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시편 08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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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1

겸손한 탄원(시편 86:1-7)

이 시편은 "다윗의 기도"라는 표제 아래 발표되었다. 그것은 다윗이 마치 자기의 모든 기도를 노래로 불렀던 것 같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노래 몇 가지에다 그가 기도문을 삽입해 넣었기 때문이다. 시란 어떤 경건하고 열렬한 감정의 표현을 허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시편의 언어가 얼마나 꾸밈이 없으며, 몇 개의 다른 시편들과 비교해 볼 때 그 속에 시적인 비약이나 이유가 얼마나 적은가 하는 것은 살펴볼 만하다. 왜냐하면, 기지의 만연이 기도에 합당한 광채를 더해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Ⅰ. 그가 하나님께 올린 탄원, 기도가 뜻밖에도 설교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나, (이 기도에서처럼) 기도란 그 각 구절이 하나님께로 향해지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왜냐하면,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기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4절).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그는 이전에도 그렇게 말했었다.(25:1). 기도의 모든 부분에서 영혼의 믿음의 날개와 거룩한 소망의 날개를 타고 하나님께로 올라가 그의 은혜와 교제를 나누어야 하며, 그로부터의 큰 일들을 기대하는 가운데 매우 높이 올려져야 한다.

1.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은혜롭게 청종해 주시기를 청하고 있다.(1절).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때 그가 그것에 "귀를 기울이신다."고 일컬어지는 것은 매우 적합한 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처럼 보잘 것 없는 피조물과 우리 기도처럼 결점투성이의 기도를 주목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은, 그의 감탄할 만한 겸양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이것을 다시 반복하고 있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비록 그것이 적은 소리로 말해지고 더듬거려질지라도, 호의적으로 귀를 기울이소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우리가 말씀드리는 어떤 것에 의해 하나님의 감정을 자극시킬 필요는 없지만, 이처럼 우리는 그의 은총에 대한 우리의 열망을 표현해야 한다. 다윗의 아들은 그것을 확신과 즐거움을 갖고 말씀하셨다(요 11:41, 42).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특별한 보호 아래 두시어, 그의 구원의 당사자가 되시기를 청하고 있다(2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주의 종을 구원하소서," 그것은 하나님의 종인 다윗의 영혼이었다. 왜냐하면, "마음으로 주를 섬기는" 자들만이 하나님을 훌륭히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윗의 관심은 자기 영혼에 대한 것이다. 이것을 그의 자연적인 생명에 대한 것으로 본다면 가장 훌륭한 자기 보존법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보호에 의탁하는 것이요, 믿음과 기도로써 우리 창조주를 우리의 보존자로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영적 생명, 몸과는 구별되는 그 영혼의 생명에 대한 것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 "영혼에게 해롭고 위험한 것으로부터 곧 죄로부터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하나님은 그가 구원하실 자들을 보존하시며, 그의 천국에다 그들을 보존하실 것이다.

3.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동정과 연민의 눈으로써 굽어 보시기를 청하고 있다(3절).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우리 죄를 사하고 우리를 환란에서 돕는 것이 하나님 안에 있는 긍휼이다. 이 두 가지가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는 이 기도 안에 포함되어 있다. "사람들은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나이다. 우리 자신은 긍휼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나이다. 그러나 주여, 긍휼 자체를 위해,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4.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적 위로를 채워 주시기를 청하고 있다(4절).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마음을 즐겁게 하고 영혼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비로소 기쁨이 충만하다. 그리고 "기쁨으로 주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종된 자들의 의무인 것과 마찬가지로 믿음 중에 기쁨과 화평이 충만한 것이 그들의 특권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보존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가 그들의 영혼을 기뻐하시기를 그리고 "여호와의 기쁨이 저희의 힘"이 되기를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다. 그는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하고 기도할 때,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오니"를 덧붙이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속시켜 나가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위로를 기대할 수 있다. 기도는 영적 기쁨의 양육자이다.

Ⅱ. 그가 이 탄원들을 강력히 주장하는 수단이 되고 있는 청원을 살펴 보자.

1. 그는 하나님께 대한 그의 관계와 관심을 진술하고 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므로 내가 주께 내 자신을 바쳤고, 주께 의지하고 있나이다. 그리고 나는 주의 종으로서(2절) 주께 복종하며, 따라서 주로부터의 보호를 바라나이다."

2. 그는 그의 환란을 진술하고 있다. "나는 곤고하고 궁핍하오니,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도움이 필요하나 아무도 내 말을 들으려하지 않나이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왕이시며, 그의 영광은 "곤고한 자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심령이 가난하여 자기 자신이 텅비고 궁핍한 것을 보는 자들이 모든 은혜의 하나님께 가장 환영받는다.

3. 그는 하나님을 구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진술하고 있다(5절). "열망과 기대로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오니, 주는 선하심이니이다." 그리고 거지들이 선한 집 주인의 문으로 가지 않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하나님의 본성의 선하심은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아뢰도록 하는 데 큰 격려가 된다. 그의 선하심을 두 가지 일, 즉 주시는 것과 용서하시는 것에서 나타난다.

(1) 그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용서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용서할 준비를 하고 계신다. 즉 우리가 회개해야 하는 것보다도 더 일찍 용서할 준비를 하고 계신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였나이다."(32:5).

(2) 그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그에게 부르짖는 자"에게 긍휼을 많이 베푸신다. 매우 풍족하고 매우 후하게 즉 풍부하고도 너그럽게 베푸신다. 그것으로써 그는 그들의 모든 궁핍을 채우시며, 그 공급물을 주는 데 관대하시다.

4. 그는 그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를 진술하고 있다. 그것에 의해 하나님은 그의 은총에 대한 자격을 그에게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세 가지 일이 그의 안에 역사되었는데, 그는 그것을 모든 선에 대한 증거로서 간주하고 있다.

(1) 하나님을 신봉함(27절).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왜냐하면, 그는 성령께서 성별케 한 자들을 보존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교만하게 그리고 허풍을 떨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겸손한 감사로써 말하고 있다. "나는 주께서 호의를 베푸시는 자이며" (영문 난외에는 그것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주께서 "주를 위하여 따로 두신" 자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은혜의 선한 역사를 시작하셨다면, 우리는 그 때가 사랑의 때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 때에 내가 주 보시기에 은총을 입은 자 같았나이다." 하나님은 그가 은총을 베푸신 자들을 보호해 주실 것이다.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다."(신 33:3). 다음을 주목하자. "나는 궁핍하오나"(1절), "경건하옵니다." 경건하지만 궁핍합니다. "내가 세상에서는 궁핍하나 믿음에는 부요합니다." 가장 빈궁한 중에서도 자기의 결백함을 보존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위로를 보존해 주시리라는 것, 그들의 영혼을 보존해 주시리라는 것을 확신해도 좋다.

(2) 하나님을 의지함.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거룩한 자들은 거룩함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이나 그들의 의로움을 의지해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과 그의 은혜를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그로부터의 구원을 기대할 수 있다.

(3) 하나님과 교제하고 싶은 경향.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길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기도하고 싶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1] 기도에 꾸준함. "내가 날마다 그리고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3절). 이처럼 끊이지 않고 언제나 기도하는 것과 기도하는 순간을 지속시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그리고 우리는 시시 때때로, 항상 그 의무를 자각한다면, 우리가 환란 때에 한 기도가 청종되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다. 고통을 당할지라도, 기도의 바퀴가 계속 굴러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은 위로를 줄 것이며 그 때에도 그것은 정지되어서는 안 된다.

[2]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함. 즉 하나님을 "그의 영혼이 우러러 봄"(4절)이다. 우리는 우리 영혼이 주를 만나기로 되어 있는 것처럼, 기도 속에서 우리 영혼을 내보낼 때 그 때 하나님께서 그의 긍휼로써 우리를 만나 주시리라는 것을 바랄 수 있다.

[3] 그가 환란 속에 있을 때, 특별히 하나님께 진지하게 간구함(7절). "나의 환난 날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라. 그리고 내 사정을 주께 의탁하리니, 주께서 나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리이다. 그리고 나는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고 부르짖었으나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었던(왕상 18:29) 자들과는 달리. 주를 구하는 것이 헛되지 않을 것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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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원과 찬송(시편 86:8-17)

다윗은 여기에서 그의 기도를 계속하고 있다.

Ⅰ. 그는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장 큰 겸손과 경건한 숭앙심을 갖고 하나님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돌리면서 우리 기도 속에서 그를 찬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1. 비할 바 없이 완전한 존재로서, 즉 그와 같은 자나 그와 비교될 수 있는 자가 없는 그러한 자로써 찬송한다(8절). "주여 신들중에 열방들이 섬겼던 거짓된 신들, 천사들, 세상의 왕들 중에, 만유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그처럼 지혜롭고, 힘있고, 선한 자 없사오며 주의 행사와 같음도 없나이다." 주의 행사는 주와 같은 자가 없다는 것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증거이다. 그 자신의 행사가 그를 찬송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찬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와 같은 자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2. 모든 존재의 근원이시며, 모든 찬송의 중심으로서 찬송한다(9절). "주께서 모든 열방을 지으셨나이다. 그들 모두를 한 피로 만드셨나이다. 그들 모두는 주로부터 그들의 존재를 부여받았고 주를 꾸준히 의지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저희가 와서 주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리이다." 이것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유대교로 개종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으나, 메시야의 날에는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 때에는 각 나라와 족속에서 사람들이 나와 하나님께 찬송돌릴 것이다(계 7:9). 하나님이 모든 족속을 만드신 것은 그리스도에 의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없이는 그 어느 것도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의 복음의 능력과 은혜에 의하여, 모든 혈육이 이르러 하나님 앞에 경배할 것이다(사 66:23).

3. 무한히 위대하신 존재로서 찬송한다(10절). "주는 열방의 왕으로서 광대하사 주의 주권은 절대적이고 논쟁할 필요가 없으며, 주의 엄위는 두렵고 견딜 수 없으며, 주의 능력은 우주적이고도 저항할 수 없고, 주의 재물은 거대하고 무진장있으며, 주의 통치권은 끝이 없고 의심을 여지가 없기 때문에, 모든 열방이 주 앞에 경배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주께서 기사를 행하오니, 모든 열방이 그것을 경탄하나이다. 그리고 그것에서 그들은 주만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주같은 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주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쉽게 추론해 낼 수 있을 것이옵니다." 우리는 항상 이 광대하신 주님께 대한 위대한 생각들을 즐기고 기사를 행하는 이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감탄으로써 우리 마음을 채우도록 하자. 그리고 홀로 하나님이신 자만이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시게 하자.

4. 무한히 선하신 존재로서 찬송한다. 사람은 악하다. 매우 사악하며 비열하다.(14절). 사람으로부터는 긍휼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나이다."(15절).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선포하시는 수단으로 삼는 그 속성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에 의해 그의 이름을 선포해야 한다.(출 34:6, 7). 그의 모든 행사 위에 깔려 있는 것은 그의 선하심이므로, 그것이 우리의 모든 찬미를 채워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관련하여-그 처지가 어떻든지 간에-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은 우리의 위로가 된다. 사람은 잔인하나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사람은 거짓이나 하나님은 미쁘시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실 뿐만 아니라 긍휼이 풍부하시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는 "자비가 심판을 이긴다." 그는 비록 우리가 그의 은총을 박탈당하고 그를 노하게 만들었을지라도,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시다. 즉 그가 약속에 후하셨던 것처럼 약속을 이행하시는 데 성실하시다.

5. 사람에게 친절한 친구이시며 관후한 은인으로서 찬송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스스로 선하신 자로서 찬송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얼마나 선하셨던가를 살펴 볼 때 매우 실감있게 그를 찬송할 수 있다. 따라서 시편 기자는 이것을 매우 즐겁게 생각하고 있다.(12,13절). 그는, "주여, 주의 지으신 모든 열방이 주를 찬송하여,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리이다."(9절)하고 말했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영화롭게 하리라는 생각은 선한 사람들에게 어느정도 만족감을 주나, 다윗은 그 자신이 그렇게 행할 것인가에 대해 가장 크게 관심하고 기뻐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행하든"(다윗은 말하고 있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주님으로서 뿐만 아니라 나의 하나님으로서 찬송하리이다. 그리고 내가 진심으로 그렇게 하리이다. 내가 그렇게 할 준비를 성실히 하겠습니다. 내가 그것을 즐겁고 생기있게, 주의 영예를 성의껏 존중하면서 행하리이다. 왜냐하면, 내가 잠시뿐이 아니고 언제나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살아있는 한 그것을 행할 것이며, 영원까지 그렇게 하기를 바랍니다." 그가 이처럼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려고 결심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한 호의를 베푸셨기 때문이었다. "이는 내게 향한 주의 인자가 크심이니이다." 긍휼의 원천은 무진장으로 풍족하다. 긍휼의 물줄기는 헤아릴 수 없이 풍부하다. 우리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에 관해 말할 때, 우리는 마땅히 이처럼 그것을 찬미해야 한다. "내가 향한 주의 인자가 크시나이다." 하나님의 긍휼의 광대함에 관해 그는, 이러한 예를 들고 있다. "주께서 내 영혼을 깊은 음부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것 처럼 큰 사망에서(고후 1:10), 일부 유대학자들의 견해처럼 영원한 사망에서 "건지셨나이다." 다윗은 우리아의 일로 인한 죄 때문에 자기는 가장 깊은 음부로 영원히 버려져야 마땅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나단은 여호와께서 "그의 죄를 사하셨다."는 것을 그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의해 그는 깊은 음부에서 건져졌고, 이 일에 있어서 그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인자가 컸다. 가장 훌륭한 성도들도, 공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에 의해서 가장 깊은 음부에서 구원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긍휼을 찬송하기 위해 크게 열릴 것이고 그들은 언제나 그것을 영화롭게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영원한 파멸로부터의 구제는 너무나 영광스럽고, 너무나 은혜로우므로, 그것은 당연히 찬송의 보답을 요구한다.

Ⅱ. 그는 하나님으로부터의 긍휼과 은혜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그는 그를 치려는 그의 원수들의 끊임없고 무자비한 악의를 호소하고 있다.(14절). "주여 나를 위하소서. 왜냐하면, 나를 대적하는 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들의 성품을 주시하고 있다. 그들은 불쌍한 다윗을 경멸로써 대하는 "교만한 자"였다. (많은 사람들은 교만으로 인해 박해자들이 된다.). 그들은 옳든 그르든, 무력으로 모든 일을 수행하려는 "강포한 자"였다. 그들은(일부의 해석대로) "무섭게 엄청난 자"로서 그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행했다. 그는 그들의 수효를 지적하고 있다. 그들의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권위를 지닌 자들로서 의회와 법정에서 만났거나 대화를 나누기 위한 자로서 클럽에서 만났다. 그러나 그들은 무리였으므로, 더 많은 해를 끼칠 능력이 있었다. 다윗은 그에 대한 그들의 적의를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반란을 일으키면서, 일어나 나를 치나이다. 그들은 계획할 뿐만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그 계획을 실행하나이다. 그리고 그 의도는 나를 물러나게 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나를 파멸시키기 위한 것이나이다. 그들은 나를 죽이기 위해 내 영혼을 찾나이다." 끝으로, 그는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있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윗에 대한 그들의 적개심 밑바닥에 있었다. "저희가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모르는 자들로부터 무슨 선을 기대할 수 있나이까? 주여, 그들을 대적하시어 나타나소서. 왜냐하면, 그들은 내 원수인 동시에 주의 원수이기 때문이옵니다." 그의 탄원들은

1. 그의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되기를 위한 것이다(11절).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1) 총명한 마음. 즉, 하나님께서 그의 의무에 관해 그에게 알려 주시고 가르쳐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도 곧 주께서 내가 행하도록 정하신 그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그것에 대해 의심하고 있을 때, 내가 행해야 할 것을 내게 분명하게 알려 주소서. 나로 하여금 이것이 정도이다 하는 음성을 듣게 하소서"(사 30:21). 다윗은 하나님의 일들에 대해 훌륭하게 가르침을 받았으나, 자기가 더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여러 번이나 자신의 판단을 믿을 수가 없었다. "주의 도로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주의 도로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도에 행하오리이다"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한 가지이다.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것과 우리가 택하여 행해야 하는 것은 진리의 도이기 때문이다.(시 119:30).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이시며, 우리는 그를 배우기도 하고 그 안에서 행하기도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도와 진리에 행할 수 없다. 그리고 그가 우리를 가르치실 것을 우리가 기대한다면, 우리는 그의 가르치심에 의해 다스림을 받기로 결심해야 한다(사 2:3).

(2) 올바른 마음.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믿음에 열심이게 하소서. 사곡한 자는 이중적인 마음을 지니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하나님과 세상으로 나뉘지 않고, 오직 일심으로 완전히 하나님만을 위하게 하소서." 우리 마음은 방황하며 해이해지기 쉬운 경향이 있다. 마음의 힘과 능력은 천 가지 낯선 것들을 찾아 방황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갖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통합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으로도 그의 봉사에 종사하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내 마음이 하나님을 위해 고정되고 그에게 견실하고 성실되며, 그를 섬기는 일에 열심히 되게 하소서. 그것이 통합된 마음이옵니다."

2.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의 표적을 위한 것이다(16,17절). 그는 여기에서 다음 세 가지를 기도하고 있다.

(1) 하나님께서 그에게 화평과 위로를 말씀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주께서 사랑하시며 또 친절하고 자상한 관심을 기울이셨던 자로서의 내게로 돌이키소서. 내 원수들은 나를 치려고 돌이키고, 나의 친구들은 나로부터 돌아섭니다. 주여, 주께서는 내게로 돌이키시고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주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을 아는 것은 내게 위로가 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구원을 역사하시고 그를 안전케 두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내게 힘을 주소서. 내게 힘을 넣으소서. 그리하여 내가 나 자신을 도울 수 있게 하소서. 나를 위해 주의 힘을 내소서. 그리하여 내가 나의 멸망을 구하는 자들의 손에서 구원될 수 있게 하소서."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진술하고 있다. "나는 주의 종입니다. 나는 태생이 그렇습니다. 나는 주의 여종의 아들로서 주의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주는 나의 당연한 주인이시며, 소유자이시고, 나는 주께 보호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의 것이오니 구원하소서." 일찍이 주께 바쳐진 경건한 부언의 자손들은 주의 구원을 탄원할 수 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가족의 훈련을 받고 자라난다면, 그들은 그 가족의 특권도 얻을 자격을 얻는다.

(3)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성을 부여하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은혜의 표징을 내게 부으소서. 주께서 내게 선을 행하시며 나를 위해 더 선을 행하실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타나게 하소서. 내게 대한 주의 은총을 나타내는 의심할 나위 없는 혁혁한 사례들을 내게 얻게 하소서. 그러면 저희가 보고 내게 대한 저희의 적의를 부끄러워하리이다. 마찬가지로, 여호와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신 자를 멸망시키고 괴롭히려고 노력하는 것은 헛되다는 것을 그들이 깨달을 때, 그들은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기쁨은 그들을 시기하는 자의 수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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