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번성(3) (이사야 62:1-5)
여기서 선지자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Ⅰ. 선지자가 교회를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선지자는 앞 일을 내다보는 선견자인 동시에 대변자다. 이 선지자는 그 일을 충실하게 이행할 것을 결심한다. 그는 잠자코 있지 않을 것이며 쉬지 아니할 것이다(1절). 그는 자기의 업무를 마음에 두고 있을 것이며, 수고할 것이다. 결코 편안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그리스도는 예언자의 직책을 실행하는데 불굴의 사람이었고 자기 역사를 완성하실 때까지 그 일을 자기의 음식으로 삼으셨다. 다음을 관찰해 보자.
1. 선지자의 결심은 어떠한가? 그는 잠잠하지 아니할 것이다(1절). 그는 전파하는 일을 순간순간 계속할 것이다. 그는 "여호와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신실하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자주 반복할 것이다. 사람들이 우선 그 교훈과 약속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그는 몇 번이고 그들을 설득하여 가르칠 것이며 훈계에 훈계를 더 할 것이다. 그는 기도를 계속할 것이다. 그는 약속된 자비를 위해 하나님을 설득할 때까지 은혜의 보좌에서 결코 잠잠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념할 것이다" (행 6:4). 그는 그 일을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처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는 이 두 가지 일을 빈번히 해야만 하며, 이것을 하는데 결코 싫증을 내서도 안 된다. 성직자들의 업무는 하나님께로서 받은 말씀을 자기 백성들에게 전하며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적고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들 중의 어느 것에도 침묵해서는 안 된다.2. 이러한 결심의 원리는 무엇인가? "시온을 위해서, 그리고 예루살렘을 위해서다." 선지자 자신의 어떤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결심을 하는 것이다. 그는 늘 시온에 대하여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시온은 항상 그의 마음 가까이에 있다. 그 자신의 집과 가족은 어떻게 되든 간에 그는 예루살렘의 선을 보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그의 전생애에 걸쳐 예루살렘의 선을 찾고자 결심한다(시 122:8, 9; 128:5). 그것은 하나님의 시온이며 그의 예루살렘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소중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시온의 번영에 걸려 있으므로 그것은 그에게도 소중하다.
3. 선지자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 끈질긴 요구를 계속하겠다고 결심하는가? 그는(앞 장에 나온) 교회의 의와 구원의 약속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 요구할 것이다. 이사야는 바벨론 포로들이 해방되는 것을 보기까지 살지는 않을 것이다. 하물며 은혜가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생명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 시대의 도래 때까지는 더 더욱 살지 못할 것이다(롬 5:21 참조). 그럼에도 이사야는 이들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잠잠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예언은 이런 것들에 대하여 계속 말할 것이며, 시대마다 남은 자가 있어 이 약속이 성취되기까지 그의 후속자로서 기도를 계속할 것이며 그 기도가 응답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 교회의 공의는 빛깔이 교회의 구원은 횃불같이 나타날 것이며 그것은 너무나 명명백백하여 그 증거를 휴대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것은 교회에 영광과 위로를 가져올 것이다. 교회는 그것으로 인해 기쁘게 보이며, 훌륭하게 보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이 세계에 교훈과 방향을 설정해 줄 것이다. 그것은 눈의 빛 뿐만 아니라 발의 빛도 될 것이며 전에는 어둠 속에 앉아 있고,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길에도 빛이 될 것이다.
Ⅱ.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하실 일은 무엇인가? 선지자는 기도와 설교를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확증할 수 있고 그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다.
1. 교회는 "크게 찬양을 받게 될 것" 이다. 교회의 구원과 찬양과 영광이 되는 의가 드러날 때, "열방들은 그것을 볼 것이다" (2절). 교회의 복음은 이방인들에게 전해져, 그들은 그 복음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그것이 그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면 그들은 이 의를 볼 것이다. "열왕이 네 의의 영광" 을 볼 것이며, 사랑하게 될 것이다(2절). 그리고 그들은 자기 궁전과 왕국의 영광을 놔두고 보다 뛰어난 교회의 영적 영광을 보고 찾게 될 것이다.2. 교회는 "진실로" 찬양을 받을 것이다. 위명(偉名)은 세상 사람들에게 큰 존경을 받는다. 우리는 honor est in honoreant ---- 즉 명예의 가치는 그 명예를 수여하는 자의 위엄에서 나온다는 말에 공감한다. 하나님께서는 존귀의 원천이시며 교회의 영광은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너는 새로운 이름, 즐거운 이름으로 불리워질 것이다" (2절). 너는 전에 그런 이름으로 불리운 적이 없으며 극히 번영하던 날에도 그렇게 불리우지 않았다. 반대로 너의 고통의 날에도 그렇게 불려지지 않았다. 너는 새로운 인물로 불리워질 것이며, 새로운 위엄을 가지고 전진할 것이며 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너를 다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흰돌" 의 약속(계 2:17)을 암시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할 것이다" (계 3:12). "나의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계 3:12). 그 이름은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이다(2절). 우리가 확신컨대 그는 이름을 잘못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도 자기가 교회에 주었던 이름으로 부르게 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진리를 따라 심판하실 것이며, 모든 사람들은 조만간에 그 심판에 동의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실 이름은 다음 두 가지이다.
(1)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면류관이라 일컬을 것이다. "너는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이 될 것이다" (3절). 그 왕관은 머리 위에 씌워지지 않고(왕관을 쓰는 자기에게 영예나 권세가 주어지지만 여기서는 그와 달리) 그 손에 들려 있다. 하나님은 그들을 자신의 영광과 아름다움으로 간주하시고 기뻐하시며 자랑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그들로 자신의 이름과 영예와 영광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렘 13:11). 너는 영광의 면류관이 될 것이며, 네 하나님의 손을 통해 왕관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너를 그렇게 만드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네 영광의 면류관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28:5). 너는 그의 수중에서 즉 그의 보호하심 아래서 왕관이 될 것이다. 네게 영광을 주시는 분은 그 모든 영광을 지키실 것이어서 네 면류관의 꽃들은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며, 그 보석들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자신의 배우자라 부를 것이다(4,5절). 그러나 이 말은 특히 교회가 얼마나 고독한 처지에 있었던가를 생각해 볼 때 보다 큰 영광이 된다.
[1] 교회의 처지는 매우 우울했었다. 교회는 버리운 자라 칭해지며 포로 기간 중에는 황폐한 곳이 되었다. 그것은 마치 수치스럽게 이혼당한 여인과 같았으며 위로받지 못하는 과부와 같았다. 복음을 전파하기 전 세상에 있는 종교의 상태가 바로 그러했다. 교회는 얼마동안 버려져 있었으며 비참한 상태에 있었다. 돌보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고, 어떤 실제적인 관심을 가진 사람도 없었다.
[2] 교회의 처지는 이제 아주 즐거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비로이 교회를 향해 돌아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수치스러운 두 가지 이름 대신에 두 가지의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불려질 것이다.
첫째, 교회는 "헵시바" (4절)이라고 불려질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나의 기쁨이 그녀(교회)에게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므낫세의 어머니 곧 히스기야의 왕비의 이름이었다(왕하 21:1). 이 이름은 아내에게 적절한 이름이다. 아내는 남편의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잠 5:19). 여기에서 교회의 남편이 되시는 분은 교회의 창설자이시다.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다" (4절).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기쁨이 되도록 역사해 오셨다. 교회는 정화되었으며 개혁되었고 하나님을 명심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그때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아 교회는 그의 기쁨이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교회에게 선히 행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둘째, 교회는 "?라" 라 불리울 것이다. 이 말은 결혼한 여자를 의미한다. 전에는 교회가 황폐하여 쓸쓸한 상태에 있었다. 그 교회는 결혼한 여자의 상태와는 정반대의 처지에 있었다(54:1). "너의 땅은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다." 즉 교회는 다시 열매를 맺어 가득 채워질 것이다. 비록 교회가 오랫동안 불모의 땅으로 있었지만, 앞으로는 다시 사람이 살 것이며, 집을 지을 것이며 자녀들에게는 기쁨에 찬 어머니가 될 것이다(시 113:9). "교회는 결혼할 것이다" (4절). 그 이유를 살펴보자.
1. 교회의 자녀들은 진심으로 그들의 고향 땅과 결합하고 있으며 그 땅의 이익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그것을 소홀히 해왔다. 그들은 그 땅을 편안히 향유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네 아들들이 너와 결혼할 것이다" (5절). 즉 그들은 너와 함께 살며, 너를 기뻐할 것이다. 그들이 바벨론에 있었을 때, 그들은 그 땅과 결혼한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기에 정착해서 그 땅의 평화를 추구하도록 권고받은 때문이다(렘 29:5-7). 그러나 이제는 그들 자신의 땅과 다시 결혼할 것이다. 그것은 "청년이 처녀와 결혼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5절). 청년은 처녀를 무척 기뻐하고 너무나도 좋아하며 그에게서 수많은 자녀들을 가질 것이다. 그 땅의 원주민들과 거주자들이 그 땅을 보고 기뻐하며, 그 땅의 군주가 그들의 나라와 결혼하고 그 땅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그 땅에 길조가 된다.2. (훨씬 더 훌륭한) 교회의 하나님이 "의로 교회와 결혼할" 것이기 때문이다(호 2:19, 20). 하나님께서는 자기 교회를 기뻐하실 것이다.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5절) 꼭 신부에 대한 신랑의 관계와 신랑에 대한 신부의 사랑으로 기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너를 기뻐하시리라(5절). 그분께서는 너를 그의 사랑 가운데 편히 쉬게 할 것이다(습 3:17). 그분께서는 너를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시 147:11).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정령히 나의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렘 32:41). 이것은 교회에 대해 품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만족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솔로몬의 아가에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며 그것은 하늘 나라에서 완성될 것이다.
교회의 번성(4) (이사야 62:6-9)
여기에 예루살렘에 대한 두 가지 약속이 나온다.
Ⅰ. 풍성한 은혜의 수단, 선한 설교와 선한 기도가 풍성할 것이라고 약속되고 있다(6,7절).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려고 계획하실 때 취하시는 방법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우선 그들에게 마땅히 하여야 할 의무를 주시고, 기도의 영을 부어 주신 다음 그들에게 구원을 주신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일이 예비된다.
1. 사역자들은 파수꾼으로서 그들의 의무를 다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선을 위한 표시와 자비를 향한 첫 단계와 또한 그 자비의 전조로서 약속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계획하신 것을 이루기 위해 "그들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 잠잠치 않게 하셨다" (6절). 다음을 주의해야 한다.(1) 사역자들은 교회의 성벽을 지키는 파수꾼들이다. 교회는 포위된 도시와 같아서 그들의 관심사는 그 성벽을 지키며 적의 동향을 주시하고 알려 주는 것이다. 파수꾼들이 끼어 있고, 신실하며 기꺼이 모든 어려움을 참는다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2) 파수꾼들은 주야로 경계하는 것이 그 임무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위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결코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3) 파수꾼들은 결코 잠자코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어느 때든지 죄인들에게 경고를 할 모든 기회를 포착해야만 한다. 또한 불신하거나 비겁한 침묵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목적을 배반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은혜의 보좌에서 결코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된다. 그들은 마치 이스라엘이 아멜렉과 전쟁하여 승리를 얻었을 때까지 모세가 손을 들고 내리지 않은 것처럼 항상 기도해야만 하고 낙망치 말아야 한다(출 17:10, 12).
2. 그 백성들은 그들의 의무를 다할 것이다.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 답게 그들은 침묵하지 말아야 하며 파수꾼의 기도가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의식으로써는 자비에 접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것을 주의하라.
(1) 그 땅이 버려져서 황무지라고 칭해지는 시기에도 하나님으로 기억하시게 하며 계속해서 그렇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이 된다. 그들은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이다" (6절). 그들은 스스로 여호와를 기억하며 서로가 하나님을 유의하게 한다.
(2)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기도하는 백성이 되어야 하며, 특히 기도시에 공중 의식이 있어야만 한다. 그들은 기도로 하나님과 씨름을 해야하며 그 씨름을 계속해야만 한다. "잠잠하지 말며 기도의 의무에 태만하지 말고 지겨워하지도 말라. 그로 기도의 의무를 쉬지 못하게 하라. 애걸복통하는 거지와 재판관이 귀찮은 정도까지 계속 찾아와서 간청하여 허락받는 과부처럼 그를 쉬지 못하시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나대로 하게 가만 두라" (출 32:10)고 말씀하신다. 야곱은 하나님께 "당신께서 나를 축복하시지 않으시면 당신을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 32:26)라고 말했던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인간들과는 달리 우리가 끈질기게 조르는 것을 결코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것을 권유하시고 격려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그분께 외치라고 명령하신다. 그분은 간청자를 일축해 버린 제자들과 같지 않으시다(마 15:23). 그분은 우리들로 하여금 은혜의 보좌에서 간청을 하도록 명령하신다. 또한 "자기에게 어떠한 쉼도 주지 말라고" 하신다(눅 11:5, 8). 그분은 자신에게 대한 설득과 씨름을 스스로 허용하시는 분이시다.
(4) 하나님의 예루살렘의 공공 복리와 번영은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서 가장 끈질기게 간청해야 할 대상이다. 우리가 교회의 이익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다.
[1] 교회가 안전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워 주시며 교회의 세력이 확고히 정착되어 후손들에게 안전히 상속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2] 교회가 커지고 세상에서 찬송을 받도록 기도해야 한다. 교회가 칭찬을 받으므로 하나님께서 찬송을 받으실 수 있게 된다. 복음의 진리가 명백하게 되고, 정당함이 입증될 때, 복음의 의식들이 순수함과 능력 속에서 정당하게 집행될 때, 교회가 거룩함과 사랑으로 두드러질 때 예루살렘은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되며 교회는 명성을 누리게 된다.
(5) 우리는 자비가 임하기까지 교회에 대한 자비를 끈기있게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엘리야 선지자의 사환이 약속된 구름이 나타날 때까지 일곱 번이나 갔던 것처럼 행해야 한다(왕상 18:44).
(6) 하나님께서 기도의 영을 부어 주셔서 그들은 열렬하고도 끊임없는 간구를 하게 분기시키실 때는 하나님이 자비의 길로 백성들을 향해 오고 있다는 길조이다.
Ⅱ. 많은 또 다른 좋은 것들이 풍성히 있다(8절). 이것은 앞 구절에 뒤따르는 말씀이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찬송을 할 때, 다시 말해서 "모든 백성들이 그분께 찬양을 돌릴 때, 그때 땅의 소출은 증가할 것이다" (시 67:5, 6). 외면적 번영과 내면적 경건은 예루살렘이 이 세상에서 찬송을 받도록 기여할 것이다. 다음을 살펴보자.
1. 그들은 과거에 커다란 고통에 처해 있었으며, 손실을 당하고 있었다. 그들이 자신과 식구들의 양식이 되기를 바라던 곡식은 이 대적들의 식물이 되었었다. 여기에 이중적인 괴로움이 있었다. 그들은 생명의 유지에 필요한 곡식이 부족했고 식량의 부족으로 아사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원수들은 그들에게서 빼앗은 곡식으로 더욱 강해졌고 그 식량으로 자기들의 군대를 배불렸으며 따라서 그들에게 피해를 보다 잘 끼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원수들에게 그들의 곡식을 주신다고 말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허락하셨을 뿐만 아니라, 명령하기도 하신 때문이다. 이것은 풍요의 남용과 이방인과의 야합에 대한 응징이었다(1:7). 과거에 그들이 수고해서 얻었던 포도주는 그들이 고통 중에 있어 마음이 우울할 때 서로서로 위로를 주기 위하여 준비해 둔 것인데 원수들은 그것을 마셨다. 이 가슴 아픈 심판은 죄의 대가였다(레 26:16; 신 28:33).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위로물이 얼마나 불확실한 가를 보게 된다. 결코 강탈당하지 않을 식물을 위해 수고하는 우리의 지혜는 얼마나 대단한가!2. 그들은 이제 커다란 충만함과 만족함으로 회복될 것이다.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다" (9절).
(1) 풍성함을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평화로운 향락을 살펴보자. 땅은 소산을 증가할 것이며, 그것을 거두어 들일 일손도 있고, 그들은 재앙이나 병으로 취해감을 입거나 전쟁에 끌려들어 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방인과 원수들이 와서 그것을 거두지 못하며, 우리가 거둔 것을 빼앗아가지도 못한다. 우리는 손으로 수고한 것을 먹으며 우리 입 외에 그것을 먹을 자는 없다. 특히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기회와 마음을 갖게 된다. 더욱이 그의 성소는 우리에게 열려 있어 구분에게 나아오는 것을 막지 않는다.
(2) 이 자비를 누리는 데에는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근면하게 거두어 들여야 한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후히 베푸시는 선물을 땅에 파묻을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이용하며 자유롭고 유쾌하게 먹어야만 한다. 우리가 먹고 충족되었을 때, "여호와를 찬양하고" 그의 관대함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해야만 한다.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풍성함으로써 그를 섬겨야 하며 그것을 경건하고 자비로운 일에 사용해야만 한다. 또한 그것을 "그분의 성소에서 먹고 마셔야만 한다" (9절). 성소에서는 제단과 제사장과 가난한 자들이 각각 제 몫을 받아야만 한다. 선한 사람이 음식물에서 얻는 최대의 위안은 그 음식물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릴 소제와 전제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욜 2:14). 그가 토지에서 얻는 최대의 위안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선을 행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포도주는 하나님의 성소 뜰에서 마셔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여호와 앞에서 마시듯 알맞게 절제하여 마셔야 한다.
3. 이 약속에 대한 엄숙한 확증은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8절)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이 약속을 행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믿고 자기의 말씀을 신뢰하는 백성들에게 "큰 위안" 을 줄 것을 맹세로써 확고하게 한다(히 6:17, 18). 그는 더 큰 맹세를 할 수 없으시기 때문에 그분 자신을 들어 맹세를 하신다. 어느 때는 그의 전 존재로(겔 33:11), 때로는 거룩함으로(시 89:35) 맹세를 하신다. 여기서는 그분의 오른 팔인 능력으로 맹세를 하신다(맹세할 때는 오른 손을 들어올렸다. 신 32:40). 즉 그는 능력의 팔로 맹세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만족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가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룰 수 있으실 것으로 확신한다(롬 4:21). 그는 이것을 우리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자신의 소문난 전지전능하심을 보증삼아 자기 힘으로 맹세하셨다. 만약 그분이 그렇게 하시지 않으신다면, "그가 그렇게 할 능력이 없었음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민 14:16). 그러나 애굽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며 다른 어떤 백성도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분의 능력이 그들에게 약속되었으며,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으시는 우(右)편 손으로 약속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메시야의 출현 (이사야 62:10-12)
전에 많은 구절에서 보여 준 것처럼 이것은 유대인의 바벨론으로 부터의 구원을 언급하며 이를 모형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큰 구원과 그를 통해 선포될 복음의 은혜와 자유를 시사하고 있다.
1. 이 구원을 위해 길이 예비될 것이다. 모든 어려움들이 제거될 것이며, 그 길을 막는 어떤 방해물이라도 치워질 것이다(10절). 바벨론의 성문은 그들이 자유롭게 통과하도록 하기 위하여 활짝 열려질 것이다. 바벨론으로부터 이스라엘의 땅까지 이르는 길은 예비 될 것이다. 인도들도 잘 예비될 것이다. 질고 진 흙수렁이가 된 곳은 돋우어질 것이며, 돌들은 울퉁불퉁하고 바위가 많은 곳으로부터 한데 모아질 것이다. 그들은 보다 큰 안전을 구체화시킬 수 있도록 편리한 장소에 다가 그들의 집결지를 정해 놓고 기들을 세워 그들의 방향을 정하여 용기를 북돋아 줄 것이다. 이와 같이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았다" (마 3:3).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위해 그의 은혜와 위로로 어떤 자에게 오시기 전에 그에게는 회개가 예비되어 있어서 이것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불리운다(엡 6:15). 그 길은 회개로 평탄하게 된다. 발들은 모두가 화평의 복음을 신고 한 곳으로 오게 되며 질서있게 오고 간다.2. 이 구원은 고시될 것이다(11,12절). 그들은 자유로이 해방받을 것이며 원하는 대로 갈 수 있다는 것이 포로된 자들에게 선포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온의 의로운 피해자를 신원해 주신다는 것이 그들의 인방과 주위 모든 민족 심지어 세상 끝까지 선포될 것이다. 시온을 위로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시온에게 "보라, 너의 구원이 임하느니라" (11절)고 하신다. 다시 말해서 구원을 가져오시는 분이신 구주께서 임하신다는 것이다. 그는 이 구원과 함께 모든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될 상을 가져 올 것이며 그것은 그와 함께 받을 평강과 위로의 상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고난의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하여 그 앞에서 겸비케 하며 회개하게 하신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거룩한 백성" 이라 "여호와의 구속하신 자" 라 부를 것이다(12절). 보응은 그 앞에 있다. 보응은 그들 안에서, 그들에게서 이루어질 것이며, 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명명할 것이다. 그들은 마음을 고쳐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을 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상급은 그에게 있다. 그들에게 이루어진 구원은 그들을 "여호와의 구속하신 자" 라 일컬을 것이다. 하나님만이 그들을 속죄할 수 있다. 그들의 속박은 풀리고 그들은 여호와의 종이 될 것이다. 예루살렘은 그 때 "찾은 바된 자요, 버리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 (12절) 예루살렘은 오랫동안 버려져 있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묻는 상인들도 없었고 예배자들도 없었다. 옛날에는 상인들이나 예배드리는 자들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번잡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무시 할 수 없는 유력한 곳으로 만들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옛날과 같이 예루살렘을 찾아 방문하고, 예루살렘의 성소에서 기도를 드릴 것이다. 예루살렘이 "거룩한 성읍" 이라 일컬어질 때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찾은 바된 자" 라고 할 것이다(12절). 왜냐하면 거룩함은 어떤 장소나 어떤 인물이든지 영광과 아름다움을 주기 때문이다. 거룩함은 존경의 대상이 되며 그들로 하여금 찬양을 돌리게 하며 사랑을 받게 하고 찾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이것이 세상의 끝날까지 선포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만 한다. 그 복음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전파되어져야만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1) 그리스도의 영광. 그것은 교회에 즉시 알려졌고 거기서 모든 민족에게 울려 퍼졌다. "보라, 네 구원이 임하느니라" (11절). 그리스도는 구세주일 뿐만 아니라, 구원 자체이시다. 믿는 자들의 행복은 그분에게서 나올 뿐만 아니라, 그분 안에 있다(12:2). 그분의 구원은 구분이 가져오는 상급과 보응 속에 있다. 왜냐하면 그에게 속한 자들은 게으르지 않을 것이며 자기 수고를 잃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교회의 아름다움. 기독교인들은 "성도들" 이라 불리울 것이다(고전 1:2). 또한 "거룩한 백성들" 이라 불리울 것이다(12절). 왜냐하면 그들은 거룩하게 하심으로 구원을 얻도록 선택함 받고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살후 2:13). 그들은 "여호와의 구속자" 라 불리울 것이다(12절). 그들이 자유하게 된 것은 그분 덕택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땅히 그분에게 예배를 드려야만 한다. 그들은 이 두 가지를 고백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거룩한 백성들" 외에는 어느 누구도 "여호와의 구속자" 라 불리우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신 백성들은 거룩한 민족이다. 그들은 "찾은 바 된자" 라 불리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찾아내어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흩어지고 은폐되더라도 발견하실 것이며, 무리 속에 파묻혀 있더라도 찾아내실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찾아내어 버리지 않고 자기들에게 가담시킬 것이다. 거룩한 백성과 연합하는 것은 그들의 길을 배울 수 있어 유익하고 여호와의 구속하신 자와 결합하는 것은 구속의 축복에 참예할 수 있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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