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1
본 시는 111편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있으며 히브리어 문자 '알렙'(* )에서 '타우'(* )까지 22문자가 문두에 놓여 한 행씩 배열되는 답관체 형식의 시인 것이다. 111편이 하나님의 영광과 행사를 찬양하라는 내용인 반면 본 시는 인생이 필히 추구히야 할 영적 지혜를 교훈하고 있는 지혜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이 구절은 '알렙'(* )과 '베트'(* )로 시작되는 두 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선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악을 행하고 불의한 방법으로나마 어떤 이익을 얻게 된다면 대단히 기뻐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의를 통해서는 결코 복을 얻지 못할 것임을 시인은 여기서 분명히 지적한다. 설사 불의한 방법으로 어떤 유익을 얻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휠씬 차원 높고 풍성한 유익을 주실 것이다. 한편 이 구절을 원인-결과절로 보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그 계명을 크게 기뻐할 것이라'(Calvin)고 번역해 볼 수 있다. 한편 본절은 111편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상의 진전을 보여준다.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근본일 뿐만 아니라(111:10) 더 나아가 참된 행복의 근원이라는 것이다(Alexander).
=====112:2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 이 문구는 세 번째 문자인 '깃멜'(* )로 시작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당대뿐만 아니라 후손에게도 미침을 뜻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십계명을 주시면서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6)고 말씀하셨다. 한편 창 6:4에는 네 피림이 등장하는데 그들을 가리켜 용사라고 하였던 바, 본문의 '강성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깁보르' (* )가 거기서는 '용사'란 의미로 쓰였다(수 1:14;삿 5:13;삼상 2:4;잠 16:32;렘 5:16;20:11;슥 9:13 등 참조).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 네 번째 문자인 '달렛'(* )으로 시작되는 이 구절 역시 자손에게 임할 축복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이는 설령 당대에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무관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풍성하신 자비에 따라 그들에게 가장 유익한 방법으로 복을 주시게 됨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악한 자들은 세상에서 헛된 권세를 누리는 것을 최고의 복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비록 빈궁하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만족하며 훗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만한 놀라운 복을 얻게 될 것이다.
======112:3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 알파벱 다섯 번째 문자인 '헤'(* )로 시작되고 있으며, 의인이 받게 될 현실상의 축복을 나타낸다. 물질적인 부요함은 하나님의 귀한 축복 중 하나로 여겨졌음에 분명하다(왕상 3:13;잠 3:9, 10, 16;13:18;22:4 등).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의인도 때로는 배고픔을 당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이 땅에서의 영광보다는 영적 영광이 그들에게 더 유익하기 때문인 것이다. 한편 '부요'(* , 혼)와 '제물'(* , 오쉐르)은 동의어로 사용되었으며, 다만 전자는 '만족함'에 그리고 후자는 '풍부함'에 보다 강조점을 두는 말이다.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 여섯 번째 무자인 '와우'(* )로 시작되고 있다. 여기서 '의'에 해당하는 '체데크'(* )는 '공정함', '의로움', '바르게 함' 등의 뜻을 내포한다. 이 말이 111:3에서는 여호와의 성품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쓰였다. 또한 하나님은 모세에게 재판의 공정성을 명령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레 19:15).
=====112:4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 이 문구는 일곱 번째 문자인 '자인'(* )으로 시작되고 있다. 앞에서 시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받을 현실상의 축복을 언급하였거니와 이제 여기서는 죄악이 창궐하는 현실에 대해 눈을 돌리고 있다. 설령 흑암, 곧 온갖 역경이 가로막는 현실이라 할지라도 항상 빛 가운데 행할 수 있다는 이 확신이야말로 높은 신앙의 경지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 '빛'의 주체가 여호와이신지, 정직한 자 자신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빛'이 축복과 기쁨을 상징하는 말이라는 점이다(VanGemeren, 27:1;36:9;56:13;tk 9:2;10:17). 혹자는 본문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에 하나님의 재앙으로 애굽 전역이 흑암으로 뒤덮였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빛이 비추었던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Horsley).
그는 어질고 자비하고 의로운 자로다 - 여덟 번째 문자인 '헤드'(* )로 시작되는 문구로서 정직한 자의 성질을 묘사한다. '어질고 자비하고 의롭다'란 말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수식할 때도 흔히 쓰이는 말이다(111:4 주석 참조). 아마도 시인은 여기서 의인이란 하나님을 닮아가는 자임을 지적하고자 한 것 같다.
=====112:5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자는 잘 되나니 - 아홉 번째 문자인 '테드'(* )로 시작되는 문구이다. 이제 시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을 좇아 행하는 자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들고자 한다. 본절과 9절에서는 한마디로 '관용'의 성품을 언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주제는 이미 4절 하반절에서도 암시된 바이다. 특히 본문은 부요한 자에게서 흔히 드러나는 병폐를 역으로 경고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재물이 갖는 힘은 흔히 그것을 남용하도록 유혹하는 법이다(Kidner). 여기서 '잘 되나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토브'(* )는 '좋다', '보기에 좋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좋게' 보셨다(창 1:4, 10). 그리고 렘 33:11;애 3:25 등에서는 하나님이 '선하신' 분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 일을 공의로 하리로다 - 이 문구는 열번째 문자인 '요드'(* )로 시작되는데 직역하면 '그의 공의로 그의 일들을 처리할 것이다'이다. 이것은 의인이 공정한 분별력을 가지고 자기의 일들을 처리해가며 그렇기 때문에 타인을 억압하거나 속이지 않고 스스로도 낭비하거나 사치하는 일 없이 매사에 검소하게 살아나가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드바리'(* )는 그 의미가 다소 불명확하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이를 '말'에 해당하는 '다바르'(* )의 복수로 해석하여서 이 어구를 '심판대에서 그의 말들을 지지할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고대의 몇몇 역본에도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통상적인 해석에 따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의인이 자기의 일을 형통하게 처리한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앞의 어구와 문맥상 잘 어울린다.
=====112:6
저가 영영히 요동치 아니함이여 - 11번째 문자인 '카프'(* )로 시작된다. 문두의 '키'(* )에 대해서는 (1) 원인을 설명하는 접속사로 보고 본문을 5절의 원인으로 보는 견해(For the righteous..., RSV) (2) '분명히', '실히'라는 뜻의 강조사로 보는 견해(Surely..., KJV, NIV) 등이 있으나 문맥상 굳이 원인과 과의 구문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와 겸손한 자를 지켜주시며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혼란이 와도 이들은 요동치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요동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모트'(* )는 '모트'(* )의 미완료형인데 66:9에서 '모트'는 '실족하다'란 뜻으로 번역되고 있으며 민 4:10에는 명사로 쓰여 '틀'이란 뜻으로 번역되었다.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 - 12번째 문자인 '라메드'(* )로 시작되며, 직역하면 '기념을 위하여 의인은 영원히 있을 것이다'가 된다. 의인은 사후(死後)에도 그의 가족이나 그에게 도움을 입은 자들의 기억 속에 계속 살아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특히 여호와의 기이한 일을 기억케 하셨다는 111:4 내용과 적절한 평형을 보여준다(Anderson).
=====112:7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 이것은 13번째 문자인 '멤'(* )으로 시작된다. 의인이라고 해서 인간사에서 발생하는 모든 무제나 시련들에서 예외적으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에 대한 반응은 판이하다.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사소한 비난에도 두려워 떨지만(잠 10:24) 의인은 어떠한 중상 모략으로 자신을 모함하더라도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서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히 거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 사람들의 헛된 소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기 때문인 것이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 14번째 문자인 '눈'(* )으로 시작되는 구절로서 앞 문구에 대한 원인을 설명한다. 하나님만을 의뢰할 때 담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직역하면 '그의 마음이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으로 고정되어 있다'가 되며 '의뢰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타흐'(* )에서 파생된 '바투호트'(* )가 '담대함', '안전함'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면 이 동사의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즉 담대하고 안전한 상태는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면서 그들이 '평안히'(* , 바타흐) 거할 것이라고 하였다(겔 28:26). 여기서도 '평안히 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것'을 뜻한다.
=====112:8
그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 15번째 문자인 '싸멕'(* )으로 시작되며 마음이 정하여져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함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견고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무크'(* )는 '단단히 세우다', '버티다', '기대다' 등의 뜻을 가진 '사마트'(* )의 칼 분사형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 26:3)는 구절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마음이 견고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을 뜻하며 마음이 견고한 자는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 대적의 받는 보응을 필경 보리로다 - 이것은 16번째 문자인 '아인'(* )으로 시작되며 문자적으로는 '그 대적을 마침내 보리로다'가 된다. 여기서 '라아 베'(* , ...을 본다)라는 관용구는 흔히 대적들에 대한 승리를 뜻한(54:7;59:10;91: 8;118:7). 따라서 영역본 NIV처럼 'in triumph'(승리 가운데)를 첨가해도 무방하다(Vangemeren).
=====112:9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 9절과 10절은 각각 세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문구는 17번째 문자인 '페'(* )로 시작되는데 의인의 선한 행위와 너그러운 마음을 노래한다. 의인은 재물이 넉넉하지 않더라도 궁핍한 자의 필요한 것을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것을 과감하게 나누어 주는 용기를 가진 자이다. 그러나 악인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축재하여서는 허영으로 탕진하고 만다. 한편 가난한 자에 대한 자선과 구제의 의무는 성경의 중요한 명령으로서 신.구약 성경에 자주 언급된다(레 25:35;신 15:7, 8;눅 11:41).
그 의가 영원히 있고 - 이 문구는 18번째 문자인 '차데'(* )로 시작되는데 의인의 선한 행위에 대한 열매와 보상을 언급하는 내용이다.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 19번째 문자인 '코프'(* )로 시작되고 있다. '뿔'(* , 케렌)은 '힘', '능력' 또는 '자존심'을 상징한다. 자신의 뿔을 든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자만심과 교만에 사로잡힌 상태를 가리킨다(75:4). 그러나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의인의 자비로운 행위를 기쁘게 보시고 그들의 위치를 더욱 높여서 권세와 영광으로 보상하신다는 뜻이다.
=====112:10
악인은 이를 보고 한하여 - 이 시편의 서두를 의인에게 임할 축복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한 시인은 이제 악인의 비참한 최후에 관한 묘사로써 마감하고 있다. 역경에 처한 의인에 대해 이를 갈며 덤벼드는 것은 악인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반응이다(35:16;37:12). 그러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인해 의인에게 닥친 역경이 축복과 번영으로 바뀌게 되면, 악인들은 증오와 시기에 사로잡혀 이를 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끝내는 소멸되고 만다는 것이다(VanGameren). 한편 본문은 20번째 문자인 '레쉬'(* )로 시작한다.
이를 갈면서 소멸하리니 - 21번째 문자인 '신'(* )으로 시작되는데 '소멸하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마스'(* )는 '녹아 없어지다'는 뜻으로서 악인이 쇠가 녹듯 녹아져서 완전하게 파멸되는 것을 가리킨다.
악인의 소욕은 멸망하리로다 - 히브리어 알파벱의 마지막 문자인 '타우'(* )로 시작된다. 악인들은 만족할 줄 모르고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찾지만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여기서 악인의 소욕은 의로운 자의 멸망을 바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 누리는 축복을 열거하고 있는 본시는 1 의인의 모습(1
절) 2 의인의 여러 가지 축복(2-9절) 3 악인의 멸망(10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삶의 결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아울러 악인
의 슬픈 멸망을 예견하고 있다.
본시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어떤 학자들은 제식 배경과 관
련하여 순례자가 성전에 들어갈 대 부르는 입당송 혹은 예배자의 감사 기도에 대한 제
사장의 응답송 등으로 주장하지만 분명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따라서 본시는 어떤
특정한 상황과 연관하여 저술된 작품이 아니라 참된 인생의 행복에 대해 설명하는 교
훈적인 노래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본시는 시편의 장르상 '지혜시'(wisdom psalm)라고 볼 수 있다. 시인은 의인
의 축복과 악인의 멸망을 대조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킬 대 가치있는 삼이 이루어짐을 가르쳐 주고 있다. 또한 본시는 11편과 마
찬가지로 '할렐루야'로 시작되는 '할렐시'이며 행의 첫문자가 히브리어 알파벱 순서로
배열된 '알파벱시'이다.
그리고 111편에서 하나님에 관해 사용되었던 단더들이 본시에서 의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점을 보아(예, '의'-3절, 11:3;'기억하다'-6절, 11:4;'정하다'-7절,
111:8), 두 시편의 저자는 동일한 인물일 것으로 보여진다. 특별히 111편이 하나님이
행하신 행사의 속성에 대해 말하였다면, 본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행사와 성
품, 그리고 그 복에 관해 우리에게 말해 준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본시의 전반적
인 주제는 1편이나 신명기의 사상처럼 의인의 현세적인 축복과 악인의 급속한 파멸이
라고 볼 수 있으며, 여기에 참다운 경건의 사회적 의미에 관해서도 덧붙여 언급하고
있다. 특히 본시는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을 '의인'으로 보고 있가 때문에 '악인'에 대
해 간단히 한 절(10절)로 언급하고 있다.
이제 의인의 승귀와 악인의 슬픈 멸망이 예견되는 본시의 내용을 크게 세 부분으로
좀더 자세하게 고찰해 봄으로써 경건한 삶의 속성과 그 결과에 대해 다시 한번 음미해
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1. 의인의 모습(112:1)
본시의 첫머리에서 시인은 의인이 어떠한 사람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인이 여
기서 말하는 의인의 모습은 여호와르르 경외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경외 사상'은
이스라엘의 지혜의 근본이자(111:10),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중요한 종
교적 의무이다(미6:8).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 대해 시인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계
명을 즐거워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계명'은 일차적으로는 십계명을 가리키지만,
보다 포괄적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신 모든 명령과 지시를 의미한다. 그리고 시
편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있어서 계명을 지키는 일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도리어 큰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고백하고 있다(1:2;40:8;119:35,
97).
2. 의인이 받는 축복(112:2-9)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진정한 의인임을 선언한 시인은 이제 의인에게 임할 가정
적, 사회적 축복과 아름다운 덕행에 대해 자세하게 열겨한다. 시인은 의인이 받을 복
의 내용을 1 의인의 가정이 받는 축복(2, 3절)과 2 의인의 사회적 덕행(4-9절)으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첫째로, 시인은 의인의 후손이 강성하고 현세에서도 축복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2,
3절). 2절에서 '강성하다'는 말은 재물과 사회적 지위가 든든함을 뜻한다. '의인의 자
손들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다'(37:25)는 말과 같이 의인의 자손은 재물로나 사회적
지위로서도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복은 물론 일차적으로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번영이지만, 본시를 전체적으로 주의 깊게 살펴보면 영적이고 도
덕적인 가치의 상징적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즉, 시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적인 부
요는 사회적 선행의 수단이 될 수 있으므로 의인이 부유한 사회는 복된 사회임을 강조
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시인은 의인의 가정이 부요와 재물의 축복을 받는다고 밝히고 있다(3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물질적 축복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왕상 3:13;잠
3:9이하;22:4). 물론 재물과 부요는 사람을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게 만들기 쉬우며, 부
패의 온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는 의인의 재물은
하나님의 의를 더욱 빛나게 한다. 심지어 그의 부요와 재물이 사라진다 할지라도 그
의도는 변함없이 드러날 것이다.
둘째로, 시인은 의인이 사회적으로 받는 축복과 영향력에 관해 말한다(4-9절). 먼
저 의인은 어질고 자비한 성품으로써 어두움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되며, 모든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다(4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은 어두운 사회를 밝혀 사람
들에게 자비와 어진 마음씨를 보여준다. 그는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함으로
써 어두움 속에서 빛을 발한다(사58:10).
이어서 시인은 이 같은 의인의 자비와 덕행을 부요와 재물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
님을 경외하는 의로움 때문임을 강조하고 있다(5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은 곧 하
나님의 성품을 지닌 자이므로,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본받아 가난한 자들을 보고 그
냥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재물을 빈
궁한 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한편 그는 부유한 사람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두려움
에서도 자유롭다(7, 8절). 그는 자신의 소유를 세상에 나누어 줌으로써 약하고 가난하
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또는 자신의 축복을 질시하는 원수들로부터 받게 될지 모
르는 박해에 대해 근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진실로 의지하고 붙들고 있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의인들도 역시 다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서러움 속에서 번민하는 어두움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흉한 소식을 접할 수
있다(7절). 이전에 누렸던 풍요로움이 모두 사라지고, 그의 의로움 조차 무참히 짓밟
힐 수도 있다. 그러나 의인에게 닥치는 재난은 그의 소유나 환경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존재와 영혼의 깊은 곳까지 손상을 입히지는 못한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만을 향하여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으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는
다(7, 8절).
또한 의인은 그의 의로움과 덕행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진심에서 울러나오는
감사와 존경을 받게 되고 그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게된다(9절). 반대로 경건치
못하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랑을 일개워 주거나, 어떤 감사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생을 보내게 된다. 그가 죽고 나면 모든 것은 잊혀지고 오로지 비난만이 남게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육신의 유혹에 굴복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순결한 삶을 통하여 후세에까지도 향기를 발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3. 악인의 멸망(112:10)
시인은 결론적으로 의인의 번영과 악인의 멸망을 대조시킴으로써 독자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로운 삶에로 초대하고 있다. 악인은 의인의 번영을 시기하며 의로운 자의 패망과 파멸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악인의 삶은 결국 헛되고, 그 종말은 비참할 수밖에 없다. 시인은 본문을 통해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욕망의 노예가 되어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을 살도록 간접적으로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시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참된 의는 필연적으로 베풂을 동반한다(5, 9절). 베풂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증거이며(마5:42-45;6:1-4), 하나님에 대한 봉사의 표시이자, 인간에 대한 애정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2 의인의 선은 후대에서도 반복된다(2절). 거룩한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받고, 기독교적인 원칙 하에서 훈련을 쌓은 젊은 남녀들은 탁월한 인격과 도덕적 성품을 소유할 수 있다. 3 의인은 미래에 대해 경건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8절). 하나님께서 만물을 공정하게 심판하실 것을 믿음으로써 언제나 확고한 안정을 소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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