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시편 14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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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1
새 노래 - 본 시편의 전반적인 분위기로 보아 그 저작 시기는 포로 귀환 이후 성전을 재건하고 헌당(獻堂)한 시기 정도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이 '새 노래'란 새로운 시대의 소망과 기쁨을 담은 노래를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성도(* , 하시딤) - 이를 마카비 시대 역사속에 나타나는 하시디안과 동일시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마카비전서 2:42). 여기서는 단지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들'을 의미할 뿐이다. 5, 9절에서 연거푸 '하시딤'이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 이것은 본 시편의 특징적 용어인 것 같다(Perowne).

=====149:2
저희의 왕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왕으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그 당시는 아직 다윗 왕가의 왕위에 앉은 자가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의 궁극적 통치자는 바로 하나님이시기에 때문에(68:24) 이같이 일컫고 있다. 이 왕은 이스라엘을 이방 통치 아래 남겨 두지 않으실 왕이며 그들의 목에 있는 압제의 모든 멍에를 파괴하실 왕이시다.

=====149:3
춤 추며 - 이것은 큰 즐거움을 나타내는 표현임과 아울러 당시에 일반화되어 있던 예식 행위이기도 했다(30:11, Alexander, Anderson).

=====149:4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 이사실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본토로 귀환시키심으로 밝히 드러났다(사 54:7, 8).
겸손한 자 - 상반절과의 평행을 고려할 때 이는 특정한 어떤 소수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오랜 포로 생활을 청산하고 겸허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귀환한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이 합당하겠다.

=====149:5
저희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 심지어 쉬기 위하여 침대 위에 누워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크신 은총으로 인해 도래할 승리의 날을 고대하며 기쁨의 새 노래를 터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149:6
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尊榮)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 전반절은 '롬모트 엘 빅로남'(* )으로서 직역하면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을 높임이'이다. 특히 여기서 '그들의 입에는'으로 번역한 '빅로남'은 그들의 '목구멍에는'으로 번역될 수도 있는데, 아무튼 이 구절은 목청을 높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후반절은 '헤레브 피피오트 베야담'(* )으로 문자 그대로의 뜻은 개역 성경의 번역과 같은데 이것은 잘 드는 칼을 가지고 전쟁을 수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사령관으로 모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서 전투란 입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손에 든 칼로는 적(敵)을 섬멸하는 것이었다(수 6장). 그들이 소수의 병력으로써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존해야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구속 역사를 이끌어 오시면서, 당신의 뜻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전투에 임하는 그 백성들의 배후에서 역사하사 소위 성전(聖戰)을 승리로 이끄셨다(수 5:13-15 강해, '성전'(聖戰)을 참조하라). 한편 본 시편 기자는 이러한 전쟁 모티브를 다시 회상시킴으로써 포로 귀환 이후 이스라엘이 그 대적들과의 싸움에서 다시 승리할 수 있다는 소망을 갖게 해주고 있다:"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느 4:17).

=====149:7
열방에 보수(報讐)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 이것은 베벧론 포로 시대 당시 그 성을 파괴하고 늑탈하였던 바벨론을 위시한 이방 세력들에 대한 징벌을 암시하는 말이다. 6절과 연결시켜 생각할 때 그 징벌은 이스라엘의 칼에 의해 되어진다는 의미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군대를 징벌한 역사는 없었던 사실을 기억할 때 이 징벌이란 또 다른 민족을 통한 바벨론 심판을, 더 나아가서는 세상 끝날에 있게 될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압제했던 바벨론은 페르시아에 의해 징벌을 받아 멸망하고 말았다.

=====149:8
저희 왕들은 사슬로, 저희 귀인(貴人)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 이것은 바로 앞절의 의미인 바벨론을 위시한 이방 열방에 대한 심판의 구체적 실행에 관한 대표적인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전쟁에 패한 국가는 고위층에 있는 사람들까지 포로로 잡혀가곤 하였는데 정복 국가는 그들의 철저한 승리, 위용을 과시하기 위하여 그들을 쇠사슬에 묶어 끌고 갔다(사 45:14, Barnes).

=====149:9
기록한 판단대로 저희에게 시행할지로다(* , 라이소트 바헴 미쉬파트 카투브) - 직역하면 '기록된 심판을 그들에게 집행할지로다'이다. 많은 학자들에 의해 본 구절은 율법에 기록된 내용에 따른 심판을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되어 왔다. 구체적으로는, 미래의 모든 의로운 복수 행위의 전형으로서의 가나안인 추방(Stier) 혹은 즘더 포괄적인 의미로 신 32:40-43에 기록된 율법을 위반한 자들에 대한 심판으로 설명되어져 왔다. 그러나 여기 '기록한 판단'을 성경의 특정한 구절을 나타낸다고 볼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각 사람 혹은 각 민족의 행위에 따라 심판하시기 위해 모든 일들을 기억하시는 소위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무난하겠다(Alexander). 아마도 본 구절의 '심판'이란 확정된, 고정된 무엇으로서의 심판, 말하자면 그 영원성, 불변성을 암시하기 위하여 문서에 기록하도록 그래서 확정된 무엇으로 알리기를 원하는 심판에 강조가 두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사 65:6이 말하는 바와 일치한다:"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치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할지라".
이런 영광은 그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 하다르 후 레칼 하시다) - 문자적인 의미는 '이것은 그가 사랑하는 모든 자를 위한 영예이다'(This is glory for all his faithful ones, RSV)이다. 여기서 '영예'란 일차적으로 앞 구절들에 묘사된 바, 대적들에 대한 심판을 통해 나타난 영예이다.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이방 세력들에 대한 심판과 같은 하나님의 모든 사역들은 결국 택한 백성을 영예롭게 하시는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이다(VanGemeren).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각별하신 은총과 사랑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본시는 이스라엘 민족이 악기에 맞추어 춤을  추며, 여호와께서 창조주와 왕되심을
기념하고 역사상 많은원수들로 인하여 수난을 당해 온 이스라엘을 돌보심에 대해 감사
하는 찬송이다.
   A.D.5세기 이후에 지금까지 자주 본시는 마키비 시대에 유대인들이 시리아 왕 안티
오쿠스4세(Antiochus, B.C.175-163년)의 학정에 대해 반란을 일으켜 성전을 회복한 사
건을 찬양하는 노래로 해석되어왔다. 그리하여 본시는 승리한 군사들의 노래로 여겨졌
고, 30년 전쟁  때에는 로마카톨릭의 제후들의 전쟁가로 사용되었고, 종교개혁 시대에
토마스 뮌처(Thomas  Munzer)는 보고 전쟁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본시를 이용하기도 했
다. 이떤 학자들은 1절과 5절에  나오는 '성도'(          , 하시딤)라는 말을 링카비
전쟁 때 주도적 역할을 했던 경건한 전투요원으로 해석을 하지만, 하심이 반드시 마키
비 시대와 연관된 말은 아니다. 하시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고 그 법
도를 지키는 경건한 사람을 지칭하는 칭호로사용된다. 그러므로 본시를 마카비 시대에
쓰여진 작품으로 보기에는 어려우며 오히려 바사 왕 고레스가 이스라엘 민족을 바벨론
으로부터 귀환하도록 허락한 사건(스1:1)을 경험한 시인의 성전 재건에 힘쓰던 시대에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한편 본시는 장르에 있어서 '찬양시'(hymn)로 분류된다. 시인은 이스라엘의 구속자
가 되시는 여호와의 은혜와 사랑에 대하여 감격하며 찬미하고 있다. 특별히 본시에 나
타난 승리는 단순히 이스라엘에게 임한역사적 승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임
할 종말론적 최후 승리를 예표적으로 보여준다. 본시에 나타난 '새 노래'(new song)는
96:1;98:1에도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성도(고후5:17;엡
4:24)의 심령속에서 솟아나는 역동적인 찬양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본시는 이스라엘이
과거에 경험한 구원 체험과 미래에임할 완벽한 구원을 생각하며 여호와를 송축하는 노
래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구속자를 높이고있는 본시는 1 하나님으로 인한 언약 백성 이스
라엘의 승리를 묘사하는 전반부(1-4절)와 2 미래에 임할 대적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
판을 드러내는 후반부(5-9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의 본시를 좀더 심
층적으로 고찰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의 승리에 대한 찬양(149:1-4)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에게 배푸시는 특별한 배려와 보호의 은총이 생동
감 있게 그려지고  있는 본연은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쉬고 있는 회중들을 향해 그들을
지으신 창조주요, 왕이신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부름으로 시작한다(1절;33:3;96:1). 시
인은 구속받은 이스라엘의 공동체를 향하여 특별히  '새 노래'로 찬양하라고 말한다(1
절). 여기서 '새 노래'란 일상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체
험을 가진 사람이 부르는 노래를 의미한다. 이것은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의미하는 것
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찬양하는 자세를 가르킨다.  즉 낡은 형식적인 이
해, 단순한 교리적 반복, 성전에서 습관적으로 부르는 노래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인식, 새로운 이해, 새로운 믿음을 가지고 부르는 노래를 뜻한다.
   이처럼 성도들이  하나님께 전심으로 찬양할 이유는 무엇인가? 시인은 여기에 대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구원의은총을 베푸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4절). 사실 이
스라엘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구원의 역사이다. 이스라엘이 원수
들의 손에 짓눌려 일어나지 못한운명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항상 구원의 손길
을 펴서 도와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특별히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시고, 대
적들의 손에서 회복시키심으로써 다른 민족들과 구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서 보호와 사랑과 인도를 베푸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예배는 이 구원 역
사를 떠나서는 불가능하다. 그들의 찬송과 감사의제목으로 언제나 역사적 구원이 언급
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이후 계속해서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는 반역적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가나안 정착과 왕국의수립을 거치면서 그들은
한때 평화와 번영을 누렸지만,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의우상을 섬김으로써 왕국은 분열
되고 급기야 멸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하나니 께서는 당신의 백
성을 잊지 않고 보호해 주셨으며, 극적으로 포로생활에서 벗어나 귀환할 수 있도록 섭
리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억압에서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영와롭게 해주셨다.
시인은 이 영화(榮華)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고 있는것이다.
   이러한 시인은 자세를 본받아서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새로운 피조물로 지음받
은 영적 이스라엘로서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감사하는 삶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겸손한 백성들에게 자
비의 손길을 펼치시고  존귀와 영광을 베푸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겸손한 자를 해같이
높이시고 아름답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더욱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인
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사57:15;마18:4;눅14:10;약4:10).

        2. 미래에 임할 대적들의 심판(149:5-9)
   이스라엘의 구속에대해 찬양한 내용에 이어지는 본연은 미래에 대적들에게 임할 심
판을 중심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으느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심판의 주(主)로
재림하심에 의해 이루어지는 메시야 왕국을 예표적으로 제시한다.
   먼저 시인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고 찬송을 부르며 양면에 날을 세운 칼
로 무장하게 될 것을  선포하였다(6절). 이스라엘은 원수를 추발할뿐만 아니라 끝까지
쫓아가서 과거의 대적들을 철저히 복종시킬 것이다. 특히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민족들
에 대한심판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을 멸절시킨 사건을 암사히고 있는 것으로 보
인다(신7:1이하;20:13). 이사건은 여호수아서 등에 기록되어 전달됨으로써, 과거 역사
가운데 드러난 하나님의 권느에 대해 경외케 함과 동시에, 현재와 미래에 하나님의 권
능을 의존케 하는 확고한 토대가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적을 무찌르시고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 과
거 역사는  많은 시편의 주제가 되었다(2,46,68,69편).  그러나 시인들이 자기 민족을
괴롭힌 여러나라에 대해 멸망을 선고(宣告)하는 것은 단지 그들이 자기 나라를 침공하
고 괴롭혔다는 민족주의적 감정에서 나온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 천지의
주재자 되시고 만민의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께대한 불충과 반역 때문이었다. 즉 '저
희가 일심으로 의논하고 주를 대적하여 서로 언약했기'(83:5)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열방에 대한 심판선언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대적에 대한 언급이 아니
라 더나아가서 최후의 심판 날 성도들이 말씀의 권위를가지고 세상 만국을 판단한다는
사실을 예시한다(계20:4). 성도들은 인간적인 감정에 이끌려 무분별한복수를 자행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에 기초하여 공정한 심판을 내릴 것이다.
   사실 우리는 '여호와여  어느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잊으시나이까'(13:1)라고 한
다윗의 외침처럼 이 세상을 탄식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처럼 부도덕하
고 불경건한 시대에 주의 뜻대로 거룩한 삶을 살려고하는 사람들에게는 원수들의 압제가 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시에서 시인이노래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멸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친히 그 원수와 더불어 싸워 주시고 결정적인 승리를 안겨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다음과 같이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다 '너희는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서리라'(대하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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