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시편 145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145:1

감사의 고백(시편 145:1-9)

이 시편에 "다윗의 찬송시"라고 표제를 붙인 것은 다윗이 이 시편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거기에서 특별한 기쁨을 취했고 자주 이 시편을 노래했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이것은 그가 어디를 가든지 그의 친구였다. 이 시편의 전반부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속성이 찬양되고 후반부에서는 그의 나라와 통치가 찬송되고 있다.

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누가 종사할 것인가?

1.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할지라도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크게 찬양하기를 원한다. 이 선한 일에 그는 자신을 감동시키며 몰두하고 자기의 마음을 크게 열어 놓았다. 그가 더욱 큰 만족을 느끼며 하고자 하는 일을 행한다. 그것은 그의 의무였다. 그것은 그의 기쁨이었다. 다음의 사실들을 관찰해 보자.

(1) 그가 어떻게 그 일을 표현하였는가?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1절). 내가 주께서 자기를 알리신 것과 같이 주를 복되게 말하리이다. 거기에서 나의 주께 대한 높은 생각을 표현하며 다른 사람들도 그와 똑같이 하도록 노렸하겠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말할 때 이것은 그를 높이는 것으로 은혜롭게 해석되며 받아들여진다 .또 다시 "내가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2절). 복창하는 것은 이 일에 대한 그의 감정의 열심을 나타내 주고 있다. 또 다시(5절) "나는 주의 영광스러운 위엄을 묵상하리이다." 그리고(6절) "나도 주의 광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 그는 거룩한 예배에서만이 아니라 그의 일상 대화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했다. 마음이 하나님에 관한 것으로 충만하게 된다면 입의 가득한 것이 모든 경우에 그를 찬양하여 경외로써 말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고상하고 풍부하고 즐겁고 유익하고 제외할 수 없는 대화의 주제를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2) 그가 찬양을 계속하려는 결심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1] 그는 이 일을 끊임없이 하려고 한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리이다." 하나님은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과제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바쁜 날이라도 아무리 슬픈 날이라도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 그 날을 보내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노력 중 가장 필요한 것이며 우리의 일상적인 위로 중 가장 즐거운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를 축복하시며 우리를 위해서 선을 행하신다. 그러므로 거기에 우리가 날마다 그를 송축하며 복되게 말해야 할 이유가 있다.

[2] 그는 찬양을 계속하고자 한다. "내가 영영히" 주를 "송축하리이다(1절, 그리고 2절). 이것은

첫째, 그가 이 세상에서 살아 있는 동안 그의 생의 끝까지 이 일을 계속하리라는 결심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그가 기록한 시편이 종말까지 교회에 의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사용되어야 할 것을 의미한다(대하 29:30). 셋째, 그가 저 세상에서 영원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희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찬양을 세상에서 저희의 끊임없는 과제로 삼는 자들은 그것을 하늘에서 저희의 영원한 지복(至福)으로 가지게 될 것이다.

2. 그는 다른 사람들도 이 일에 착수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1) 그들은 이제 이 일에 협력할 것이다. 그들은 나와 함께 찬양하는 일에 가담할 것이다. "내가 주의 광대하심을 선포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말할 것이다"(6절). "저희가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리이다"(7절). 또는 "노래하리이다." 그들은 가장 주의 깊은 웅변보다 더 우아하게 유창한 말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다윗의 열심은 많은 사람을 자극시켰고 그렇게 이루어졌다.

(2) 그들은 내가 갔을 때에도 연속된 계승으로 그것을 보존할 것이다(4절). "대대로 주의 행사를 크게 칭송하리이다." 사라져 가는 세대는 새로 자라나는 세대에게 그것을 말할 것이며 그들의 전성기에 본 것들과 저희 선조들에게서 들은 것을 말할 것이다. 그들은 안전하게 그리고 특히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시 78:3). 그리고 자라나는 세대는 사라져 가는 세대의 본을 따를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의 죽음이 하나님의 예배를 단결시키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세대가 시간의 종말까지 그 선한 일을 수행할 자리로 옮아가기 때문이다. 그것을 행하는 것이 세대의 계승이 없는 저 세상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Ⅱ. 우리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가?

1. 그의 광대하심과 그의 위대한 업적 때문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선포해야 한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그의 임재는 무한하시며 그의 권능을 막을 수 없고 그의 밝음은 견딜 수 없으며 그의 위엄은 놀라우시도다. 그의 지배는 경계가 없으며 그의 주권은 대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쟁할 여지없이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으로, 우리의 최상의 능력으로, 그리고 상상할 수 있는 숭고한 모든 상황에서 그를 크게 찬양해야 한다 실로 그의 광대하심은 이해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관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이해하며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것은 더욱 더 찬양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관찰로써 그 밑바닥을 발견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그 가장자리에 앉아서 그 깊이를 경탄해야 한다(롬 11:33). 하나님은 광대하시다.

(1) 그의 위엄이 그가 그의 영광을 두신 하늘 위에 있는 저 세상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의 광대하심을 선포할 때 우리는 "주의 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그 위엄의 영광의 광채를 반드시 묵상해야 한다(5절). 그는 저 세상에서 얼마나 밝게 빛나는지 천사들의 눈이 현혹될 정도이며 그 광채를 참을 수 없어 천사들은 얼굴을 가리지 않을 수 없다.

(2) 그의 업적이 이 낯은 세상에서 놀랍기 때문이다. 모든 피조물들의 보존과 유지와 통치가 창조자를 매우 크게 선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광대하심을 선포할 때 우리는 그 의심할 여지없는 증거를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해야 하며"(4절) "그의 놀라운 기사를 선포해야 하며"(5절) "주의 두려운 일에 세력을 말해야 한다"(6절).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낮은 세상의 모든 사건에 참여하시며 동하시는 것을 보아야 한다. 여러 가지의 도구가 사용되지는 모든 사건에 있어서 하나님은 최고의 방향 제시자이다. 모든 것을 행하는 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의 큰 권능이 그의 섭리의 작용에서 나타난다(그것은 어떤 피조물의 힘과도 비교될 수 없는 "능한 일"이다). 그의 큰 정의는 그의 섭리에서 나타났다. 그것은 "두려운 일"이며 성도들에게는 경의롭고 죄인들에게는 무서운 일이다. 우리는 우리가 놀랍게 여기는 하나님의 손가락과 그의 손과 그의 팔을 관찰하면서 모든 경우에 이러한 것들을 말해야 한다.

2. 그의 인자하심 때문에 이것은 그의 영광이다(출 33:19). 하나님은 거기에서 영광을 받으신다(출 34:6, 7).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그에게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저희가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리이다"(7절).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크신 인자하심이며 그 보고(寶庫)는 결코 소모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것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전과 같이 자비가 풍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억할 만한 인자하심이다. 그것은 우리가 항상 앞에 두어야 하며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기억에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원한 기억 속에 간직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충만하며 매우 충만한 사람들처럼 크게 말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기기에 감동되도록 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인자하심을 언제 말할지라도 그와 동시에 "주의 의를 노래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그를 신실하게 섬기는 자들에 보상해 주시는 일에 은혜로우신 것과 같이 그를 반역하는 자들을 벌하시는 일에 의로우시기 때문이다. 공평하고 고한 정의가 무진장한 인자하심과 같이 하나님 안에 확실하게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함께 찬양해야 한다(롬 11:22).

(1) 하나님의 성 안에 인자하심의 근원이 있다(8절). 그를 섬기는 자들에게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들에게 그는 "자비하시며" 그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그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그를 찾고 그에게 호소하는 모든 자들에게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그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주시려고 하시며 우리가 회개하기 전에 용서해 주시려고 하신다.

(2) 그의 섭리의 모든 행동에 인자하심의 흐름이 있다(9절). 그가 인자하신 것과 같이 그는 선을 행하신다. 그는 가장 높은 천사로부터 가장 천한 벌레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을 "선대하시며" 스스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차단한 악마와 저주받은 죄인들까지도 선대하신다. "여호와께서는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1] 그 지으신 모든 것과 그의 모든 피조물은 그의 자비하신 배려와 관대하심의 열매를 받는다. 그것은 그 모든 것에 널리퍼지는 것이다. 그는 그가 만드신 것을 어떠한 것이라도 미워하시지 않는다.

[2] 그의 긍휼의 행사는 그의 다른 모든 지으신 것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리고 그가 지으신 어떤 것보다도 더욱 그를 선포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영광을 정한 자비의 그릇에서 영원히 찬란하게 빛나며 다른 어떤 것에서도 그렇게 빛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향하여 모든 성도들의 영원한 할렐루야가 찬송될 것이다.

 

145:2 없음.

 

145:3 없음.

 

145:4 없음.

 

145:5 없음.

 

145:6 없음.

 

145:7 없음.

 

145:8 없음.

 

145:9 없음.

 

145:10

은혜에 대한 감사(시편 145:10-21)

모든 존재들 중에 optimus et maximvs - 즉 가장 선하시며 가장 위대하신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인자하심이 이 시편의 전반부에서 송축되었다. 여기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그의 광대하심과 인자하심이 밝게 빛나며 매우 찬란하게 빛나는 통치에서 그의 나라의 영광을 그에게 돌리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다. 앞에서와 같이 다음의 사실들을 관찰해 보자.

Ⅰ. 누구에게서 찬양의 감사가 기대되는가?(10절)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그를 "송축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찬양할 문제를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은 영광을 받기를 거절당한 자들에게서도 영광을 받으신다. 그러나 "주의 성도가" 다른 피조물이 받지 못한 특별난 축복을 받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생생하게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다른 업적이 실제적으로 그를 찬양하기 때문에 "주를 송축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열등한 피조물에게서 찬양의 감사를 가져 고 그것을 하늘의 보고(寶庫)에 두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건축가를 찬양하며 잘 그려진 그림이 미술가를 찬양하듯이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그를 찬양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신중하며 친절한 부모를 가진 아이들이 부모를 높이 세우고 그들에게 송축하듯이 하나님을 송축한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 중 그의 성도들, 그의 은총의 솜씨며 그의 피조물의 처음 열매인 그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송축해야 할 가장 큰 이유를 가지고 있다.

Ⅱ. 이러한 찬양이 무엇을 위해 주어졌는가? "저희가 주의 나라를 말하리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 가운데서 자주 생각되고 말해지는 것이다. 앞에서 그가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인자하심을 일반적으로 찬미한 것과 같이 여기서도 그의 나라에 대한 간구로 그것들을 찬송하고 있다.

그러면 다음의 내용을 고찰해 보자.

1. 하나님의 나라의 광대함. 그것은 실로 광대하다. 지상의 모든 왕들과 나라들이 그의 지배 하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의 광대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 나라의 성격을 고찰한다.

(1) 그 나라의 화려함. 우리는 신앙으로 베일 속에 있는 것을 보기를 원한다면 보고 믿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11절) "주의 나라의 위엄의 영광을"(12절) 말해야 한다. 하나님은 하늘에 그의 보좌를 준비하셨고 무수한 천사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높이 계신다. 솔로몬의 궁성과 아하수에로 의 궁성은 화려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스러운 위엄에 비교해 볼 때 그들은 태양에 개똥벌레를 비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일에서 우리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2) 그 나라의 권세. "저희가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할 때 그들은 그 "능하신 일"을 말해야 하며 그 범위와 효능을 말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모든 일을 행하실 수 있으며 그가 기뻐하시는 어떤 일이라도 행하신다(11절). 그 증거로써 그들로 하여금 "주의 능하신 일을 알게 하리이다"(12절). "인생"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백성이 되도록 초대받았으며 그들은 전능한 세력의 보호를 받게 된다.

(3) 그 나라의 영원성(13절). 땅에 속한 왕들의 보좌는 흔들리며 그들이 왕관에 있는 꽃들은 시들고 군주정치는 끝나게 된다. 그러나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다." 하나님은 종말까지 세상을 다스리실 것이다. 종말에 현재 그 나라의 통치를 위임받은 중보자가 영원까지 살아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그 나라를 넘기게 될 것이다.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스스로 영원하시며 그의 뜻은 변하지 않고 한결같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대항하려고 나라를 세운 사탄은 정복되고 사슬에 얽매이게 될 것이다.

2. 하나님의 나라의 인자함. 그의 왕의 칭호와 명칭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신 여호와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그가 행하시는 일에서 나타난다.

(1) 모든 피조물 일반에게 베푸시는 자비(15, 16절). 그는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다"(시 136:25). 거기에서 그의 영원한 인자하심이 나타난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산다. 저희가 맨 처음 그로부터 생명을 받은 것과 같이 그로부터 생명에 필요한 모든 양식을 받으며 그 지속성을 위해서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한다.

[1] 그들의 기다리는 눈이 하나님께 고정된다.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하나이다." 열등한 피조물은 실로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앙망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연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본능에 따라 저희의 양식을 구하기 때문이다(저희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는다." 마 6:26). 그들은 자연 하나님께서 그가 정하신 시간과 방법에 따라 그들에게 제공해 주시는 것을 취하여 그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2] 그의 관대하신 손이 그들에게 뻗친다.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신다."그들이 필요한 때에, 적당한 때에 그들에게 합당한 식물을 주시나이다. 그리하여 어떠한 피조물이나 겨울에도 식물의 결핍으로 멸망당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다. 주는 자유자재로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않고 계속불평하며 "달라, 달라"하며 외치는 불합리한 인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만족케 하신다.

(2) 하나님께서 이성적(理性的)인 피조물로 다스리시는 인간에게 특별히 베푸시는 자비.

[1] 그는 인간들에게 나쁜 일을 행하시지 않는다. "여호와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다"(17절). 그리고 그들 중 어떤 자에게도 불의를 행치 아니하신다. 그는 "거룩하시다." 그리고 "그 모든 행위에" 완전한 정직으로 자신과 같이 행하신다. 통치하시는 그 모든 행위에서 그는 공평하시며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으시고 모두에게 의로 다스리신다. 우리는 불공평해도 "여호와의 행위는 공평하시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시는 일에서, 논쟁을 결정하시는 일에서, 예배에 보답하는 일에서, 대적을 벌하시는 일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공평하시다. 우리는 그가 의로우신 분이심을 고백해야 한다.

[2] 그는 모두에게 선을 행하시며 그의 백성에게는 특별히 신을 행하신다.

첫째, 그는 주저 앉는 자들을 지탱해 주신다. 약한 자들을 돕는 것이 그의 영광이다(14절). 그는 "넘어지는 자를 붙드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넘어질지라도 온전히 던져지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인간들이 병이나 다른 질고로 매우 낮아져서 무덤에 떨어지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놀랍게도 그들을 붙드시며 들어 올리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돌아가라"(시 90:3). 한 번 죽는 것같이 보인 자들이 모두 적었다면 세상에는 거의 사람이 없게 되었을 것이다. 죄에 넘어지고 절망에 빠지려 했던 하나님의 많은 자녀들의 넘어짐을 막아 주시며 은혜와 위로로 빨리 그들을 회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넘어질지라도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할 것이다"(시 37:24). 그리고 죄의 짐으로 "무거운 짐진" 모든 자에 대해서는 그들이 신앙으로 그리스도에게 나아 온다면 그는 그들을 기뻐할 것이며 그들을 들어 세우실 것이다.

둘째, 그는 그의 백성들의 기도를 속히 들으시며 응답하신다.(18, 19절). 여기에서 그의 나라의 은총이 나타난다. 그의 백성은 탄원의 자유를 가질 뿐만 아니라 청원할 수 있는 모든 격려를 얻는다.

1. 그 특혜는 매우 풍부하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신다." 그는 저희의 기도의 외침을 항상 들으시며 그들을 항상 그의 도우심의 경역(境域)에서 살게 된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낫다면"(잠 27:10)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그는 그들이 응답되는 만족을 갖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가까이 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구한 것과 찾는 것을 갖도록 저희의 "서원을 이루신다." 그는 "모든 생물의 소원 만족케 하신다"고 말씀하셨다(16절). 그러므로 그는 더욱 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새를 먹이시는 자가 그의 자녀를 굶어 죽게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그가 다윗을 "들소뿔에서"(시 22:21) 들으신 것처럼(즉 구원하신 것처럼) 그들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

2. 그 조건은 매우 합리적인 것이다. 그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도와주실 것이다.

(1) 우리가 그를 "경외"한다면 우리가 경외함으로 그를 예배하며 섬긴다면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그밖에 어떤 방법으로 구가 우리를 용납하시겠는지를 생각할 수 있을까?

(2) 우리가 "진실하게 간구"한다면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하나님은 내부의 건설을 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 신실해야 하며 그를 의지하는 우리의 고백과 그의 대한 우리의 헌신에 있어서 정직해야 한다. 모든 예배에서 내적인 생각이 외적인 표현에 답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진실하게 수행하지 않은 것이다.

셋째, 그는 그에게서 확신과 만족을 갖는 자들을 그의 특별한 보호 아래 둔다(20절).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신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위엄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사심으로써 진정한 악마가 그들을 해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충분하게 보존하실 것이다.



[3] 어떤 자들이 멸망되었다면 그들은 스스로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가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 그들은 저희의 사악함에 의해서 멸망하기에 합당했다. 이것은 의로운 자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미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시 91:8). 하나님은 이렇게 하여 그의 백성들을 보호하실 것이다. 그들에게 해를 끼치는 악한 자들을 멸하심으로써 그의 백성들을 보호하신다.

마지막으로,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1. 스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결론 짓는다(21절).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리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말했을 때 아직도 여전히 말해야 할 것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행한 것같이(1절)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서 우리의 감사를 시작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가 여기에서 한 것같이 그러한 결심으로 결론을 맺어야 한다. 하나의 바지가 끝나는 것이 다른 자비의 시작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숨쉬고 있는 동안 나의 입이 하나님의 영예를 끝까지 말할 것이다.

2. 다른 사람들도 역시 그렇게 행하고 그들에게 요청함으로써 결론을 맺는다. 모든 인류가, "모든 육체가 그의 성호를 영영히 송축할지로다." 인류 몇 사람이 영원히 하나님을 송축할 것이다. 그들이 모두 거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슬픈 일이다.

 

145:11 없음.

 

145:12 없음.

 

145:13 없음.

 

145:14 없음.

 

145:15 없음.

 

145:16 없음.

 

145:17 없음.

 

145:18 없음.

 

145:19 없음.

 

145:20 없음.

 

145:21 없음.




































 


Articles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