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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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바벨론에 대한 경고 (이사야 13:1-5)

이사야의 표제는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본 이상" 이었다(1:1). 본문에도 이사야가 본 것이 나와 있는데, 그것은 마치 그가 자기의 육안으로 본 것처럼 그 마음에 뚜렷하게 나타났던 것들이다. 그러나 이 설교의 특별한 제목은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 [AV에는 "짐" (burden)으로 되어 있음 - 역주]이다.

1. 그것은 짐이요, 그들이 배워야 했던(혹자의 해석대로) 교훈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배우기 싫어할 것이며, 그들이 기억하기에도 고통스러운 짐이 되며, 그들을 위에서 무겁게 눌러 쓰러지게 하는 짐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안식으로 삼으려(28:12; 렘 6:16)하지 않는 자들은, 그 말씀이 그들에게 짐스러운 것이 됨을 발견할 것이다.

2. 그것은 바벨론 곧 바벨의 짐이었다. 바벨론은 그 당시 앗수르 왕국(그 수도는 니느웨)에 속해 있었으나, 그 후 거기에 반기를 들어 독립 왕국이 되었고, 느브갓네살왕 때에는 매우 막강해졌다. 후에 이 예언자는 유대인이 바벨론의 포로가 될 것을 예고했다(39:6). 그러나 여기에서는 바벨론이 하나님의 백성에 행한 악행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내리실 보복을 예고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멸하기 위한 분노의 도구로 쓰시고자 하는 그 강력하고 도전적인 나라들에게 호출령을 내리고 있다. 그는 후에(17절) 그 이름 메대를 지명하고 있는데, 그 나라는 바사(페르샤)와 함께 다리오와 고레스의 지휘 아래 바벨론 왕조를 멸한 나라이다.

Ⅰ. 멸망의 운명이 떨어진 곳은 바벨론이다. 바벨론이 여기에서는 "존귀한 자의 문" 이라고 불리우고 있는데(2절), 그 이유는 그 속에 존귀한 자의 집, 즉 위풍당당하며 재물이 가득 차 있는 집들이 많아 그 대적들이 풍성한 포획물을 기대하면서 그곳으로 오도록 유인받기 때문이었다. 존귀한 자의 문은 강하고 잘 방비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할 명을 받고 오는 자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진노 앞에서는 궁전도 초막에 불과하다. 멸망의 선고를 받은 것은 존귀한 자의 문뿐만 아니라 "온 땅" 이었다(5절). 왜냐하면, 비록 존귀한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학대하는 일에 주동있을지라도, 온 땅이 그들과 협력하여 그런 일을 행했던 때문이다.

Ⅱ. 바벨론을 황폐케하러 모일 사람들을 여기에서는

1. 하나님의 "거룩히 구별한 자" 라고 칭하고 있다(3절).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의하여 이 일을 하도록 내정되어 있었고, 그것을 위해 구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일에만 전적으로 종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다른 일은 하지 않도록 분리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호칭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들을 어떤 일에 쓰실 때에는 그들에게 어느 정도 합당한 자격을 부여하시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호칭은, 비록 그들의 의도에는 없었지만, 하나님의 의도에서는 그것이 거룩한 싸움이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제국을 확장시킬 계획만을 지니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해방과 신약 성서의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한 상징을 보여 주려고 계획하신 것이었다. 여기에 제1인자로 등장하는 고레스는 "거룩히 구별된 자" 라고 칭하기에 마땅한 자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였고(45:1), 장차 올 자의 표상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군사를, 특히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는 자들이 가장 엄격한 의미에서 거룩히 구별된 자들이 되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은 애석한 일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의 생명을 마음대로 한 오만한 자들이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2. 그들을 하나님의 "용사" 라 부르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었고, 이제 그 힘을 하나님을 위해 써야했기 때문이다. 이 원정에 있어서 고레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오른 손을 잡았다" 고 했다(45:1). 하나님이 거룩히 구별한 자는 바로 하나님의 용사이다. 하나님은 부르신 자들에게 능력을 부여하신다. 그리고 그가 거룩하게 만드신 자들을 그는 영적으로 강하게 만드신다.

3. 그들은 하나님의 위엄을 기뻐한다고 했다. 즉 매우 민첩하게 하나님의 영광과 그 목적에 이바지한다고 했다. 비록 고레스가 하나님을 몰랐으며, 실상은 그 원정으로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려는 뜻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을 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당신의 종으로 삼으셨고(45:4,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나의 종" 으로써의 "칭호를 주었노라"), 그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높이 드러내게 만드는 수단으로 삼으셨던 일이 성공함을 기뻐했다.

4. 그들은 매우 그 수효가 많은 "무리, 많은 백성, 열국" 으로서 (4절), 거칠거나 야비하지 않은 모범적인 정규병이며, 말하자면 명령 질서가 잘 잡힌 나라들에 의해 지원을 받는 자들이었다. 위대하신 하나님 밑에는 많은 군대들이 있다.

5. 그들은 먼 곳에서 불러온 자들이다. "무리가 먼 나라에서," 곧 "하늘가에서 왔음이라." 앗수르의 거대한 땅은 바벨론과 바사 사이에 놓여 있었다. 하나님은 당사자들이 가장 먼 곳에 위치해 있다고 하여 거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지 않던 자들을 들어 써서 채찍과 멸망의 도구가 되게 하실 수도 있다.

Ⅲ. 그들에게 내려진 소환령은 실질적이었다. 그들은 즉각 복종했고 매우 막강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높은 산 위에 깃발이 세워졌다" 고 했다(2절). 하나님의 기가 세워진 것이다. 바벨론에 대한 도전의 깃발이 내걸렸다. 그것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세워졌다. 원하는 자는 누구나 와서 그 징병에 응할 수 있으며, 그러한 자들은 즉시 하나님의 보수를 받게 될 것이다. 자원자를 모으는 사람들은 "소리를 높여" 선포함으로써, 군사들이 올 수 있도록 용기를 격려해야 한다. 그들은 "손을 흔들어" 멀리 있는 자들에게 신호하고, 징병에 응한 자들에게 활기를 북돋우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쓰시고자 작정한 자들을 부르셨으며(3절),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능력이 그의 부르심과 명령에 수반되기 때문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께 봉사할 수 있게 만드시는 하나님은, 당신이 원하신다면 그들로 하여금 또한 기꺼이 응하도록 만드실 수도 있다. "싸움을 위하여 군대를 검열하시는 자가 만군의 여호와" 이시다(4절). 그는 그들을 일으키시고 그들을 함께 모으시고 그들을 정렬시키신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 그의 점호 명부에 정확히 기록하시며 그들이 모두 각기의 위치에 있는가를 살피시며 그들에게 필요한 명을 내리신다. 모든 군사들은 만군의 여호와의 지휘 아래 있으며, 그들을 정말 막강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바벨론을 치러올 때 여호와께서도 오신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하나님)의 진노의 병기" 를 가지고 온다는 점이다(5절). 제왕들과 군대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연장, 즉 그가 원하실 때 그의 일을 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병기에 불과하며, 그들을 무장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이기게 만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진노라는 점을 기억하자.

 

13:2 없음.

 

13:3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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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에 대한 심판 (이사야 13:6-18)

우리는 여기에서 메대와 바샤 사람들의 침입에 의해 아벨론에 임할 무서운 혼란과 파멸을 매우 우아하고 생생하게 묘사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방심과 안이함 속에 있었던 자들은 "애곡하고" 탄식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Ⅰ. 바야흐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기 위해 진노로써 출현하시려는 참이었다. 하나님의 손에 떨어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이 왔다." 곧 심판의 날이 가까이 왔다(6절). 그 날에 하나님은 그 자신과 그 백성의 억울한 사유를 정당하게 복수하는 자로서 행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이 가까우면, 공포에 떨어야할 자들이 있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이 임하였다" (9절). 인생들은 지금 자기의 날을 맞아 승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웃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하나님)의 날의 도래" 를 아시기 때문이다(시 37:13).

분노가 하나님과 함께 있지는 않다. 그러나 바벨론 사람들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날은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되리라고 했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냉혹히 대한 것으로 인해, 그들을 냉엄하게 다루실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잔혹하다는 것을 보이실 것이며, 피에 목마른 자들에게는 마실 피를 주실 것이다.

Ⅱ. 그들의 간담은 서늘해질 것이며, 그들에게는 아무런 용기나 위로도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장차 임할 심판을 배격하나 그 심판을 견딜 만한 능력이 없다. 즉 그 원수에게 대항하거나 자기들을 지탱할 만한 능력이 없게 될 것이다(7, 8절). 평안한 날에 "교만" 하고 "강포" 하고 "거만" 한 자들은(11절), 환란이 올 때에는 완전히 기가 죽을 것이며 당혹할 것이다. "모든 손이 피곤해지며," 병기를 잡을 수 없게 되고, "각 사람의 마음이 녹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겁에 질려 죽을 지경이 될 것이다. 공포로 인한 그들의 고통은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과 같을 것이며, "그들은 서로 복 놀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겁에 질려 죽을 지경이 될 것이다. 그들 스스로 놀라는 중에 서로를 놀라게 할 것이다." 즉 평소에 용감하고 대담했던 자들이 떠는 것을 보고 그들도 놀랄 것이다. 또는 그들은 당황한 사람들처럼 서로를 놀란 얼굴로 쳐다 볼 것이다(창 42:1). 그들의 "얼굴은 불꽂 같을 것이다." 곧 공포로 인해 불꽃처럼(혹자의 해석대로) 창백해 지거나, 또는 때로는 자신의 비겁함이 부끄러워져 불꽃처럼 붉어질 것이다. 또는 불꽃에 그슬린 얼굴처럼, 또는 불 속에서 일하는 자들의 얼굴처럼, 그 "얼굴이 숯보다 더 검게" 또는 "연기 중의 병" 같은 것이 될 것이다(시 119:83).

Ⅲ. 모든 위안과 희망이 끊어질 것이다(10절). "하늘의 별들이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구름에 덮여 어둡게 되고 "해가 돋아도 어두울 것이다." 해가 밝게 돋아 오르다가 다시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날씨가 나쁠 것을 말해 주는 분명한 징조이다. 그들은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할 때 풍랑에 시달리는 사람들(행 27:20)처럼 될 것이다. 하늘의 모든 발광체들이 흑암으로 변했을 때의 땅처럼, 그것은 그들에게 무서운 시기가 될 것이다. 곧 심판 날과 마찬가지로, 해가 흑암으로 변할 것이다. 이처럼 얼굴을 찌푸리는 하늘은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진노하신다는 표시이다. 땅 위에서의 일이 암담할 때일지라도, 귀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맑게 개어 있다면 퍽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도 위로를 얻지 못한다면 어디에서 위로를 얻겠는가?

Ⅳ.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로 인해" 그들을 벌하실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죄, 특히 교만 죄를 벌하기 위해 된 일이다(11절).

다음과 같은 사실은 그 고통과 비참함에 쓴 맛을 더해 준다.

1. 죄는 이제 처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바벨론이 보잘 것 없는 세계일지라도, 그것은 악한 세계이므로 벌을 받지 않고는 지나가지 못할 것이다. 죄는 불경건한 세상에다 황폐함을 가져온다. 그리고 땅 위의 나라들이 서로 다투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모두에게 다루시기 때문이다.

2. 교만이 이제 몰락해야 했다는 것이다. "강포한 자의 거만은" 이제 "낮추어" 져야 하며, 교만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짓밟고 그들에게 못살게 군 느브갓네살과 그의 아들 벨사살은 특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사람의 교만은 그를 낮출 것이다."

Ⅴ. 사람들이 희귀해 질 정도의 큰 살륙이 있을 것이다(12절). "내가 사람을 정금보다 희소케 하리로다" 고 했다. 너희는 돈을 주고도 고용할 일군을 얻지 못할 것이며, 징병할 사람과 가문을 잇게하기 위해 딸을 줄 만한 남자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이웃 나라의 군대는 바벨론 왕의 일에 고용되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매사가 그 왕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던 지방들도 전쟁에 의해 인구가 곧 감소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아첨을 받고 숭앙을 받는 나라를, 몰락하고 있는 집이나 침몰하고 있는 배처럼 즉시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게 하실 수 있다.

Ⅵ. 전반적인 혼돈과 놀람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상황이 이처럼 혼란스러우므로, 무서운 뇌성으로 "하늘이 진동하는" 것같이, 또 그와 못지 않게 무서운 지진이 "땅을 흔드" 는 것같이 될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노하는 날" 에는 모든 것이 파괴되고 멸망될 것이다(13절). 그리고 이처럼 그들의 간담이 서늘해지기 때문에, 주위에 있는 모두에게 포효하는 사자나 날뛰는 곰 같았던 바벨론은 "쫓긴 노루나, 모으는 자 없는 양같이" 될 것이다(14절). (대병력은 흔히 그러하듯이) 여러 민족의 부대로 구성되어 전장으로 데려올 그 군대는 저절로 위축되고, 그 대적의 칼에 의해 흩어질 것이므로, 그들은 "각기 동족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각 사람은 급히 자신의 안전을 추구할 것이다. "마음이 강한 자도 손을 놀리지 못하고" (시 76:5) 달아나게 될 것이다.

Ⅶ. 칼이 번뜩이는 곳에서 흔히 그러하듯, 도처에 유혈과 공포의 광경이 있을 것이다.

각기 자기에게 가장 좋은 대로 행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복자는 조금도 자비를 베풀지 않으며, 가장 잔인한 학살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무기를 가지고 있음이 발견된 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칼로 치기 때문이다(15절). "만나는 자" 가 바벨론 사람임이 밝혀지는 즉시 "칼에 질릴 것이다." 아니, 칼은 모든 사람을 일반으로 삼키기 때문에, "잡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질 것이다." 그들을 도우러 온 원수들도 그들과 함께 죽임을 당할 것이다, 나쁜 동료를 사귀며 하나님이 멸하려는 자를 돕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특히 바벨론과 연합하는 자들은 그들이 받을 재앙을 함께 받으리라고 각오해야 한다(계 18:4). 그리고 자연과 인간성의 가장 신성한 법까지도 전쟁의 열기에 의해(비록 말소될 수는 없을지라도) 묵살되었기 때문에, 정복자들은 가장 야비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그 어린아이들을 메어치고 그 아내를 욕보일" 것이다. Jusque datum sceleri - 악은 자유롭게 방향을 바꾼다(16절).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처럼 다루어 왔다(애 5:11). 그래서 이제 그들은 보복당할 것이다(계 13:10). "바벨론의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라" 는 사실이 분명히 예고되었다(시 139:9). 그렇게 행한 자들은 아무리 잔인하고 불의하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더욱 무서운 고통을 주기 위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허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셨다. 이스라엘의 노략물로 채워진 집들이 약탈당하고 탈취당한 것은 또한 정당한 일이었다. 약탈로써 얻어진 것은 흔히 똑같은 방법으로 다시 상실된다.

Ⅷ.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기 위해 보내실 대적들은, 아마도 그들에게 어떤 유별난 원한이 있어서 그들에게 냉혹할 것이다. 또한 그것이 어떤 방법으로 일어날지라도, 하나님께서 친히 "메대 사람을 격동시켜" 바벨론 사람들을 냉혹히 다루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질과 계획을 사용하시어 자신의 목적에 이바지하게 만드실 뿐만 아니라, 바벨론에 대한 이러한 시도를 그들의 마음에 집어 넣으실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이 모든 분노를 동원시켜 그 일을 수행하도록 허용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죄의 저작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그런 일을 통해서 그 자신에게 영광돌릴 방법을 알지 못하셨다면, 그런 일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메대 사람들은 바다 사람들과 연합하여 그 일을 관철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1. 그들은 뇌물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17절). 사람들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려하나 메대 사람들은 "은을 돌아보지 아니할 것이다." 그들이 갈망하는 것은 금이 아니라 피다. 어떤 사람들의 제물도 생명을 구해줄 속전이 되지 못할 것이다.

2. 그들은 한창 때에 있는 청년에게도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18절) - 그들은 "활로" 청년들을 "쏘아 죽이고" 서, 그들을 조각낼 것이다. 그리고 무죄한 생명에게도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태의 열매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아이를 가석히 보지 아니할 것이다." 아마 우리는 그 어린아이들의 울부짖음과 경악 소리는 대리석처럼 차가운 눈에서도 눈물이 나오게 만들 것이고, 금강석처럼 딱딱한 마음도 녹이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잠시 멈추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인간이 도대체 이처럼 잔인하며 비인간적이 될 것인가! 그리고 그 결과로 모든 긍휼이 일체 없어질 것인가! 이것을 통해서 사람의 성품이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하게 되었는가를 보라.

(2) 무한히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묵과하시다니! 아니, 그의 공의가 그런식으로 실행되어야 하다니! 이것은, 비록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지만, 복수하는 것이 그에게 속해있는 그런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3) 아무런 실질적 죄를 범한 적이 없는 유아들도 이처럼 혹사당하고 말다니! 이것은 생명이 부여되자마자, 그것을 박탈당하게 만드는 원죄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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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에게 내려진 선고 (이사야 13:19-22)

예언되었던 대파괴와 멸망이 메대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고, 바벨론에 있는 바사 사람들은 그 최후의 멸망 속에서 생애를 마쳐야 했다.

1. 바벨론이 웅장한 도시라는 사실은 인정되어 있다. 그것은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가" 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금머리" 였다(단 2:37, 38). 그것은 "열국의 주인" (47:5), "경쾌한 노루처럼" (문자 그대로) "온 세상의 칭찬받는 성" (렘 51:41)이라 불리웠다. 그러나 그것은 "쫓긴 노루" 처럼 될 것이라 했다(14절). 갈대아 사람들은 이 주요 도시의 아름다움과 재물을 자랑했었다.

2. 그것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완전히 멸망되리라는 사실이 예고되어 있다. 즉 매우 기적적으로 또는 매우 갑작스럽게가 아니라 점차적일지라도 매우 실질적으로 멸망될 것이다. 그리고 그 멸망은 소돔의 경우처럼 그들이 안심하고서 먹고 마실 때에 임할 것이다(눅 17:28, 29). 바벨론은 벨사살이 주연을 베풀고 있을 때 점령당했다. 그리고 고레스와 다리오가 직접 바벨론을 파괴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서서히 쇠하여졌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완전히 파멸되었다. "그곳에 처할 자가 없으리라" 는 사실이 본문에 예고되어 있다(20절). 아드리안(Adrian) 시대에는 성곽 이외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니느웨, 그 큰 성에 관하여서는 버림당하여 황폐케 되어야 할 때일지라도 양떼가 그 가운데 누울 것이라는 사실이 예언되어 있다. 반면에, 바벨론에 관해서는, "목자였던 아라비아 사람도 그곳에 그 양떼를 쉬게 하지 아니할 것이다" 는 사실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 주위에는 매우 황폐할 것이므로 방목할 곳, 양을 기를 곳이 없어지리라. 아니, 그것은 고적한 것을 좋아하는 "들짐승들의" 피난처가 될 것이다. 쾌락의 아들 딸들이 모이곤 했던 바벨론의 가옥에는 "부르짖는 짐승, 곧 타조와 들양이 충만할 것이다." 그들은 그곳이 자기들에게 적합한 곳이므로 놀란 듯이 그곳으로 갈 것이며, 그들로 인해 그곳에 있던 모든 다른 사람들이 놀란다. 역사가들은 이것이 다음 편지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벤자민 바 요나(Benjamin Bar-Jona)는 그의 기행문에서 바벨론에 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 폭이 옛 척도로 30마일에 달하던 바벨이다. 이제 그곳은 황폐해졌다. 아직도 느브갓네살의 궁전의 황폐함을 볼 수 있으나, 사람들은 그 곳에 득실거리고 있는 뱀과 전갈을 무서워하여 감히 그곳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고 했다. 그 누구도 자기의 장엄한 궁전을 자랑하지 말자.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초막보다 더 보잘 것 없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누구도 "그 집이 영영히 있으리라" (시 49:11)고는 생각지 말자. 아마도 그 집의 멸망과 치욕 이외에는 그 어느 것도 남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3. 이 멸망이 곧 임하리라는 것이 시사되어 있다(22절). "그의 때가 가깝다" 고 했다.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이 예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곳으로 사로잡혀가서 심히 학대당하고 있을 때, 그 하나님의 백성을 지원해 주고 위로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예언은 거의 200년 후에 성취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예측된 시기 바로 직후에 일어났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학정이라는 무거운 멍에 아래서 신음하면서 바벨론 강가에 안자 눈물 흘리고 시온의 노래로 모욕을 당하고 있을 때, 또 그들의 무례한 압제자들이 매우 교만하고 오만할 때(11절), 그때 그들로 하여금 바벨론의 때, 곧 그것이 쓰러질 때가 가깝다는 것과 그 형통한 날이 이전처럼 오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아, 위로를 얻게 하라.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일을 시작하시면, 또한 마치실 것이다. 이것은 신약 성서의 바벨론의 멸망을 알리는 한 모형이라고 했다. "즉시 그녀(바벨론)에 대한 심판이 왔도다."

 

13:20 없음.

 

13:21 없음.

 

13:22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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