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시편 14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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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1

하나님의 관대하심과 긍휼(시편 146:1-4)

다윗이 이 시편을 기록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방백이었고 힘있는 왕이었다. 다음과 같은 것을 왕의 신분으로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1.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에서 면제를 받았다는 사실, 즉 그는 그의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예배를 행하는 것을 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스스로 나서서 예배를 행하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미갈은 그가 "법궤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이 그에 대한 경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가 이 일에 처음가며 제일가는 자라는 생각을 전혀 갖지 않았다(1, 2절). 그는 자기의 위엄이 찬양하는 일을 면제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그로 하여금 찬양으로 인도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을 진실로 찬미하는 일을 경감시킨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을 고무시키고 찬양하는 과제를 행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한다." 그리고 그는 찬양으로 살아가기를 결심했다. 내가 진심으로 주를 찬양하며 나의 입으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여기에서 자는 하나님을 "여호와"를 앙망하며 그에게서 무한히 축복받고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를 나와 계약을 맺은 "나의 하나님"으로서 앙망할 것이다. 우리가 그를 우리의 하나님으로 앙망하면서 그를 찬양할 때 찬양은 가장 즐거운 것이다. 우리는 그에게 관심을 갖고 그와 관계하며 서 있어야 한다. 내가 이것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의 생애의 마지막까지 날마다 부단히 행할 것이다. 아니 "내가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 찬송할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살아있지 못하게 될 때 나는 찬양을 더욱 잘 할 수 있는 하늘의 존재, 더욱 좋은 존재가 되기를 희망한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의 존재의 위대한 목적이 되는 것은 우리의 커다란 사역과 기쁨이어야 한다. 우리의 시간과 능력을 주께 바쳐야 한다.

2. 그가 자기 나라에 큰 축복을 가져 왔기 때문에 영웅을 우상화하는 이방 국가들의 관습에 따라 경배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모두 나와서 "그의 그림자를 의지하며" 그를 저희의 "거처"와 "요새"로 삼으려 했던 것 같다. 다윗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라(3절). 나를 의지하지 말며, 다른 어떤 방백에게도 의지하지 말라. 그들에게 너희의 신뢰를 두지 말라. 그들에게 너희의 기대를 걸지 말라. 그들의 정직함을 너무 확신하지 말라."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위장하는 법을 잘 알기 때문에 통치하는 법을 더 잘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들의 견고성과 신실성을 너무 확신하지 말라. 그들은 쉽게 그들의 마음을 변경시키며 말을 어기는 것이 가능한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다윗과 같이 지혜롭고 선하다고 생각해도 우리는 그들이 능력과 지속성을 너무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담의 자손이며 약하고 죽어야 할 운명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실로 그에게 도움이 있고 구원이 있고 인자(人子)가 있다. 그는 자기를 의지하는 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인생을 영광 중에 있어도 오래 존재하지 못하는 갑자기 유명해진 인간과 같다.

(1) 우리는 그들의 능력을 확신하지 말아야 한다. 왕들의 권세도 제한되며 속박되고 악화된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한다. 다윗은 스스로 고백하였다(삼하 3:39).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날 약하도다." 구원할 힘이 없는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라." 그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며 "벙벙하는 자 같다." 그는 "용사"였지만 "구원치 못한다"(렘 14:9).

(2) 우리는 그들의 지속성을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그의 힘으로 우리를 도우려고 생각하지만 그는 우리가 그에게 가장 큰 기대를 걸었을 때 갑자기 소멸하게 될 것이다(4절). "그 호흡이 끊어지면"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것은 매순간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갑자기 영원히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해 준다. "그는 흙으로 돌아가리로다." 흙은 그의 고향이다. 처음 인간에 관련지어 보면 인간이 흙에서 만들어졌다. 따라서 인간은 말씀에 따라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창 3:19). 그가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면 선택의 측면에서 볼 때 흙은 자기 분깃으로 선택한 그의 땅이며 그가 애정을 두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그가 소유한 재산이기 때문에 그의 땅이다. 그가 세상에서 방대한 소유물을 가졌어도 하나의 무덤이 그에게 넘겨져 있는 모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땅을 주셨다."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큰 싸움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그들의 땅을" 그들의 권위의 표시로 삼고 "저희의 이름을 따라 부른다." 그러나 잠시 후에는 땅의 어떠한 부분도 그들의 소유가 되지 못하며 죽은 몸이 침상으로 삼을 땅만을 차지하게 된다. 그것도 땅이 남아 있는 동안만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 흙으로 돌아갈 때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그의 모든 꿈과 계획이 공허하게 사라져 버린다. 그는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으며 그의 모든 계획은 중단되고 그와 함께 사장된다(욥 17:11). 그러면 인생에게 건 우리의 기대는 어떻게 되겠는가? 방백들은 다른 인생들과 마찬가지로 죽어야 할 운명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에게서 도움의 확증을 얻을 수 없으며 불멸하시는 권세자(Potentate)로부터 얻을 수 있다. "호흡이 콧구멍에 있는 인생을" 그리고 거기에 오래 있지 않게 될 인생을 '의지하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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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격려(시편 146:5-10)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경고한 후에(우리가 그들을 의지한다면 비참하게 절망할 것이다) 우리의 신뢰를 하나님께 두도록 격려하고 있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행복하게 보장받을 것이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하나님의 속성과 약속에 관심을 두고 그것들을 하나님께 맡기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Ⅰ.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후원해 주실 자들에게 주어진 성격을 관찰해 보자. 그들은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는다.

1. 그들은 여호와를 저희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그에게 섬기며 예배한다.

2. 그들은 그에 저희의 희망을 두며 그에게 의지하는 인생을 산다. 그들은 하나님을 선하게 생각하며 다른 모든 기대가 좌절되었을 때 그에게서 용기를 얻는다. 모든 신앙인은 그를 야곱의 하나님으로 교회 일반의 하나님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대중적 환란때에도 그로부터 소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다면 모든 개인적인 결핍이나 위기에서도 그를 의지할 수 있을 것이다.

(1)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현재의 생과 관련있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선한 것들을 희망해야 한다.

(2)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총 가운데서 장차 올 생에 관련되어 있는 모든 선한 것들을 희망해야 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박식한 하몬드 박사(Dr. Hammond)가 이 시편의 후반부에 화육(化肉)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독생자에 대한 가장 주목할 만한 측면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보면서 특히 이 귀절과 다음 구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는 메시야의 날에 속하는 10절을 말한 랍비 문학의 한 귀절을 인용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메시야에 대해 말씀하신 특징(마 11:5, 6)과 비교되어 나타나게 될 것이다(8, 9절).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에 걷는다." 그리고 그 결어(結語)는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가 5절에 가장 잘 부합되게 하려 했다고 생각한다.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리고 그에게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Ⅱ. "여호와 우리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커다란 격려를 관찰해 보자.

1. 그는 "세상의 창조자"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권세를 가지시며 그로부터 나온 모든 피조물의 권세의 지휘권이 그에게 달려 있다(6절).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셨다." 그러므로 그의 팔은 구원할 수 없을 만큼 단촉하지 않다.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부합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로 말미암아 세상을 지으셨고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3). 세상의 구속자가 그 창조자와 동일한 분이시며 따라서 그가 세상에 호의를 보이시며 그 처지에 대한 완전한 지식과 그를 도울 수 있는 권세를 갖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은 커다란 힘이 된다.

2. 그는 침범할 수 없는 신뢰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힘을 써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은 일정일획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태초로부터" 진실이며 "영원까지" 진실이다. 우리 주 예수는 아멘이시오 "참된 증인이시오." 동시에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시오" 주체이시며 원리이시다(계 3:14). 하나님의 진실을 영원히 지키는 것은 그에게 맡겨져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약속이" 그에게서는 "예와 아멘"이기 때문이다.

3. 그는 상처받은 무고자의 후원자가 되신다. 그는 "압박당하는 자를 위하여 판단하시며"(우리가 본문에서 읽는 바와 같이) 그는 "공의로 판단하신다." 그는 자주 그의 섭리에서 그것을 행하시며 심하게 고난당하는 자들을 구제하시며 그들의 완전을 깨끗게 하신다. 그는 마지막 심판날에 그것을 행하실 것이다. 메시야는 거대한 압제자인 사탄의 손에서 인생을 구출하러 오다. 그리고 그에게 위탁된 모든 심판과 박해자들에 대한 심판의 수행이 뭇사람들 가운데서 행하여질 것이다(유 15)

4. 그는 궁핍한 자들에게 관대하게 은혜를 베푸시는 자이시다. 그는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 하나님은 자연의 갈망을 응답하시기 위해 통속적인 방법으로 그렇게 행하신다. 그러나 그는 때때로 갈가마귀를 엘리야에게 먹이신 것같이 특별한 방법으로도 행하신다. 그리스도는 자기 가족에게 한두 끼의 식사에 지나지 않는 것을 갖고서 기적적으로 수천 명을 먹이시는 일을 여러번 행하셨다. 이것은 우리에게 생명의 떡으로 우리의 영혼을 키우시는 자가 되시는 그에게 희망을 두도록 고무시켜 준다.

5. 그는 속박된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이다.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신다." 그는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의 집에서, 후에 바벨론에서 인도해 내셨다. 벙어리를 말하게 하시며 귀머거리를 한 마디의 말로 에바다(Ephphatha) - 즉 열려라라고 말씀하심으로 듣게 하시고 그들을 속박에서 풀으시며 죽은 자를 무덤에서 일으키시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기적들이 모두 "갇힌 자를 해방하시는 기적에 포함될 것이다. 우리는 그가 오셔서 선포하신 영적인 자유를 위해서 그에게 소망을 두는 자들에게서 격려를 얻을 쉬 다(사 61:1, 2).

6. 그는 오랫 동안 시력을 잃었던 자들에게 시각을 주신다.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신다." 그리고 그의 고난받는 백성들에게 그들이 전에 알지 못했던 위로를 보게 하신다. 그 증거가 창세기 21장 19절 나타나 있으며 엘리사의 사환의 눈을 여셨다(왕하 6:17).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행하시기까지는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기"(요 9:32)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조명(照明)을 위해서 그에게 소망을 두도록 우리를 격려해 준다.

7. 그는 굽은 자를 곧게 세우시며 고통을 받고 넘어지는 자들을 일으키신다. 그는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며" 짐아래 있는 그들을 위로하시며 붙들어 주시고 적당한 때에 그들의 짐을 벗기신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대로 수행되었다. 그리스도는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가련한 여자를 바로 펴셨다(눅 13:12). 그는 지금도 무겁고 힘든 짐을 진자들에게 휴식을 주시며 유죄로 비천하게 버림받을 자들을 위로하며 세우시는 일을 그의 은총으로 행하신다.

8. 그는 모든 선한 백성들에게 한결같은 인자하심으로 대하신다. "여호와께서 의인을 사랑하신다." "그들은 여호와의 선하신 뜻을 확신할 때 그의 권능을 더욱 확신하게 될 것이다. 우리 주 예수는 "모든 의를 성취하심으로" 의로운 자들에게 그의 사랑을 보여 주셨다.

9. 그는 그의 돌보심을 특별히 필요로 하는 처지에 있는 자들을 위해 자비로운 관심을 갖고 계신다.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신다." 여기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이 다섯 줄에 다섯 번이나 반복된 것을 주목함이 없이 지나가서는 아니 된다. 여호와는 전능한 힘(여호와 의)을 의미한다. 그것은 억압받는 자들의 구원을 위해 관계하려 힘쓴다. 불행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더한다.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자,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라"(시 68:4).

(1) 객들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대개 친구들이 없지만 "여호와께서 그들을 보호하시며" 넘어지거나 파멸되지 않게 하신다. 많은 가난한 객들은 하나님보호의 은택을 발견하며 그것에 의해서 생명을 유지한다

(2) 가장(家長) 잃고 가정 일을 돌아보는 자를 잃었기 때문에 그들을 삼키려는 자들의 손에 넘어지며 그들에게 정의를 행하지 않고, 오히려 불의를 당하는 "고아와 과부를 붙드신다." 오히려 "여호와께서 저희를 구제하시며" 그들을 돕는 자들을 세우신다(출 22:22, 23 참조). 우리 주 예수는 힘없는 자들을 도우려 세상에 오셨고 이방과 객을 그의 나라에 받아들이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다. 가련한 죄인들, 아버지가 없는 자같이 된 자들은 그에게서 "긍휼을 얻을 것이다"(호 14:3)

10. 그는 그의 나라에 대적하며 그 신실한 백성들을 핍박하는 모든 자들의 멸망을 위해 나타나실 것이다.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게 하며 "멸망당하려고" 할지라도 "압제자의 격노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가 그의 교회에 대항하여 싸우는 지옥과 음부의 모든 계획을 전복시키실 것은 메시야의 영광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한 그가 함께 하시니 우리를 대적해서 행하여 걸 수 있는 어떤 일에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11. 그의 나라는 모든 시간의 흐름을 거쳐서 영원한 종국의 세대에 이르기까지 존속될 것이다(10절). 어둠의 권세의 모든 저해에도 불구하고 "시온아, 여호와 네 하나님은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시리로다." 이것은 어느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격려해 준다. 그리스도는 시온의 거룩한 산에 왕으로 임하셨고 그의 왕국은 무한한 영광 중에 존속될 것이다. 그것은 침략자에 의해서 파괴될 수 없다. 그것은 계승자를 필요로 하지 않고 계승하는 군주나 군주 정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영원히 서 있을 것이다. 시온의 하나님으로서, 시온의 왕으로서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는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위로의 대상이 된다. 메시야는 교회에 대해 모 든 것을 능가하시는 머리가 되시며 세상이 존속하는 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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