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4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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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충언 (이사야 48:1-8)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 볼 수 있다.

Ⅰ. 신앙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많은 유대인들의 위선적인 고백. 선지자는 이러한 고백을 하는 자들에게 말하도록 여기에서 지시받고 있다. 그것은 그들로 죄를 깨닫게 하고 굴복케 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임하게 한 말 속에서 그의 공의를 그들이 인정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그들의 신앙 고백은 얼마나 높이 치솟았는가. 그들은 육신적으로 얼마나 훌륭한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얼마나 멀리 하늘을 향해 갔는가. 그들은 얼마나 훌륭한 제복을 입고 있었으며 매우 악한마음 위에 얼마나 선한 얼굴을 덮어두고 있었느니라.

(1) 그들은 "야곱 집" 이었다. 그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교회의 장소와 이름을 마련했다.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다." 야곱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가문의 종자(從者)일 뿐만 아니라 그의 자손이다.

(2) 그들은 존귀한 이름인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다." 그들은 율법과 약속이 속해있는 바로 그 백성들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왕" 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자신이 그 왕의 종족에 속한 것을 자랑했다.

(3) 그들은 "유대의 근원에서 나왔고," 따라서 유대인이라 일컬어졌다. 그들은 왕족 지파, 즉 실로가 오기로 한 지파, 다른 지파가 하나님을 반역할 때 그를 지지했던 그 지파에 속해 있었다.

(4)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그것에 의해 그가 참되신 하나님이시며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시인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그에게 영광을 돌린다.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에 맹세했다" (이렇게 풀이될 수도 있다). 즉 그들은 왕으로서의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언약으로써 그에게 연합했다.

(5) 그들은 기도와 찬미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불렀다. 그들은 자주 그에 관해 말했고 그의 기념물들을 관찰했으며 그에게 매우 마음을 기울이는 척했다.

(6) 그들은 스스로를 "거룩한 성 백성이라 칭했다." 그리고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을 때, 순전히 의리와 본국에 대한 빈틈없는 배려에 입각하여, 그 거룩한 성에 대한 그들의 관계를 자랑했다. 자기 자신은 거룩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교회, 그 거룩한 성에 대한 그들의 관계를 자랑한다.

(7)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의 약속과 그들에 대한 그의 언약을 뽐냈다. 그들은 "여호와를 의뢰했다" (미 3:11). 그리고 그들은 만일 그들의 하나님에 관해 질문을 당한다면,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시라" 고 말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는 행복하며 매우 위대하도다!

2.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앙 고백은 얼마나 낮게 침잠하고 말았는가. 그것은 모두 헛되었다. 그것은 모두 장난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실치 아니하고 의로움이 없었다." 이러한 고백을 하는 그들의 마음은 성실하지도 않았고 의롭지도 않았다. 우리의 모든 신앙적인 고백이, 성실하고 의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런 효력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진심으로 신앙 고백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에 불과하다.

Ⅱ. 그들을 자기에게 가까이 두시기 위해, 그리고 그들이 우상 숭배로 빗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수단과 방법, 그들이 찬성하여 그가 그들에게 주신 탁월한 율법과 그들을 두르신 산울은 그들이 매우 쉽게 사로잡힌 죄에서 그들을 제지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놀랄 만한 예언을, 그리고 그 예언에 의거한 주목할 만한 섭리를 첨가하고 계신다. 그런데 이것은 모두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하나님만이 오직 참되신 하나님이시므로 그를 신봉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며 권리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1. 그는 놀란 만한 예언들로써 그들을 존귀케 하셨고 호의를 베푸셨다(3절). "내가 옛적에 장래사를 고하였도다." 그 민족에게 일어난 사건들, 즉 그들이 애굽에서 속박당하고 거기에서 구원된 것, 가나안에서의 그들 지파의 상황 등, 처음부터 예언되지 않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입에서 내어 보이셨다." 이 점에서 그들은 어느 민족보다 존경받았고 그들의 호기심도 충족되었다. 그들의 예언은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이었고, 그들 자신과 그들의 민족이 관련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상기됨으로써 실증되었다. "내가 홀연히 이 일을 행하였느니라." 그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거의 기대하지 않았으므로, 거룩한 선견에 의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예견할 수 없었던 때에 행하였느니라. "내가 행하여 이루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가 행하시는 것을 효과적으로 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바벨론에서 신음하고 있는 바로 그 재앙을 그들이 하나님을 배신한 필연적인 결과로써, 옛날부터 모세에 의해 그들에게 고하셨다(레 26:31 이하; 신 28:36 이하; 신 29:28). 그는 또한 그들이 하나님께로, 그리고 다시 그들의 땅으로 돌아올 것을 그들에게 고하셨다(신 30:4이하; 레 26:44, 45). 이처럼 그는 그 일이 이루어지기 오래 전에 그가 그들을 어떻게 다루실 것인가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현재의 상태를 율법에 기록된 그들의 구원에 관한 예고와 비교해 보게 하자. 그러면 그들은 그 성경이 정확히 성취된 것을 발견할 것이다.

2. 그는 놀랄 만한 섭리로써 그들을 존귀케 하고 호의를 베푸실 것이다(16절). "이제부터 내가 새 일을 네게 보이노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행하시기 시작하셨을 때 주신 전반적인 예견 외에도,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들의 날에 관한 새 일을 보여 주셨고 그것을 창조하셨다.(7절). 그들의 부흥은 사실상 그들의 창조였고, 그들은 태초부터가 아니라 근래에 그것에 대한 약속을 얻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을 막기 위해, 또는 그들을 소생케 하기 위해, 예언이 그들 가운데서 지켜져 왔던 것이다. 더구나 그들이 거룩한 계시에 의한 것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그것을 알 수 없었을 때, 그것이 그들에게 전해졌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지금 너희 중에서 그것이 얼마나 많이 화제에 오르고 있고 또 예상되고 있든지 간에, 네가 그것을 거의 생각하지 않았을 때, 네가 그것을 듣지 않았을 때, 네가 그것을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예상할 이유도 없었을 때, 그리고 네 귀가 그것에 관해 열려 있지도 않았을 때(7,8절). 그 일이 아주 불가능하게 보였고 너는 그것에 대해 네게 말해야 하는 자에게 거의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을 때, 선지자들이 네게 그것을 말해 주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라." 하나님은 그들의 지식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었던 은밀한 일을 그들에게 보이셨고 그들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큰 일을 그들을 위해 행하셨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6절). "자, 네가 이미 들었으니 이것을 다 보라. 네가 그 예언을 들었으니 이제 그것의 성취를 보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행하시는 바가 정확히 일치하는가 안하는가를 살펴 보라. 너희가 들은 대로 보았음을 선전치 아니하겠느뇨? 여호와께서 참되신 하나님, 오직 하나이신 참된 하나님이심을, 어떤 피조물도 가질 수 없는 그리고 열방의 어느 신도 사칭할 수 없는 지식과 권능을 갖고 계심을 네가 인정하지 않겠느냐?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선한 하나님이셨음을 인정하지 않겠느냐? 이 일을 선전하여 그를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그의 앞에 다른 신을 두었던 너희 자신을 부끄럽게 하라."

Ⅲ.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해 이 방법을 취하신 이유.

1. 그들이 그들 자신과 그들의 우상을 자랑할 것을 예상하셨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은 그의 선지자를 통해 그들의 구원을 미리 그들에게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 업적을 그들의 우상에게 돌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그는 그 영광을 자기 자신에게 단단히 붙들어 둘 필요가 있음을 아셨다. 그렇지 않다면, 그 영광은 그들 중 어떤 사람들에 의해 그들의 새긴 신상에게 부여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그것을 말하였느니라. 그렇지 않았더라면 네 말이, 내 신의 행한 바요 명한 바라 하였으리라" (5절). 그렇게 말하기 쉬운 자들, 그리하여 그들을 우상 숭배에서 치료하기 위한 의도를 지닌 것을 오히려 그 우상 숭배를 견고케 하는데 사용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영원히 배제될 것이다. 그 우상이 그렇게 행했다면, 우상의 선지자들이 그것을 예언했었을 것이나, 그러나 여호와의 선지자들이 그것을 예언했으므로, 그것을 성취한 것은 의심할 것 없이 여호와의 능력이었던 것이다.

(2) 하나님은 그들이 스스로 그 예언을 통찰했다고 추측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의 선지자들을 통해 그것을 예고하셨다. 그 일 자체를 한 우상에게 돌릴 정도로 불경스럽지는 않았던 자들도, 만일 하나님께서 앞질러 그것을 먼저 말씀하시지 않았다면 그들의 재치로써 그들이 그것을 예견한 척했을 정도로 교만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였으리라." 이와 같이 지혜롭게 생각되기도 하는 허탄한 사람들은 진정 크고도 놀라운 일을, 그것이 그들이 예상하고 있고 알고 있는 것 이상은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함으로써 흔히 과소평가 한다. 이것을 앞지르기 위해, 그리고 이 자랑이 영원히 배제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그것을 그날이 되기 전에 그들이 그것에 대해 꿈도 꾸지 않을 때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스스로 뽐내는 것을 막고 "아무 육체도 그 앞에서 자랑하지 않게 하기에" 충분한 것을 말씀하셨고 행하셨다. 그리고 그 의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만한 자의 죄와 멸망을 더 무겁게 할 것이다. 그리고 조만간에 "모든 입에 닫혀지고," "무릇 혈기있는 자들이 여호와 앞에서 잠잠하리라."

2. 그들의 완악함을 결코 용서치 않으려 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완악하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는 그들에 대해 이처럼 수고하셨다(4절). 그는 그들이 매우 고집스럽고 심술궂기 때문에, 그가 예언으로써 섭리의 교리를 지탱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그것을 부인할 정도로 몰염치했을 것이고, 하나님이 행하신 그 일을 그들의 신이 했다고 말했으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잘 아셨다.

(1) 그들이 얼마나 괴팍스러우며, 얼마나 악으로 빠지기 쉬운가. "내가 알거니와 너무 무정하도다" (이런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의 마음이 무정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계율 뿐만 아니라 예언도 주셨다. "네 목의 힘줄은 무쇠이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의 멍에에 굴복할 줄도 모르고 고개를 돌려 그가 네게 대하는 것을 되돌아보려 하지 않으며 너에 대한 그의 진노를 올려다보려 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의 의도를 유순하게 따르지 않으며 그의 말씀이나 섭리에 순종하지도 않는다. 네 이마는 놋이라. 너는 파렴치하여 얼굴을 붉힐 줄도 모르며, 무례하여 두려워하거나 후퇴하려 하지 않으며, 네 마음의 길을 좇기에 갈급하다." 하나님은 비록 죄인들이 완악하다는 것을 아실지라도, 그들로 하여금 그를 쫓게 만들 수단을 사용하신다.

(2) 그들이 선한 일에 있어서 얼마나 기만적이었고 얼마나 불성실했는가(8절). 하나님은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셨으나 그들은 듣지 않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옛 상태를 고려해 볼 때, 예상되었던 대로였다. "네가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라 칭함을 입었고" 그것은 잘못 칭하여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제일 처음 백성으로 조성된 이후로 우상 숭배로 기울어지기가 일쑤였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 그 죄에 대한 이상한 버릇을 갖고 왔다. 그리고 그들은 가나안으로 행진하기 시작하자마자 투덜거리는 자들이 되었다. 그때 그들은 그것에 대해 책망받는 것이 마땅했다(신 9:7, 24). 이는 "네가 궤휼함을 내가 알았음이라." 하나님은 그들의 배신을 예견하셨고 그들이 거짓되고 변덕스럽다는 것을 항상 발견하셨으므로 이러한 판단을 내리셨다(신 31:16, 27, 29).

이것은 각 개인에게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불순종의 자손으로 태어났다. 우리는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 라 칭함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가 반역적이라는 것을, 매우 반역적이라는 것을 예견하기는 쉽다. 원죄가 있는 곳에는 사실 죄도 물론 따를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알고 계시나, 우리의 행위대로 우리를 다루시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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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격려 (이사야 48:9-15)

하나님의 백성을 바벨론의 포로에서 건지는 것은 여러 면에서 매우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일이므로, 그것에 관한 하나님의 백성의 믿음과 소망을 거듭거듭 격려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을 낙심시키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사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시기에는 그들이 너무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과 그 일 자체에 많은 난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이 모든 낙심은 이 구절들 속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에 의해 제거된다.

Ⅰ. 그들이 비록 보잘 것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그것을 행하시려는 이유. 그것은 그들에게 알려진 바대로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이름을 위해서, 그의 영예를 위해서" 이다(9-11절).

1. 그들이 하나님을 매우 화나게 해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땅히 그들에게 노하고 계셨다. 그들이 포로된 것은 그들의 죄악에 대한 형벌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들을 바벨론에 두셨을 때 그들이 거기에서 수척해지고 사멸하도록 내버려두시고 그들 나라의 황폐함이 영구하도록 만드셨다면, 그는 단지 그들을 그들의 죄대로 다루시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죄를 범한 자들이 노한 하나님으로부터 기대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노하기를 더디하리라(아니, 오히려 그것을 누르리라). 내가 노하기를 더디하며 너에 대해 참는다는 것을, 분노를 쏟아 놓아 네가 백성이 되지 못하도록 멸절시키는 것이 마땅하나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타내리라." 왜 하나님은 이처럼 그의 손을 붙드시려 하는가? "내 이름을 위하여." 즉 이 백성이 그의 이름으로 칭하여졌고 그의 이름을 고백했으며, 만일 그들이 멸절된다면 그 대적들이 그의 이름을 모독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 영예를 위하여" 즉 그들을 용서하고 살려두는 것이 그의 긍휼의 영예에 이바지할 것이고, 만일 그들을 계속 그에게 백성이 되게 하신다면 그들을 그에게 이름과 명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그들이 매우 부패하고 나쁜 성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나, 하나님은 손수 그들을 연단하시고, 그가 그들에게 주시려는 긍휼에 적합하게 그들을 만드시려 했다. "네가 영예의 그릇이 될 수 있도록 내가 너를 연단하였다." 그는 비록 그들이 그의 은총에 합당함을 발견치 못하셨을지라도 그들을 연단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들을 환난으로 이끄시고 이전에 행하셨던 것처럼 그들을 오랫동안 그 속에 두시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을 멸절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유익을 행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그들을 연단하기 위함이었으나, "은처럼" 또는 "은으로 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이 은을 모든 불순물이 제거될 때까지 풀무 속에 계속두는 것처럼 철저히 하시지는 않는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러한 과정을 취하신다면, 그들은 항상 용광로 속에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불순물 투성이이며, 내어버린 은처럼(렘 6:30) 마땅히 추방되어야 하는(시 119:119)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을 완전히 연단되지 아니하고 부분적으로만 연단된 자들로서 그들을 택하셨다. "내가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즉 내가 고난이 네게 행한 유익에 의해 너를 택한 자로 만들었고, 그리고 나서 네게 큰 일들을 계획하였노라." 많은 사람들이 택하여 나아가 그릇으로써 하나님께 되돌아 왔고, 은혜의 선한 역사가 고난의 풀무 안에 있는 그들에게 시작되었다. 고난은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장애물이 아니고 그의 목적에 기여되는 것이다.

3. 그들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바벨론에서 건져질 만큼, 큰 은총을 입을 만한 공로를 행한 척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그러한 영예를 부여하고 큰 기쁨을 가져다 줄 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내 이름을 위하여, 내 명예를 위하여 내가 그렇게 하리라" 고 말씀하고 계신다(11절). 그것이 얼마나 강조되고 있는지를 보라. 그것은 부족할 리 없는 이유이므로 거기에 근거한 결심도 땅에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것은 그가 그들에게 그만한 호의를 입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의 이름의 영예가 이방인들의 무례한 승리감에 의해 더렵혀지지 않도록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이겼을 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이긴 것으로 생각했고, 그들의 신이 그보다 더 강한 것으로 상상했던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벨사살이 그의 우상을 찬미하면서 하나님의 성전에 거룩한 기명들을 더렵혔을 때 그의 주연에 참석한자들이 한 말이었고(단 5:2, 4), 바벨론 사람들이 "우리를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고 요구할 때 한 말이었다(시 137:3).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영광이 이처럼 다른 것에게 주어지도록 내버려 두려하지 않으실 것이므로 그의 백성을 건지실 것이다. 모세는 흔히 다음과 같은 말로 하나님께 탄원했다. 여호와여, "애굽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오리까?"

하나님은 자기 이름의 명예에 큰 배려를 기울이시며, 사람의 분노는, 하나님께서 그를 찬미케 하도록 하실 정도 이상으로는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는, 그들이 어찌되든 하나님께서 자기의 영예를 확고히 해두시리라는 것이 위로가 된다. 그리고 그 영예를 위해 필요한 한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구원을 역사하실 것이다.

Ⅱ. 비록 그들이 스스로 도울 능력이 없었고 그 일 자체도 실행하기 불가능하게 보였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그것을 행하실 수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야곱과 이스라엘은 이것을 듣고, 믿으며, 그 위로를 얻도록하라.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신 자들, 즉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옛날에는 애굽에서 지금은 바벨론에서 인도해 내신 자들(호 11:1)이며, 그가 특별한 은총을 갖고 이름으로 부르시고 그에게로 부르신 백성이다. 그들은 그에게 부르심을 입고 그의 이름으로 칭하여지며 그의 것으로 일컬어지는, 그가 부르신 자들이다. 따라서 그는 그들을 돌보실 것이고, 그들은 그가 자기를 위하여 그들을 건지실 뿐만 아니라 자기 힘으로 그들을 건지시라는 것을 확신해도 좋다. 그들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1. 그만이 홀로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하나님이시다(12절). "나는 내가 하려는 것을 행할 수 있으며 가장 선한 것을 행할 것이며 아무도 비교할 수 없는 더욱이 다툴 수 없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누가 처음이신 그보다 빠르거나 그를 앞설 수 있겠는가? 마지막이시며, 모든 대항자들에게 맞서 전투지를 지키시고 그들이 모두 그의 발등상이 될 때까지 군림하실 그보다 누가 더 강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구원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얼마나 있든지간에, 그가 그 일에 착수하실 때, 그의 계획은 훌륭히 짜여질 수 밖에 없으며(그는 처음이시기 때문이다), 또 잘 수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그는 나중이시기 때문이다). 이 하나님에 있어서 그의 행사는 완전하시다.

2. 그는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시며, 무슨 일이든지 행하실 수 있었던 자이시다(13절). 아래를 내려다보면, 우리는 우리 아래 있는 땅이 견고한 것을 보며 또한 느낀다. 그것의 "기초를 정한" 것은 그의 손이었다. 위를 올려다보면, 우리는 하늘이 머리 위에 차양처럼 펼쳐진 것을 본다. 그것을 편 것은 그의 손으로, 공장이 자기가 만든 것을 때로 뼘으로 재어보는 것처럼 "뼘으로 치수를 재고" (spanned), 정확한 치수로 그것을 펼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막대한 세력 범위를 갖고 계시며 가장 큰 정도의 계획을 달성하실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의 오른 손 뼘" (난외에 적힌 대로)이 하늘을 펼칠 정도로 넓다면 그는 그의 펼친 팔로는 어떤 일을 행하시겠는가?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소망과 도움이 속해 있는(시 124:8) 전능하신 그는 천지를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천지 만물을 지휘하고 계신다. 그가 그의 사명을 위해 그들을 그의 봉사로 부르실 때, 그들은 일제히 일어나 그에게로 와서 그들의 이름에 대답한다.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무엇을 해드릴까요?" 그들은 그들의 창조주를 경외하는 자세로, 뿐만 아니라 그의 명령을 수행할 준비를 한 자세로 선다. "천지가 일제히 서느니라." 일치 단결하여, 그리고 그들의 조물주를 섬기는 일에 서로 도우며 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건지고자 하실 때, 그들의 구원을 성취하는데 사용하실 도구가 부족하여 당황하실 리는 없는 것이다.

3. 그는 이미 구원을 예고하셨다. 그리고 그는 무한한 지식을 갖고 그것을 예견하셨으므로, 틀림없이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전능한 능력을 갖고 계신다. "야곱의 집의 너희는 다 모여 이것을 듣고 위안을 얻으라. 즉 그들 중에, 이방 신들 중에 누가 이 일을 예언하였거나 예언할 수 있었느뇨?" (14절) 이방 신들은 그 구원에 대해 전혀 선견지명을 갖고 있지 않았으나, 그들에게 의논한 자들은 바벨론이 영영히 여왕이 되고 이스라엘은 영구한 노예가 되리라는 것을 매우 확신했다. 그리고 이방 신들의 신탁은 그들에게 조금의 암시도 하지 않았고 반대로 그들을 속였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지자를 통해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포로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오래 전에 통고하셨고, 이제 마찬가지로 그들의 해방을 통고하셨다(15절). "나, 곧 내가 말하였도다." 그리고 그가 만일 그것을 성취할 수 없다면, 그것을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 누구도 그를 능가하여 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누구도 그를 능가하여 행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4. 이 봉사에 사용될 인물이 선정되어 있으며, 변경될 수 없는 거룩한 계획에 대한 방책이 협의되어 있다. 고레스가 그것을 행해야 할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 의해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리라고 특별히 들은 바대로 행해지리라는 것을 한층 더 확신하게 해 준다. 누가 그것을 행할 것인가 모호하게 남겨져 있지 않고 확정되어 있는 것이다.

(1) 그는 하나님께서 이 봉사를 위해 예정해 주셨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그가 매우 기뻐하시는 자이다. "여호와가 그를 사랑하셨다" (14절). 여호와가 그에게 이 은총을, 이 영예를 베푸셨다. 즉 그로 하여금 그의 백성을 구속하는 도구가 되게 하셨고, 여기에서 그는 위대하신 구속자,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그의 매우 기뻐하시는 자" 의 모형이 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그의 교회에 유용하게 쓰이도록 만드시는 자들에게 큰 친절을 행하시며, 큰 친절을 품고 계신다.

(2) 그는 하나님께서 권위와 위임을 부여하실 자이다. "내가 그를 불렀도다." 내가 그에게 충분한 증서를 주었으므로 그를 지지하리라.

(3) 그는 하나님께서 일련의 섭리로써 이 봉사로 인도하실 자이다. "내가 먼 나라에서 그를 인도하였고 그가 바벨론을 치는 일에 종사하도록 인도하였으며, 그를 그 자신의 의도를 넘어서서 단계적으로 점차 인도했다." 하나님은 그가 부르신 자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그들로 오게 만드실" (문자 그대로) 것이며, 그 부르심에 오도록 만드실 것이다.

(4) 그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성공케 하실 자이다. 고레스는 "하나님의 뜻을 바벨론에 행할" 것이다. 비록 고레스가 자기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하고 그것을 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이나 그의 은총을 고려치 않을지라도,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할 것이며 하나님은 그 행사를 기뻐하실 것이다. "그의 팔" (고레스의 군대, 그리고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팔)이 와서 "갈대아인에게 임하여" 그들을 멸망시킬 것이다(14절).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그를 인도하신다면, 반드시 "그 길이 형통하게" 만드실 것이기 때문이다(15절). 우리가 거룩한 부르심과 안내를 따를 때, "그때" 우리는 우리의 길이 형통하기를 바랄 수 있는 것이다.

 

48:10 없음.

 

48:11 없음.

 

48:12 없음.

 

48:13 없음.

 

48:14 없음.

 

48:15 없음.

 

48:16

여호와의 말씀 (이사야 48:16-22)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 야곱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선지자가 말하는 것을 청종하도록, 혹은 오히려 그 선지자안에서 그를 통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청종하도록 호출받고 있다. 그리고 이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 말세에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위해 보내신 그 큰 선지자의 모형이 되고 있으며 그것은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가까이 나아와 이 말을 들으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깨달으려는 자들은 가까이 나아와야 하며 그에게 다가와야 한다. 따라서 그들로 하여금 될 수 있는 한 가까이 나아오게 하라. 그 유혹자에게 청종한 자들에게 이제 가까이 와서 이것을 듣고 하나님을 섬기려는 그들의 결심을 확고히 할 수 있게 하라. 하나님께 가까이 온 자들은 그의 비밀이 그들과 함께 하리라는 것을 믿어도 좋은 것이다.

Ⅰ.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던 것과 이전에 그들을 위해 행하신 것을 그들에게 유의시키고 계신다. 만일 그들이 그 사실을 회고해 본다면, 그들은 거기에서 큰 격려를 얻어, 지금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1. 그는 "처음부터"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에게 항상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것을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그것을 시내산 꼭대기에서, 그리고 그들 지파들이 거룩한 집회를 갖는 광장의 상석에서 공개적으로 말하였느니라." 그는 그의 신탁을 어둡고 모호하게 전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게 전하셨다(합 2:2).

2. 그는 그들을 위해 항상 놀랍게 행하셨다. "그들이 백성으로 조성될 때부터 내가 거기 있었노라. 내가 거기에서 그들 중에 거주했고 그들의 일을 주관했느니라[그는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셨고 그들 중에 사사(士師)들을 일으켜 세우셨으며 빈번히 그들을 위해 나타나셨다]. 따라서 내가 계속 거기 있으리라." 여태까지 자기 백성과 함께 해오신 그가 끝까지 함께하실 것이다.

Ⅱ. 이 선지자 자신은 그 크신 선지자의 모형으로써, 이 소식을 전할 그의 임무를 주장하고 있다.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처음부터 말씀하셨고 비밀히 말씀하지 않으셨던 여호와께서) 그 신에 의해 나를 보내셨느니라" (16절). 하나님의 신(성령)이 여기에서는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구별된 인격으로서, 그리고 선지자들을 보낼 거룩한 권위를 지닌 자로서 언급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자들을 그 성령이 보내신다. 하나님께서 어떤 봉사를 하도록 위임하신 자들에게 성령께서는 어느 정도 그 일을 위한 자격을 부여해 주신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성령께서 보내신 자들은 담대히 말해도 좋으며,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듣고 순종하여야 한다. 이와 똑 같은 취지로 그 선지자가 말하고 있는 것이(61:1) 그리스도께 적용되고 있으며(눅 4:21) 마찬가지로 이것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주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셨고 그는 한량없는 성령을 받으셨다.

Ⅲ. 하나님은 그 선지자를 통해, 환난 중에 있는 그들을 격려하고 안위하기 위해 은혜로운 소식을 보내고 계신다. 이 메세지의 서론은 두려우면서도 격려를 주고 있다(17절). "이처럼 여호와께서," 영원하신 하나님 "너희의 구속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는 약속하신 대로 빈번히 그들의 구속자가 되셨고, 앞으로도 그 약속에 충실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속을 수 없는 "거룩한 자" 이시며, 그들을 속이시지 않을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이시기 때문이다. 율법을 소개하고 거기에 권위를 부여하는 바로 그 말씀이 약속을 소개하고 거기에 효력을 부여하고 있다. "나는 너희와 관계를 맺고 언약을 맺은 자로서 너희가 의지할 수 있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1.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루어지게 하시려는 선한 사업이 있다. 그들의 구속자이신 그는 그 사업을 위해

(1) 그들의 교사가 되실 것이다.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는, 즉 네게 유익한 것들, 네 평안에 관계되는 것들을 가르치는 너희 하나님이라." 이것으로써, "우리를 가르치심" 으로써(히 8:10, 11)하나님은 자기 자신이 언약하신 하나님임을 나타내신다. 그는 총명을 주시며 누구도 그와 같이 가르치지 못한다. 하나님은 그가 구속하신 자를 가르치신다. 그는 환난에서 건지기로 계획하신 자들을 먼저 환난으로써 그들에게 유익하도록 가르치시고 그들로 그의 거룩함에 참예자가 되게 하신다. 그것이 "그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징계하시는" 것이다(12:16).

(2) 그들의 안내자가 되실 것이다. "그가 그들을" 길로,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신다." 그는 그들의 눈을 밝혀 주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발길을 지시하신다. 그의 은혜로써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다. 이러한 안내를 받는 자들은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2. 하나님은 그가 그들에 관한 그의 선한 소망에 의해 그들에 대해 선한 뜻을 품고 계셨던 것을 진술하고 계신다(18,19절). 그는 정말 그들을 포로가 되게 하셨으나, 그것은 그들 자신 때문이었지 그가 그들을 고의적으로 괴롭히신 것은 아니었다.

(1) 그는 그들에게 그의 율법을 주시면서 그들이 순종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셨다("그들이 항상 이 같은 마음을 품기를 원하노라," 신 5:29). "그들이 지혜가 있었으면" 신 32:29). 마찬가지로 그는 그들이 그의 율법을 어긴 것에 대해 벌하셨을 때, 그들이 복종했었기를 바라셨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들었더라면!" (18절) "내 백성이 나를 청종하기를 원하노라!" (시 81:13)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맹세하신 것, 즉 "죄인의 사망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는 것을 확증한다.

(2) 그는 만일 그들이 순종했었다면, 그것은 그들이 포로되는 것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형통함을 향상시키고 영구케 했으리라는 것을 그들에게 납득시키고 계시다. 그는 선한 것을 풍성히 갖고 계셨으며, 그들의 죄악이 "사이를 내지" 않았다면(59:1, 2) 그들에게 주셨을 것이다.

[1] 그들은 방해받지 않고 계속적으로 형통하게 되었을 것이다. "네 평강이 강과 같았으리라. 너는 연속적인 긍휼을, 항상 흐르는 강물처럼 연이어 흐르는 긍휼을 즐겼을 것이다."

Labitur, et labetur in omne volubilis oevum----즉 그것은 흐른다. 그리고 영원히 흐르리라. 그리고 범람하는 강물처럼, 곧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2] 그들의 덕과 영예, 그리고 그들의 사유의 정당함은,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그들 자신의 힘으로써 "바다 물결같이" 저항을 이겨낼 것이다. 그들의 의로움이 이러하므로 아무 것도 그 앞에 서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에 이제 그들의 불순종했기 때문에 그들의 번영은 중단되고 그들의 의로움은 압도당했다.

[3] 일어나는 세대는 매우 수효가 많고 매우 형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수효는 귀환한 포로들의 적은 수효에 의해 나타나 있듯이(스 2:64) 극소수였고, 그들이 애굽에서 나갔을 때의 한 지파만큼도 되지 않았다. 그들은 약속대로 "크게 성하여 바닷가 모래같이" 될 것인데(창 22:17), 이것에 대한 이득을 그들은 옛날에 박탈당했었다. "만일 네 의로움이 바다 물결같이 불가항력적이고 정복하기 어려웠다면,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갱이같이 무수했을 것이다."

[4] 이스라엘의 영예는 여전히 흠없고 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황폐케 되거나 외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이스라엘 땅에서 그러한 것처럼, "그 이름이 하나님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겠고" 또한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우리는 어떤 가문이나 나라의 이름이 하나님 앞에서 없어지기 전에는, 그것이 그의 성소에서 제거된 이름이 되기 전에는, 없어진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 이제 하나님은 그들이 계속 순종했다면 그가 그들을 위해 행하시려 했던 일들을, 이처럼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첫째, 그들이 이처럼 큰 긍휼을 박탈당하도록 만들었던 그들의 죄에 대해 스스로를 더 낮출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즉 죄가 우리가 즐기던 선한 것들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갔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저장해 두신 선한 것들을 방해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적하게(격분하게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들어야 한다. 자기가 얼마나 행복할 수 있었는가를 생각하는 것은 불순종한 자들의 비참함을 더욱 참을 수 없게 할 것이다.

둘째, 비록 그들이 그의 긍휼을 박탈당하고 그들 자신을 그것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게 만들었을지라도, 그들을 위해 구원을 역사하는 가운데에서 그의 긍휼이 더욱 혁혁하게 나타나도록 하기 위함이다. 긍휼의 대권만이 그들을 구원하고자 했던 것이다.

3.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이루시고자 계획하신 그 큰 사업, 곧 그들을 포로로부터 구원하시는 일이 확약되어 있다. 그때에 그는 그들에 대한 그의 역사를 성취하셨던 것이다.

(1) 그들이 바벨론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는 명령. 하나님은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고레스가 선포하기 오래 전에 선포하셨다(20절). "너희는 완전히 속박에서 해방되었다.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오라. 옥문은 열려져 있고 나팔 소리는 해방을 선포하고 있다." 아마도 이 말씀을 수단으로 하여, 여호와의 신은 고레스의 선포의 혜택을 입은 자들의 마음을 자극했을 것이다(스 1:5). "갈대아인을 피하라." 야곱이 라반에게서 도망했을 때처럼 수치스럽게 훔치듯 피하지 말고, 그들 중에 더 이상 머물기를 경멸하는 자로서 거룩한 멸시를 품고 그들을 피하라. 너희는 조용하고 슬프게 피하지 말고, 그들이 옛적에 애굽에서 도망했을 때처럼(출 15:1) 소리를 내면서, 노래 소리를 내면서 나오라.

(2) 모든 지역에 보내어진 이 소식. "그것을 선언하라. 그것을 고하라. 그것을 전파하라. 가장 멀리 있는 자, 가장 태만한 자도 그것을 듣게 하라. 입으로 말하여 그 소식을 전하라. 기록한 것으로써 성읍에서 성읍으로, 나라에서 나라로, 심지어 가장 먼 지역으로, 땅 끝까지 그것을 전하라." 이것은 온 세상에 복음이 공포되는 것에 대한 상징이다. 그리고 그것은 온 세계가 관련되어 있는 기쁜 소식을 갖고 온다. 이것만이 온 세계가 주목하기에 합당한 것이며, 그들이 그들의 우상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도록 초청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 모두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하자.

[1] 하나님께서 자기의 것으로 인정하시는 자들은 그가 귀히 인도하시고 값을 지불해 주신 자들이다. "여호와께서 그 종 야곱을 구속하셨다." 그가 옛날에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을 때 그렇게 행하셨으며, 이제 다시 그렇게 하시려 한다. 야곱은 하나님의 종이었으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를 구속하셨다. 다른 주인들이 하나님의 종들과 무슨 상관이 있었겠는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따라서 바로는 이스라엘을 가게 해야 한다. 하나님은 야곱을 구속하셨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함은 정당한 일이었다(시 116:16). 하나님께서 느슨하게 풀어놓으신 그 속박은 그들을 그에게 더 단단히 묶어놓았다. 우리를 구속하신 그가 우리에 대해 더 말할 나위 없는 권리를 갖고 계시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로 이끌고자 하신 자들을 돌보실 것이며, 그들은 그들의 노정에 필요한 비용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셨을" 때, 그들은 "목마르지 않았다" (21절). 그들이 이동할 때마다 반석의 물이 그들을 따랐던 것이다. 그는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게" 하셨다. 그리고 바위에서 나오는 물이 가장 깨끗하고 가장 좋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바위를 쪼개사 물로 솟아나게 하셨다." 그는 그의 백성을 위해, 그들이 거의 생각지 않는 방법으로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 실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을 때, 그가 그들을 위해 행하신 것을 가리킨다. 그 때 이 모든 것은 문자 그대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 그들과 그들의 소유물들이 그 필요한 것들을 매우 잘 공급받음으로써 다시 충분히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비록 그들이 그처럼 깊이 주목하지 않을지라도, 이적으로써 뿐만 아니라 놀라운 섭리로써 효과적으로 그의 일을 행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쌓여둔 은혜의 보물에 적용된다. 물이 반석에서 이스라엘에게로 흘렀던 것같이 모든 선(善)은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우리에게로 흐르는 것이다. 그 반석이 바로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3) 여전히 범죄의 길에 있는 악한 자들에 대한 경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어떤 이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하자. 비록 모양과 고백에 있어서 그들이 그 백성들중에 있었지만, 그들로 하여금 그 몫을 나누는 자가 될 것을 기대하지 않게 하자. 그 백성 전체에 관한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의 생각이었을지라도, 그들 중 "악하며" 개심하기를 싫어하는 자들에게는 "평강이 없다" (22절). 그들이 무엇을 가장할지라도, 하나님이나 자기 자신과의 평강도 없고 어떤 실질적인 유익도 없다. 하나님께 대적하는 자들이 평강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그들의 거짓된 선지자들은 평강이 속해 있지 않은 자들에게 평강을 외친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인에게 평강이나, 그와 같은 어떤 것도 없음을 고하신다. 하나님과 다투는 죄인들은, 만일 적절한 때에 회개로서 청산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불화하게 될 것이다.

 

48:17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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