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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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메시야에 대한 예언 (이사야 11:1-9)

그 예언자는 이 설교에서 장차 태어날 한 아이, 곧 그 어깨에는 정권을 멘, 우리에게 주신 바 된 한 아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것은 여러 세대 전에 야곱이 임종시에 애굽에서 고통당하는 그의 후손들을 위로하기 위해 실로의 전망을 말했던 것처럼, 환란의 시기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기름부은 받은 자 때문에(한글 개역 - "기름진 까닭에" - 역주) 멍에가 부러지리라" 고 말했었다(10:27). 그리고 이제 여기에서 그 기름부음 받은 자가 강림할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예고한다.

Ⅰ. 때가 이르면 메시야가 다윗의 집에서 출생할 것이며, 그 때에는 그가 말한(4:2) 여호와의 "싹" 이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싹" 이라고 한 어원은 Netzer인데, 혹자는 이것을 마태복음 2장 23절에 언급되어 있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마태복음에는, 그것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하신 말씀 곧 그가 "나사렛이 되리라" 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목해 보자.

1. 어디에서 이 싹(branch:가지)이 날 것인가? - "이새" 의 집안에서이다. 그는 다윗의 아들로 태어날 것이다. 다윗에게는 왕위에 대한 언약이 주어졌고, 또 "그 자손 중에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시리라" (행 2:30, 한글 개역과는 다름 - 역주)는 맹세가 약속되었던 자이다. 다윗은 흔히 "이새의 아들" 이라 불리우며, 그리스도 역시 그러한데, 그것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아들이 될 뿐만 아니라, 다윗 자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호 3:5).

2. 나실 메시야의 외양의 비천함을 보라.

(1) 그는 "싹" (rod)과 "가지" (branch)라 불리우고 있다. 여기에 사용된 이 두 단어는 연약하고 작으며 부드러운 소산물, (혹자의 표현대로) 매우 쉽게 부러지는 "작은 가지" (twig)와 "어린 가지" (sprig)를 의미한다. 바로 앞에서 보면 하나님의 교회의 적은 아무리 힘을 들여도 찍혀지지 않을 강하고 당당한 가지에 비교되었으나(10:33), 그리스도는 연한 가지에 비교되었다(53:2). 그러나 그가 그들을 이길 것이다.

(2) 그는 다윗에게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새에게서 나온다고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이새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미천한 상태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의 친속은 하찮은 위치에 있었다(삼상 18:18). 그리고 다윗이 때로 "이새의 아들" 로 불리운 것은 경멸과 비방조로 그러했던 것이다(삼상 22:7).

(3) 그는 이새의 "줄기" 또는 "그루터기" 에서 나올 것이다. 백향목 같았던 왕족이 잘리워져 오직 그 그루터기만 남겨지고, 그루터기는 밑바닥만 남아 풀에 덮여버렸을(단 4:15) 때일지라도 그것은 다시 움이 날 것이다(욥 14:7). 아니 그것은 땅에 완전히 묻힌, 그리고 겨울의 꽃 뿌리처럼 땅 위에 나타난 줄기가 없는 "그 뿌리에서 나서 결실할 것이다." 그리스도가 탄생했을 때에 다윗의 집은 쇠퇴하여, 매우 몰락해 있었다. 그것은 요셉과 마리아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고 또 빈곤했다는 점을 보아서 알 수 있다.

메시야는 이처럼 비천한 상태에서 시작하심으로써 높이 들리우심을 받게 되셨고, 그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처럼 일찌기 예고하셨다. 갈대아 의역본은 이것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이새의 아들 중에서 왕이 나올 것이며," 메시야(곧 그리스도)는 그 아들의 아들 중에서 나와 기름 부으심을 받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Ⅱ. 메시야는 자기에게 계획된 그 위대한 일을 행할 수 있는 권한을 모든 면에서 갖추게 될 것이다. 즉 이 연한 싹이 하늘의 이슬로 촉촉히 물을 먹어 다스릴 홀을 위한 강한 막대기가 될 것이다(2절).

1. 총괄적으로 말하면, "여호와의 영이 그 위에 강림하실 것이다" 라고 했다. 성령이 온갖 은사와 은혜를 가지고 그에게 올 뿐 아니라, 그 위에 머물 것이다. 그는 제한된 것이 아니라 무제한으로 성령을 받으실 것이다. 그 안에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함께 거하는 자가 될 것이다(골 1:19; 2:9). 메시야는 "주의 성령이 내 안에 임하셨다" 는 말씀으로서 설교를 시작하였다(눅 4:18).

2. 구체적으로 말하면, 통치의 영이 그에게 임할 것이다. 그 영으로 그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맡기시고, 또 "권세를 주신" (요 5:22, 27) 심판을 할 수 있는 완전한 조건을 갖추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신자들에게 주어질 모든 은혜의 근원과 창고가 되실 것이다. 따라서 그의 충만함으로부터, 몸의 모든 지체가 머리에서 원기를 끌어내는 것처럼, 그들은 은혜의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1) 그분은 "지혜와 총명의 영" 과 "모략과 지식의 영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수행할 그 과업을 완전히 이해할 것이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다" (마 11:27). 그는 자기가 하나님에 관해,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관해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것을 친히 잘 아실 것이다(요 1:18). 그는 하늘나라의 모든 일들을 낱낱이 처리하시는 방법을 알고 계시어, 그것의 두 가지 큰 목적, 즉 하나님의 영광과 인생의 행복에 효과적으로 응하실 것이다. 언약의 관계가 그에 의해 확립되고, 규례가 지혜롭게 제정될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상담자가 되실 것이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주실 것이다.

(2) "용기" 또는 "능력" 또는 불굴의 "영" 이 그에게 임할 것이다. 그 과업은 매우 컸고, 극복해야 할 많은 난관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쇠하지 아니하고 낙담하지 아니하도록" (43:4) 능력을 부여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는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며, 아무도 꺼리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 자로 유명했다(마 22:16).

(3) 신앙의 영 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 이 그에게 임할 것이다. 그 자신이 아버지께 종으로서 경외심을 품게 될 것이며(42:1), 그의 "경외하심" 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을 것이다(히 5:7). 뿐만 아니라 그는 신앙에 대한 열심을 품으며, 모든 일을 통해서 신앙의 발전을 도모할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결코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을 빼앗거나 밀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더하게 하고 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Ⅲ. 그는 자기에게 위임된 통치권과 맡겨진 능력을 사용함에 있어서 엄밀하고 철저하며 매우 정확할 것이라고 예언한다(3절). 그에게 옷입혀질 영이 그로 하여금 "여호와를 경외함에 있어서 신속한 총명을 얻게 하리라" (한글 개역:"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으리라" - 역주) - 즉(문자 그대로) 예리한 촉수나 지각력을 부여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의 지각력은 흔히 몸의 감각에 의해서 표현되기 때문이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 신앙적인 사업에 충명한 자들은 진실로 그리고 가치있게 총명해질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지혜의 밑바탕이며 우두머리이기 때문이다.

2.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서, 만일 우리에게 훈련된 영적 감각이 있고, 또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에 민활한 총명" 이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자기의 의무를 알고 있으며, 그것을 수행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조명을 받고 있는 자들이다.

3.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한없는 성령을 지니셨으므로, 그의 과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행하셔서 '그에게 물은 모든 질문에 놀랍게 답하시어 그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에 뛰어난 총명" 을 가지고 있음이 증명된 사실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과업을 처리하시는 일에서도 나타나 있다. 그는 비상하게 훌륭히(하나님의 영예와 사람의 행복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신앙의 중대 사업을 이룩해 놓았으므로, 그는 신앙의 일을 완전히 깨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Ⅳ. 그는 그의 모든 통치 행위에서 공정하고 의로울 것이며, 그 통치에서 지혜는 물론, 풍부한 공의가 나타날 것을 예언했다. 그는 자기가 깨달은 대로, 그리고 그 자신이 판단받기를 원하는 대로 판단하실 것이다(요 7:24).

1. 그는 외모로 판단치 않으실 것이다(3절). "그는" 사람에 관하여(욥 34:19),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겉으로 나타난 것과 겉모습대로 심판치 아니 하실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대개 그러한 것처럼 일반적인 소문에 의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진술에 의해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실 것이다." 또한 그는 "그를 '주여, 주여,' 하고 부르면서" 그들이 말하는 듣기 좋은 말에 의해, 또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세상의 눈 앞에서 행하는 그들의 그럴 듯한 행동에 의해 사람을 판단하지도 않는다. 그는 사람의 은밀한 마음에 의해, 그리고 그 사람을 움직이고 있는 내적원리에 의해 판단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전혀 오류가 없는 증인이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은밀한 것을 심판할 것이다(롬 2:16). 그들의 가장이나 외양에 의해 심판하거나(그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의해 판단하지는 않을 것이다(그것은 귀에들리는 대로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그의 판단은 진실에 따른 것임" 을 확신한다.

2. 그는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5절).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을 것이다" 라고 했다. 그는 의롭게 통치할 것이며, 공의로 허리띠를 삼을 것이다. 공의가 끊임없이 그를 에워싸고, 그에게 부착되어 있을 것이며, 그의 장식과 영예가 될 것이다. 그는 낱낱의 행위를 위해 허리띠를 동일 것이며, 싸움을 위해 공의의 칼을 찰 것이다. 그의 공의는 그의 힘이 될 것이며, 허리띠를 동여맨 사람처럼 그로 하여금 그의 과업을 신속히 행하게 해 줄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의 추종자들은 진리로 허리띠를 띠어야 했다(엡 6:14). 그리고 그것은 그 시대를 안정되게 할 것이다. 세부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1) 그는 빈핍하고 학대당하는 백성들을 위해 의롭게 변호할 것이다. 그는 그들의 보호자가 될 것이다(4절). "그가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할 것이다" 라고 했다. 그리스도 비록 이 세상에서는 가난할지라도, 그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에 의의 편에 서있는 자들을 위해서 그는 변호해 주고 재판해 주실 것이다. 가난한 자를 보호하며 건지는 것이 방백들의 의무이다(시 82:3, 4). 또한 그리스도가 그 가난한 자의 왕이라는 것은 바로 그의 영예이다(시 72:2, 4). 그는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하실 것이다" (4절). 그러므로 겸손과 인내로써 자기에게 가해진 피해를 참는 자들은 특별히 하나님의 배려와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나는 귀머거리같이 듣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들으시리이다" (시 38:13, 14).

혹자는 이 구절을 "그가 공의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책망하거나 징계하실 것이다" 로 풀이한다. 만일 그의 백성, 그 땅의 겸손한 자가 잘못 행하면, 그는 "그들의 죄악을 막대기로 벌하실" 것이다.



(2) 메시야는 교만한 그의 원수들과 압제자들을 공의로 반박하실 것이다(4절). "그가 세상을", 곧 압박하는 세상 사람들을(시 10:18 참조), 또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들을(시 17:14) "치실 것이다" 라는 뜻이다. 이들을 그는 "그 입의 막대기로," 곧 그들에게 두려움과 멸망을 말하는 그 입의 말씀으로 치실 것이다. 즉 그의 위협이 그들을 사로잡아 처형할 것이다. 그는 "입술의 기운으로," 그의 성령의 역사에 의해, 그의 말씀대로,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 또한 그것에 의해 역사하면서, "악인을 죽일" 것이다. 그는 그를 잡으러 온 자들에게 "나로다" 하고 말함으로써 그들을 엎드러지게 한 것처럼(요 18:6), 한 마디 말로 쉽게 심판하실 것이다. 치명적인 두려움이 그들의 양심을 사로잡을 것이며, 치명적인 심판이 그들의 능력과 모든 권리를 멸할 것이다. 그리고 저 세상에서 영원한 시련이 그의 가난한 백성을 괴롭힌 자들에 대한 보응이 될 것이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악인의 멸망에 적용하면서, 그들을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죽이실 불법한 자" (살후 2:8)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갈대아 역에서, 휴 브로우톤(Hogh Broughton)의 해석대로, 그가 "불의한 로물루스(곧 로마)를 죽이시리라" 는 것으로 그것을 풀이하고 있다.

Ⅴ. 메시야 통치에는 큰 평강과 안정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가 평강의 왕이 되리라는 9장 6절에 대한 해설이다. 평강은 다음 두 가지를 의미한다.

1. 일치 또는 조화이다. 이것은 심지어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평화롭게 "거한다는" 이 상징적인 약속 안에 시사되어 있다. 가장 급하고 격렬한 기질을 가지고 있어 자기 주위에 있는 모든 자들을 물어뜯고 삼키곤 했던 자들도, 그리스도의 복음과 은혜의 효험에 의해 그 기질이 신기하게 바꾸어져 가장 연약한 자들과 또 이전에는 희생물로 삼곤 했던 자들과도 사랑하며 살게 될 것이다. 양들은 때로는 서로를 해쳤으나, 이제는 서로를 해치는 일이 없을 것이며(겔 34:20, 21), 오히려 이리가 그들과 화목할 것이다. 우리의 평강이신 그리스도는 모든 적대감을 죽이기 위해,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 특히 유대인과 이방인들 간의 지속적인 우정을 확립하기 위해 오셨다. 이 두 무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전향하며 같은 양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었을 때, 그때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거했다. 이리는 그처럼 크게 어린양을 위협하지 않았고 어린양도 이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표범이 어린" 염소를 물어뜯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염소와 함께 누울" 것이다. 심지어 "그들의 어린 새끼들이 함께 눕고," 복된 교제를 영존시키기 위해, 그러한 교제 속에서 훈련될 것이다. 맹수들은 흔히 먹이 앞에서 그렇겠지만, "사사" 가 더 이상 먹이를 게걸스럽게 먹지 않을 것이요,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다." "독사의 구멍과 독사의 굴" 도 더 이상 해롭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부모들은 그들의 아이가 그것을 가지고 "장난하며," 거기에 "손을 넣는" 것도 허용될 것이다. 독사의 자식이 성도의 자손이 될 것이며, homo homini lupus - 사람은 사람에게 대한 이리이다라는 역사깊은 불평은 없어질 것이다.

거룩한 산에 거하는 자들은 방주에서 노아와 짐승들이 더불어 살았듯이 의좋게 살 것이며, 그것이 그들의 보존의 한 수단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이전처럼 서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 이러한 일은 복음이 그 복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자들의 마음에 주는 그 놀라운 영향력 속에서 이루어진다. 복음은 성품을 변화시키며, 세상에서 유순한 자들을 짓밟던 자들을 오히려 그들처럼 유순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도록 만든다. 성도들을 핍박했던 바울이 그들과 연합한 그 때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했다."

(2) 그런 일은 말세에 더 완벽하게 이루어지리라 희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때에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 것이다."

2. 평화는 안전을 뜻한다. 그리스도, 그 위대하신 목자가 그의 양떼를 이처럼 돌보시므로, 그들을 해하고 싶은 자들이라도 해하지 못할 것이다. 양떼들이 서로를 멸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외부의 대적이 그들을 괴롭히도록 방치해 두지도 않을 것이다. 고생과 죽음의 성질까지도 바꾸어져서, 어떤 실재적인 피해를 끼칠 수 없게 되며, 더욱이 "거룩한 산에 거하는" 자들은 그 누구도 멸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또는 "무엇이 우리를 해하리요?" (벧전 3:13) 하나님의 백성은 재난뿐만 아니라 재난에 대한 두려움에서도 건져질 것이다. 심지어 "젖먹는 아이가" 아무 두려움 없이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 할 것이다. 축복받은 바울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뇨" 하고 말했을 때, 그는 바로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된 것이다.

끝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사람의 기질이 놀랍도록 부드럽게 되는, 그 원인과 결과는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1. 그 결과는 유순하여 다루기 쉽게 되고, 교훈받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이전에는 아무리 힘센 사람에 의해서라도 지배받기를 거절하던 자들을 "이끌어갈 것이다." 칼빈은 이 말씀을, 그 완고하던 자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에게 기꺼이 복종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어떤 강제력을 사용하지 않고 온유함으로 가르쳐야 하며 또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하는 자들이다(마 18:3; 고전 8:5 참조).

2. 그렇게 되는 원인은 하나님의 지식 때문이나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많을수록 평화에 이르려는 기질이 더 많아진다. 그들은 이처럼 사랑 가운데에서 살아가게 된다. "땅에는 여호와의 지식이 충만하여" 사람의 격노와 증오를 끄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친숙해질수록 우리는 더욱 그같은 형상으로 변할 것이며, 그의 형상을 지닌 자들에게 더욱 호감을 가질 것이다. 해협이 물로 가득하듯이 땅은 하나님께 대한 지식으로 충만할 것이다 - 이 지식은 매우 넓고 광대할 것이며, 매우 멀리 퍼질 것이다 - 이 지식은 매우 깊고 중대한 지식이 될 것이며, 매우 오래 지속될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은 모세의 율법에 의해서보다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다 많이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때" (모세의 때)에는 "유다" 에게만 하나님이 알려지셨지만, 이제는 "다 그를 알 것이다" (히 8:11). 그러나 사람들에게 불화를 뿌리는 것은 그릇된 지식이다.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은 평화를 나누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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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의 나라의 성장 (이사야 11:10-16)

본문은 메시야 왕국의 확장과 발전에 대한 예언의 계속이다. 그것은 산헤립이 패망한 이후 히스기야 말년에 유다 왕국이 다시 한번 번영을 맞이한 사실이 상징해 주고 있는 바이다.

Ⅰ.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위대한 일을 베풀어 주셔서, 그의 백성이 만민의 기호(旗號)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어, 열방이 "땅에서 행해진 이적을 물으려고" 유다 나라로 몰려들게 되었을 때에(바벨론 왕의 사신도 그 일로 왔었다), 그 예언은 부분적으로 실현되었다. 열방이 그들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 때에 유다인의 안식처이며 거주지인 예루살렘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10절). 그 때에, 열 지파 왕국(이스라엘)에 속했었고, 앗수르 왕에 의해 나라가 망하자 어쩔 수 없이 도망하여 주위에 있는 나라나 먼 나라로, 심지어는 바다나 섬으로 피난했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고장으로 돌아와, 유다 왕의 보호와 통치를 받으라는 격려를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나라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킨 앗수르 나라가 이제는 망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을 가리켜, 그들이 "다시금" 권리를 회복한 것이라고 일컫고 있다(11절). 즉 이 사건은 그들이 처음에 애굽에서 구출된 사건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의 한 표징이요, 또 그와 같은 은총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증거이다. 그때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 이 모여 집으로 돌아올 것이며, 유다의 쫓긴 자들도 역시 그러한 것이다. 그들은 앗수르 군대가 다가오자 자신의 안전을 위해 피신했던 것이다. 그 때, 에브라임과 유다의 오랜 불화는 잊혀질 것이며, 합세하여 블레셋 사람과 그 밖의 그 공동 적들을 칠 것이다(13, 14절). 고통과 긍휼, 위험과 구원을 지금까지 같이 나누어 온 자들은, 그 점을 생각하면서 서로 단결하고 상호 안전과 보호를 위해 연합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리고 에브라임(북왕국)과 유다가 하나가 되어 블레셋에 대항할 때, 교회는 잘 될 것이다.

그 때에는, 그 흩어졌던 자들이 돌아오는 길에 어떤 난관이 있든 여호와께서 그들의 진로를 개척해 주실 것이다. 즉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실 때에, 홍해와 요단강을 마르게 하셨고(15절), 거대하고 황막한 광야에서 온갖 역경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해 가셨던 것과 같을 것이다(16절). 여호와께서는 이번에도 그와 비슷한 일이나 동등한 일을 행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때가 되면, 그들을 막던 산은 하나님 앞에서 낮아져서 평평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세력이 매우 낮아진 것처럼 보일 때에도, 우리는 낙심하지 말도록 하자. 하나님은 우울한 날들도 곧 영광스런 날로 변하게 하실 수 있다.

Ⅱ. 그것은 더 나아가 메시야의 날과 그의 나라에 이방인들이 모여 들리라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 바울 사도가 본문의 10절을 다음과 같이 적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다음 구절이 계속되어 있다(롬 15:12).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고 했다. 이것이 바로 이 예언의 핵심이다. 이 예언은 이새의 뿌리로서 또는 "그 뿌리의 한 가지" (1절), 즉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53:2)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는 "다윗의 뿌리" 요(계 5:5), "다윗의 뿌리며 또한 자손" (계 22:16)이다.

1. "그는 만민의 기호로 세워질 것이다." 그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그는 기호나 푯대처럼 모든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끌게" 되었다(요 12:32). 그는 또한 영원한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서도 기호로 세워졌다. 그리고 그 깃발의 기수인 사역자들은 그의 사랑의 깃발을 펄럭이면서, 우리를 그에게로 이끌어들인다(아 1:4). 또한 그의 진리의 깃발을 펼쳐서 우리를 부르고, 우리로 하여금 죄와 사탄과 대적하는 거룩한 싸움에 종군하게 만든다. 그리스도는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들이는" (요 11:52) 깃발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통일의 중심점인 그 안에서 서로 만난다.

2. "이방이 그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헬라인에 실제로 그렇게 한 사실을 읽을 수 있다(요 12:21, "우리가 예수를 뵙고자 하나이다"). 그리고 그 때를 맞아 그리스도는 자기가 들리워져, 만인을 그에게로 이끌게 될 일을 말씀하셨다. 바울 사도는 칠십인 역으로부터(또는 그리스도 시대 이후에 바울 사도의 말씀을 인용한 칠십인 역은) 그것을 "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신뢰하라) (롬 15:12)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그를 찾을 것이다.

3.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울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사망으로 이해한다(십자가의 승리는 죽음까지도 영화롭게 했다). 혹자는 그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거하게 된 승천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는 오히려 그것은 복음의 교회를 의미할 수도 있다. 시온 산에 대해 그리스도는 "이는 내 안식처라" 고 말씀하셨으며, 그는 거기에 거하고 계신 것이다. 비록 세상은 시온산을 멸시하지만, 그 위에 거룩한 아름다움이 있으므로 진실로 영화로운, "영화롭고 높은 보좌" 이다(렘 17:12).

4.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모두 그에게로 올 것이라 했다(11절). 이들의 남은 자들, 비교적 적은 수의 남은 자들은 매우 어렵고 힘들게 개심할 것이다. 이전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건지시고 흩어졌던 모든 나라에서 모으셨던 것(시 106:47; 렘 16:15, 16)과 마찬가지로, 그는 말씀과 함께 강력한 은혜의 성령의 역사로 다시 다른 방법으로 모으실 것이다. 메시야는 그 일을 위해 "손을 펴실 것이다." 그는 그의 능력을 발휘하실 것이다. 즉, "주의 팔이 나타나" 그 일을 행할 것이다.

(1) 유대인의 남은 자들이 모일 것이다. "이스라엘의 쫓긴 자와 유다의 이산한 자들" (12절),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데리고 올 때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 곧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 (약 1:1; 벧전 1:1)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모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흩어졌던 유대인들 중에 비교적 더 많은 수가(자기 땅에 남아 있기 보다는) 교회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2) 기호가 들려지니, "열방", 즉 이방인의 많은 사람들이 그 곳으로 모여들 것이다. 야곱은 실로에 관하여,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라" 고 예언했었다. 나그네와 의인들은 친근하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께서 헬라인들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치는" 것을 시기했다(요 7:35).

5. 유다와 에브라임은 행복하게 화해할 것이며, 그들은 모두 그들의 대적들로부터 안전할 것이며, 오히려 그들을 지배할 것이라고 했다(13, 14절). 그 당시의 유다와 이스라엘의 결합은, 매우 오랫동안 사이가 나빴던 유대인과 이방인이 복음의 교회 안에서 결합되는 사건의 모형이며 상징이었다.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며" (렘 3:18), "한 나라" 가 될 것이라 했다(겔 37:22). 따라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둘이 하나의 새 사람" 이 되며(엡 2:15), 서로 화목하기 때문에, 그들 모두에게 원수 노릇하던 자들은 멸망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독수리가 그 먹이를 치듯, 그들이 "블레셋 사람의 어깨를 날아 앉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 서편에 있는 자들을 약탈하고, 그 후 다시 동쪽에 있는 나라들 곧 애돔, 모압, 암몬 사람들에게로 그 정복의 범위를 확장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지역에서 성공을 거둘 것이며, 만방에서 얼마 간의 사람들이 그 믿음에 복종할 것이다.

6. 복음의 진보와 성공을 방해할 수도 있는 모든 일은 제거될 것이라 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실 때, 하나님은 그들 앞에 있는 홍해와 요단강을 마르게 하셨고(63:11, 12), 그 후 유대인들을 바벨론에서 이끌어 내실 때에도, "그들의 길을 예비하셨다" (62:10). 마찬가지로,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복음의 교회로 함께 모여 들 때도, 모든 장애물이 제거될 것이며, 이겨내기 어렵게 보이는 난관들은 놀랍게 극복될 것이며, "소경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어 갈 것이다" (42:15, 16; 43:19, 20 참조). 개종자들이 수레와 교자(轎子)를 타고 올 것이다(66:20). 혹자는 동방의 왕들에게 길을 예비해 주기 위해(계 16:12) - 본문의 예언은 이 사실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 유브라데 강물을 마르게 하리라는 저 모호한 예언이 가리키는 것은, 무수한 사람들이 계속 교회로 몰려들게 될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민족이나 어느 특정 개인이거나 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당신께로 인도하실 때가 되면, 그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방해를 극복하고 만나는 사실을 명심하자. 여호와의 존전에서는 바다도 도망하고, 요단강도 물러 갈 것이다. 그리고 하늘을 염두에 두고 있는 자들은, 생각보다는 자기들의 길에 그렇게 많은 어려움이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대로가 있기 때문이다(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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