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시편 13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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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시편 130:1-4).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배운다.

Ⅰ.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비록 매우 비참한 경우일지라도 끊임없이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야 할 것이다(1절). 가장 훌륭한 인간이라도 때로는 큰 고통과 고난 중에 빠진다. 또한 때로는 어쩔줄 몰라서 무엇을 할지도 모르는 비탄과 절망심연 속에서 어둡고 낮은 정신으로 사는 불안하고 절망적인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엄청난 절망 가운데서도 우리가 하나님께 매어 달리며, 울부짖을 수 있고 그로부터 응답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부여된 특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도하는 자는 비록 같은 지옥에서일지라도 예레미야의 감옥이나 다니엘의 야수의 굴이나 요나의 고기 뱃 속에서와 같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의 한복판에서라도 하늘의 높이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며, 권리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시 40:1, 2)에서 우리가 더 깊이 빠지는 것을 막아 주며 구원하는 가장 훌륭한 길이기 때문이다.

Ⅱ. 한편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평안의 응답이 올 것을 확신하면서 하나님께 간구를 계속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다윗이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이다(2절). "여호와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탄식과 기도를 들으소서. 그리고 나의 고통과 희망 속에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Ⅲ. 우리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죄책감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정의 앞에서 우리 자신을 겸손히 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수 많은 죄를 인하여 그에게 응답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3절).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누가 그 앞에 서리이까?" 그가 하나님을 부르는 아주 짧은 단어들인 야(Jar:여호와)와 아도나이(Adonai:주님)는 어세가 매우 강하다. 그 단어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의 두려운 느낌과 여호와의 징벌의 두려움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배우고 있다.

1. 우리들의 죄악이 용납되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들을 정당화하거나 죄가 없음을 주장할 수 없다. 우리들의 죄악은 명백한 것이고 그 책임을 면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2. 그러한 하나님의 권능과 정의를 고백하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다. 만일 그가 우리의 빗나간 것을 극단적으로 들어 내신다면 우리가 거기에 도달할 희망은 없게 되는 것이다. 그의 눈은 가장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책망하실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만일 그가 우리에게 계속 이 같이 대하신다면 우리는 자신을 도울 어떤 길도 가질 수 없고 우리가 설 수도 없으며 틀림 없이 던짐을 받게 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엄격한 정의로 우리를 대하신다면 우리는 파멸에 이를 것이다. 만일 그가 우리의 부정에 대해서 주목하신다면 크고 많은 부정을 발견하실 것이며, 크게 나쁘고 매우 거역된 죄들을 발견하실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가 그것에 따라 계속 추궁하신다면 그는 우리에게서 그의 은총의 모든 희망을 닫으시고 우리를 그의 진노 아래 감금시키실 것이다. 그러면 무엇으로 우리 자신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인가? 우리들은 탈출을 도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징벌의 손에 저항하거나 견딜 수도 없게 된다.

3. 하나님의 인내와 용서를 찬양해야 할 것이다. 그가 죄악을 드러내신다면 우리는 파멸될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에 의하여 "우리가 소멸되지 않는 것은 그의 자비로 말미암은 것이다."

Ⅳ.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자비에 우리를 맡겨야 하며 우리가 스스로를 하나님의 정의에 비추어 볼 때 심판받을 만하다는 것을 이해하며 우리를 위로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4절). 여기에서 다음 두 가지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참회하는 죄인에 의해서 발견되고 간구되는 하나님의 은총.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나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가까이 할 때 그에게 죄사함이 있다는 사실은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는 능력을 자신에게 두신다. 그가 스스로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고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포하셨다(출 34:6, 7). 그는 회개하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를 대하는 어떤 자라도 그가 무자비하다고 생각지 않으며 오히려 간구하기 쉬우며, 자비를 쉽게 보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죄악이 있다. 그러므로 그에게 사유하심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복이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주께는 화해가 있나이다"라고 해석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한 화해자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속량이다.

그는 항상 하나님과 함께 계셔서 우리를 옹호해 주신다. 우리는 그를 통해서 용서를 얻을 수 있는 희망을 갖는다.

2. 그러한 발견에서 설정하고 거기에서 추론해 낸 우리의 의무.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께서 인간을 대담하게 하거나 주제넘게 두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 주는 죄인이며, 하나님을 대할 수 없는 인간의 자녀들에 의해서 예배를 받으며, 섬김을 받으시려는 것이다. 만일 그가 주가 아니라면 많은 죄악을 사죄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모든 비행으로 빗나가게 되지 않는 그의 예배에로 인도되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다. 아니, 우리가 진실로 회개한다면 어떤 것이라도 사해 주신다. 이것은 특별한 방법으로 회개하는 죄인들을 초청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경외하는 데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셔서 저희의 회개를 받아 주실 거이다(욜 2:13; 마 3:2). 그리고 특별히 우리는 경외의 하나님의 사유하시는 자비에 존경을 가져야 될 것이다(호 3:5, "저희가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그리고 우리는 사유하심의 은혜를 기대해야 하며, 우리가 경외의 대상을 하나님으로 정할 때 죄사함의 은혜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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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림(시편 130:5-8)

Ⅰ. 여기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를 기다릴 것을 약속하고 있다(5, 6절).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고찰해 보자.

1. 그의 하나님께 대한 의지. 이것은 성전에 올라 가는 노래로써 절정적으로 표현되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나이다." 나는 그로부터 구원과 위로를 기다리며 그 때가 올 것을 믿고 그 때가 올 때까지 갈망한다. 그러나 지연되어도 인내로 참고 견디며 다른 손으로부터 그것을 찾지 않기로 결심한다."내 영혼이 기다리나이다." 내가 그를 가식으로 기다리지 않고 오직 성실하게 진심으로 기다린다.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며, "내 영혼이 기다리는 것은 여호와"를 향한 것이며 그의 은총의 선물과 그의 권능의 활동을 기다리는 것이다.

2. 신뢰의 기반.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우리는 그의 말씀 속에서 약속하신 것만을 희망해야 하며, 결코 우리 자신의 환상이나 공상의 피조물을 희망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그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희망해야 하며 결코 우리 자신의 공로에 대한 생각으로 희망하지 말아야 한다.

3. 신뢰의 정도. "파숫군의 아침을 기다림 보다 더하도다."

(1) 아침이 올 것을 확신한 사람보다 더하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에 따라 내게 자비로 돌리실 것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약이 낮과 밤의 법칙보다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라질지라도 하나님의 계약은 영원한 것이다.

(2) 그것이 오기를 대단히 갈망하는 사람보다 더하다. 성을 지키는 파숫군들과 병자들을 돌보는 자들과 해외로 여행하는 자들은 하루 전에 새 날의 동트는 여명을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 선한 사람은 더욱 진지하게 하나님의 은총의 표징과 그의 은혜의 초대를 위해서 더욱 갈망하며, 낮에 행하는 사람들보다 더욱 부지런하게 그의 첫 출현을 알고자 한다. 하몬드 박사(Dr. Hammond)는 그것을 이와 같이 읽는다. "내 영혼이 아침의 파숫군으로부터 여호와를 재촉하나이다." 그리고 거기에 이러한 의미를 붙인다. "내가 매일 아침에 일찍 주께로 나아갑니다. 나의 깊은 영혼이 제사장들이 아 예배를 드릴 때에 기도를 드리고자 주 앞에 나아갑니다."

Ⅱ. 그는 하나님을 같은 방법으로 의지하며 신뢰하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격려하고 있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라고 그를 기다릴지어다." 백성의 일부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칭호하는"(사 44:5) 모든 선한 사람들을 격려한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모든 자들은 즐겁게 자신들을 그에게 두어야 한다(7,8절).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1. 왜냐하면 자연의 빛이 "그에게 인자하심이 있으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자비로운 하나님이시며, "모든 자비의 아버지"가 되심을 우리에게 알려 주기 때문이다. "자비는 그에게 있다." 그것은 그의 본성에 기인하는 고유한 것일 뿐 아니라 그것이 바로 그의 기쁨인 것이다. 그것은 그의 모든 활동과 그의 모든 뜻에 있어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이다.

2. 왜냐하면 복음의 빛이 "그에게 구속이 있으며" 그에 의해서 설계되며 그것이 "때가 찼을 때" 이뤄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알려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태초로부터 하나님 안에 숨겨져 있던 것이었다.

(1) 이러한 구속의 성격. 그것은 죄로부터의 구속이며 모든 죄로부터의 구속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관하시는 영원한 구속 이외에는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 1:21)이시며,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딛 2:14)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는"(롬 11:26)분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죄의 저주와 죄의 지배적인 권세로부터 구속하실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2) 이러한 구속의 풍성함. 그것은 "풍성한 구속이다." 구속자에게는 공로와 은혜의 충만함이 있으며 모두에게 풍성하며, 각자에게 충만함이 있다. 신앙인은 내게 풍성하다고 말한다. 죄로부터의 구속은 모든 다른 악으로부터의 구속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풍성한 구속이다.

(3) 이러한 구속의 은총을 받는 사람들. "저가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것이며" 그의 성령에 따라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며 하나님과 계약을 맺는 모든 사람들을 구속하실 것이다. "진실로 흠이 없는 이스라엘과 같이"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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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 없음.

 

130:8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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