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3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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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헤립의 침입 (이사야 36:1-10)

우리는 여기에서 단지 몇 가지 실질적인 교훈만을 살펴 보기로 하겠다.

1. 백성들이 그들의 의무를 행할지라도 환난과 고통을 당하게 되는 수가 있다. 히스기야는 개혁하고 있었고 그의 백성은 어느 정도 개혁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나라는 그러한 때에도 침입당했고 크게 황폐케 되었다. 아마도 그들은 개혁 사업에 점차 나태해지고 냉각되기 시작했을 것이며 그것을 반만 행하고서는 완전히 수행하지 않은채 주저 앉으려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심판으로 그들을 징계하시어, 그들에게 용기와, 그 훌륭한 명분을 불어 넣으셨던 것이다. 우리가 잘 행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잘 행하고 우리의 최선을 다하도록 만들기 위해, 그리고 완전으로 향하도록 만들기 위해 고통을 보내신다 해도 이상히 여겨서는 안 된다.

2. 우리는 결코 이 세상에서 우리의 평안이 계속 유지되리라고 안심해서는 안 되며, 우리의 산은 매우 견고히 서 있으므로 요동할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히스기야는 나라 안의 일을 다스리고 대외적인 협약을 향해 있어서 경건할 뿐만 아니라 신중한 왕이었다. 그의 정무는 좋은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특히 앗수르왕과도 좋은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앗수르 왕은 근래에 풍부한 예물을 보내어 그와 화친했기 때문이다(왕하 18:14). 그러나 그 배신적 왕은 갑자기 그 나라에 군대를 몰고와서 황무케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환난에 대한 각오를 하고 있어서 그것이 올 때 놀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그 두려움은 보다 덜해질 것이다.

3. 하나님은 때로 그의 백성의 대적들이, 심지어는 매우 불경건하고 패역한 자들이라도 그 백성들을 쳐서 이기도록 허용하신다. 앗수르 왕은 유다의 요새화된 모든 성읍들을 또는 그 대부분을 빼앗았다. 그후에 그 나라는 물론 그에게 쉽게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악이 잠시 흥할지 모르나 항상 흥할 수는 없는 것이다.

4. 교만한 자들은 허풍을 떨기를 좋아한다. 그들 자신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것과 행한 것에 대해, 뿐만 아니라 그들이 행하려는 것에 대해서까지도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모욕하고 온 인류에 도전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모든 지혜로운 자들 앞에 그들 자신을 우수꽝스러운 존재로 만들며, 교만한 자를 대항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에 혐오스러운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그들 자신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만들려 하고(그것은 그들 자신을 증오의 대상으로 만들뿐이지만), 또한 허탄한 "자랑하는 말" 로써 (유 16) 그들의 뜻을 달성하려 한다.

5. 하나님 백성의 대적들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신뢰를 의심케 함으로써 그들을 정복하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랍사게도 여기에서 그 주인에게 대항할, 아니면 적어도 그에게 도전할 능력이 완전히 없어진 히스기야를 소란스럽게 야유하면서 비방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영혼의 원수들에 대항하여 우리의 땅을 굳게 지키기 위해 하나님 앞에 있는 우리의 소망을 지키고 우리의 영을 지키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6. 하나님 예배를 저버린 자들이 하나님의 보호를 박탈당한다는 사실을 내던졌다는 랍사게의 주장이 사실이었다면, 그는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도움과 구조를 확실히 의지할 수 없었다는 것을 당연히 추론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7절). 우리는 여호와와 그의 긍휼을 의지한다고 말하는 외람된 죄인들에게 이처럼 말할 수 있다. 이이가 그들이 살아가면서 경멸했던 그 계명을 주신, 그들이 그 이름을 불명예스럽게 만들고 그 법령을 경시했던 그 신이 아니냐?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7.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직권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척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랍사게는 실지로 여호와를 거스려 올라갔을 때에도(37:28) "내가 이제 올라가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 없음이겠느냐" 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호와의 종들을 죽이는 자들도 여호와께 봉사한다고 생각하여 "주께서 영광 받으소서" 하고 말한다. 그러나 조만간에 그들은 그들의 잘못을 알게 되어 그 댓가를 치르고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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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헤립의 오만함 (이사야 36:11-22)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1. 방백들과 모사들이 공적인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것을 백성들에게 알리는 것은 적당하지 못하다. 이 현상은 그 백성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면으로 개최되어야 한다는(11절) 히스기야의 전권대사들의 제의는 합당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라의 일반 대중들은 국가적인 이유를 판단하기에 무능력하므로 그것은 비밀로써 은밀하게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야비한 암시로써 백성들을 격동시켜 그 치리자들을 대적하게 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이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지 않는 것이다.

2. 그 교만하고 오만한 경멸자들은 상대방이 그들에게 하는 말이 공명정대할수록, 대개 더욱 흉악하게 말한다. 히스기야의 대리인이 랍사게에게 말한 것보다 더 온화하고 존경스럽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원했던 그 일 자체도 정당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들 자신을 그의 "종" 이라 칭했고" 청컨대 말씀하소서" 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이것은 랍사게를 더욱 심술궂고 거만하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부드럽게 대답해 주는 자들에게 거칠게 대답하는 것은 선을 악으로 갚는 한 방법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들은 정말 사악하며 그것을 돌이킬 수 없는 일로 두려워해야 한다. 그들은 보통 진노를 쫓아버리려 하나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인 것이다.

3. 사단은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의지하거나 매어달리지 못하도록 유혹할 때, 앗수르왕에게 항복함으로써 그들의 상태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넌지시 암시함으로써 그렇게 유혹한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된 암시이며 심히 어리석은 것이므로 "가장 큰 혐오함으로써 거절되어야 한다. 세상과 육신이 우리에게 너희는 우리에게 항복하고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의 통치권에 굴복하고 우리의 세력 안으로 들어오라. 그러면, 너희가 각각 자기의 포도를 먹을 것이다" 하고 말할 때, 그것은 우리를 가장 비천한 포로와 노예로 만들기 위해 자유를 약속함으로써 우리를 속일뿐이다. 랍사게의 말을 당연히 친절한 처사와 공명정대한 자비로써 받아들일 수도 있다. 즉"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하여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말하게 하자. 약속의 땅, 그 거룩한 땅과 같은 땅은 없는 것이다.

4.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이방의 신들과 비교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것은 없으며, 이보다 그에 대해 더 큰 모욕이 되는 것도 없다. 그것은 그의 숭배자들이 그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일을 마치 하나님께서 하실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허탄(虛誕)하고 거짓된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과 같이 쉽게 지배될 수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그 신들은 무(無)이나, 그는 대 "자존자" 이시다. 그것들은 사람의 공상과 사람의 손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만물의 창조주이신 것이다.

5. 무엄한 죄인들은, 그들이 동료 피조물들에게 너무 매서운 존재가 되어 왔으므로 그 창조주와 필적할 만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들이 이 민족과 다른 민족들을 진했으므로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을 그들의 손에서 건지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질그릇이 땅의 질그릇과는 다툰다 할지라도 토기장이와는 다투지 않게 하자.

6.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않는 것은 때로는 현명한 일이다. 히스기야의 명령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대답지 말라. 그것은 다만 랍사게로 하여금 더욱 더 욕하고 모독하게 만들뿐일 것이다. 그의 입을 막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라. 너희는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었으나, 이처럼 무모한 적에게 분노하지 않고 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만약 랍사게와 같이 욕했다면, 그는 그 말 때문에 화가 나서 그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대했을 것이다.

7. 하나님의 백성들은 비록 욕설하는 자들에게 대답하는 것을 사려 있는 일로 생각지 않을지라도, 악인의 모독이 하나님께 가해지는 치욕을 명심하는 것이 온당하다. 비록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였" 을 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열심과 그것에 가해진 경멸에 대한 거룩한 분노를 품고 자신의 옷을 찢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예가 손상되었을 때 그들의 장식품을 기뻐하지 않았으므로 불경스러운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의 의복을 찢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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