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의 직분 (이사야 61:1-3)
성서의 가장 좋은 해설자가 이 구절의 설명을 가장 훌륭히 했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사렛에 있는 유대인 회당에서 이 말씀을 읽으신 우리 주 예수 자신이 그 말씀을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켜 말씀하시기를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눅 4:17, 18, 21)고 하셨다. 또 그의 말씀을 듣던 자들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말씀을 기이히 여기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사야가 권세와 지시를 받아 바벨론의 유대인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셨듯이 하나님의 사자인 그리스도께서는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안식년을 선포하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듣게 된다.
Ⅰ. 그리스도는 이 일을 선포하는데 알맞는 사람이며,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다" (1절).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또한 그것을 그들에게 말하도록 자극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께는 성령이 항상 그 위에 머무르셨다. 선지자와 꼭 같이 그에게도 모략과 지혜의 신에 머물렀다(사 11:1-3). 그가 자신의 예언자적 직분을 수행하게 되었을 때 그에게는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했고(마 3:16) 그는 이 성령을 자신의 사역자들에게 주셨다. 즉 그는 이 기쁜 소식을 전파하라고 사명을 주어 보내시면서 "성령을 받으라" 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인준하셨다.
Ⅱ. 그리스도는 이 일에 임명되고 성직을 부여받은 분이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신" 때문이다(1절). 하나님께서는 어떤 봉사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부르셨으며, 그에게 무엇을 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엄숙한 도구로서 그리스도에게 이런 위대한 직책을 맡기셨다. 그것은 마치 옛날 왕들이나 제사장들이 기름부음을 받음으로 그들의 직분을 부여받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구속자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 라 불리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즐거움의 기름으로 그에게 부어 그의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기 때문이다(시 45:7). "그는 나를 보내셨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보냄을 받지 않고는 오시지 않는다. 주 예수께서는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았다. "아버지께서 그를 보내셨고, 그에게 명령을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천국의 영장과 증명이 부착된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큰 만족이 된다. 그의 가르치심은 그의 것이 아니라, 구분을 보내신 하나님의 것이다.
Ⅲ. 그리스도가 기름부음을 받고, 성직을 받은 것은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인가?
1. 그는 선포자가 되어야만 했으며, 선지자의 직분을 실행해야만 했다. 그는 자기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선한 뜻을 매우 기뻐하여 기꺼이 그 선포자가 되려고 했고 그럼으로써 복음의 사역이 존귀케 되며 성도의 신앙은 확고하게 되고 용기를 얻게 되었다. 그는 겸비한 자와 회개자 즉 겸손하고 마음이 가난한자에게 아름다운 소식(복음의 의미도 그렇다)을 전파해야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구속자의 복음은 정말로 기쁜 소식이 될 것이며, 순수한 복음이 될 것이다. 또한 그 복음은 "믿음으로 가득 찬 말씀이요,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가치가 있는 말씀인" 것이다(딤전 1:15). 가난한자들이 대게 복음을 가장 잘 받는 자들이다(약 2:5). 복음을 온유함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이익이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 고 말씀하셨을 때는 그런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파하신 것이다.2. 그는 치료자가 되어야만 했다. 그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기 위하여" 보냄을 받았다(1절). 고통받는 사지를 편안하게 하고 피흘리는 상처를 싸매서 다시 유착하게 하듯 그리스도께서는 치료하신다. 죄로 인해 마음이 상하고, 죄의식과 진노의 두려움 속에서 겸손하게 된 사람들은, 그들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두려움을 없애 줄 어떤 것을 그리스도의 복음 속에서 얻는다. 완전한 통회의 아픔을 경험했던 자들만이 하나님의 진심과 위로의 기쁨을 기대할 수 있다.
3. 그는 구원자가 되어야만 한다. 그는 전파하는 선지자로서 보냄을 받았으며, 병을 고치는 제사장으로서 보냄을 받았고, 왕으로서 다음과 같은 종류의 포고문을 선포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
(1) 그의 친구들에게 대한 화평의 선포. 그는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할 것이다" (1절). 그것은 그 당시 바사 제국을 건설한 "고레스가" 포로 상태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향했던 것과 같았다. 또한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할 것이다" (1절). 죄를 지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에 묶이고 율법의 포로들이 되었으며, 그 죄로 인하여 팔려감을 당했고, 마침내는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빚을 갚기 위하여 하나님의 정의를 만족시키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리신다. 하나님께서는 만족하여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셨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간청하고 의지한다면 그리고 우리 자신과 그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고맙고 친절한 느낌 속에서 그분에게 마땅히 해야만 하는 모든 것을 한다면,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의 용서를 청구할 수도 있고,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지금 "우리를 정죄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죄가 지배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탄의 세력 속에 있게 되었고 죄 아래 팔린 몸이 되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을 정복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신다. 그분께서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사탄을 없이 하시며 사탄이 하는 일을 파괴하셨다(히 2:14)는 것을 알려 주신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죄의 멍에를 꺾어버리며 우리 목에 매인 줄을 풀어 버릴 수 있을만큼 충분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유롭게 하실"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바로 그때 우리는 "정말로 자유로울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들을 비참한 포로 상태에서 건져 주실 뿐만 아니라 모든 무거운 짐을 면제해 주시고, 시민으로서의 품위를 높여 주실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선포이다. 그 소리는 안식년을 알리는 나팔 소리와 같을 것이다. 그 나팔 소리는 대사령의 해를 선포했다(레 25:9, 40). 본문은 이를 암시하여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 (또는 여호와의 열납하시는 해)이라고 칭한다. 바로 그 때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들이시는 때인 것이다. 그것은 모든 해방의 근원이다. 또는 그것이 "여호와의 날" 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그것이 그의 자유로운 은혜를 선포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림으로 열납할 만한 해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 해는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가져오며 그들 자신의 영혼의 능력과 필요성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날이기 때문이다.
(2) 그의 원수들에게 대한 선전 포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원수갚는 날" 이 있다는 것을 선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복수하신다.
[1] 하나님께서는 죄, 사탄, 죽음, 지옥, 이런 모든 암흑의 권세를 멸절하여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이런 모든 것에게 승리하셨다. 그는 그것들을 멸망시키고 약하게 하고 부끄럽게 하고 밝히 드러내어 하나님과 인간에게 입혔던 모든 피해에 대해 그들에게 복수하셨다(골 2:15).
[2] 이런 아름다운 제의를 끝까지 거부하는 자들에게도 하나님은 복수하실 것이다. 그들은 사로 잡힌 가운데 방치될 뿐만 아니라 원수로 취급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왔다(막 16:16). 어디서든지 간에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구원의 날을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여호와의 해" 가 선포될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믿지 않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치 않는"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복수의 날을 선포하신다" (살후 1:8).
4. 그는 위로자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는 선포자, 병고치는 자, 구원자, 위로하는 자인 것이다. 그는 "애통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았다. 그러므로 애통으로 위로받고자 원하는 자는 세상을 찾지 말고 그를 찾아야 한다. 그들에게 그것을 공급해 주신다. 그는 성령으로써 그들을 위로하신다. 그들의 아픔과 슬픔이 무엇이든 간에 그에게는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위로는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들에게 확실히 임할 것이다. 그의 사시는 곳이 시온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따라 즉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여 슬피우는 자들에게 임한다. 비록 그들 스스로가 고통 중에 있진 않을지라도 시온의 재난과 황폐 때문에 슬피우는 자들과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동정의 눈물을 흘리는 자들에게 위로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의 눈물을 담을 "병" 을 가지고 계신다(시 56:8).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애통하는 자들을 위하여 위로를 준비하고 계신다. "시온에서 나오는 축복이 영적 축복인 것" 과 같이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들은" 거룩한 애도자이다. 그들은 슬픔을 은혜의 보좌 앞에 가져와 한나와 같이 그것들을 여호와 앞에 쏟는 자들이다(왜냐하면 시온에는 속죄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으로 이것들을 약속하셨고 성령으로 그들에게 부어 주실 것이다(3절). 그 성령은 그들로 슬픔을 견디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애가를 찬양으로 바꾸는 위로를 주실 것이다. 그 분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주실 것이다.
(1) "재를 대신하여 아름다움(화관)을 주실 것이다" (3절). 크게 슬퍼할 때면 그들은 으레 재 속에서 딩굴었다. 그러나 그들은 티끌에서 일으킴을 받을 뿐만 아니라 즐겁게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경건하면서도 쾌활한 모습이 바로 아름다움이며, 그 신앙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이다. 원문에는 우아한 "재담" 이 나온다. 즉 그는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pheer ----즉 화관(원의:아름다움)을 주어 epher ---- 즉 재를 대신할 것이다. 그는 마치 글자를 바꾸는 것 만큼이나 쉽게 그리고 빨리 그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놓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면 그것은 곧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2) "희락의 기름" 은 슬픔을 대신하여 얼굴을 빛나게 한다. 울음은 얼굴을 흉하게 하는 것이며 사랑스럽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성도들은 이 "즐거운 기름" 을 그리스도께로부터 받는다. 그러나 그리스도 자신은 "기쁨의 기름" 을 받아 동료들보다 승하게 되었다(히 1:9).
(3) "찬송의 옷" (3절)은 감사절에 입는 아름다운 옷 따위를 말하는데 이 옷이 슬픔과 어두움과 근심을 대신한다. 그들은 슬픈 마음을 그들 스스로 간직하고 있었다. 시온의 애도자들은 남몰래 운다. 그들은 기쁨으로 옷을 입어 다른 사람들 보기에 좋았다. 하나님께서는 기쁨의 기름을 주시는 곳에 찬송의 옷도 아울러 주신다. 하나님께로서 오는 위안들은 마음을 정해 주고, 마음을 확대시켜 주며, 하나님께 감사하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얻을 때면 꼭 그에게 영광과 찬송을 돌려야 한다.
5. 그는 심는 자가 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묘목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이러한 모든 것을 행하실 것이다. 또한 그들의 상처를 치료해 줄 것이다. 또한 그들의 상처를 치료해 줄 것이며, 속박에서 그들을 건져 주실 것이다. 또한 그들의 슬픔을 위로해 주실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심으신, 의의 나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 될 것이며 그러한 사람들로 인정받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포도원을 꾸미는 자며, 또한 "하나님께서 심은" 나무 가지들로서, 영광으로 나타날 것이다(60:21).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모든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시는 일이며, 그분을 섬기는 방법은 "여호와의 집에 심겨지고" 또한 "하나님의 성전에서 자라" 고 있는 살아있는 나무와 같다. 그분은 이러한 모든 것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우리는 진정한 헌신과 모범적인 대화로 그분에게 영광을 돌릴 것이다.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이다." 또한 어떤 사람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비취는 하나님의 은총과 그 백성 안에서 비취는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에게 찬양을 돌릴 수 있게 된다. 그분은 영원토록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을 분이시다."
교회의 번성(1) (이사야 61:4-9)
여기에는 포로에서 돌아온 뒤 고토에 재정착하는 유대인들에게 주시는 약속이 나오고 있다. 이 약속들은 확대하여 복음 교회에 적용된다. 은혜를 통하여 영적 노예 신분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모든 신자에게도 적용된다.
Ⅰ. 그들의 집들은 재건될 것이라고 약속되고 있다(4절). 그들의 성읍은 오랫동안 황폐했던 곳에서 다시 쌓여질 것이다. 그래서 다시 사용하기에 알맞도록 될 것이다.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重修)할 것" 이다(4절). 과거에 결코 다시 쌓을 수 없으리라고 염려하던 것이 높이 쌓여질 것이다. 세상에 기독교를 설립하는 것은 자연 종교의 부패를 고쳐 쌓는 것이며 여러 세대를 걸쳐 인류에게 비난받아 온 황폐된 경건과 정직을 쌓는 일이다. 성별받지 않은 영혼은 폐허된 집과 같고 성벽이 무너진 성읍과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과 은혜의 권능으로 그것은 복구되고 다시 질서정연하게 되며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거소가 되게 되었다. 포로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이것을 행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영광된 전으로 세우고 땅 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데 이바지함으로써 그를 섬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예 속의 집에서 구출된 까닭이다.
Ⅱ. 얼마 전까지도 압제자들을 위해서 수고하고, 그들의 처분대로 맡기던 종들이 이제는 오히려 자기들의 일을 할 종들이 있으며, 무엇이나 명령하면 하는 종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 종들은 성도들이 아니라, 땅끝까지 성도들의 양떼를 치는 외인들이며, 이방인들이다. 그들은 아벨, 가인, 아담의 일터인 동산을 가꿀 것이다. "외인은 서서 너희 양떼를 칠 것이다" (5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모든 이 세상사에 대해 거룩한 무관심을 품으며 마치 없는자같이 애매하게 (고전 7:30), 비록 우리의 손은 그 일에 이용되고 있더라도 우리의 마음은 그들의 일에 얽혀들지 않으며 오로지 하나님과 그의 봉사를 위해 예비될 때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 지기가 될 것이다" (5절).
Ⅲ. 그들은 포로에서 해방될 뿐만 아니라, 아주 애호를 받아 영광스러운 일을 맡게 될 것이다. "이방인들이 너희 양떼를 치는 동안에 너희는 성소를 맡게 될 것이다. 너희는 주인의 노예라는 이름대신에 높고 거룩히 불리우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다" (6절). 그 당시 제사장은 군주의 귀족이었고 그래서 히브리어로 제사장은 그런 이름으로 불리웠다. "너희는 레위인처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고 불리울 것이다" (6절).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해방시키는 자들로 일하게 하신다는 데 유의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원수의 손에서 건지사 그들로 자기를 섬기게 하신다(눅 1:74, 75; 시 116:16). 그러나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은 완전한 자유다. 아니, 그것은 가장 큰 영광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지셨을 때 그들을 자기의 "제사장 나라" 로 삼으셨다(출 19:6). 복음 교회는 "왕 같은 제사장" 이다(벧전 2:9).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들을 왕들과 제사장으로 삼았다. 그들은 "여호와의 제사장들이라 불리기" 위해서는 이마에다 "여호와께 성결" 이라고 기록하고 신앙 생활과 모든 언행 심사에서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만 한다.
Ⅳ. 이방 개종자들의 재물과 명예는 교회의 이익과 신망에 이바지할 것이다. 이방 사람들이 교회로 인도될 것이다. 과거에 이방인이었던 자들이 앞으로는 "성도들과 똑 같은 동료 시민들" 이 될 것이다. 그들은 자기 소유 전부를 가지고 와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께 대한 봉사에 사용할 것이다. 제사장들과 여호와의 봉사자들은 그것으로 인해 이익을 얻을 것이다.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이익을 위해 힘쓴다는 것은 모든 선한 신자들에게 위로와 격려는 물론 커다란 강화와 자극이 될 것이다.
1. 그들은 열방의 재물을 먹을 것이다. 그들이 그 재물들을 폭력을 써서 빼앗은 것이 아니라, "제단에 바치는 예물" 로서 그들에게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제공된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장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이 예물로 안락하게 살았다. 본문은 "너희가 열방의 제물을 쌓거나 소중히 간직하리라" 고 말하지 않고 "너희가 그것을 먹으리라" 고 말한다. 왜냐하면 재물을 사용하고 또한 그 재물로써 선한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기 때문이다.2. "그들은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다" (6절). 개종한 이방인의 과거 명예 즉 개종하기 전 그들의 고귀한 신분, 학식, 미덕, 지위 권세는 그들이 가입한 교회의 명성으로 변할 것이다. 개종한 뒤의 명예가 무엇이든간에 그들의 거룩한 열심, 엄격한 행위, 유용함, 인내심, 하나님의 은총으로 나타나게 된 복된 변화 등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큰 기여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들은 그것으로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다.
Ⅴ. 그들은 가슴속에 풍부한 위로와 만족을 가질 것이다(7절). 유대인들은 의심할 나위도 없이 귀환 후에 이런 특권을 받았다. 그들은 새 세계에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자유와 재산과 끊임없이 새롭게 피어나는 기쁨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았다. 하물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영화로운 자유를 허락하실 때는 그 기쁨이 어떠하겠는가! 특히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진 특권이 몸의 부활로 완성될 때에는 더 더욱 그렇다.
1. 그들은 자기들의 분깃을 기뻐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소유를 다시 가지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보다 나은 선물인 위로를 얻을 것이며, 그로 인하여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전 3:13). 성전은 말할 것도 없고 귀환한 유대인들의 집들이 포로 이전보다 훨씬 보잘 것 없었을지언정 그들은 그것들을 보고 즐거울 것이며, 감사할 것이다. 그것은 고토 즉 거룩한 땅 임마누엘의 땅에 있는 분깃이다. 땅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땅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것이 이방 나라에 있는 이방 사람들 것이라고 알아 왔기 때문에 더욱 더 그 분깃을 기뻐할 것이다. 하나님과 천국을 자기 분깃으로 소유하는 사람들은 가치있는 분깃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만하며 즐거워할 만한 이유가 있다.2. "영원한 기쁨이 그들에게 있을 것이다" (7절). 즉 그 백성들의 즐거운 상태는 포로 기간보다 훨씬 더 오래 계속 될 것이다. 그러나 유대 민족의 즐거움은 무척 감소되었고 빈번히 방해를 받았으며, 너무 빨리 종결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신자의 영적 즐거움과 천국에서 소망하는 그들의 영원한 기쁨에서 이 약 속의 성취를 찾아야 한다.
3. 그들이 포로의 땅에서 겪었던 치욕과 고통을 대신하여 그들에게 두 배로 아니 그 이상의 기쁨으로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수치 대신에 두 배의 영광을 얻을 것이며, 너희가 잃어버린 것 대신에 너의 땅에 두 배나 많은 재물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7절).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과 너희의 위로가 너희가 받은 모든 손실에 대해 풍성한 배상을 할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 로서 뿐만 아니라, "장자" 로서 상속을 받을 것이다(출 4:22). 그러므로 두 배의 분깃을 받을 권리가 있다. 포로로 있을 때의 불행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들은 마음속에 자기들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배나 받았다고 말했듯이,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의 불행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들은 마음속에 자기들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배나 받았다고 말했듯이,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의 즐거움도 대단히 컸기 때문에 그들은 마음속으로 "그 모든 수치에 대하여 배의 즐거움을 받았다고 할 것이다" (40:2). 전자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배상에 대해 적용될 수 있으니 곧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죄를 인하여 그리스도께 배로 받으셨던 것이다. 후자는 천국의 완전한 기쁨에 적용될 수 있으니 곧 우리는 우리의 모든 봉사와 고난을 인하여 배 이상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욥의 경우는 이것을 설명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을 주셨던 것이다(욥 42:10).
Ⅵ.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충실한 안내자가 될 것이며, 그들과 계약을 맺으실 것이다. "나는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줄 것이다" (8절). 하나님께서는 섭리로 그의 진리의 말씀에 따라 그들의 일들을 가장 좋은 곳으로 지시하실 것이다. 그는 그들을 진정한 번영의 길로 안내할 것이고, 성실한 정책에 의해 인도할 것이다. 그는 은혜로 말미암아 선한 백성들의 일들을 옳은 길로 지시하실 것이다. 또한 행복에 이르는 진실한 길로 인도할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진실을 행하도록 지시하실 것이며, 그들이 자기를 기뻐하도록 지시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에 진실함을 원하신다" (시 51:6). 만약 우리가 진리 속에서 우리의 일을 행한다면 "그분은 우리와 영원한 계약을 맺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앞에서 행하는 정직한 자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때문이다. 이 약속과 그 앞 약속(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리라)의 이유로써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노라" 는 말씀이 나온다. 그분은 공의가 사람들 사이 즉 위정자와 백성, 이웃과 이웃 사이에 베풀어지는 것을 좋아하신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불의를 미워하신다. 압제자나 핍박자가 자기 백성을 억울하게 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기뻐 아니하신다. 이는 그들이 자기 백성들을 그릇 대한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나쁘고 영원한 평등의 규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들이 공의를 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공평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고쳐 주시고 악을 행하는 자들을 처벌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대하여 질투하실 뿐만 아니라, 정의를 위해서도 질투하시기 때문에 그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신원해 주신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보자. "하나님께서는 번제를 드리기 위하여 노략질한 것을 싫어하신다." 그분은 자기 백성들이 불의를 행하는 것을 미워하신다. 그의 백성들은 그들이 가진 것을 가지고 번제를 드려 그를 존귀케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불의한 제물을 드릴 때 더욱 더 미워하신다. 만약 그분께서 자신에게 드리는 번제물이 강탈한 것일 때 미워한다면, 우상에세 번제를 드리는 번제물이 강탈한 것일 때 더욱 더 미워하시리라. 그 백성들이 자기 신분을 강탈했을 뿐만 아니라, 그분도 그 번제물을 강탈당했을 때 더욱 더 싫어하신다. 의식 예배가 도덕적 교훈의 위반을 보상하지 못하며 "그것이 제사를 위한 것" 이라거나 "그것이 고르반 즉 하나님께 대한 예물" 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사람의 강도짓이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크게 보탬이 되는 진리이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고 수 천 마리의 양을 드리는 것보다 공의를 행하고 자비를 행하는 것이 낫다. 아니, 이런 위선으로 뒤덮인 강탈은 하나님께 미움받는 행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의로운 하나님을 불의의 수호신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것을 이방인의 출입을 거절한 유대인들의 거절 이유로 해석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도덕적으로 너무나 부패했고 박하와 회향의 십일조는 드리면서도 공의와 자비를 베푸는 데는 무관심했기 때문이다(마 23:23). 그런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사랑하시고 공평을 주장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번제를 위한 강탈물과 강탈물을 위한 번제 역시 싫어하신다. 바리새인은 과부의 집을 보다 그럴듯하게 삼키기 위해 기도를 길게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불의로 강탈하는 것을 미워한다." 즉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원수들이 부당하게 그들을 약탈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싫어하셨으므로 그들과 이에 대해 셈하실 것이다.
Ⅶ.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자손들에게 축복을 주실 것이다(이제 여호와의 축복받은 자이며, 그들의 직업을 계승하는 자이며, 교회의 자손인). 사람의 자녀들이 "대대로 주를 전할 것이다" (시 22:30).
1. 그들은 유명해질 것이며, 그들의 이웃들이 그들을 알아 볼 것이다. "그들은 열방 중에 알려질 것이다" (9절). 그들은 스스로가 진지하고, 신중하고, 겸손하고, 행동에 즐거움을 가짐으로써 열방들과 스스로 구별될 것이다. 특히 형제애로써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줄 알 것이다. 그들은 이와 같이 자신들을 구별시킴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고귀하게 보이도록 하실 것이며 그들을 그 시대의 축복이 되게 하시고 그의 영광의 도구로 삼으시며 그 은혜의 확실한 증거를 그들에게 주심으로써, 그들을 탁월하게 하시며,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게 하실 것이다. 경건한 부모들의 자녀들은 그렇게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사랑을 해야 할 것이다. 그 자녀들을 관찰하는 모든 사람들은 좋은 교육의 성과들을 볼 것이며, 그들을 위해서 한 기도의 응답도 볼 것이다. 바로 그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 속의 성취로써 자기들을 알리실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정직한 세대는 복을 받을 것이다.2. 하나님께서는 이로써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보는 자는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볼 것이며, 사람들은 그들이 여호와께 복받았고 복받고 있는 자손이라고 인정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둘 다 해당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축복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주목하라. 어떤 선한 것이든 간에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열매로서 인정받아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인해 영광을 받으셔야만 한다.
교회의 번성(2) (이사야 61:10,11)
어떤 사람은 이 부분을 선지자가 예루살렘의 이름으로 부른 기쁨과 찬송의 노래라고 생각한다. 선지자가 이전 약속들의 성취로 인하여 예루살렘이 행복한 환경으로 전환한 것을 축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복음의 은혜를 즐거워하며 신약 교회의 이름으로 노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양자를 다 받아들이되 전자를 후자의 예표로 생각할 수 있다.
Ⅰ.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거룩한 즐거움을 가지고 서로 즐거워하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1. 이 선한 일이 시작될 때 교회는 "의와 구원의 옷" 으로 입힐 것이다(10절). "내 영혼이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즐거워하리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들은 크게 기뻐할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삼을 때 우리는 커다란 기쁨 속에서 곤경에 빠질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가장 첫 번째 복음의 노래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이라" (눅 1:46, 47). 이 즐거움에는 마땅한 찬송 제목이 있으며 왜 즐거움이 하나님에게서 종결되어야 하는지 온갖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구원과 의는 소개되고 완성되며 교회는 구원과 의의 옷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위하여 역사하셨던 구원과, 그들을 위해 나타내 보인 하나님의 의와, 그들 사이에 나타난 그러한 개혁은 마치 그들이 예복이나 결혼복을 입고 있는 듯이 그들을 모든 현인들의 눈에 영광스럽게 보이도록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정말로 크고 영원한 구원으로써 교회를 옷 입히셨다. 또한 의로 옷 입힘으로써 교회는 의롭다 인정을 받고 거룩하게 되었다.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계 19:8). 구원과 의는 함께 다닌다. 오직 그들만이 후에 구원의 옷으로 입혀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 의의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옷들은 제사장들의 옷처럼 화려하고 훌륭한 옷이다. 그 옷으로써 "신랑은 단장한다" (10절). 그것은 태양의 밝음에 비유된다. "그는 완전히 단장을 하고 그의 방으로부터 나오는 신랑과 같다" (시 19:5). 의의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아름다움은 이와 같으니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되고,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그들에게서 새롭게 되었다. 그들은 신부처럼 단장되어 하나님께 맞아들여지고 그와 언약을 맺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고용된 제사장으로서 옷입혀졌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었다.2. 이 선한 사업의 진행과 계속에서(11절) 그 날은 당장에는 영광스러우나 곧 지나가 버리는 개선 일과 다르다. 축제일과도 다르다. 교회가 의와 구원으로써 입는 옷은 영속적인 옷이다(사 23:18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와 구원으로 옷입힘으로써 교회는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다. 장차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이 발생할 것과 원방에까지 퍼질 것을 생각하고 교회는 기뻐하는 것이다.
(1) 의와 찬송들은 해마다 산출되는 땅의 소산물처럼 장차 올 세대를 위해 발생하게 할 것이다. 어떤 땅이든지 해마다 "새싹을 내며," 해가 돌아오면 파릇파릇한 풀을 내고, 계절이 되면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같이 주 여호와께서 은혜의 언약으로 발생하게 하실 의와 찬송은 지당하며 영구불변하며 강렬하며 인류에게 혜택을 입힐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는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실 것이다" (11절). 전과 같이 은혜의 계약에 따라, 신의 섭리의 계약에 따라 "의와 찬송을 발할 것이다." 약속된 축복이 무엇인가를 보라. 의로써 옷입혀졌던 사람들은 자기들을 옷입히신 분에게 "찬송을 나타낼 것이다." 이슬 같은 하나님의 은총 아래서 의와 찬송이 솟아날 것이다. 이런 축복들이 시들어 버리고 나타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겨울이 교회에 찾아오는 때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뿌리는 흔들리지 않고 고착되어 있어서 봄철이 되면 의로운 태양의 소생시키는 영광이 다가옴으로써 그들은 다시 번창하게 될 것이다.
(2) 의와 찬송은 멀리 퍼질 것이며, 모든 "열방 앞에서 발생할 것이다" (11절). 큰 구원이 온 세상에 선포되고 전파될 것이며,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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