인이 되면서 이 문제가 표면에 노출되었
을 뿐이다.
   그런데 상류층 인사들의 불법 행위로 인하여 백성들이 원망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한
이 사건은 민족적 화합을 깨뜨릴 만한 중대 문제였다. 그 문제가 그대로 방치될  경우
심하게는 민중 봉기까지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택함 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온 세상에 나타내야 할 이스라엘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극심한 내분으로 말미암아 민족적인 통일성을 상실한 채 여러 이방 민족들  중
에 흩어지게 될 것이 뻔하였다.
   따라서 본장의 사건은 반드시, 그리고 신속히 처리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이  같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느헤미야는 본장의 사건을 성벽 재건 사이에  언급하는  것이
다. 즉, 본서 저자는 본장을 성벽 재건을 다루는 문맥의 중간에 둠으로써, 본  사건의
해결이 성벽 재건만큼이나 중대한 일임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는 이같은 중대한 문제를 르헤미야의 귀환과 때를 맞추어 노출시키심으로써, 그로  하
여금 그 문제를 해결토록 섭리하셨다. 사실 포로 귀환 시대의 최대의  문제는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백성이 민족적 통일성을 유지토록 하여  여
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예상치도 않았던 사회 문제가 갑자
기 대두됨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신앙 공동체를 깨뜨릴 위기가 닥쳤던 것이다.  그래
서 바로 이 같은 상황을 대비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 느헤미야를  준비하셨고,
또한 그를 팔레스틴으로 보내셔서 당신의 모든 계획이 일말의 착오없이 진행될수 있도
록 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본장의 전체 내용 가운데 나타나 있는 특징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다
름이 아니라 본장 전(全)내용 속에 지금까지 암시적 혹은 표면적으로 강조되었던 하나
님의 섭리와 그의 역사하심(2:8, 12, 18,20;4:15, 20)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
이다. 그래서 본장 전체는 느헤미야가 자신이 갖고 있던 탁월한 행정력과  조직력으로
당시 산재해있던 유다 내부의 사회 문제를 해결한 것 같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러한 난제의 표출과 그에 대한 해결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이러
한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본서 저자인 느헤미야는 자신이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의
내용(19절)을 본서에 언급된 다른 기도(1;5-111;4:4-6;6-14등)와 같이 의도적으로  서
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본장은 지금까지 언약의 백성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정의를  회
복하기 위하여 노력해 온 느헤미야가 그 정의를 실질적으로 회복한 것에 대한  기록이
기도 하다. 즈, 느헤미야는 문제 해결 과정 중에서 이스라엘이 택함 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다른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모범을 보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본장을 통하여 (1)모든 문제는 피상적인 관찰이  아닌  근원부터의
심층적 관찰을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며(수 22:21-34), (2)공동체 내부의 문제는  그
공동체 밖의 외압(外壓)보다 폐해(弊害)가 더 심각함(잠 27:15;마 12:25)을 깨닫게 된
다.

                    1. 표출된 사회 문제(5:1-5)
   바벧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사회가 안고 있던 내부 문제를 언급한 본문에는 그 사
회적 난제의 종류가 기술되어 있다. 즉, 본문은 특별히 느헤미야 당시 백성들을  경제
적 어려움에 처하게 한 세가지 원인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바, 그것은 (1)지나친  인
구 증가(2절), (2)흉년(3절), 그리고 (3)과중한 세금 문제(4절) 등이 었다. 이러한 사
실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는 분문은 (1)백성들의 원망을 그려 당시의 사회문제를 표
출시키는 구절(1절), (2)유다 백성들이 갖고 있던 내적 문제의  진원을  언급한  대복
92-4절), 그리고 (3)겉으로 드러난 사회 문제의 실제 상황을 원망으로 설명하는  장면
(5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진술을 통하여 본서 자자즌 당시 유다  백성들이
직면했던 사회 문제를 드러냄과 동시에 그 문제의 실상을 나타낸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에는 대표적으로 원망하는 자들이 그 부류별로  언급
되어 있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재산이 전혀 없는 노동자들(2절) :  이들
은 소유한 집과 밭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녀까지 많아서 삶을 영유하기가 무척이나 힘
들었다. (2)먹고 살 양식을 위하여 재산을 저당잡힌 자들(3절) : 밭과 포도원과  집을
갖고 있었지만 흉년으로 말미암아 먹고 살 양식 때문에 그것들을 저당잡힌  자들이다.
(3)세금 때문에 저당잡힌 자들(4절) : 바사왕에 의하여 부과된 과도한 세금 때문에 자
신들의 소유를 맡기고 빚낸 자들로서 그 이자로 인하여 실제로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 같은 백성들이 생기게 된 원인은 느헤미야 귀환 시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  왔
을 것이기 때문에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경제적 어려움은 매우 심화되어 있었음이  분
명하다. 그리고 채주(債主)들이 담보 없이는 돈이나 곡식을 꾸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정도가 매우 극심하였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글들은 채무자들로부터 고리(高利)
를 취했기에 그 정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심각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가난한 자들로부터 담보물을 잡는 것이나 고리를 취하는 것 모두가 율
법 규정에 어긋나는 일들이었다(출 22:25; 신 24:12). 그러나 당시 부유한 자들은  안
전한 대출의 회수를 위하여 가난한 자들로부터 담보를 확보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그
들은 담보를 제공치 않는 사람에게는 빚도 주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더  나아
가 고리를 취하고 빚을 갚지 못한 사람의 담보물뿐만 아니라 자녀를 그 대가로 취함으
로써 더 높은 원성을 샀다. 그래서 채무자의 자녀들은 노예로 절락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증언하고 있는 본문은 권력과 부(富)에 의하여 압제당했던  당
시 백성들의 삶을 잘 나타내고 있다(시 22:16).
   그런데 이 같은 타락사은 포로 귀환 시대 이후의 영적 상태을 반영한 것이다. 비록
그 당시의 경제 형편이 전반적으로 매우 나쁘기는 하였지만, 부유한 자들에게  하나님
께 대한 경외심이 있었단면 그들은 자신들의 부(富)를 가난한 자들과  함께  나누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유한 자들은 오히려 그 같은 상황을 치부(致富)의  기회로  삼았다.
사실 성벽 재건이라는 막주안 사업을 추진하고 있던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있어 이러한
문제는 다시금 이스라엘을 파멸케 할 만한 심각한 요인이었다. 비록 그때  성벽  재건
사업이 추진되고 있기는 하였으나 백성들의 마음이 나누어질 경우 그  사업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유한 자들의 고래 대금 행위로  인한  백성들의
원망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일은 느헤미야에게 성벽 재건 사업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 같은 본 단라을 통하여 (1)성도의 빈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으로
감당해야 할 과업이며(행 11:28-30; 고전 16:1), (2)경제 정의(正義)의  실현은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사회가 이루어질 때만 가능함(잠 8:15)을 깨닫게 된다.

   *구약 시대의 담보물.   구약 시대의 채권자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채무자의  부채
상환 거부 사태를 예방할 목적으로 채무자에게  어떤  담보를  요구할  수  있었다(창
38:17). 그러나 이 담보물은 비록 빚을 얻어 씀과 동시에 채권자에게 넘어가지만 소유
권은 여전히 채무자에게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했다고  해도,
채권자는 그 담보물을 처분하여 자신의 재산으로 확보할 권리를 갖지 못하였다. 그 담
보물은 다만 돈을 빌려갔다는 증거로서의 가치만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한 예로 구약 시대에 가장 흔히 담보물로 사용된  것이  의복이었다는  사실(출
22:26;신 24:12, 13)은 채무자가 돈을 못 갚았다고 해도 채권자에게 담보물을  처분할
권한이 없었음을 단적으로 증며해 준다. 즉, 담보물로 흔히 사용된 의복은 필경  채무
자가 채권자에게서 빌린 돈의 액수에 훨씬 못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만일  처
음부터 채무자가 돈을 목 갚을 경우 채권자가 담보물을 처분하여 자신의 채권을  일체
의 손실없이 회수할 생각을 했었다면 그는 분명히 자신이 꾸어주 돈의 액수 이상에 해
당하는 담보물을 요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구약 시대의 채권자들은  담보물을  다만
채무자가 빚을 꾸어갔음을 증명하는 증거로서만 여겼기 때문에 값으로 치면  얼마  안
되는 의복을 담보물로 삼았던 것이다. 또한 이뿐만 아니라 율법은 채권자가 담보로 잡
은 의복을 밤이 되기 전에 채무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명령하기도 해서 그  담보물
이 채무의 변제용(辨濟用)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나타낸다(출 22:26).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담보물이 채권자의 채권 학보 수단으로 사용되
는 것을 용납지 아니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옷을 담보로 사용토록 하신 것은 채권
자가 채무자를 믿고 돈을 꾸어 주도록 하시기 위한 세심한 배려였다. 즉,  하나님께서
는 그같이 하셔서라도 가난한 자들이 부유한 자들로부터 돈을 꾸어 쓸 수 있게 하셨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구약의 담보물은 채권자가 아닌 가난한 채무자를 위하여  존재하
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의도와는 반대로 담보물이 채권자의 채권 확보 수
단으로 사용되었다면, 그것은 그 같은 일이 있었던 당 시대에 존재한 사악성의 반영임
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의미로 볼 때 포로 귀환후의 유다 사회가 어떠했었는지를  조
금은 추측할 수 있다.

   *성경에 언급된 각종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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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        류 |       성                         격            |  성     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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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라   크 |'걷다'라는 뜻의 히브리 동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스 4:13,20:7:|
|              |보통 '잡세'나 '도로세'(통행세                   |   24        |
+--------------+------------------------------------------------+-------------+
| 마        스 | KJV의 '조공' 보다는 피정복 국민으로부터의      |신 20:11     |
|              | '노동력 징발'                                  |             |
+--------------+------------------------------------------------+-------------+
| 메   케   스 |정북국이 조약을 통하여 피정복민에게 부과하였    |민 31:37     |
|              |던 세금이나 조공                                |             |
+--------------+------------------------------------------------+-------------+
| 오   네   쉬 |정벌적인 세금 혹은 전리품조로 바쳤던 벌금       |왕하 23:33   |
|              |                                                |             |
+--------------+------------------------------------------------+-------------+
| 에        렉 |피정복국이 정복국에게 조공이나 세금을 바치기    |왕하 23:35   |
|              |위하여 자국백성들에게 강제적으로 부과하였던 세금|             |
+--------------+------------------------------------------------+-------------+
| 켄   소   스 |동전으로 지불되었던 인두세 혹은 잡세            |마23:17,19;  |
|              |                                                | 막12:14     |
+--------------+------------------------------------------------+-------------+
| 텔   로   스 |간접세의 일종으로 통관세 혹은 관세              |마 17:25; 롬 |
|              |                                                |13:7         |
+--------------+------------------------------------------------+-------------+
| 포   로   스 |농산물로 바쳤던 세금 혹은 조공                  |눅 20:22; 롬 |
|              |                                                |13:7         |
+--------------+------------------------------------------------+-------------+
|다 아 라 크 몬|반 세켈씩 바쳤던 성전세                         |마 17:24-27  |
|              |                                                |             |
+--------------+------------------------------------------------+-------------+

                    2. 느헤미야의 문제 해결책(5:6-13)
   느헤미야 당시 유다 백성들이 직명했던 사회 문제, 즉 경제적 빈곤의 문제를  원망
의 형식으로 토로한 사실을 언급한 전단락(1-5절)에 이어지는 본문은 그 난제를  해결
하는 대목이다. 즉, 본문은 당시의 백성들이 호소한 사회적 부조리에 대하여 느헤미야
가 민감히 대처해 수습하는 장면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은 (1)크게  노하
여 대회를 열고 귀인과 민장을 꾸짖는 대목(6-8절), (2)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설득하는 장면(9-11절), 그리고 (3)이에 민장과 귀인들이  느헤
미야의 말대로 시행하기로 경절하자 맹세시키는 부분(12, 13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본서 저자인 느헤미야는 자신이 1차로 꾸짖고 나서, 2차로 설득함으로써  문제
가 해결되었음을 발히고 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느헤미야는 귀인들과 민장들을  맹
세시켜 다시는 그러한 사회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처하였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이처럼 문제에 대하여 신속히 대처한 것은 그 난제가 갖는 심각
성 때문이었다. 느헤미야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만 한다고  판
단하였던 것이다. 물론, 느헤미야의 이러한 문제 해결 접근 방식은 에스라의 방버과는
사뭇 달랐다. 에스라의 경우 그는 문제 발생 소식을 들었을 때 옷을 찢고 기도와 급식
을 하는 등의 종교적 반응을 먼저 보였었다(스 9:3). 반면 느헤미야는 그 같은 반은은
생략한 채 의분을 품음과 동시에 바로 필요한 조치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느헤미
야의 이러한 반응이 그의 불시앙이나 불경건을 반영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왜냐하
면 문제를 전부 해결한 후 그는 백성들을 우이하여 여호와께 보호를 요청하는  기도를
드렸기 때문이다(19절).
   그러나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차이는 두 사람의 직분의 성격상 다음과 같은  관련이
있다. 물론 느헤미야의 사역이 종교적인 측면과 전혀 무관할 수 없었다. 그러나  느헤
미야는 팔레스틴에 총독의 신분으로 왔기 때문에 그의 사역 방식이 순수히 종교적  성
경의 사역을 위하여 팔레스티에 온 에스라의 방법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본서
저자인 느헤미야는 비록 자신이 약간의 종교적 반응을 보였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사
역적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그 같은 반응을 성경 기록에서 제외시켰을 것
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본문에 나타나 있는 내용상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1)느헤미야의 책망(6-8절) :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에게
꾸어준 돈에 대해서 이자를 받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같은 언약의 백성인  동족에게는
이자를 받는 것이 금지되었다(신 23:19, 20; 24;10-13). 또한 동족에게 돈을 빌려  주
더라도 채권자로서의 자세가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자비롭게  행해야
했다(출 22:25-27;레 25:35-37). 그러나 이들은 동족에게 이자를 취했을 뿐만  아니라
(7절) 자비롭게 행하기는 커녕 동적이 이방인에게 팔리른 것도 묵인하였다(8절). 그래
서 느헤미야는 먼저 대회를 열어 당시의 부유층 인사들을 엄히  꾸짖음으로써  문제의
해결책을 강구한 것이다.
   (2)설득 및 권고(9-11절) : 느헤미야는 엄하게 책망하고 나서 하나님을 경외할  것
을 권고하였다(9절).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부터 율법을 준수하는 태도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구체적으로 당시 저당잡았던 것들의  100/1
을(11절) 동족에게 돌려줄 것을 설득하였다. 이건은 느헤미야가 신명기  율법의  근본
정신을 적용한 것으로 오늘날 어려운 난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현대의 수많은 문제들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엄하게  책망해
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는 성경에 그 근본을 둔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간 중
심적인 방법과 생각이 앞서거나 가미되기 때문이다.
   (3)행하리라는 맹세(12, 13절) : 본문에서 언급된 이 같은 사회 문제는 시간이  흐
름에 따라 다시 재발될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이러한 난제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파
괴하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선민으로서 지켜야 하는 율법을 범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느해미야는 당시 저주의 맹세에 대한 상징적 행위를 통하여 그 사실을 지킬 것
을 요구하였다(행 18:6).
   한편, 이와 같은 사실은 바벧론의 포로 생활에서 귀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금 노예로 전락시키는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바벧론에서 노예로 지냈던 유다 백성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고향에 와서 경제.사회 문제 때문에 또다시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것은 노예생활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이제는 동족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말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느헤미야는 이 사회적 난제를 해결코자 노력하였던  것이
다.
   우리는 이 같은 본 단락을 통하여 (1)지도자는 항상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조처를 취해야 하며(갈 1:10), (2)회중에 대한 권징은 반드시 신앙의 목적과  신
아적인 방법에 따라 이루어져야 함(마 18:15-17)을 깨닫게 된다.

   *구약 시대의 고리 대금업.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여러 요인들에
의하여 경제력을 상실하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당시 백성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
을 빌려 주는 것이 좋은 일(시 37:21;112:5)인줄 알면서도 대부분 그러기를  거절하였
다. 이는 빌려간 자들이 그 후에도 반환 능력을 갖지 못할 경우가 많았고, 비록  반환
능력을 소유하게 되어도 갚지 않으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빌려 주는 일은 계속되었는데 그 경우 채궈자는  채무자에
게서 이자를 받을 수 없었다(출 22;25; 레 25:35-38). 하나님께서 돈을 꾸어 주는  일
이 가난한 자들의 유익이 되기를 원하셨지, 부유한 자들의 치부(致富) 수단이  되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공동체가 경제적으로 복잡해지고  이교적인
문화.풍습의 유입과 더불어 율법의 가난한 자 보호 정신이 쇠퇘해지자 이스라엘  사회
에는 이미 다윗 시대부터 동족간에 이자를  취하는  풍습이  존재하기  시작하였다(시
15:5). 이러한 것이 후대에 가서는 그 정도가 보다 심해진 듯하다. 그래서 에스겔  선
지자는 이자를 취하는 일을 예루살렘의 타락상 중 하나로 언급하기 조차 하였던  것이
다(겔 22:12).
   그런데 고리 대금이 포로 귀환 시대에 본격화된 까닭은 가진 자들의 탐욕을 부추긴
이스라엘 주변국들의 높은 이율 때문이었다. 즉, 바벧론과 앗수르 지역의 이율은 돈의
경우 연리 20%에서 25%였고 곡물의 경우는 연리 33%나 되었다.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보다 높앗 돈을 빌려 주는 경우도 연리 33% 정도였고, 곡물의 경우는 연리 50%
정도였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방의 경우였다. 적어도 구별되게 살아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율법 정신에 따라 무이자로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꾸어  주
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렇게 하지 못한 까닭은 귿르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19절).
   
   *가진 자들의 사회적 책임.   인간은 누구나 청지기 의식을 소유해야 한다. 즉, 자
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
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소유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식에 따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그렇지 못한 듯하다. 왜냐하면 오히려 자신이 소유한  현
재의 부(富)를 활용하여 더 많은 부를 축적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가난한 자들의 보호를 위하여 소득 재분배 정책을 펼치려는 정부의 노력에 온갖  수단
을 동원하여 제동을 건다. 따라서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 현상은 더욱  심화되
어만 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가난한 자들은 온갖 노력을 다해도 살아가기가 힘들어
진다. 왜냐하면 노력 여하에 따라 수입액은 증가할 수 있어도 상대적 빈곤감은 부유층
의 기하 급수적 재산 증시과 더불어 깊어만 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적 부를 소유한 자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소득 재분배에 힘써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가난한 자들의 빈곤감이 지나치게 깊어진다면 그 결과는 어떠하겠는가? 자신들의 생존
권 확보를 위한 갖가지 투쟁을 일으키고 그로 말미암아 사회가 불안해질 것이다. 심지
어는 민중 폭동까지 예상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지경에 도달하게 될 때, 과연  부유한
자들에게는 그러한 소용돌이가 자신들과 전혀 무관하단 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생
각켠대 만약 이러한 사회문제가 발생했다면 그것은 부를 소유한 사람이 그 경제적  가
치를 바로, 혹은 정당하게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기에 그 책음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를 축적한 자들은 소득 재분배 정책이 펼쳐질 수 있도록  노력해다  한
다. 그리고 보다 검약한 생활 테도를 견지함으로써 가난한 자들로 하여금 상대적 빈곤
감을 덜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은 청지기 정신을 소유한  그리스도인
들에 의하여 선도되어야 한다. 경제 정의가 실현되는 사화와 경제 정의를 실행하는 성
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말이다.

                    3. 느헤미야 자신의 삶에 대한 소개(5:14-19)
   성벽을 재건하는 동안(3-6장) 이에 대한 외적(4장) . 내적(1-13절) 방해 공작이 있
었음을 밝힌 저자는 이에 이어 당시 자신의 내적 새활을 회상함으로써 유다 사회에 만
연해 있던 사회 문제를 어떻게 해서 해결했는가 하는 점을 밝힌다. 즉,  본문은  포로
귀환 이후 이스라엘 전역에 걸쳐 심각히 퍼져 있던 사회.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그 해결책이 왜 설득력이 있었는가 하는 점을 밝히는 대목이다. 이처럼 당시 극심했던
사회 문제를 해결 가능체 한 요인을 설명하고 있는 본문 (1)타 유다 총독과  느헤미야
자신과의 비교를 통해 청렴 결백성을 주장한 전반부(14-16절), (2)느헤미야  자신에게
베풀어진 양식을 열거하면서도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중반부(17,18
절), 그리고 (3)이러한 사실을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한 후반부(19절)로 구
성되어 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당시 자신의 선정(善政)을 드러냄과 동시에 이  같은
사실을 회상을 통하여 여호와의 은혜를 구하느 자신의 신앙 고백을 나타내고 있다.
   당시 페르시아의 지방 관리들, 즉 각 지역의 총독들을 일정한 급여를 받았다. 그런
데 그녹이 대부분 자신이 책무를 수행하는 지역에서 징수한 지방세에 의하여 충당되었
는 바,적지 않은 지배층의 관리들이 자신의 편리와 이익을 위해 백성들을  토색(討索)
하고 압제하였다. 이와 더불어 백성들은 성벽 재건 중에 고역으로 시달렸을 뿐만 아니
라(4:10) 당시 유다 민족이 안고 있었던 사회.경제 문제(1-5절) 때문에  도탄에  빠져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느헤미야가 앞 단락에서와 같이(6-13절) 당시 유다의 상류층 인사들
에게 심한 반발을 받을지도 모를 엄한 시책을 요구할 수 있었던 근거는 본무네 재시된
대로 그가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어떤 절대적 원칙이 되어  모든  시대,
다양한 상황 속에 그대로 적요되는 것이 무리이기는 하나 역사적 위기를 맞아  자신의
영달을 돌보지 아니하고 오직 민족의 생존 번영을 휘하여 헌신할 각오가 되어  있느냐
하는 점이 참 지도자를 가리는 중효한 시금석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이런
마음이 없는 자는 자칫 노략질하는 이리 되기 쉽기 때문이다(요 10:12).
   이 같은 내용의 본무에는 느헤미야 자신이 왜 합법적 녹을 포기했는가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하나님을 경외하므로(15b절) :  느헤
미야가 예루살렘에 총독으로 온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어려움을 보살피고 성벽을 재
건하기 위함(1:5)이었다. 그러게에 당시 백성들의 실제 생활을  목도한  느헤미야에게
있어 백성들을 압제하고 토색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유다로 보낵 목적에 우가배
되능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심을 소유했기에 그 녹을 포
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2)백성들의 부역이 중하므로(18절) : 앞에서 잠시 살펴본 대
로 당시 유다 백성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러기에 하나님
을 경외하는 느헤미야가 백성들의 부역의 중함을 알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것은  당
연한 것이다. 이를 통해서 볼 때 국가와 민족을 위한 느헤미야의 처신과 조처는  동서
고금을 통하여 귀감이 되는 행위이다.
   한편, 느헤미야의 기도(19절)는 하나님을 향한 겸손과 신뢰를  서정적으로  표현한
다윗의 시(131편)와 유사할 뿐만 아니라 위로의 응답을 간구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기
도(렘 15:15-18)와도 비슷하다. 이와 더불어 그의 태도는 봉사의 대가를 받지 않고 친
히 애써 주야로 일해 생활비를 마련한 바울(살후 3:8)의 신앙과도  일맥  상통(一脈相
通)하는 면이 있다.
   우리는 이 같은 본 단락을 통하여 (1)지도자의 진위(眞僞)는 그 지도자가 백성  혹
은 회중을 사랑하는지의 여부로써 판명되며(요 10:10-12), (2)지도자의  모범적  삶은
회중에 대한 지도자의 말씀 선포를 보다 강력하게 함(딤전 3:2,5)을 깨닫게 된다.

   *포도주의 종류.   고대로부터 팔레스틴과 수리아 지방은 질 좋은 포도주 양산지로
유명하였다. 그래서 시누헤(Sinuhe) 지방, 그곳에는 '물보다 포도주가 더 많다'고  하
였다(Prichard). 그런데 포도주에는 다음과 같은 종류들이 있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
과 같다.
   첫째, '아인'(*      )이다. 영어 성경들이 거의 'wine'으로 번역하는 이것은 일반
적 의미로서의 포도주를 가리킨다.
   둘째, '티로슈'(*          )이다. 이것은 영어 성경에서 'new wine'으로 번역하지
만, '아인'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포도주를 가리킨다. 그러나 또한 이것은 갓짜낸 포도
즙을 가리키기도 한다(미 6:15).
   셋째, '아시스'(*        )이다. 이것은 '압착하다' 혹은 '짓누르다'를 뜻하는  동
사 '아사스'(*      )에서 파생된 것으로 문자적으로는 '즙'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
은 앞의 '티로슈'처럼 목에 슬슬 잘 넘어가 음주자를 자신도 모르게 취하게 만드는 술
이다(사49:26).
   넷째, '헤메르'(*      )이다. 이것은 포도주를 가리키는 아람어로서(스 6:9;7:22;
단5:1,2,4,23), 시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추측컨대 이것은  '거품을  일으키다'  혹은
'발효하다'를 뜻하는 동사 '하마르'(*      )에서 파생된 단어인 듯하다.  그런데  이
포도주은 그 검붉은 빛깔 때문에 사람의 피를 상징하기도 하였다(창 49:11; 신 32:14;
사 63;3; 계 14:20). 예수께서 포도주 잔을 드신 채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라고 말씀하신  것
도 바로 위의 사실을 염두에 두시고 하신 것인 듯하다.
   다섯째, 그밖의 혼합된 포도주가 있다. 때에 따라서는 보통의 포도주에 물이나  향
료 등을 타서 마시기도 하였다(사 1:22). 물론 이 같은 것은 개인의 독특한 취향과 관
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혼합된 포도주는 구약 성경에서 부정적인 시각으
로 언급된다(잠 9:2, 5).

   *포도주 제조 과정.   포도는 보통 8, 9월에 수확해서 농부들은 그것을 얼마  동안
태양 볕아래 펼쳐 놓고 말린 후 본격적인 포도주 제조에 들어간다.  그런데  논부들이
포도주 제조를 위하여 본격적으로 하는 최초의 일은 포도알을 암석을 파내어 만든  통
에 집어 넣고 발로 밟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포도는 포도즙이  되어  수로(水路)를
통하여 보다 낮은 위치에 놓여진 또 다른 통으로 흘러간다. 또한 이와는 달리  포도즙
을신속히 짜내기 위해 무거운 돌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 방법은
포도주의 질과 농도의 유지를 위하여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농부들이  포도즙
을 짜내기 위하여 통 속의 포도를 밟는 일은 대단히 기브고 즐거운  일로  간주되었다
(사 16:10;렘 25;30;48:33). 이러한 이유로 볼 때 시편 8,81, 84편은  추측컨대  포도
수확기에 불려졌던 노래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시편들의 부제(副題)인  '깃딧
에 맞춘 노래'에서 '깃딧'이 '포도주 통'을 가리키는 용어와 그 어근이 동일하다.
   포도주를 만들기 위한 그 다음의 일은 포도즙이 모여 있는 두 번째 통 안에서 그것
을 발효시키는 작업이었다. 이 발효는 포도즙이 된 지 6시간 이내에 자연적으로  이루
어졌다. 농부는 그것을 보다 제대로 숙성시키기 위하여 항아리(렘 13:12;48:11)나  가죽 부대(욥 32:18, 19)에 넣어 보관하였는데, 특히 가죽 부대의 경우 포도주의 발효로 인하여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가스 방출을 위하여 마개를 열어 놓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가죽 부대는 터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이 사실을 반영해 말씀하신 적이 있다(눅 5: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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