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에 대한 예언 (이사야 42:1-4)
우리는 이 구절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복음서 저자들은 그에게서 이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특별히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마 12:17-21). 믿음의 눈으로 "보라."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을" 보고 관찰하며 보고 숭앙하라. 구약의 성도들은 그를 보고 대하라. 신약의 성도들은 그를 보고 기억하라. 그러면 우리는 그에 관하여 무엇을 보고 생각해야 하는가?
Ⅰ. 메시야에 대한 아버지의 관심과 그 관계, 그에 대한 신뢰와 만족감. 이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영예롭게 했고 그를 뛰어나게 만들었다(1절).
1. 하나님은 그를 자기를 위해 고용한 자로 여기신다. 그는 나의 종이다. 그는 비록 아드님이시긴 했지만, 중보자로서 "종의 형체를 가지셨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을 배우셨으며 그것을 실천하셨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유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그 자신을 내어 놓으시는 하나님의 종이 되셨다.2. 하나님은 그를 자기가 택하신 자로서 여기신다. 그는 "나의 택한 사람" 이다. 그는 스스로 봉사에 끼어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것에 가장 합당한 자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즉 무한하신 지혜가 그렇게 택하셨고 그리고서 승인하셨던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그를 신임하는 자로 인정하신다. 그는 "내가 의지하는(흑자는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나의 종" 이다. 그 아버지께서는 그가 그의 사업을 성취하리라는 신뢰로써 많은 아들들을 영화롭게 하셨다. 그 아버지께서 그 아들에게 부여한 것은 큰 신뢰였으며, 그는 그 아들이 par negotio----즉 그것과 필적된다는 것을, 능력이 있고 충실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4. 하나님께서 그를 자기가 돌보신 자로 인정하신다. 그는 "내가 붙드는 나의 종" 이다(우리는 그것을 그렇게 해석한다). 그 아버지께서 이 과업 속에서 그를 부축하시고 지원하신다. 그리고 이 두가지 일은 모두 하나님께서 그를 붙드시는 일 속에 포함되었다. 하나님은 그의 곁에 서 계셨고 그를 힘있게 하셨다.
5. 하나님께서는 그를 자기가 만족히 여기는 자로 인정하신다.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 그의 기쁨은 영원부터 그에게 있었다. 그때 그가 "그 곁에 있어서 양육받은 아이가 되었던" 것이다(잠 8:30).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을 특별히 만족하게 여기셨다. 또한 그를 기뻐하신다(마 3:17; 17:5)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가 양을 위해 그의 생명을 내놓았으므로 그를 사랑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를 기뻐하도록, 그를 의지하고 그를 즐거워하도록 하자. 그리하여 그에게 연합하자. 그러면 그로 인해, 그 아버지께서 우리를 매우 기뻐하실 것이다.
Ⅱ. 그의 직책을 위한 자격의 부여.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어" 그가 그의 일을 수행할 수 있게 하셨다(61:1). 성령이 그에게 임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거했고(11:2) 그것은 하나님의 다른 종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조금씩이 아니라 한량없이 그에게 부어졌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으로 사용하시는 자들을 붙드실 것이며 기뻐하실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에게 그의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이다.
Ⅲ. 그에게 주어진 일. 그것은 "이방에 공의를 베푸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맺게 될 약정과 그들이 누리게 될 축복 아래, 신앙이 이 세상의 무한한 지혜와 거룩함과 공의로 세워지는 것이다. 여호와의 규례가 이방인들에게는 감추어져 왔었으나(시 147:20) 그가 오시어 그것을 전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을 밝히시는 빛이 되셨기" 때문이다.
Ⅳ. 그가 이 과업을 수행하시는데 있어서 온화함과 자상함(2,3절). 그는 그것을 이렇게 수행하실 것이다.
1. 조용하게, 그리고 소란스럽지 않게.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소리치지도 아니하리라" (마 12:19).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보라, 그가 저기 있다" 고 공포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 것은 큰 방백이 순찰을 하거나 공적으로 입장할 때와는 다를 것이다. 그 앞에서 나팔을 불거나 수행자들이 분요하게 그를 따르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는 그가 받는 저항을 물리치기 위해 싸우시지 않고, 참을성 있게 죄인들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셨느니라. 그의 나라는 영적인 것이다. 따라서 그 무기는 세상적인 것이 아니며 그 출현은 화려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관찰될 수 있게 오는 것이 아닌 것이다.2. 부드럽게, 그리고 가혹하지 않게. 그는 악한자들에 대하여 참으실 것이다. 그는 그들이 상한 갈대처럼 되도록, 멸하기 시작하실 때, 그들에게 회개할 여유를 주시고 즉시 꺾으시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코의 연기처럼 매우 불쾌한 존재일지라도(65:5), 그는 예루살렘에게 참으셨던 것처럼 그들을 참으실 것이다.
그는 또한 연약한 자들에게는 온유하실 것이다. 보잘 것없는 생명과 보잘 것없는 열의를 갖고 있는 자들, 갈대처럼 연약하고 "상한 갈대" 처럼 의심과 두려움에 눌린 자들, "꺼져가는 등불" 같고 갓 켜진 등불의 심지처럼 다시 꺼질 듯한 자들, 그는 이러한 자들을 멸시치 않을 것이며 그의 큰 능력으로 싸우지도 않으실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일이나 고난을, 즉 그들을 꺾어버리고 눌러버릴 정도의 일이나 고난을 그들에게 부과하지 않으실 것이며 그들의 심경을 은혜롭게 참작하실 것이다.
표현되어 있는 것 이상의 내용이 여기에 내포되어 있다. 즉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그것을 강하게 하시어, 그것이 우리 하나님 전에 있는 백향목같이 되게 하실 것이다. 그는 "껴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그것이 잘 타게 도와 주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은혜를 갖고 있는 자들에게---- 비록 그들이 그 속에서 연약할지라도---- 매우 자상하시며, 자발적인 심령을 받아들이시며 육신의 연약함을 용서하시고 간과하시는 것이다.
Ⅴ. 그가 마침내 그의 목적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이 일을 하는데 지니게 될 용기와 정조(4절).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리라." 비록 그가 힘든 일과 많은 반대에 부딪히며 세상이 얼마나 배은망덕하게 될 것인가를 예견할지라도, 그는 그의 역할을 잘 수행하여 마침내는 "다 이루었다" 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의 사도들과 사역자들 또한 그들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그리고 쇠하거나 낙담하지 않게 하실 것이고 마침내는 그들도 그들의 증거를 필하게 하실 것이다. 이처럼 그는 착수한 일을 필역하시는 것이다.
1. 그는 "진리로 공의를 베푸신다." 이적의 긴 과정과 마침내 이루어질 그의 부활에 의해, 그는 그가 세우기 위해 오신 그 교리의 진리와 그 거룩한 종교의 기원과 권위를 충분히 나타내실 것이다.2. 그는 "세상에 공의를 세우신다." 그는 세상에 그의 나라를, 사람들 가운데 그 자신을 위한 교회를 세우시며 세상을 개혁하신다. 그리고 그의 복음의 능력과 은혜로 사람의 마음속에 그들을 지혜롭고 의롭게 만드는 그러한 원리를 확립해 놓으신다.
3. 이방인의 "섬들이 그 교훈을," 그의 복음을 "앙망한다." 즉 마치 그것이 그들이 오랫 동안 기다려왔던 것인 것처럼 그것을 환영한다. 그들은 그의 제자가 될 것이며 그의 발 앞에 앉아 그의 입에서 나오는 교훈을 받아들이고자 할 것이다. "우리가 행할 것이 무엇이 오니이까?"
메시야의 직권 (이사야 42:5-12)
Ⅰ. 하나님께서 메시야의 맺으신 언약과 그에게 내리신 명령(5-7절). 이것은 곧 "내가 붙드는 나의 종" (1절)에 대한 해설이다.
1.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여기에서 그 자신을 알리심. 그리고 모든 사칭자들로부터 그 자신을 구별하신 그 위품있는 칭호는 그의 영광을 매우 크게 나타내고 있다(5절).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도다." 그러면 여호와여, 당신은 뉘시오니이까? 그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며 따라서 모든 힘의 근원이시다.(1) 그는 윗 세상에서 존재의 근원이시다. 왜냐하면 "그가 하늘을 창조하며 펴셨으며" (40:22) 항상 그 광대한 면적을 편편하게 펼치고 계시기 때문이다.
(2) 아랫 세상에서도 존재의 근원이시다. 왜냐하면 그가 "땅을 베푸시고" 그것을 큼지막한 거처로 만드셨으며, "그 소산" 이 그의 능력에 의해 산출되기 때문이다.
(3) 인간 세상에서도 그러하시다. "그가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신다." 즉 호흡할 공기뿐만 아니라 생명의 호흡 자체와 호흡하는 기관도 주신다. 그 외에도 그는 거기에 행하는 자에게 그의 "신" 을,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과 기능을 주신다.
이제 이것은 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과 그에게 주어진 명령 앞에 붙여져 있다. 그런데 그것은 그가 그러한 언약을 만들고 그러한 명령을 내릴 권한을 갖고 계시며 그로 하여금 그것을 감당해 내도록 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그 구속사업의 의도는 창조주의 영광을 보존하고 그가 그의 조물주로서의 하나님께 바쳐야 할 충성을 사람들에게 회복시키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2. 메시야가 그의 과업을 수행할 때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리라는 확언은 그를 크게 격려해 주고 있다(6절).(1) 하나님께서는 메시야가 중보자로서의 존귀를 스스로 취하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칭함받았다는 것을, 즉 그는 침입자나 찬탈자가 아니라 정당하게 그 일을 맡게 된 자였다는(히 5:4)사실을 시인하고 계신다. "내가 의로 너를 불렀도다." 그가 이 힘든 봉사에 스스로 자원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이 일에 부르신 것은 잘못됨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존귀를 지키시고 그가 말씀하신 것을 이루심에 있어서 스스로 옳게 행하셨다.
(2) 하나님께서는 그의 곁에 서시어 그를 힘있게 하실 것을, 그가 그 일을 지속시켜 나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그의 손을 잡아 주실 것을, 그리고 그것이 흔들리거나 실패로 돌아가지 않도록 그의 손을 잡으시고 그를 지켜 주실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 사자(使者)가 하늘로부터 나타나 번민 중에 있는 그를 힘있게 하고 그 아버지께서 친히 그와 함께 계셨을 때, 그때에 이 약속이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가 부르시는 자들을 시인하고 도우신 것이며, 그들의 손을 잡으실 것이다.
3. 이 명령의 훌륭한 취지들은 사람의 자손들에게 풍성한 위안을 안겨 주고 있다. 그는 "백성의 언약," 중보자가 되셨고 또는 은혜의 언약의 보증인이 되셨다. 이러한 것이 모두 그의 안에서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시는 가운데 그와 함께 새 언약의 모든 축복을 우리에게 후히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복음으로 그와 함께 이방 세계에 가져오신 두 가지 영광스러운 축복은 빛과 자유이다.(1) 그는 "이방의 빛" 이 되시어 그들이 알아야 하나 다른 방법으로는 알 수 없었던 것을 그들에게 제시하실 뿐 아니라 그것을 알 수 있도록 소경의 눈을 밝히신다. 말씀 속에 있는 그의 성령으로 음성을 예비하신다. 복음이 들어왔을 때, 흑암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큰 붙이이 비추었다(마 4:16; 3:19).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보내어져 "그 눈을 뜨게 했다" (행 26:18).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시다.
(2) 그는 고레스처럼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기 위해, "갖힌 자를 이끌어 내게" 하기 위해 보내어진다. 즉 고레스가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감옥 문을 열고 그들로 거기에서 나오도록 해 주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을 이끌어 내고 그들로 하여금 그 자유를 이용할 마음을 유발하고 또 그 능력을 부여하기 위해서(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심령을 충동하지 않은 자는 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그가 보내어진다. 이것을 그리스도는 그의 은혜로써 행하시는 것이다.
Ⅱ. 이러한 베푸심에 대한 비분과 확증. 효력을 확신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그 약속을 하신 자의 권위(8절).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이것은 또한 그가 그 족장들에게 하신 약속을 이행하기 시작하셨을 때, 그 자신을 알리셨던 그 이름이었다. 한편, 이전에 그는 전능의 하나님의 이름으로써 그 자신을 나타내셨다(출 6:3). 만일 그가 만물에게 존재와 출생을 부여하신 여호와이시라면, 그는 이 약속에도 존재와 출생을 부여하실 것이다. 그의 이름이 "여호와" (그것은 그가 홀로 하나님이심을 말해 준다)이시라면, 우리는 그의 이름이 "질투" 의 신이시며 그는 누가 그와 겨루든지 간에, "그의 영광을 다른 자에게" 특히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는 메시야를 보내시어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벙어리 우상에게서 떠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되도록 하실 것이다. 비록 무지한 시대에는 오랫 동안 눈감아 주셨을 지라도, 이제는 그의 대권을 주장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을 우상에게 주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그의 말씀에 대해 진실하다는 영예를 잃지 않기 위해, 뿐만 아니라 거짓 신들을 경배하는 자들이 그를 잘못되이 비난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그의 말씀을 이행하실 것이다. 그는 그의 백성들을 우상 숭배자들의 권세에서 건지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의 숭배자들을 우상 숭배자들이 되도록 내버려 두었을 때, 그것은 마치 그 우상들에게 그의 찬송을 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2. 그가 이전에 그의 교회에 관해 하신 약속의 성취. 그것은 그의 말씀의 진리에 대한, 그리고 그가 그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친절에 대한 증거이다(9절).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여태까지 여호와는 그의 교회를 도우셨고 전에 고통 아래 있는 교회를 부축하셨으며 전에 역경 속에 있는 것을 구제하셨다. 그리고 그 조상들에 대한 약속들을 이행하는 가운데 이렇게 행하셨다. 그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왕상 8:56).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이제 내가 새 약속들을 만들겠으며, 그것은 옛 약속들처럼 합당한 때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이제 내가 이전에는 주지 않았던 새 은총을 하사하리라. 너희는 구약의 축복을 풍성히 누려왔다. 이제 내가 신약의 축복들을, 즉 비옥한 나라와 너의 이웃들에 대한 통치권이 아니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선포하리라. 그 일이 복음의 전파로 시작되기 전이라도 이전 일에 대한 모형과 상징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라."
이전에 긍휼을 받은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의 긍휼을 바라도록 격려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꾸준히 그의 백성을 보살피시며 그의 긍휼은 항상 새로운 것이다.
Ⅲ. 이를 기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바쳐져야 할 기쁨과 찬미의 노래(10절). "여호와께 새 노래로," 신약의 노래로 "노래하라." "방의 빛" 으로 그리스도를 주신 것은(6절) 새롭고도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이 후사가 되리라" 는 사실을 다른 세대에서는 지금 계시된 것과 같이 알려지지 않았던, 하나의 비밀로서 언급하고 있다(엡 3:5, 6).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는 새 일이기 때문에 이 때를 맞이하여 새 노래가 불러져야 한다. 따라서 이전에는 여호와의 노래가 예루살렘 성전에 매우 국한되어 있었으나(다윗의 시편은 유대인의 방언으로만 되어 있었고, 그들에 의해 그리고 그들의 나라에서만 불리워졌었다. 그들은 타국에 있었을 때, 우리가 시편 137편 2-4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이 버드나무에 그럼으로써 들의 수금을 걸어놓았고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 수 없었던 때문이다), 이제는 거룩한 기쁨과 찬미의 노래가 온 세상에서 불리워질 것이다. 이방 민족들은 유대인과 동등하게 구약의 축복을 나눌 것이므로 신약의 찬미와 예배 행위에 참가하게 될 것이다. 이방인의 개종은 로마서 15장 9-11절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이러한 관념 아래 자주 예언되어졌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찬송이 기쁨과 감사로 노래되리라는 사실이 여기에 약속되어 있다.
1. "땅 끝에," 예루살렘에서 가장 먼 곳에 사는 자들에 의해 찬송되어질 것이다. "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렸도다" (24:16). 이것은 기독교가 우리 땅에 심어졌을 때 이루어졌다.2. 선원과 상인, 그리고 "항해하는 자," 즉 큰 바다에서 일하고 바다의 재물을 얻으며 그렇게 하여 자기 자신을 거기에 충만한 모든 것들의 주인으로 만드는 자들에 의해 찬송되어질것이다. 그것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그의 것이므로(시 24:1; 95:5) 그를 찬송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대인들은 바다에서 거의 장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찬송이 항해하는 자에 의해 노래되어진다면 그것은 이방인에 의한 것임이 틀림없다. 큰 물에서 영업하는 자는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요청받고 있다(시 107:23).
3. "바다 가운데 섬들과 그 거민들" 에 의해 노래되어질 것이다(10,12절). 그들로 하여금 "섬에서," 이방인의 섬에서 "여호와께 찬송하게" 하자. 아마도 이것은 그리스 섬을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4. "광야와 거기 있는 성읍들과 게달의 촌락들" 에 의해 찬송되어질 것이다. 섬들은 예루살렘 서쪽에 있으나 이것들은 그 동쪽에 있다. 그러므로 복음 노래가 해뜨는 곳에서부터 지는 곳까지 불리워질 것이다. 모든 이방 세계는 하나님의 교회와의 교제에서 끊어진 섬과 같았고 하나님께 그 소산을 드리지 못하는 개간되지 않은 광야와 같았었다. 그러나 이제 섬들과 광야가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5. "셀라의 거민들" 과 산꼭대기에 거하는 자들, 즉 이방인들 뿐만 아니라 가장 불쌍하고 천하고 보잘 것 없는 자들에 의해, 초막에 거하는 자들 뿐만 아니라 성읍이나 촌락에 거하는 자들에 의해 찬송될 것이다. 산지 사람처럼 거칠고 가장 야만스러운 자들고 복음에 의해 교화될 것이다.
또는 산의 거민들은 Petrea----즉 바위 같은 자라 칭해지는 아라비아 지역의 거민들을 의미하는 것을 수도 있다. 아마도 이웃 나라들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의 기쁨을 나누었을 것이며 그들 중 일부가 와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찬미에 연합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이 유명한 예언을 완전히 이룰 정도의 것이었다는 점은 발견할 수 없으므로 그것이 더 큰 것까지를 의미한다고 결론지어야 한다. 그리고 열국의 기쁨에 대한 많은 다른 예언들이 신약에서, 즉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개종하는 일에서 이루어졌을 때 그것이 응답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들이 교회로 들어올 때 그들은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그에게 이름과 칭예가 되며, 그들은 그를 찬송하는 것을 그들의 과업으로 삼을 것이다. 여호와는 그들 속에서 그리고 그들에 의해 영화롭게 되실 것이다.
심판과 긍휼 (이사야 42:13-17)
우리가 이 구절들을(흑자처럼) 이방 세계에 의해 불리워져야 할 노래 자체로 보든지, 또는 그 노래, 그 복음적인 새 노래가 불리워지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에 대한 예언으로 보든지, 그것은 모두 마찬가지다.
Ⅰ. 그는 어느 때 보다도 더욱 그의 능력과 영광 가운데 나타나실 것이다. 그는 그의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서, 그것에 수반되는 거룩한 능력과 세력 속에서, 그리고 "음부가 그 입을 벌릴 때" (5:13, 14)그것을 놀랍게 이기는 일 속에서 그렇게 하셨던 것이다. "이방 세계가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이 아니하시고" (행 17:30) "오랫동안 고요히 하며 잠잠하여 참았고,"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느니라" (행 14:16). 그러나 이제 "그가 용사같이, 전사같이 나가시어" 마귀의 나라를 공격하시고 거기에 치명타를 가하실 것이다. 복음의 전파가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계 6:2). 그리스도는 그 속에서 승리를 공포하시고 승리하신다. 사도들의 사역은 "전사" 라 일컬어진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병사였다. "그가 분발하시고"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우상 숭배에 대적하여 나타나실 것이다.
1. 그가 그의 말씀을 전파하시면서 "외치시고," "해산하는 여인같이 부르짖으리라."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열심있는 자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사람들의 영혼 속에 이루어지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하는 자로서(갈 4:19) 전도했던 것이다. "그가" 복음의 재앙을 "외쳐 크게 부르시리로다." 그것은 사자의 부르짖음보다 더욱 무서운 것으로서 잠들어 있는 세상을 깨우기 위해 복음의 축복과 함께 전파되어야 한다.2. 그가 그의 성령의 능력으로써 정복하실 것이다. "그가 그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 그리고 그들을 친구로 만드실 것이다(골 1:20). 그의 복음을 반박하고 모독했던 자들을 잠잠케 만드시고 수치스럽게 하실 것이다. 그는 흑암 권세의 모든 대항을 단번에 멸하시고 삼킨 것이다. 사단은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질 것이며 사망의 권세를 지닌 자는 멸망될 것이다. 이것에 대한 모형과 상징으로서 바벨론으로부터의 유대인의 구속을 위해, 하나님은 그들의 압제자들 가운데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그 능력을 꺾으실 것이며, 바벨론 왕조를 "단번에 멸하시고 없애실 것이다." 고레스의 지휘 아래 바샤 군대가 바벨론을 멸망시키는 일에서 "그가 큰 산과 작은 산을 황무케 하며, 그 나라를 뒤엎고 그 초목을 마르게 할 것이다." 그 군대는 여느 때처럼, 풀을 베어가거나 없애버릴 것이며, 배들로 강에 다리를 놓음으로써 그것을 섬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군대가 행진할 길을 만들기 위해 늪과 수렁의 물을 말렸기 때문에 못도 마를 것이다. 이처럼 복음이 전파될 때 그것은 자유롭게 흘러갈 것이며, 그 진로를 방해하는 것은 제거될 것이다.
Ⅱ. 그는 그 마음을 감동시켜(스 1:5 과 같이)그를 따르도록 만든자들에게 그의 은총과 은혜를 나타내실 것이다. 시온으로 가는 길을 묻는 자들에게 그 길을 보이시고 그리로 인도하실 것이다(16절). 본래 소경이었던 자들과 죄와 진노를 깨닫고 매우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자들을 하나님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 것이며,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을 행복의 길을 보여 주실것이다. 그러면 길이신 그리스도는 그들을 전에는 그들에게 생소했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이처럼 바울은 개종할 당시, 먼저 그 눈이 멀었고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아들을 계시하셨으며 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게 하셨다.
그들은 지식에 약하며 하나님의 진리는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흑암으로 그 앞에 광명이 되게 하며", 지식이 그들에게 십게 여겨질 것이다. 그들은 또한 의무에 약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기 어려운 듯이 보이며, 이겨내기 어려운 난관이 그들의 순종을 방해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굽은데를 곧게 하실" 것이다. 그들의 길은 평탄해지고 그 멍에는 헐거워질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기 어려운 듯이 보이며, 이겨내기 어려운 난관이 그들의 순종을 방해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굽은데를 곧게 하실" 것이다. 그들의 길은 평탄해지고 그 멍에는 헐거워질 것이다. 하나님은 그가 올바른 길로 이끄신 자들을 계속 인도하실 것이다. 이것에 대한 모험으로써, 그는 유대인들이 사로혔다가 돌아올 때 그들의 땅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놓으시고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며, 그들의 노정에서는 그들을 혼란케 하거나 당황스럽게 만드는 일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위대한 일이며 친절한 일이다. 매우 크고 매우 친절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크고 너무 친절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처럼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백성들이, 이방 세계처럼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세상이 하나님께로부터 그것을 받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라고 그 누구도 말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는 "내가 이 일을 행하며 그것에 대한 내 말을 지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고 덧붙여 말씀하시고 있다. 그들에게 이 큰 긍휼을 베풀기 시작하신 그는 계속 선을 행하실 것이다.
Ⅲ. 그가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우상으로부터 돌아오도록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신봉하는 자들을 그는 특히 부끄럽게 하실 것이다. "조각한 우상을 의뢰하는 자를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 (17절). 바벨론 사람들이 그들의 신상을 멸시한 유대인들이 신상없이 숭배하는 하나님에 의해 어떻게 은혜를 입고 건지워졌는가를 볼 때, 그리고 이방인들이 어떻게 우상 숭배가 복음의 선포앞에서 쓰러지는가를 햇빛 앞의 어두움처럼 없애어지고 열 앞의 눈처럼 녹는가를 볼 때, 그들은 그렇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부어만든 우상에게 "너희는 우리 신이라" 고 말한 것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도 도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경멸당하지 않게 할 수도 없는 우상이 어떻게 그 숭배자들을 돕겠는가? 개혁의 시기에, 즉 많은 사람들이 죄악에서 돌아서고, 죄는 일반적으로 버려져서 시대에 뒤진 것이 될 때, 교화되려 하지 않는 자들도 그것으로 인해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에 감화를 받게 될 것이다.
유대인의 무지함 (이사야 42:18-25)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위안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유대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방식으로 말한 후, 여기에서는 유대인들 중 믿지않는 자들에게로 향하여 그들로 하여금 죄와 굴욕을 깨닫도록 하고 있다.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던 자들 중에는 예레미야의 이상 중에 보인 재앙의 무화과나무와 같았던 자들이 일부 있었다. 예레미야는 그들을 "세상 모든 나라 중에 없애어서 그들로 환난을 당케 하고 치욕을 당하게 하며 말거리가 되게 하기" 위해 그곳에 보내어졌던 것이다(렘 24:9). 그들 속에는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그에 의해 거부당한, 그리고서 믿는 자들이 그 축복을 유업으로 받았을 때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큰 저주 아래 놓이게 된 그 유대인들의 모형이 있었다. 즉 그들을 꺾여졌고 파멸했으며 오늘날까지 흩어진 채로 있는 것이다.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Ⅰ. 이 백성들에 대한 외침(18절).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그 기쁜 소리에 주의를 집중하라. 너희 소경들아, 그 즐거운 빛을 밝히 보라." 이 명령에는 모순된 것이 없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우리 자신은 충분히 행할 수 없는 선을 행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에 합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선에 대한 도덕적인 무기력 하에서도 힘을 다하는 자들은 그들이 행하는 것 보다 더 잘 행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는 자연력을 갖고 있으며, 만일 그들 자신의 과오가 없다면 그들은 초자연적인 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귀머거리는 듣고 소경들은 보라는 이 요청은 손이 마른 자에게 그것을 펴라고 한 명령과 같다. 비록 그는 손이 말랐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는 없었을지라도, 그가 그렇게 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면 고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고쳐진 것은 그의 행위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 때문인 것이었다.
Ⅱ. 그들의 특성에 대한 묘사(19,20절).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유대 백성들은 공언된 하나님의 종이었고, 그들의 제사장과 장로들은 그의 사자였다(말 2:7), 그러나 그들은 귀먹고 눈이 멀었다. 앞에 있는 구절들은 이방 우상숭배자들에게 한 말로 해석될 수 있다. 그는 그들을 "귀머거리" 와 "소경" 이라 부르시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러한 신들을 숭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백성이 너희같이 악할 때,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너희같이 우상 숭배를 행할 때, 너희가 귀먹고 눈머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라고 그는 말씀하신다.
1. 그는 소경인 그들의 어리석음을, 그리고 귀머거리인 그들의 완고함을 원망하고 있다. 그들은 이방인들보다 더욱 악했다. Corruptio optimi est pessima----즉 최선의 것이 타락하면 최악의 것이 된다. "누가 나의 종이나 나의 사자같이, 나의 종 야곱같이(41:8), 그리고 나의 사자인 그 선지자와 선생들같이 고집세고 악랄하게 눈멀고 귀먹었겠느냐? 고백으로나 스스로 생각으로는 완전한자, 즉 다른 백성보다 더 완전에 가까와야 할 그 제사장과 선지자들 만큼 눈먼 자가 누구이겠느냐? 한 사람이 거짓되게 예언하면 다른 한 사람이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지탱해 나간다. 얼굴에 빛이 비치는 데도 그것을 보려하지 않는 자처럼 눈먼 자가 누구이겠느냐?(1) 하나님의 종과 사자임을 고백한 백성들이 영적인 일에 눈멀고 귀먹는 것, 즉 무지하고 그릇되며 매우 게으른 것은 흔히 있는 일이나 매우 슬픈 일이다.
(2) 영적인 일에 눈멀고 귀먹는 것은, 스스로가 하나님의 종과 사자임을 고백하는 자들의 경우가 다른 사람의 경우보다 더욱 나쁘다.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더 큰 죄악과 수치이며 하나님께 대한 더 큰 모욕인 동시에 그들 자신에 대한 더 큰 저주인 것이다.
2. 선지자는 유대 민족의 무지와 완악함을 계속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구주께서 그의 시대에 묘사하신 것과 똑 같다(마 13:14, 15).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치 아니하는도다" (20절). 많은 사람들은 볼 수밖에 없는 것을 유의치 않기 때문에 파멸한다. 그들은 무지로 인해서가 아니라 부주의로 인해 멸망한다. 우리구주 시대에 유대인들은 그의 거룩한 사명에 대한 많은 증거를 보았으나 그것에 유의치 않았다. 그들은 그에게 귀를 열어놓고 있는듯이 보였으나 듣지 않았다. 즉 그들은 유의하지 않았고 이해하거나 믿거나 순종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것은 모두 그들이 듣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Ⅲ.font> 하나님은 그들이 눈멀고 귀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모든 이름 위에 높이신 그의 이름이 존귀함을, 특히 그의 말씀의 존귀함을 돌보실 것이다.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고 완악하였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폐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롬 3:3, 4). 비록 그들이 눈멀고 귀먹을지라도 하나님은 그의 영광을 잃지 않을 것이다(21절). "여호와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기뻐하시느니라." 그들의 죄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는 것으로, 그 큰 구원을 거부한 그들을 거부하시는 것으로 기뻐하신다. 그는 매우 기뻐하는 자로서 말씀하신다. "내가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리라." 그리고 "내 마음이 시원하리라" (겔 5:13). 그 성경은 이방인들을 불러들이는 일에서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버림받는 일에서도 실행되어졌으며, 그 속에서 여호와는 매우 기뻐하실 것이다. "그가 그 교훈(그 모든 부분에 있는 거룩한 계시)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시리다." 율법은 진실로 존귀하며 그것에 관한 것들은 위대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거기에 순종함으로써 그것을 존귀케 하지 않으려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불순종을 벌하심으로써 친히 그것을 존귀케 하실 것이다. 그가 율법에 기록된 것을 성취함으로써 율법을 존귀케 하실 것이며 그 권위와 그 효력을 존귀케 하실 것이다. 그는 결국 모든 사람들이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게 될 때 그렇게 하실 것이다(약 2:12). 그는 그것을 날마다 행하시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행하시는 것이 율법을 높이고 그것을 존귀케 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Ⅳ.font>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에게 그들의 고위적으로 눈멀고 귀먹은데 대해 내리실 재앙(22절). "그들은 도적맞으며 탈취를 당하도다." 바벨론에서 회개하지 않고 개심하지 않은 자들은 영원한 포로형을 선고받았다. 그들이 그들의 땅에서 뿐만 아니라 그 대적의 땅에서 노략당한 것은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굴속에 잡히고" 일부는 "옥에 갇혔도다." 그들은 잡혀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도울 숫없다. 또한 그들의 친구는 그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도울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의 대적들은 그 감옥에 있는 그들을 잊어버렸다. 그들과 그들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은 희생되고 노략당한다. 그리고 완력이나 배상금에 의해 그들을 건져 줄 자가 아무도 없으며 교만한 압제자들에게 "도로 주라" 고 감히 말하는 자가 없다. 그러한 곳에 그들이 누워있다. 그리고 거기에 그들이 계속 누워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유대 민족이 로마 사람들에 의해 최종적으로 멸망당했을 때 충분히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한 것에 대해 그것으로 벌하셨던 것이다.
Ⅴ.font> 그들의 구원을 위해 주어진 권고. 그들의 사정이 슬프긴 했지만 절망적인 것은 아니었다.
1. 그들의 대부분은 귀머거리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막대기로 시험해 보실 것이며 "그들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일지" 를 알아 보신다(23절). 우리는 오랫동안 변론했으나 소용이 없었던 자들에 관해 실망해서는 안 된다. 그들 중 일부는 마침내 귀를 기울여 들을 것이다. 만일 어떤 방법이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다른 방법으로 거둘 수도 있다. 그리고 죄인들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보자.(1) 우리 모두는 들으려고만 한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듣도록 부름받고 인도되고 있다.
(2)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감지하며 즐겨 그것을 들으려 하는 자들이 누구인가를 알아보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다.
(3)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나 그것을 청종하거나 유의하는, 부지런히 주의를 기울여 그것을 듣는 자들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4) 말씀을 듣는 가운데 우리는 장차 올 때를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장차를 위해, 우리와 음부 사이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것을 위해 들어야 한다. 또한 특별히 영원을 위해 들어야 한다. 우리는 저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 말씀을 들어야 한다.
2. 그 권고는 다음과 같다.
(1) 그들의 환난 속에 하나님의 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며, 누가 그 도구이든 그러한 자를 주된 행위자로 주목하라는 것이다(24절). "야곱과 이스라엘로, 천국에 그러한 이권과 땅에 그러한 주권을 소유하던 그 백성으로, 그들이 지금 바벨론 사람과 로마 사람에게 그러한 것처럼 탈취를 당케하고, 도적에게 붙이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너희는 그가 행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때에 그것을 생각하라. 그리고 이 심판 속에서 그의 음성을 들으라.
(2) 그들이 하나님을 격동시켜, 이처럼 그들을 버리시고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1] 이 형벌은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처음으로 그들에게 가해졌다.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그 선지자는 자기 자신을(단 9:7, 8 에서처럼) 죄인들의 무리에 집어넣고 있다.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 우리 모두가 연료를 불로 가져갔나이다. 그리고 우리 중에는 주의 길로 행하기를 고의적으로 거절한 자들이 있나이다." 야곱과 이스라엘이 만일 그들의 죄악으로써 그들 자신을 팔지 않았다면, 결코 도적들에게 넘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의 저주를 내리신 것은 그들이 율법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그는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으로," 전쟁으로 인한 모든 항폐함으로 이스라엘에게 조금씩 떨어뜨리시지 않고 많이 "베푸시매, 그 사방으로 불붙듯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의인에게 그의 은총으로 두르시는 것 같이, 악인에게 그의 심판으로 두르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노의 능력을 보라. 그것을 거역하거나 피할 길은 없다. 죄가 만드는 재앙을 보라. 그것은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켜 백성을 치게 하며, 전반적인 대재앙에 불을 당기시어 모두 불붙게 한다.
[2] 이 심판은 그들이 하나님의 막대기를 깨닫지 못하고 그 아래에서 바로 고쳐지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 계속 임했다.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이스라엘에 붙여졌으나 그는 "깨닫지 못하며" 알지 못하며, 그 심판을, 적어도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손을 유의치 않았다. 뿐만 아니라 "몸이 타나," 그리고 그때에 그가 그것을 알고 그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나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맹렬한 책망에도 자각하지 못하고 그것에 의해 전혀 감동하지도 못한다. 보다 작은 심판에 의해 겸손케 되지 않는 자들은 보다 큰 심판을 예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판단하실 때에 이기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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