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시편 07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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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

재판장의 결의(시편 75:1-5)

이 대목에서는 다음의 내용을 살펴 볼 수 있다.

Ⅰ.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영예와 권세가 향상된 것과 하나님이 자기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여 주신 많은 일에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고 있다(1절).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에 대해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그리고 다시 "감사하나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사는 자주 되풀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긍휼을 추구할 때 자주 기도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우리가 그 긍휼을 얻고 났을 때, 한 두 번 감사드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나와 나의 모든 친구들도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긍휼을 함께 나누었다면, 우리는 그들의 찬송에도 그들과 연합해야 한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곧 우리 긍휼의 조물주께 감사함은(그리고 우리는 주께만이 합당한 그 영광을 그 도구들에게 돌리지 않겠습니다)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다윗에게 하신 주의 약속의 성취는 아주 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주께서 그들을 위해 이미 행하신 주의 기사를 전파하나이다."

다음을 명심하자.

1.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행하신 것, 즉 섭리의 일상적인 궤도와 우리의 기대를 초월하여 있으므로서 진정 "기사"(奇事)라 부를 수 잇는 많은 일들이 있다.

2. 이러한 기사는 주의 이름이 가까움을 선포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가 요청한 일 속에서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는 것, 그리고 그가 그의 백성을 위해 그의 목적과 약속을 이행하시어 어떤 큰 일을 행하시려 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3. 하나님의 기사가 그의 이름의 가까움을 선포할 때, 그에게 감사하는 것, 거듭거듭 그에게 감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Ⅱ. 그는 하나님 안에 둔 큰 신뢰에 의거하여 그의 능력을 잘 사용해야 할 의무를 그 자신에게 지우고 있다(2절).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을 당하면 정의로 판단하리이다." 여기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합당한 때에 자기에게 관련되어 있는 것을 완성시키시리라는 것, 비록 회중이 매우 느리게 그에게 모이고 그것에 대한 큰 방해가 있을지라도 마침내 뜻을 이루시리라는 것을 당연한 일로 간주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거룩하심으로써 말씀하신 것을 지혜와 능력으로써, 수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긍휼을 기대하고 있으므로 그는 자기의무를 마음에 둘 것을 약속하고있다. "내가 재판장일 때, 판단하리라. 정의로 판단하리라. 나를 앞서 간 자들처럼 공의를 무시하거나 악용하여, 선을 행하지도 못하거니와 해를 끼치는 그런 재판장이 되지는 않으리라." 다음을 명심하자.

1. 명예로운 직책으로 승진된 자들은 그들이 봉사하는 직책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며, 그들이 부름 받은 일을 부지런히 열심히 행해야 한다. 그는 "내가 정한 기약을 당하면, 내가 안 이를 취하고 위험을 부리며 공적인 업무를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리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그것을 친히 돌보리라"고 말하고 있다.

2. 공적인 업무는 매우 성실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판단하는 자들은, 사리(私利)를 생각지 말고, 공의의 원칙대로 정직하게 판단해야 한다.

Ⅲ. 그는 자기의 통치가 이스라엘에게 공적 축복이 되리라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약속하고 잇다.(3절). 그 나라의 당시 상황은 매우 나빴다. "땅과 그 모든 거민이 소멸되리라." 이전의 치세(治世)가 매우 타락하였으므로 모든 것이 파멸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부패한 풍습이 만연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악하고 불경스러운 것을 법으로 처형하는 일이 결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해 주신 주권 밑에 단결하는 힘이 결여 되었기 때문에 서로 나뉘었다. 그들은 서로가 갈라졌고, 도당과 파벌로 조각이 났다. 그러므로 그들은 멸망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땅의 기둥들은 내가 세웠다." 다윗은 사울의 시대에도, 공공의 안녕을 위해 할 수 잇는 것을 행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정권을 인수하면, 더 많이 행하고, 공중의 파멸을 막을 뿐만 아니라 공중의 힘과 아름다움을 회복하기를 꿈꾸었다. 이제

1. 파당들의 해악을 보자. 그들은 그 땅과 그곳의 기민 들을 소멸시켰다.

2. 한 사람이 얼마나 종종 떠받들고 있는가. 다윗이 그 기둥을 부축하지 않았다면 그 건물은 무너졌을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통치권에 적용될 수 있다. "세상과 그 모든 거민이 죄로 인해 소멸되었다." 사람의 배신이 모든 피조물을 멸망으로 위협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기둥을 지탱하셨다. 그는 그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심으로써 완전한 멸망에서 온 세상을 구원하셨고, 섭리 왕국의 행정권을 인수했다. 즉 그는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는" 자이다(히 1:3).

Ⅳ. 그는 그의 통치를 대적하는 자들을, 그의 직무로서 억압하는 그 악과 불경스러움을 보존하려고 분투 노력하면서 그의 즉위에 대항하고 그 경영을 방해하는 자들을 저지하신다(4,5절). "내가 오만한 자더러 행치 말라 하셨노라." 다윗은 사울 시대에 그들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가 그들을 제지할 수 있는 권세를 갖지 않았을 때일지라도 그는 그들을 책망하며, 그들에게 좋은 권고를 할 지혜와 은혜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그들이 그 불행한 왕의 호의를 자랑하고 있었을지라도, 그는 그들에게 너무 건방지지 말라고 경고했다. 또는, 오히려 그는 이제 그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 마자, 악습과 불경스러움을 치겠다고 선포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그 내용을 알아보자.

1. 천하고 비겁한 죄인들, 자기 자신을 타락시킨 이스라엘의 우매한 자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만히 행치 말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과 그가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너희가 거슬러 행하는 동안. 실상은 너희의 이성과 이원에도 직접적으로 역행하는 것이니, 그런 일을 행하지 말라."

그리스도, 곧 다윗이 자손은 우리에게 이러한 권고를 하신다. 즉 "오만히 행치 말라" 는 칙령을 발포하신다. 하나님으로 우리의 지혜가 되게 하시는 그는, 우리에게 지혜를 명하면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기를 명하신다.

2. 교만하고 대담한 죄인들, 하나님께 도전하는 행악자들에게 그는 말하고 있다. "뿔을 쳐들지 말라. 너희 권세와 특권을 자랑하지 말라. 너희 위에 있는 통치권에 대한 완고한 불복종과 경멸을 고집하지 말라. 마치 너희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고, 너희가 하려는 것을 행할 수 있다는 듯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라.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하나님의 뜻에 결코 굽히려 하지 않는 것은 부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목이 곧은 자들은 그렇게 되어 멸망한다." "산마다 낮아지리"라는 것은(사 40:4)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있는 그의 명령의 말씀이다. 적 그리스도의 권세가 그 머리와 뿔로 그리스도에게 대적하여 머리와 뿔을 들지 않게 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반드시 산산조각으로 부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교만한 목으로 말한 것은 상한 심령으로 다시 취소되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멸망한다. 바로는 곧은 목으로 "여호와가 누구이뇨?"하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쓰라린 경험을 통해 알게 하셨다.

 

75:2 없음.

 

75:3 없음.

 

75:4 없음.

 

75:5 없음.

 

75:6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시편 75:6-10)

이 귀절들 속에서 우리는 그가 이전에 말했던 것을 확증하기 위해 제시한 두 가지 큰 원칙과, 거기에서 이끌어낸 두 가지의 훌륭한 추론을 볼 수 있다.

Ⅰ. 여기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에 관한 두 가지 큰 진리가 제시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에 믿음을 결합시켜야 하는데 이 두 가지 진리는 다음의 이유로서 매우 타당하다.

1. 왕들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그들의 권세를 얻는다.(6, 7절).

그러므로 하나님께만 다윗은 자기의 승진에 대한 찬미를 드리려 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권세를 얻었으므로 그것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다윗에 대적하여 뿔을 든 자들은 우매한 자들이었다. 우리는 나라의 일에서 이상한 변혁을 볼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갑작스럽게 수치를 당하나 어떤 사람은 승진하는 것을 보고 놀란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 날 때면, 우리 주위는 온통 이러한 변화로 가득 찬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그것을 일으키는 장본인을 바라보도록 지시 받고 있으며, 권력의 근원이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서 그것을 촉진시키는 힘이 나오는가를 배운다. 나라를, 그 통치권을 높이는 일이 어디에서 말미암는가? 그리고 나라에서 권세와 신용의 지위를 높이는 일이 오다 에서 말 미아는? 전지의 것은 백성들의 의사에 의존하지 않으며, 후자의 것도 왕의 의사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것은 모두 모든 마음을 쥐고 계시는 하나님의 뜻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승진을 추구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올바로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듣는다.



(1) 소극적으로, 우리가 권세의 근원을 찾아서는 안 되는 곳은 어디인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사막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한다." 즉, 예루살렘 북방에 있는 사막이나 남방에 있는 그것에서 말미암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승진의 미풍이 그 둘레의 어느 지점에서 불어오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되며, 오직 위로부터, 직접 거기에서 오리라고 기대해야 한다. 사람들은 동방의 자손들의 지혜나 재물에 의해, 또는 서쪽에 놓여 있는 이방인들의 섬의 무수한 군대나 남쪽에 놓여 있는 애굽 혹은 아랍의 군대에 의해 높임을 얻을 수 없다. 제 2 원인의 일치된 미소가 제 2 원인 없이 사람을 높이지는 못할 것이다. 박학한 로이드(LIoyd) 주교는 이러한 주석을 달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힘의 원천을 얻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그것이 오는지를 몰랐다. 일반적으로 점성술을 받아들인 동방 민족들은 그것이 그들의 별로부터, 특히 그것이 그들의 신인 해로부터 오는 것으로 믿었다. 아니다, 다윗은 말하고 있다. 그것은 동해서나 서에서, 이러한 운성이나 성좌가 떠오르는 곳이나 지는 곳에서, 남에서 또는 해나 어떤 별이 중천에 떠있는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Serm in Lo). 다윗은 북방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권세가 그곳에서 오리라는 추측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북방을 의미하는 그 단어가 은밀한 곳을 의미하고 있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의 비밀이나 예루살렘 북쪽에 놓여있는 시온의 신탁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승진의 바람만큼 좋은 바람은 없으며, 그 바람을 쥐신 자가 명하시는 것만큼 좋은 바람은 없다.

(2) 적극적으로, 하나님은 재판장, 다스리는 자 또는 심판자이시다. 여러 무리들이 상을 타려고 다툴 때, 그는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가 합당하게 여기시는 대로,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신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절대적으로 행하신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들의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을 질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무한히 지혜롭고 거룩하고 선하신 그가 자기가 원하는 자를,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법으로 낮추기도 하고 높일 수도 있는 독단적이고 전제적인 권세를 갖고 계시다는 것은 해롭거나 위험스럽거나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왕들이 즉위하는 것은 하나님에 의한 것이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이 하나님께 대해 책임을 지고서 그를 위해 통치해야 하는 좋은 이유이다.

2. 모든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각자의 운명을 받는다(8절). "여호와의 잔에 손이 있다." 그는 여러 가지 성분이(그가 합당하게 생각하는 대로) 섞인 섭리의 잔, 고통의 잔을 사람의 자손들의 손에 놓으신다. 그리스도 고난은 잔이라 불리우고 있다. (마 20:22; 요 18:11). 죄인들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심판도 "여호와의 오른 손의 잔"이다(합 2:16).

"술거품이 일어난다는"말은 하나님의 진노를 시사하고 있는데, 그것은 죄인들에게 임한 심판 속에 부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환난과 비참함 속에 있는 번 민과 고뇌이다. 그것은 불처럼 붉고, 피처럼 붉다. 왜냐하면, 그 진노는 타며,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하다." 그 목적에 응답할 수 있도록, 지혜 가운데 마련되었다. 고통의 잔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손에 놓여질 때, 그 속에는 긍휼과 은혜가 섞여 있으며, 그것이 악인의 손에 놓여질 때에는 저주가 섞인다. 즉 그것은 담즙이 섞여있는 술이다. 이 대접들은



(1) 모든 사람 위에 부어진다(계 15:7; 16:1 참조. 여기에서 우리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을 땅에 쏟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이 진노의 방울이 우연히 선한 사람들 위에 떨어질 수 도 있다. 하나님의 심판이 널리 퍼질 때, 그들도 그 공통적 재앙을 함께 겪는다.

(2) 그러나 그 잔의 찌끼는 악인들을 위해 간직된다. 재앙 자체는 그 진노와 저주가 담겨있는 그릇에 불과하며, 그 맨 윗 부분에는 혼합물이 거의 없다. 그러나 그 침전물은 순진한 진노이며, 죄인들의 몫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들은 지금의 양심의 공포 속에서 그리고 후에는 지옥의 형벌 속에서 그 잔의 찌끼를 마신다. 그들은 한 방울의 진노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기울여 마실 것이다." 왜냐하면 저주가 "물처럼 그들의 배에," "그리고 기름처럼 그들의 뼈에 들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주의 진노의 잔은 그들에게 떨림 의잔, 곧 영원한 떨림의 잔이 될 것이다(계 14:10). 악인의 잔은 그가 이 세상에서 형통하는 동안에도, 속에 썩은 것이 가득하며 그 밑바닥은 가장 쓰다. 악인의 심판의 날까지 남겨 두어진다.

Ⅱ. 여기에 이러한 큰 진리들 속에서 이끌어낸 두 가지의 좋은 실질적인 추론이 있다. 그것들은 그가 이 시편을 시작할 때 언급한 것과 꼭같은 의무에 관한 취지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1.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승진시키신 그 권능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에게 영광 돌릴 것이다. "나는 주의 기사를(1절) 선포하리로다." 그는 긍휼이 선명하게 느껴졌던 처음에 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신 것에 대해 찬양할 것이다. 다윗의 자손이 높이 들리 우심은 성도들의 영원한 찬양이 주제가 될 것이다. 다윗은 그것이 하나님의 종, 야곱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으므로 자기를 왕으로 만드셨다는 사실을 알고서, 자기의 하나님으로써 뿐만 아니라 야곱의 하나님으로서의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이다.

2. 그는 그의 손에 맡겨진 권세를 그 위대한 목적을 위해 사용할 것이다(10절, 그리고 앞의 2, 4절).

높은 권세를 지닌 자들의 의무를 따라



(1) 그는 행악자들을 두렵게 하고, 그들의 교만을 낮추고, 그들의 힘을 꺽기로 결심하고 있다. "비록 악인의 머리를 모두 베지는 않더라도, 그들이 그 불쌍한 이웃을 찌른 그 뿔을 다 베리로다. 나는 그들이 죄악을 행하지 못하게 만들리라." 이처럼 하나님은 "유다와 이스라엘 땅을 헤친 열 국의 뿔을 떨어뜨릴" 목수들을 세울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슥 1:18-21).

(2) 그는 선행하는 자들을 보호하고 칭찬해 줄 것을 결심하고 있다. "나는 의인의 뿔을 높이 들리라." 의인들은 권세의 자리로 발탁될 것이다. 그리고 선하며, 선을 행할 마음을 지닌 자들은 선을 행할 능력과 기회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다윗의 결심과 일치하고 있다(101:3 이하). 여기에서 다윗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즉 그리스도는 그 입기운으로 악인을 죽이실 것이나, "의인의 뿔은 영화로이 드실" 것이다(112:9).

 

75:7 없음.

 

75:8 없음.

 

75:9 없음.

 

75:10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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