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시편 13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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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1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 오드카 베칼 리비) - 직역하면 '내가 나의 모든 마음으로 당신에게 감사하며'이다. 직역에도 나타나듯이 원문에는 감사 대상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으며 4절에 가서야 '여호와'라는 호칭이 나온다. 그런데 70인역(LXX)이 처음으로 '당신에게' 대신 '큐리에'(* , 주님)란 호칭을 삽입하였으며, 이후 벌게이트역(Vulagate) 그리고 몇몇 영역본들이(NIV, RSV, LB) 이것을 따랐고, 개역 성경도 이 추세를 좇아 '주께'라는 호칭을 삽입한 것 같다. 그러나 본 호칭의 부재(不在)는 도리어 강조적 의미를 지닌다. '나의 모든 마음'이란 직역에서 추론할 수 있듯이 비록 그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저자의 찬양의 대상이신 그분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계심이 분명하다.
신들 앞에서 - '신들'의 정체(正體)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1) 루터(Luther), 칼빈(Calvin) 등이 따르고 있는 70인역의 해석으로 '천사들'로 보는 견해이다. 천사들이 하나님이 찬양하는 일에 불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구약 성경 그 어느 곳에서도 천사들을 인간 찬양의 증인들 혹은 인생들과 함께 찬양하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는 곳은 없다. (2) 갈대아역, 시리아역, 그리고 유대 랍비들뿐만 아니라 최근 해석가들이 내놓는 견해로 '왕들' 혹은 '재판관들'로 보는 견해인데 이들은 근거 구절로 82편을 제시한다. 그러나 '신들'을 '왕들' 혹은 '재판관들'로 보려면 몇 개의 논리 고리가 더 필요하다. (3) 에발트(Ewald) 등이 내놓는 견해로 '신들'을 '법궤' 혹은 '지성소'로 보는 견해이다. 그러나 '법궤' 혹은 '지성소'는 하나님 당신의 임재를 상징하므로, 이 견해를 받아들일 경우 본절 하반절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나이다'라는 번역이 되므로 너무 어색하다 하겠다. (4) 거짓된 이방 신들, 곧 이방 제사의 대상물로 보는 견해인데 이 경우 저자는 예배의 대상을 혼동하고 있는 이방 예배자들 앞에서 참예배의 대상, 유일한 하나님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샘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가 나머지 견해들보다 훨씬 타당한 견해로 보여 지는데 이는 원문의 문자적인 뜻에서 벗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문맥에도 거슬리지 않는다. 또한 성경 다른 곳의 충분한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95:3;96:4, 5;115:3-8).

=====138:2
주의 성전을 향하여 -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임으로 시편 저자가 지성소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것으로 추측할 필요는 없다(왕상 8:48;단 6:10) 왜냐하면 여기서의 '향하여'는 '엘'(* )로서 '...앞에서'로 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저자는 성전 뜰에 부복하고 성전 주 건물을 향한 상태일 수 있다는 말이다.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높게 하셨음이라 - 이것은 하나님을 기다리고 그의 말씀을 신뢰하는 영혼들에게 그가 주신 약속은 너무 귀하고강한 소망의 근거가 되어 하나님의선하심 그리고 진실하심을 압도할 정도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 같다. 어떤 학자들은 본문을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존함의 우열을 비교하는 잘못된 구절로 본다(Hupfeld). 그들은 하나님의 존함이 그의 말씀보다 열등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주장은 극단적인 문자적 해석의 소치라 보여진다. 본 구절은 하나님의 존함과 말씀의 우열을 가리는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구절일 뿐이다.

=====138:3
내가 간구하는 날에 - 이 날은 고통의 전환점이었던 어떤 날을 가리키는데 이 날을 문자 그대로의 '특정한 날'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다. 고통당하는 개인(혹은 공동체)이 진실한 마음으로 도움을 구할 때 하나님은 응답하신다(17:6;사 40:29).
내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셨나이다(* , 타르히베니 베나프쉬 오즈) - 문자적인 뜻은 '나의 영혼에 힘을 주어 강하게 하셨다'이다. 말하자면 힘을 주어 용기있고 담대한 자로 만드셨다는 뜻이다. 즉, 어떤 위험을 만나도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자로 만드셨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같은 고백을 하고 있는 상황은 대적으로 인한 위험에 직면하고 있던 때라고 짐작된다.

=====138:4
땅의 열왕이 주께 감사할 것은 - 여기에서 '땅의 열왕'은 히브리어로 '칼 말르케 아레츠'(* )로서 문자적인 뜻은 '모든 땅의 왕들'이다. 각 나라를 통치하는 왕, 그들 모두를 가리키니 결국 이 표현은 온 세상이 여호와께 감사할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68:32;96:1, 3, 7;97:1;98:4;100:1). 한편, 이 예언은 솔로몬 왕 시대에 시바 여왕을 비롯한 많은 열왕들이 그 앞에 나아와 그를 칭송하고 하나님을 높인 것에서 부분적으로 실현 되었으며(대하 9:1-8, 22-28),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후에는 세계적인 복음 전파를 통하여 계속적으로 실현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하겠다.

=====138:5
여호와의 도를 노래할 것은(* , 야쉬루 베다르케 예화) - 문자적인 뜻은 '그들이 여호와의 길들을 노래할 것이다'이다. 앞절과 연결시켜 생각해 볼 때 온 세상은 '하나님의 입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그의 능력의 행사를 기쁨으로 노래하고 축하하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103:7에 의하면 '하나님의 도'는 '하나님의 행사(역사)'와 평행구를 이룬다.

=====138:6
여호와께서 높이 계셔도 -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분이지만, 당신의 피조물의 가장 미천한 것을 돌아보며, 도우시는 자비로운 분이시다(113:4-8;사 57:15;66:2).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시나이다 - 본 구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한데 그 다양한 해석들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보여진다. (1) 139:2의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깊이 이해하시오며)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은 비록 교만한 자가 하나님의 통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그를 주목하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2) 하나님은 그들을 멀리에 놓고 관계하신다는 의미, 곧 그와의 친밀한 교제를 인정치 아니하신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낮은 자'(겸손한 자)를 보시는 것처럼 그들을 '보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3) 일정의 거리를 둔 관계로서만 그들을 아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4) 마치 낮은 자들에 대해서 그렇게 하시듯이 멀리서 교만한 자를 보고 계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높이'와 '멀리서도'는 평행구로 간주되어 진다.

=====138:7
환난 중에 - 여기서 저자는 그가 생각하고 있는 환난의 내용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지 않은데 이것을 포로 시대 초기의 역경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학자가 있으나 이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본 시편의 표제어는 이 시편의 저자가 다윗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을 통하여 기자 다윗이 밝히고 있는 바는 비록 그가 역경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기억하시고 용기와 활력을 주신다는 확신이다.
주의 손을 펴사 - 이것은 돕거나 징벌하기 위한 여호와의간섭을 묘사하는 상징적 표현이다(144:7). 여기서 '손'은 '야드'(* )로서 오른손, 왼손을 구별하지 않는 일반적인 의미의 손을 의미하는데 어떤 학자는 뒤이어 나오는 '오른손'과 균형을 잡는 뜻에서 본 '손'을 '왼손'으로 본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의 손을 '왼손'으로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 거의 없는 점을 고려할 때, 여기서의 '손'을 특별히 오른손 혹은 왼손으로 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138:8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지라 -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시작하신 사역은 필히 완성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기자의 소신이 엿보인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시작하신 구원을 결코 중단하지 않으시며 반드시 이루신다:"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 , 마아세 야데카) - 문자적인 의미는 '당신의 손의 일들'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수행하시는 모든 행위의 과정, 혹은 당신의 백성을 언급하는 말이다(사 60:21;64:8).
버리지 마옵소서(* , 알 테레프) - 직역하면 '잊지마소서', 혹은 '느슨치 마소서'이다. 이것은 앞서 확신있게 표현했었던 기도로 다시 관심을 옮기게 하는 표현이다. 기자는 본 시편을 마무리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잊거나 자신의 기도에 대하여 느슨한 마음을 갖지 않으시기를 결론적으로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본시는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노래이다. 시인은 기도응답에 대하여 감사드리고 열왕들이 주께 감사할 것을
예언하면서 주의 뜻이 궁극적으로 성취될 것을 확신한다. 우리는 본시를 통해 주의 인
자하심과 성실하심을 통한 구원을 확신할 수 있다.
   한편 다윗이 이  시를 쓸 당시의 역사적 상황은 다윗이 주변 국가 대부분을 평정한
시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근거로는 본시가 삼하7장과 대상17장을 참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윗은 사방의 모든 대적을 평정한 뒤 평안을 주시고 다윗의 보좌가 경고하
게 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있다. 특히 다윗 자신과 그 자손의 옥좌를 영구하
게 보존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다윗은 감사하고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
라엘의 대적들이 모두쇠퇴하고 이스라엘 땅에 평화가 도래하자(삼하7:1)다윗과 언약을
체결하기를 원하셨다. 사실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여러차례 언약이 맺어졌지만 다윗
언약은 이전에 계시된 여러언약들보다 더욱 진보된 것이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
국의 실체를 좀더 분명하게 예표하고있다. 결국 본시는 메시야 도래의 예언시로서, 메
시야의 구원성격을 자세히 말해준다.  즉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메시야가 나타날 것이
며(삼하7:13)장차 오실 메시야는 세상 질서를 온전히 회복시키시고 완성시키실 것임을
알려준다.
   또한  본시의  장르(genre)는 일반적으로 기도의  응답을  받은    후에  부른 '감사
시'(thanksgiving psalm)라고 볼 수 있다. 시인은 과거와 현재에 베푸신하나님의 은혜
에 대하여 묵상하며 하나님의  인자하시고 성실하신 보호에 대해진심으로 감사하고 있
다.
   본시의 구성을 살펴보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세 사상이 각각 독립된 연으로 이루
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연은 다윗이 기도의 응답으로 이루어진 큰 일(아마도 왕
이 된 것을 암시함)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하고 있고(1-3절), 둘째 연은 세
상의 모든 열왕들이  이 소식을 듣고 그들도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도(道)에 대해서
찬양할 것이라는 시인의 예상이 나오며(4-6절), 마지막  셋째 연은 환난이나 원수들의
시험속에서도 시인의 예상이 나오며(4-6절), 마지막 셋째연은 환난이나 원수들의 시험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움이 있을 것이라는 시인의 확신이 나타나 있다(7, 8절).
   이제 본 시편의 내용을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 각각의 내용적 특징을 살펴보고 핵
심사상에 대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

            1. 감사하는 삶(138:1-3)
   시인의 감사와 찬양의 삶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본 단락은 1 찬양의대상(1절), 2
찬양의 이유(2절), 3 시인의 간절한 기도(3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은 본문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는 주의인자하심과 성실하심 때
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가장고귀한 속성인데(출34:6참조), 시인은 특
히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강렬하게 부각시키고있다. 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신약 시대에 와서 복음의    핵심으로 부각되고 있는데 사도바울은 이를 예수 그
리스도의 십자가로 압축시키고 있다(엡24, 5참조). 따라서 우리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
나님과 언약을 온  몸으로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높이 찬양하여야 할 것이
다.

        2. 열왕들의 감사(138:4-6)
   땅의 모든 열왕들도 주를 찬양해야 한다고 노래하는 본 단락은 1 주께 대한 열왕들
의 감사(4, 5절), 2 비천한 자들까지도 돌보시는 하나님(6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은 앞에서 주님의 자기의 간구에 응답하시고 자기영혼을 강하게 하셨다고 찬양
하였다. 이제는 더 나아가서 땅의 모든열왕들도 주를 찬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즉각적인 응답을 많이 받았다. 이러한 하나님의 응답은 다
윗에게 용기를 심어 주었고 또한 전쟁에 대한승리의 확신도 가져다 주었다. 다윗이 잘
못을 저질렀을 때든지 혹은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고 있을 때에든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성실하게 반응을 보이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늘 경험했던 시인은 이제
본시를 통해서 모든 열왕들도 주께찬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다윗생전에 일어났던 일들이
라고 보기는 어렵고 아마도 드의아들 솔로몬 시대에 이루어진 사건을 가리킨다고 추정
된다(대하9:22-28). 즉 솔로몬이 하나님께서 주신지혜로써 왕국의 평화와 번영을 이룩
하고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블레셋 땅과 애굽 지경까지 통치하자 천하 열왕이 하나님께
서 주신 그의 지혜를 들으며 그의 얼굴을보기 위해 예물을 가지고 왔던 사건을 의미한
다.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후 이루어진 세계적인 복음 전파를 통해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으며 열왕들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것을 예시한다(사49:22, 23;60:3-5;행13:48).
   아울러 시인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과생각을 감찰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며(잠22:4;사57:15;마18:4)교만한 자에게는    행위대로  심판하신다고 말한다(렘
17:110;벧전1:17;계20:12).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와 유한성과 죄를 깨닫고
겸허하게 무릎끓는 자에게는 언제나 긍휼과 인자로 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열왕들까지도 굴복시키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생각하며 언제나 경건과 겸손을 소유해야
한다(잠16:1-3).

        3. 주님의 보호에 대한 확신(138:7-8)
   환난이나 시험 속에서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도움을 확신하고 있는 본연은 1 구원에
대한 간구(7절)와 2 완전에 대한 소망(8절)으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사실 왕이 되기까지 다윗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윗의 이러한 경
험들은 후에 강력한 확신과 소망을 주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본문은 다윗이 저작한
23:4의 내용과 비슷하다. 그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죽음
의 끈을 푸시고 다시소생시켜 주셨다. 수많은 대적들이 다윗을 음해(陰害)하려고 시도
했지만 그때마다 여호와의 손길이 완벽하게 보호하셨다. 사울의 집요한 박해와 고통속
에서도 하나님은 건지셨고, 왕위에 오른후에도 블레셋을 비롯한 이방의 침략에서 승리
하도록 도우셨다.
   이처럼 온갖어려움을 극복했던 경험을 소유한 다윗은 앞으로 닥쳐올 환난이나 시험
속에서도 환전하게 보호해 달라는 간구와 희망을 표현하고있다. 다윗은 하나님의 위대
하신 구원 섭리를  보면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변함없는 인자하심을 체험했고, 그
결과 범죄한 백성들일지라도 끝까지 버리시지 않는다는 확신을 소유한다.
   이상에서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같은 중요한 사실들을 깨달을 수 있다. 1 우리는 날마다 주의인자하심과 성실하심에 대하여 찬양드려야 한다(103:8). 2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노력해야한다(행1:8). 3 사단의 치밀한 계략과 함정속에서도 언제나 성도들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께 끊임없는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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