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 여기서 "전한
것"이란 히브리 원어 쉐무아( )는 전파되어 뭇사람에게 들려지는 말씀을 의미한
다. 롬 10:16-17 참조. 본절은 2-12절에 예언되는 그리스도의 수난의 대속적 의미를
세상 사람들 중 다수가 믿지 않을 것을 가리킨다.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야 믿어지
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본문에 말하기를, "여호와의 팔("팔"은 능력을 상징함)이
뉘게 나타났느뇨"한다. 이 말씀과 같이 유대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야
로 믿지 않는 죄를 범하였다(요 12:37, 38; 롬 10:16).
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따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
도 엇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흡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 이것은 여
호와의 종 곧, 그리스도에 대한 진술이다. "주 앞에서 자라난"다 함은(
-와야알 레파나우이니 주 앞에서 올라간다는 뜻임), 그의 생활이 전혀 하나님의 도우
심으로만 성립되는 것이고, 세상에게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한 순 같"다
함은, 세상에서 얼마든지 핍박을 받을 수 있는 처지를 이름이다. "마른 땅"은 이 세상
을 의미하는데 그리스도께서, 광야 같은 세상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시고 무척
고독하며 빈곤(貧困)하실 것을 가리킨다. 이는 마치 박토("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가
파리한 것과 같다. 따라서 그에게는 아무런 세상 영광이 없고 풍채도 없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 값을 담당하시는 구주님이신데 그의 자격은 세상 영광을 우리
는 것이 아니고 자초지종 수난(受難)인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이 범죄한 결과로 받
은 것이 고난이니(창 3:17-19), 이제 이 고난과 저주를 없애주시는 구주님게서는 모든
죄인들을 대신하여 고난과 저주를 자기 몸에 지니셔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구
주는 세상 사람들을 억지로 주장하여 고생시키며 자기는 영광 받는 어떤 영웅(英雄)이
아니고, 되리어 자기 자신이 세상 사람들 앞에 압제를 당하시고 그들 대신으로 저주를
받는 분이시다(각 3:13).
사 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
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사역하시는
중에 당할 모든 일을 예언한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진 것은, 여기 있
는 예언과 정확히 부합한다. 그는, 특별히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유대 민족에게 멸시와
천재를 받으셨다(요 1:11).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바 되었으며"(
)란 말씀은, 그가 사람에게 멸시를 받아서 절교(絶交)됨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는 이
유는, 그는 지극히 선하시고 세상은 극도로 악하기 때문이다. "간고(슬픔)를 많이 겪
었으며" 라는 말( )은, 비애(비애)의 사람이라는 뜻이니, (1) 슬픔
이 많은 우리를 체휼하시기 위하심히요, (2)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변화시키기 위하
심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슬픔 가운데도 위로가 있다. 그 원인은, 그리스도께
서는 아무 위로도 없이 십자가의 비애(悲哀)를 당하셨기 때문이다. 순교자들은 죽으면
서도 기뻐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가 우리를 대신하여 위로 없는 비애를
견디셨기 때문에 그 공효를 가지고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그들에게 오셔서 위로하셨기
때문이다. "질고를 안"( )함은, 질병을 익히 아신다는 것이니, 이는 질병을 많
이 겪으셨다는 의미가 아니고 모든 인생의 고통을 체휼(體恤)하신다는 뜻이다(마
8:17).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이것은 사람들이
그를 천대함이 극도에 달함을 가리킨다. 이것은 마치 사람들이 나병자를 피하는 것처
럼 그들이 그리스도를 보기도 싫어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레 13:45 참조. 그가 이렇게
멸시를 당하셨으므로 그를 믿는 자들은 높아진다.
사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 "우리의 질고를 지"셨다
함은, 사람들의 육신상 질병을 대신 담당하신다는 의미이지만(마 8:17), 이것은 우리
죄악의 고통을 대신 담당하여 치워버리신다( )는 의미도 된다. 죄악은, 실상 질
병과 같아서 잘 펴지며 또는 사람들을 사지(死地)에 빠뜨린다. 메시야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이렇게 각양 고생을 당하실 것으로 선지자는 예언한다. 이 고난에 대한 진술
이 본장에 거듭 거듭 나와 있어서 거의 매절(每節) 기록되어 있으므로 메시야의 특징
이 고난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메시야는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와 합치 된다. "슬
픔"이라는 말에 대하여는, 3절에 있는 "간고"란 말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이렇게 큰 고난을 받으심에 대하여 우리가 그것을 이
해하더라도 그의 크신 고난을 덜어드리지는 못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크신 고난
을 이해하기는커녕 도리어 오해하여 생각하기를, 그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고 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악독한 생각은 그리스도의 받는 고난을 더 괴롭게 만든다. 쇠못
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박히웠으나 유대인들의 악독한 오해는 그의 영혼에
못을 박았다. 과연 이 예언과 같이 유대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법대로 죽여야 마땅하
다고 생각한 자들이다. 요 19:6, 7, 12 참조.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
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옴을 입었도다.
-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므로 그를 믿는 죄인들이 영생할
것을 예언한다. 이것은 대속(代贖)의 고난을 정확히 예언한다. 이것은 고후 5:14의 말
씀과 같은 진리를 전한다. 거기 말하기를,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평화를 누리"다 함은, 우리가 그리스도
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케 됨을 이름이다(고후 5:18). 고후 5:21 참조.
"그가 징계를 처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옴을 입
었도다"란 말( )은, 다음
과 같이 번역되어야 할 것이니, 곧, "그가 징계를 받음이 우리의 평화가 되고 그가 채
찍에 맞음이 우리의 나옴이 되도다"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대신 속죄의 사실을 더욱
정확하게 보여주는 번역이다.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신 고난이가 우리에게 구원이 되되
그 받으신 고난 전부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밝혀 준다. 그의 받으신
고난의 효과가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외에 다른데로 흘러버리는 것이 전연 없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실 이유
가 여기 진술된다. 곧,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되이 행하"였다는 것이다. 여기 "우
리는 다"( =쿨라누)라는 말은, 한 사람도 제외시키지 않는 말씀이다. 이는 롬
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는 결론을 가져온다. 인생은 마땅히 하나님의
인도하신 길로 갔어야 할터인데 다 각기 "제 길로 갔"으니 그것이 죄악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가 이러한 죄인인 줄을 알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는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시기 위함이다. 우리
자신이나 혹은 다른 사람은, 우리의 죄악을 대속할 수 없는 것이다. 시 49:7, 8에 말
하기를,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
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여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고 하였다. 속
죄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만 하실 수 있다.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홀로 인생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그 아들의 속죄적 희생으로만 이루신 것이다. 생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그 아들의 속죄적 희생으로만 이루신 것이다. 속죄는 하나님께서
홀로 이루신다는 의미에서 구약 시대의 제단도 가르치고 있다. 곧, 제단은, 속죄 제물
을 올려놓고 태우는 곳인데 그것이, 인조(人造)의 것이 아님을 표하기 위하여 흙으로
쌓든지 다듬지 않은 돌로 쌓았고, 거기에 내린 불은 하늘에서 내렸다(레 9:24). 히
9:14에 말하기를,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
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
게 못하겠느뇨"라고 하였다.
속죄 사역과 창조 사역을 비교해 보면, 속죄 사역은 훨씬 위대하고 공드러 하신 것
이다. 창조는 몇날 동안에 하신 것이나, 속죄는 창세 전부터 여러 천년 경영하시며 계
속하여 오시다가 필경 독생자의 보혈을 흘려 완성하신 것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내
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하였다(고전 2:2). 루터(Luther)는 말하기를, "하나님
의 아들은 나를 사랑하여 자기 자신을 나에게 주셨으니 그것은, 율법과 및 인간의 행
위의 의(義)에 대하여 터진 뇌성벽력 같은 반대이다.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을 비교
할 수 없는 보화로 여길찐대 네 모든 종교 의식과 행위와 공로는 지옥으로 던져라. 그
이유는, 네가 하나님 아들의 죽음 밖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어 화해시키는 것이 없
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사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깎는 자 앞에 잠장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
"곤욕을 당하여 괴로"움은, 그리스도께서 핍박을 받아 수난(受難)하시게 됨을 가리킨
다. 그가 그런 때에도 "입을 열지 아니하"신 것이 역시 고난이다. 여기"입을 열지 않"
는다는 말( )이 두번 나와서 그만큼 그 사실이 힘있게 지적된다. 그는
어디까지나 의로우시지만 모든 억울한 것을 참으시며 침묵하셨다. 이 침묵에 대하여
우리는 세 가지 뜻 깊은 사실을 생각할 수 있으니, (1) 선지자로서의 침묵. 그는 선지
자 중에도 선지자이신데 앞날의 승리를 내어다 보시고(히 12:2) 침묵하셨다. (2) 왕적
침묵. 그는 유일하신 만왕의 왕이시다(요 18:37). 최후적 승리는 그 자신이 지니고 계
신 것이니 구태어 말로서 이기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공중에 높이 나는 학(謔)은 조
알을 다투어 먹으려고 참새들 가운데 내려 앉지 않는다. (3) 제사장적 침묵. 제사장은
백성을 위하여 짐을 지는자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제사장들이 예표(豫表)한 실물과 같
은 참 제사장으로서 하나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사역자이실 뿐 아
니고 그 자신이 제물이 되셨다. 그러므로 그는 죽임이 된 제물과 같이 고요하시다.
이 게 가지 침묵은 역시 일종의 고난이다. 그는, 모든 어려움을 그대로 다 당하시는
의미에서 입을 열지 아니하셨다. 그의 이와 같은 태도는 그가 우리를 위하여 수난하신
것이 어디까지나 감심으로(다시 말하면 能動的으로)하신 사실을 보여준다. 그는고난을
당하실 때에 마지못하여 하시는 정도에 머무르시지 않고, 이렇게 원하시는 마음으로
하셨으니 그 순종의 가치가 무궁하시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을 마련해 주신 것이다.
사 53: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
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료. - 칼빈
과 기타 중요한 학자들은, 여기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라는 문구(
)를 다르게 번역하였으니 곧, "그 세대를 누가 헤아리리요"라고 한다. 따라서 절말(節
末)에 "하였으리요"란 말은, 부쳐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 세대를 누가 헤아리리
요"란 뜻은 무엇인가?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죄한 자로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압제("곤욕")와 "심문"을 당하시고 끌려 가셔서 죽으셨으니 만큼, 그 공효가 무궁하여
그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영적 자손("세대"라는 말의 의미)이 무수할 것이므로 셀 수
없다는 뜻이다.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지며 마땅히 형벌 맏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이
말씀 뜻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백성을 위하여 대신 속죄하여 주실 것을 예언한
다. 윗절과 이 귀절은, 구스 내시가 빌립에게 전도 받을 무렵에 읽던 말씀이다. 그는
이 말씀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지게 된 것이다(행 8:32, 33).
사 53: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
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다는 것은, 남에게
해로운 일을 행치 않으시리라는 예언이다. 그는 행위에 있어서 이렇게 죄가 없으시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말에도 죄가 없다는 의미에서 우리 본문은, "그 입에 궤사가 없"
가고 한다. 그는, 이렇게 절대로 무죄하셨으나 우리 뵈인들을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실
것이 여기 압시된다.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다 함은, 죽음을 당하실 이유 없는 그
가 악인들처럼 죽으시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극히 낮아지심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다 함은, 메시야9그리스도)께서 부자의 무덤에 장사되실
것을 예언한다. 이 말씀이 문자대로 성취되어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예수님의 시체
는 장사되셨다(마 27:57-60). 이것도 그의 극히 낮아지심을 의미한 것이다. 그에게는
무덤으로 쓸만한 자기 소음의 땅이 없었다. 그는 죄가 없으시되 이렇게 죄로 삼음이
되신 셈이다. 그러므로 그를 믿는 자들은 그로 말미암아 의(義)가 된다. 고후 5:21에
말하기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
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이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다.
사 53:10,11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으즉 그 영혼을 속
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위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
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
을 친히 담당하리라. - "상함을 받게"하며 "질고를 당케"함은, 그리스도 수난(受難)의
피동적 방면을 보여준다. 그 능동적 방면에 대하여는 7절 해석을 참조하여라. 그리스
도의 대속적 고난은 그의 자작(自作)이 아니고 정죄자(定罪者)이신 하나님께서 제정하
신 것이다. 정죄자가 하나님이시니 사죄(赦罪)의 방침도 하나님에게서 유래(由來)되어
야 한다. 정죄자 외에 그 누가 정죄자의 뜻을 만족시킬만한 사죄의 방참을 낼 수 있으
랴?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은 그 피동적 성격을 본질로 가진다.
여기 이른바 "상함을 받"음과 "질고(迭苦)를 당"함은,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십자가
고난을 가리킨다.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
으신 것은, 육신의 고생만 아니고 겸하여 영혼의 수고였던 것이다. 그가 겟세마네 동
산에서 기도하시는 중 피땀을 흘리시면서 그야말로 그의 영혼이 피를 흘림과 같은 고
통을 당하셨다(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도 그의 영혼이 고난을 받으셨음). 이사야는
이 사실을 예언한다. 그가 이렇게 영혼으로서도 고난을 받으신 것은, 우리으 죄과를
담당하시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의 영혼은, 우리를 대신한 속건제물(贖愆祭
物)이 되신 것이다.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곧, 그리스도께서 대속
의 제물로서 죽으신 결과 그를 믿는 자들이 생겨나므로 그 영적 후손은 끊기지 않는
것만큼 그의 날이 길게 된다는 뜻이다. "그의 손으로 여호와읠듯을 성위하리로다".
곧, 그리스도께서 그의 하시는 일로("손"은 일을 가리킴)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이
루신다는 것이다. 우리 본문에 "가라사대"라는 것은, 히브리 원문에는 없으나 보역(補
譯)한 것이다. 곧,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께서 그 영혼의 수고를 보시고
만족하시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자기 일을 만족히 이루실 것이라
는 뜻이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여기서도 하
나님께서 계속하여 말씀하시는 것으로 나타난다. "의로운 종"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
리키는데 "많은 사람"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자기 지식으로"란 말의 뜻) 말미
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전1:30). 그리스도를 아는 짓기은, 단지 이론적 지식을 가
리키지 않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영적 지식을 의미한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이런 의미에서 취급하였다. 그는 이렇게 유력한 영적 지식 때문에 모든 것을
해(害)로 여겼다. 빌 3:8, 10 참조.
사 53: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
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
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본절도 앞절에 발언하신 하나님으리 말씀 계속이다.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함은, 존귀한 자들 중에서 분깃을 얻는다는 것인데 그의 복음이 "존귀한 자" 곧, 세력 잡은 통치자의 나라도 정복할 것을 가리킨다. 과연 이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의 복음은 로마와 같은 강국(强國)도 사상적(思想的)으로 정복하였다.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눈"다 함은, 역시 위의 문구와 같은 뜻이니 곧, 강한자들 중에서 승리하고 탈취들을 가지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적 승리를 비유한다. 이런 비유는, 시 68:18에도 있는데 바울이 인용하였다(엡 4:8). 그의 이와 같은 승리의 원인은, 그의 속죄의 고난이다. 그러므로 우리 본문에. "이는"( =키)이란 이유 접속사(理由接續詞)로 시작사여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신 사실을 밝힌다.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음. 고후 5:21 참조. "그가 많은 사람의 뵈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신다 함은,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여 우리 죄를 담당하신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시는 사실을 예언한다. 롭 8:3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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