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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

환난 중에 있는 다윗의 간구(시편 55:1-8)

이 귀절들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가 있다.

Ⅰ. 다윗의 기도. 기도는 모든 상처의 약이 되며, 모든 고통 속에 있는 심령에게 위로가 된다.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어소서(1,2절). 그는 그가 환란 중에서 하나님께서 올렸던 탄원을 기각시키지 않고 있으며, 간구할 때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로 들어올린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그것에 대한 화평의 응답을 내려 주실 것을 간청하고 있다.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사울은 다윗의 탄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그의 다른 대적들도 그의 탄원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여 내게 귀를 기울여 주소서. 내가 간구할 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또 그것을 중히 여기지 않는 자처럼, 그리고 그것을 주시하지 않는 것같이 보이는 자처럼, 또는 불쾌하게 여기는 즉, 내게 노하여 내 기도에도 노한 자처럼 숨지 마소서." 만일 우리가 기도 속에서 진심으로 우리 자신과 우리의 형편과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열어 놓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그 자신을 그리고 그의 은총과 그의 위로를 우리에게 숨기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Ⅱ. 다윗의 울음. 여기에서의 다윗은, 슬픔이 가득한 자였고, 때때로는 눈물도 흘리셨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2절). "내가 근심으로(또는 묵상, 우울한 명상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하나이다. 나는 내 주위 사람들이 내게서 발견하는 이러한 한숨과 신음, 그리고 근심에 찬 그밖의 표현들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큰 근심은 때로 소란스럽고 시끄러우며 눌려있는 감정들이 들고일어날 때, 이처럼 어느 정도 위축되고 또 노기를 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그러했는가? 그것은 "원수의 소리의 연고"였다. 즉, 후에 대제사장들이 민중을 선동하여, 그로 하여금 다윗의 자손에 대해 "저를 처치하소서-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하고 외치게 만들었던 것같이, 허세를 부리고 호통을 치며 백성들을 선동하여 다윗을 대적하여 외치게 하고, 그를 그의 궁과 수도에서 몰아내게 만든 압살롬 무리의 위협과 공격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윗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만든 것은 원수의 소리뿐만 아니라 그들의 압제,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그의 곤고함이었다. "저희가 죄악을 내게 더 하나이다." 그들은 다윗의 통치가 실정이라"라고 그를 책망할 수가 없었고 그의 어떤 압제나 불의의 행위를 증명할 수도 없었으나, 그를 중상했다. 비록 그들이 왕으로서의 신임에 관한 죄악을 그 어느 것도 그에게서 발견할 수 없었을지라도, 그들은, 온갖 모양의 죄악을 그에게 더하였고, 그는 추방하기에 합당한 폭군이라고 백성들에게 알렸다. 결백 그 자체가 난폭하고 거짓된 혀를 방어해 주지는 못한다. 그들은 괜히 그를 미워했다. 아니 노하여 과격한 감정, 무자비한 증오, 그리고 뿌리 깊은 악의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사람도 다윗을 미워하게 할 수 있도록, 그를 추악한 자로 여기도록 만들기 위해 궁리했다. 이것이 그를 슬프게 했다. 그리고 그가 백성들의 총아로서 "다윗-사랑 받는 자"라는 이름이 응답되었을 때를 기억할 때 그것은 더욱 그를 슬프게 했다.

Ⅲ. 떨림과 큰 두려움 속에 있는 다윗. 우리는 압살롬의 음모와 백성들, 심지어 그가 거의 의심할 수 없었던 자들까지도 그를 배반한 것이 밝혀졌을 때 그가 그러했으리라는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1. 어떠한 공포가 그를 사로잡고 있었는가를 보라. 다윗은 매우 용감한 자였다. 그리고 우리는 몇 가지 사례에서 그의 용감성을 현저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사태가 매우 위험하고 긴박했을 때 그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제 다윗의 "마음이 그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그에게 미쳤다"(4절). 마음의 두려움과 육신의 떨림이 그에게 따르고 황공함이 그를 덮었다(5절). 외적인 두려움이 없을 때에도 내적으로 공포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압살롬의 반란 때였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와의 일을 부응하신다는 그의 죄에 대한 상기는 그에게 더욱 두려움을 가중시켰다. 때로 다윗의 믿음은 어떤 면에서 그를 두려움 없게 만들었고, 그는 대적들에게 포위되었을 때에도 "나는 사람이 내게 무엇을 행하든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고 담대히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두려움이 그를 이기고 압제하였다. 왜냐하면 아무리 훌륭한 자들이라도 믿음 속에서 언제나 강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 그가 이 두려움 속에서, 그의 원수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그들의 압제를 보지 않게 되는 광야로 멀리 가기를 얼마나 원하고 있는가를 보라. 그는 기도로 하나님께, 묵상 속에서 그 자신에게 그리고 호소로써 그의 친구들에게 "내가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으면"하고 말했다(6절). 그는 때로 예루살렘을 사랑했었으나 이제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차라리 없어지는 편이 좋을 반란의 성읍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선지자처럼 그가 "광야에서 나그네의 유할 곳을 얻고 그렇게 하여 그 백성을 떠나가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패역한 자의 무리"였기 때문이었다.(렘 9:2). 이것은 그 계획이 폭로되자, "일어나 도망하자 빨리 가자"(삼하 15:14)라고 말한 다윗의 결의와 일치하고 있다. 다음을 관찰하자.

(1) 그는 어떻게 도망하려 했는가? 그는 대적들에게 포위되어 있었으므로, 그가 날개를 타지 않고서 어떻게 도망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내가" 매섭게 날아가는 매처럼이 아니고, 날렵하게 날아가는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으면"하고 바라고 있다. 그가 날개를 원하는 것은 먹이를 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 비둘기의 날개는 비둘기 같은 영을 소유한 자에게 가장 합당했으므로, 독수리의 날개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비둘기는 나즈막하게 날으며, 될 수 있는 한 빨리 피난처를 택하는데 다윗도 이처럼 날아가고자 했다.

(2) 그는 어디에서 피하려 했는가?-폭풍을, 성읍을 휩싸고 있는 소요와 폭풍을, 그리고 그가 지금 당하고 있는 위험을 피하려 했다. 여기에서 그는 소란을 참지 못하는 비둘기와도 같았다.

(3) 그가 이 도피에서 노렸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승리가 아니라 안식이었다. "내가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6절). 내가 평온히 있을 수 있다면, 그곳이 아무리 멀고 소름끼치는 불모의 광야라 할지라도, 그곳으로 날아가리라"(7절). 침묵과 고독 속에서의 평화와 조용함은 가장 지혜롭고 선한 자들도 매우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며, 그들이 주위에 있는 것들의 소란함으로 신경이 날카로와지고 지쳤을 때, 더욱 갈망하는 것이다. 은혜로운 영혼은 이 세상의 분주함과 소란함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자기 자신을 달콤하게 즐길 수 있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 참된 평화가 있다면, 그러한 은거 속에서 그 평화를 즐기는 자들은 그들이다. 죽음이 이 세상의 모든 폭풍과 광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종착역으로서, 완전하고 영원한 안식을 가져다주리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자손들로 하여금 죽음을 열망하게 만든다.

 

55:2 없음.

 

55:3 없음.

 

55:4 없음.

 

55:5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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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7 없음.

 

55:8 없음.

 

55:9

예언적인 저주(시편 55:9-15)

다윗은 여기에서 그의 대적들을 원망하고 있다. 그들의 사악한 계획은 그의 믿음을 끝나게 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지혜를 끝나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예언의 영에 의해 그들을 대적하여 기도하고 있다. 다음을 살펴보자.

Ⅰ. 그가 두려워한 대적들의 성질을 보자. 그들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악한 종류에 속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그의 서술은 압살롬과 그의 무리에 매우 잘 부합되고 있다.

1. 그는 예루살렘 성을 원망하고 있다. 예루살렘은 이상하게도 압살롬에게 함락되며 다윗으로부터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그곳에는 그가 어찌 신실하던 저 도성이 창기같이 되었는고! 다윗은 이 표현을 다른 곳에서 빌어 오지 않았다. 다름 아니라 그 자신의 눈으로, 그리고 슬픈 마음으로,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 밖에는 그 어느것도 보지 못했던 사실에서 끌어왔다(9절). 왜냐하면 그들이 다윗을 싫어하게 되고 또 불충성하게 되었을 때는, 그들 서로에게도 악을 행했기 때문이다. 그가 성벽 위로 두루 다니고, 파수를 선다면, 주로 그 주위에 강포와 분쟁이 있음을 보았을 것이다(10절). 그 폭도들이 그 성을 요새화하는데 사용했던 모든 기술과 방법은 강포와 분쟁에 사용되었으며, 그들 가운데에는 정직이나 사랑이라곤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성의 심장부를 살펴보았을 때, 그 가운데에는 재앙과 않았다. 그가 성의 심장부를 살펴보았을 때, 그 가운데에는 재앙과 해침, 상호적인 잘못과 분노가 있었다. "악독이," 모든 모양의 악독이 "그 중에 있었다. 악독이 합법화되었다." 악법과 궤사, 그리고 온갖 모양의 배신 행위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않았다"(11절). 이것은 다윗의 친구들에게 대한 그리고 그에게 견실하고 충성된 자들이라고 그들이 알고 있었던 자들에 대한 그들의 야비하고 잔인한 처사를 의미하는 온갖 죄악을 그러한 자들에게 행했다. 이것이 왕성인 그리고 더구나 거룩한 성인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이며, 다윗의 시대에도, 즉 이스라엘의 심판과 증거의 보좌가 거기에 자리잡은 직후에도 예루살렘은 그러했는가? "그 사람들이 온전한 영광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애 2:15). 하나님의 제사장들의 본거지인 예루살렘이 이처럼 악한 가르침을 받았는가? 예루살렘이 그 혁혁한 설립자인 다윗 자신에게 배은망덕해질 수 있으며, 또 그가 그 안에 거할 수 없을 정도로 그에게 매우 분노할 수가 있는가? 우리는 땅 위에 있는 이 교회의 부패함과 무질서함에 놀라지 말고 강포나 분쟁이 없는, 죄악과 궤사가 없는, 그리고 어떤 불결한 것이나 소요케 하는 것이 돌아오지 못할 새 예루살렘을 보기로 열망하도록 하자.

2. 그는 질투를 조장하고 그와 그의 정부에 대해 오도하고 그 성을 자극시켜 그를 치도록 하는 일에 매우 열심이었던 그 모의의 주모자 중의 한 사람을 원망하고 있다. 마치 다윗이 자기의 권력을 남용하거나 소홀히 다루기나 했던 자인 양 다윗에 대한 비난이 있었다. 왜냐하면 압살롬의 악의에 찬 말은 이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네 송사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삼하 15:3). 이러한 것과 이 비슷한 고발이 백성들 사이에 열심히 퍼졌다. 그러면 그 일에 매우 적극적인 자는 누구였는가? "어떤 숙적이나 시므이나 선서를 거부한 어떤 사람이 아니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었다면 나(다윗)는 그것을 참을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로부터 더 나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그리고 우리는 그가 시므이의 저주를 얼마나 참을성 있게 견디었는가를 알고 있다). 나를 미워한다고 고백한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를 경계했을 것이고 그로부터 내 자신과 계획을 숨겨 그가 나를 배반할 힘이 없도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로다"(13절). 갈대아역 해설 판에는 여기에서 의미하고 있는 자가 아히도벨이라고 들고 있는데,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함께 모반자들 가운데 있었다는 것(삼하 15:31)을 듣는 것만큼 다윗을 낙담하게 만든 음모는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왕의 모사였기 때문이다(대상 27:33).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 내가 내 자신처럼 여겼던 자, 내 자신이던 자, 내 모든 비밀을 나누었던자, 그리고 내 자신처럼 내 마음을 알고 있었던 자, 내가 함께 의논하고 내 모든 일을 권고해 주던 그리고 내가 협의회의 회장과 나라의 수상으로 만들었던 나의 동무-나의 가까운 친우, 다정한 친구로다. 이 자가 지금 나를 모욕하고 있는 자로다. 나는 그에게 친절을 베풀었으나 나는 그가 이처럼 내게 비열하게 배은망덕 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신뢰했었으나 나는 그가 이처럼 비열하게 배반했다는 것을 이제 알았도다. 만일 내가 그에게 그처럼 많은 존경을 보이지 않았다면, 그는 그가 행하고 있는 이 피해의 절반도 내게 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한 소박한 마음을 몹시 상하게 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 배반자는 성자와도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결코 다윗의 흉금을 털어놓는 친구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14절). "우리가 같이 의논하며 매우 즐겁게 신앙적 대화를 나누는 데 같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또는 하몬드(Hammond)박사의 풀이대로 "우리가 같이 집회에 참가하였다. 나는 그에게 거룩한 의식의 자리에서 동료로 삼는 의사 표시를 했다. 그리고서 우리는 공중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안에서 다녔도다." 다음 사실들을 유의하자.

(1) 보이는 교회에는, 선과 악, 온전한 것과 온전하지 못한 것이 항상 섞여 있었고 또 앞으로도 항상 섞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자들을 아마도 한참 동안은 구별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감찰하시는 자는 구별하신다. 다윗은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의 집에 갔었으나, 그와 동행했던 아히도벨은 가식적으로 갔었다. 바리새인과 세리는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함께 갔었다. 그러나 조만간에, 온전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명백히 밝혀질 것이다.

(2) 간계는 그 자체가 유행되고 있는 도안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 신앙고백을 하게 하며 소용도 있을 것이다. 경건한 다윗의 궁중에는, 아히도벨보다 더 헌신적인 사람이 없었으나, 그의 마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지 못했다.

(3) 우리는 신앙과 우정이라는 이 두 가지 신성한 것을 크게 가장하고 있는 어떤 사람들에게 슬프게도 속임을 당하더라도, 놀라서는 안 된다. 다윗 자신도 매우 지혜로운 자였지만, 이처럼 속임을 당했던 것이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이와 비슷한 실망을 더 잘 참을 수 있을 것이다.

Ⅱ. 그들을 대적하는 다윗의 기도를 보자. 이 기도는 하나의 예언이다. 우리는 이것을 매우 두려워해야 함과 동시에 여기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어떤 특별한 적을 대적하여 이런 기초를 모방해서는 안 된다.

1. 그는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짓는 자들을 흩으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렇게 해하실 것을 기도하고 있다(9절). "주여 저희를 멸하소서, 저희 혀를 나누소서. 즉 그들끼리의 의견이 일치하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그들의 모의를 시들게 하고, 그들이 서로 충돌하게 하소서. 그들 가운데 악한 신을 보내서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를 시기하며 질투하게 하소서." 이 기도는 아이도벨이 후새의 의견을 따름으로써 어리석음을 쫓게 되었을 때 응답 받았다. 하나님은 흔히 교회의 대적들을 나눔으로써 그들을 멸하신다. 분열보다 더 분명하게 그 백성을 멸망케 하는 길은 없는 것이다. 한 나라, 한 세력이 그 자체에 대적하여 나누일 때, 그것은 오래 설 수가 없다.

2. 하나님께서, 모세를 대적하는 모의를 한 다단과 아비람, 그리고, 그들의 모든 소속들에 대해 땅이 입이 열린 음부였으므로,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셨던 것처럼, 그들을 멸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이것은 그 당시 하나님께서 수행하셨던 새로운 일이었다(민 16:30). 그러나 다윗은 그것이 지금 되풀이 될 수 있기를, 또는 그와 동등한 일이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하고있다(15절). "사망이 거룩한 명령에 의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여 산채로 음부에 내려갈지어다. 저희가 죽어 묻히고, 그리하여 곧 완전히 멸망할지어다. 왜냐하면 사악함이 그들이 있는 그곳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 가운데 있다."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의 영혼은 음부로 빨리 내려갈 것이며 또 살아서 내려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비참함을 완전히 자각하며. "따라서" 그들이 계속 살아 있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비참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기도는 은밀히 또는 공개적으로 주님의 메시야를 대적하고 반역하는 모든 사람들은 완전히, 결국, 그리고 영원히 멸망한다는 예언이다.

 

55:10 없음.

 

55:11 없음.

 

55:12 없음.

 

55:13 없음.

 

55:14 없음.

 

55:15 없음.

 

55:16

하나님께 대한 신뢰(시편 55:16-23)

대목에서 다음 사실들을 엿볼 수 있다.

Ⅰ.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 헛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매우 확신하고 있으므로, 하나님께 간청하고자 하는 그의 결심을 끈기있게 밀고 나가고 있다(16절). "그들이 스스로를 안전케 하기 위해 자기들이 기뻐하는 방법을 택하고 강포와 분쟁이 그들의 호위병이 될지라도, 기도는 나의 것이 되리라. 이 속에서 내가 위로를 발견했으므로 나는 이것을 따르겠다.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그리고 내 자신을 그들에게 의탁하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누구든지 올바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그는 이 의무를 매우 열렬하게 그리고 자주 행하기로 결심하고 있다.

1. 그는 뜨겁게 기도할 것이다.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로다. 내가 묵상하리로다(앞의 단어가 이런 한 뜻을 의미하고 있다). 내가 내마음을 말할 것이며, 그 기도는 거기서 나오리라."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으로써 기도할 때, 먼저 생각하고 나서 우리의 생각을 기도로 오릴 때, 우리는 바르게 기도하게 된다. 기도의 참된 성격은 하나님께로 마음을 들어올리는 것이다. 묵상한 후에 그는 부르짖을 것이나. 그의 음성의 열렬함과 진지함이 그것을 더욱 일깨워 줄 것이다.

2. 그는 자주, 매일 그리고 하루에 세 번-"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기도할 것이다. 이것은 그의 평소의 습관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는 환란 가운데 있을 때 비로소 기도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항상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가, 환란이 와 더욱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다면, 우리는 환란을 당했을 때에도 은혜의 보좌로 더욱 담대히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루의 세 번의 식사가 몸에 충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더욱 나아가 하루의 세 번의 엄숙한 기도가 영혼에 충족치 않다고 생각해야 하며, 그것을 노역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간주해야 하다. 우리가 아침에 하나님과 함께 그날을 시작하고 저녁에 그와 함께 그날을 끝내는 것이 합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날의 정오를 우리가 잠시 은거하여 그와 교제하는 것이 합당하다.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것이 다니엘의 습관이었으며(단 6:10), 정오는 베드로가 기도하던 시간 중에 하나였다(행 10:9). 우리는 자주 기도하는 것을 지루하게 여기지 말자. 왜냐하면 하나님은 들으시기를 지루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내음성을 들으실 것이며, 너무 자주 온다고 해서 나를 욕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오히려 빈번할수록 더욱 좋고 더 환영받을 것이다."

Ⅱ. 그는 하나님께서 합당한 때가 되면 그의 기도에 대한 평강의 응답을 주시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1. 그 자신은 구원될 것이며, 그의 두려움은 방지될 것이다. 믿음의 훈련을 위해 그를 매우 혼란케 했던 그 두려움은 이제 진압되었고, 그는 소망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다(18절). "하나님이 내 생명을 구속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즉 하나님이 다윗의 생명을 구속하실 것이다. 다윗은 구원이 이미 역사적 것처럼 그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의 대적들은 그와 교전 중이었고, 그 싸움은 그를 대적하는 것이었으나, 하나님은 그를 구속하사, 평안하게 하셨다. 즉, 마치 그가 결코 위험에 처해 있지 않았던 것처럼 큰 위로를 베풀어주셨다. 하나님께서 그를 건지시다 승리하게 한 것은 아니지만. 그를 평안으로, 즉 내적 평안으로 건지셨다. 하나님은 그의 영혼을 구속하시어 평안케 하셨다. 이내와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기쁨으로 다윗은 그것을 굳게 소유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으로써,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빌 4:7) 자들은 안전하고 편안하다. 놀람 가운데에서 다윗은 모두가 자기를 대적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자들이 자기와 함께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세력은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나았음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에 대한 영광을 하나님께 일으켜 주시고, 그들이 우리에게 친구가 필요할 때 우리에게 친구를 일으켜 주시고, 그들이 우리에게 성실하도록 만드시는 자는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다윗과 함께한 자들이 많았다. 비록 그의 신하들은 그를 버리고 압살름에게로 갔을 지라도, 하나님과 그 선한 천사들은 그와 함께 있었다. 믿음의 눈으로써 그는 엘리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불말과 불병거가 자기를 둘러싼 것을 이제 보았으므로, 이처럼 개가를 부르고 있다. "나와 함께 한 자가 나를 치려는 자보다 더욱 많으니라"(열하 6:16, 17).

2. 그의 대적들은 문책 당할 것이며, 꺾여질 것이다. 그들은 협박으로써 다윗을 놀라게 했었으나(3절), 여기에서 다윗은 이전보다 더욱 심하게 그들을 놀라게 하고, 그들을 떨게 만들기에 충분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다윗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써 그들 자신을 두려움에서 구할 수도 없었다.

(1) 다윗은 그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시리라는 것을 예시하는 이유로서 여기에서 그들의 성품을 제시하고 있다

[1] 그들은 사악하며 불경스럽고 하나님을, 그의 권세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않다(19절). "그들은 변치 아니하며(그들의 지속적인 형통함에 어떤 환란이나 장애물이 없으며 그들의 그릇 그릇을 비우게 할 난관도 없다)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도다. 그들은 계속 하나님과 믿음을 소홀히 여기고 경멸하는데, 이것이 그들의 모든 사악함의 원인이며, 이것에 의해 그들은 필연코 멸망당할 운명을 갖게 된다."

[2] 그들은 배반을 잘하고 거짓되다. 그리도 가장 신성하고 엄숙한 계약도 지키려하지 않는다(20절). "저는 손을 들어 자기와 화목한 자를, 즉 결코 그를 화나게 한 일도 없고 또 그들과 싸울 만한 이유를 그에게 주지 않은 자들을 쳤도다. 아니, 자기에게서 친절을 기대하도록 온갖 언약했던 자들을 치고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언약을 깨뜨려 이 모두에 대한 그의 서약을 불성실하게 파기했다." 이것보다도 더욱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것은 없다.

[3] 그들은 죄악을 도모한는 반면에 우정을 가장할 정도로 비열하고 위선적이다(21절). "그 입은(아마도 그는 특별히 아히도벨을 의미하고 있을 것이다) 우유기름보다 미끄러워도, 즉 이 정도로 그는 탐심이 많고, 이처럼 거리낌없이 존경과 친절을 입으로 고백하고 봉사를 자원하여도 동시에 그 마음은 전쟁이요, 이 모든 예절은 단지 전략에 불과했다. 그리고 바로 이 말들은 그 속에 매우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으므로, 심장을 찌르려고 뽑힌 칼이로다." 그들은 사람의 얼굴에 미소하나, 입맞추고 죽인 요압처럼, 동시에 그 사람의 목을 벤다. 사탄이 바로 이러한 적이다. 그는 사람들을 감언이설로 속여 멸망으로 이끈다. "그가 그럴 듯한 말을 하더라도 그를 믿지 마라."

(2) 다윗은 여기에서 그들의 멸망을 예고하고 있다.

[1] 하나님은 그들을 괴롭게 하시고 그들을 곤경과 놀람속으로 빠뜨릴 것이며, 그의 백성들을 괴롭혔던 그 시련은 그들에게 갚으실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백성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될 것이다. "태고 떼부터 계신 하나님이 "영혼부터 하나님이시며 태초에 재판장을 앉히시고 항상 사람의 자손들의 일을 주관하셨던 하나님이 "들으시고 보응하시리로다." 압제 당하는 자들에게 무섭게 말씀하실 것이다. 죽어야 하는 아무리 높고 강하더라도 불후의 하나님에 의해 쉽게 박멸될 것이며, 인간은 하나님과는 결코 겨룰 수 없다. 성도들은 교회의 적들의 위협적인 세력을 언급할 때, 이러한 사실로써 그들 스스로 위로했다(합 1:12). "여호와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나이까?"

[2] 하나님은 "저희로" 흙 속으로 뿐만 아니라 "파멸의 웅덩이에, 멸망"이라 불리 우는(욥 26:6) 끝없는 웅덩이에 "빠지게" 하실 것이다(23절). 그는 그것이 그들의 교만을 꺾고 그들을 변하게 하는가를 보기 위해 그들을 괴롭히신다(19절). 그러나 그들이 그것에 의해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그들을 파멸시킬 것이다. 환란의 막대기에 의해 교정되지 않는 자들은 분명 파멸의 웅덩이에 빠질 것이다. 그들은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즉, 가장 악한 자들)이므로, "저희 날의 반도 사질지 못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살기를 기대하는 그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달수가 그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 날의 중간에서 시기상조의 죽음에 의해 그들을 자르시기를 결정하셨다. 그들은 피를 흘리게 하는 자들이었고, 또 다른 사람들을 베어 버렸으므로, 하나님도 마땅히 그들을 베어 버리실 것이다. 그들은 속이는 자들이었고,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할 것의 반을 횡령했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감하시지는 않을지라도, 그들이 헤아려서 믿고 있는 것들을 감하실 것이다.

Ⅲ.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도록 그 자신과 모든 선한 백성들을 격려하고 있다. 그 자신도 그렇게 하기로 결심하고 있다(23절).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 자신의 분별이나 힘이나 공로를 의지하지 않고 주의 섭리와 능력과 긍휼을 의지하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이 저희 날 도중에 끊어지더라도, 나는 주에 대한 믿음에 의해 계속 살리이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다른 사람도 행하도록 권하고 있다(22절).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짐을 진 네가 어떤 사람이든, 그리고 그 짐이 어떠한 것이든, 그 짐을 맡기라. 네 예물을 여호와께 버리라"(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그렇게 풀이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네가 즐길 수 있는 어떤 축복을 하사하였든지 간에, 그것을 모두 그의 관리에 맡겨 버리라." 또는 "하나님께서 네게 주기를,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그가 그의 방법대로 그리고 그가 합당케 여기시는 때에 주시도록 그것을 그에게 맡기라. "칠십인 역에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로 풀이되어 있으며, 베드로도 이것을 인용하고 있다(벧전 5:7). 근심은 짐이다. 그것은 마음을 번뇌케 한다(잠 12:25). 우리는 믿음과 기도로써 근심을 하나님께 맡겨버려야 하며, 우리의 길과 사업을 그에게 의탁해야 한다. 주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게 하라. 그러면 우리는 만족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 우리 짐을 맡겨 버리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그의 섭리와 약속에 의뢰하는 것이며, 모든 일이 잘 되리라는 확신 속에서 매우 편케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약속된다.

1. 그는 우리를 부양해 줄 것이다. 우리를 도와주고 필요한 것을 고급해 주실 것이며, 보모가 젖먹이 아기를 데려 가듯이 우리를 그의 능력의 팔로 데려가 주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그 연약함을 견뎌낼 수 있도록 그의 성령으로써 영혼을 강하게 하실 것이다. 그는 우리 근심과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는 그 환란으로부터 우리를 즉시, 자유롭게 해 주시겠다고는 약속하시지 않았다. 그리나 그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받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가 시험 당하는 것을 이겨낼 수 있도록 만드실 것이다.

2. 그는 결코 의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의무나 그에 대한 위로가 끊어지도록 하는 어떤 환란에 의해 요동하거나 흔들리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그들이 영원히 요동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을 것이다(어떤 사람은 그것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비록 그들이 쓰러지더라도 완전히 쓰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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