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시편 09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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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1
여호와께셔 틔치하시나니 - 본 시편의 주제인 여호와의 도래 및 그의 온 세상을 향한 통치를 한마디로 잘 묘사해 주고 있는 구절이다. 바로 앞 시편에서는 여호와의 통치의 날이 가까왔음을 말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통치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었는데 이제 본 시편에서는 바로 그 통치의 날이 시작된 듯이 묘사하고 있다.
허다한 섬 - 여기서 '섬들'이란 일차적으로 지중해 연안의 섬들 및 그 해안가를 뜻하지만(72:10의 경우처럼), 문맥을 고려할 때 이사야서 후반부의 경우들처럼(사41:1,5;4:4;49:1;59:18 등) 좀더 포괄적인 의미인 '이방 나라들'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Perowne).

=====97:2
구름과 흑암 - 하나님의 현현(顯現)이 이스라엘 전체 공동체에게 나타난 최초의 경우는 구름이 빽빽했던 시내 산에서였다(신 4:11). 이후에 후기 선지자들과 시편 기자들은 여호와의 도래를 묘사할 때 바로 시내 산 현현으로부터 그 이미지를 빌어오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현현과 관련한 이러한 은유적 표현은 두렵고 떨리는 '여호와의 날'에 관한 후대의 묘사에서도 나타난다(욜 2:2;습 1:15;계 11:5). 또 시편의 다른 구절들에서는 이 구름과 흑암으로부터 우박과 숯불 혹은 화살이 쏟아져 내리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3절 ;18:12,13;50:3;77:17;106:18 등). 여기서는 불의의 세력에 대해징벌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와 또한 근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성과 초월성에 대한 경외와 신비를 암시하기 위해서 이러한 묘사가 나오고 있다(왕상 8:12;대하 6:1; 욥 22:13,Kidner).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 - '기초'(* ,메콘)는 어떤 물체를 떠받들고 있는 버팀목, 기둥 따위를 가리킨다. 고대 므깃도에서는 왕이 앉는 보좌가 스핑크스들에 의하여 떠받들어지고 있었다고 한다(ANEP). 아무튼 본 구절은 하나님의 보좌, 곧 하나님의 통치는 의와 공평이 그 특징임을 암시해 준다(89:14).

=====97:3
불 - 하나님의 현현 묘사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데(50:3;출 19:18;24:17;신 5:4;9:10,15;18:16). 본 비유의 이미지는 화산의 활동보다는 천둥, 번개의 모습으로부터 따온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단순한 '불'(출 19:18)뿐 아니라 '삼키는 불'(신 4:24) 가운데 나타나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본절에서는 그 불 이 사면의 대적을 사른다고 했으니 이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뜻한다(합 3:5).

=====97:4
그의 번개가 세계를 비추니...떨었도다 -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뇌우는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는 현상이었는데, 특히 성경에서 천둥은 여호와의 음성에(29:3;104:7), 번개는 그의 화살과 창에(144:6;합 3:11) 비유되곤 했다. 여호와의 번개는 그 현현의 급작성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온 세계를 밝혀(77:18) 모든 은밀한 악행들까지도 낱낱이 밝혀 내심을 암시하기도 한다.

=====97:5
산들이...녹았도다 - 안정의 상징인 산들이(30:7) 여호와의 임재 앞에 녹았다는 것은 여호와의 위용을 짐작케 하는 표현이다. 즉, 악인들이 가장 안전하고 튼튼한 의지처라고 믿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는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하고 사라질 뿐이라는 것이다(Kidner) 온 땅의 주(* ,아돈 콜 하아레츠). 본 호칭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려고 하였을 때 단지 한 지역 혹은 한 나라의 이방 신들로부터 자신들의 하나님을 구별하기 위하여 강조적으로 법궤를 '온 땅의 구주 여호와의 법궤'로 불렀던 수 3:11,13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후 본 호칭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우주를 통치하고 다스리는 여호와를 묘사할 때 사용되었는데(미 4:13;슥 4:14;6:5), 본 문맥에서도 바로 이런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97:6
하늘이 그 의를 선포하니 - 이것이 하나님의 오심의 종국이자 목표이다(50:6).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임하는 날, 그 철저한 심판 행위는 온 세상이 목격하게 될 것이다(77:14;79:10;98:3). 본 구절과 동일한 용어가 바벨론으로부터의 위대한 구원을 설명할 때도 사용되었는데(사 35:2;40:5;52:10;66:18), 이것을 보면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 곧 귀환 사건은 하나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은 종국적 심판의 모형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97:7
본절에서 시인은 유일하고 참된 신이 신 여호와께만 예배드릴 것을 만백성에게 권고하고 있다. 만일 그들이 우상 숭배를 계속 고집한다면 수치와 파멸을 당하게 될 뿐일 것이다. 여호와께서 임하시는 날에는 우상들의 허구성과 무익성이 밝혀 드러날 것이다. 왜냐하면 우상들은 그 숭배자들을 전혀 구할 수 없겠기 때문이다(25:3;37:20; 사 1:29;미 3:7).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히쉬타하우 로 칼 엘로힘) - 문자적인 뜻은 '모든 신들아 그에게 경배하라'이다. 우상 숭배자들에 대한 경고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나오는 본 구절, 특히 여호와를 경배할 대상이 이방 신들이라는 문자적 의미는 해석자들을 당황케 만든다. 어떤 학자들은 이 '신들'이 우상 혹은 천사들을 가리킨다고 보고 어떻게 보든 본문 해석에는 별 지장이 없다고 생각한다(Anderson, VanGemeren 등). 그런가 하면 시리아역(SyriacVersions). 70인역(LXX) 등은 여호와께 경배한다는사실을 중시하여 '신들 '을 '앙겔로이'(* , 천사들)로 바꾸어 번역하고 있다. 또 어떤 학자의 경우 본 구절이 신약의 한 부분에서 인용된 것으로 보고 '신들'이 '천사들'로 번역된 사실을 더 발전시킨다(Delitzsch). 히 1:6에는 본 구절과 동일한 구절이 있는데 그곳의 문맥은 종말론적 재림의 때에 있을 천사들의 찬양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독생자 예수께서 심판자로 재림하실 때 모든 천사들이 그에게 찬양하고 경배하여야 할 것을 말하는 대목에서 본문과 동일한 구절이 사웅되고 있다고 보았다.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히 1:6). 이 구절을 근거로 하여 본문의 '신들'은 '천사들'이며 '그에게'의 '그'란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본 구절의 자체 해석이라는 면으로만 볼 때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어 보이나, 문맥을 고려할 때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없어진다. 본 구절을 제대로 해석하는 출발점은 문멕에 대한 고려이다. 우선 본 시편 전체의 믄맥은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것이며, 본절 상반절은 참 예배 대상에 대한 예배자의 혼란을 다루고, 다음절은 참 예배 대상을 바로 택한 백성의 기쁨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예배 대상에 대한 혼란을 멈추고 참 예배 대상을 찾아 권고적 명령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말하자면 모든 이방 예배자들이 혼돈에 빠져 있으므로 이제 그들의 모든 예배 대상을 엎어버리고(마치 여호와의 법궤 앞에 다곤 신상이 넘어져버렸듯이) 온 우주의 주이신 그분 앞에 부복해야만 한다는 의미를 다소 역설적으로 표현한 내용이라 하겠다.


=====97:8
듣고 기뻐하며 - 4절의 '땅이 보고 떨었도다'라는 표현과 대조를 이룬다. 여호와의 도래는 경외와 두려움이 가득한 이미지들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여기서처럼 뛸듯이 기쁜 즐거움으로 기꺼이 환영하는 광경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믿지 않던 자들은 주의 재림의 때를 두려움과 고통으로 맞게 되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그때가 바로 구원의 때임을 예수님도 말씀하신 바 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올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눅 21:27,28).

=====97:9
주는 지존하시고(* ... , 아타...엘레온) - 여기서 '엘레온'(* )은 형용사로 '높은', '가장 높은'을 뜻하거나 하나님의 호칭으로서 '지존자'를 뜻한다. 이런 양자 택일의 가능성 때문에 본문은 '당신은 지존자이십니다' 혹은 '당신은 높으시고(지존하시고)'로 번역되고 있는데, 하반절 '당신은 매우 뛰어납니다'와의 평행을 고려할 때 후자의 번역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97:10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 왕이자 심판자이신 여호와의 도래가 가까왔음을 골자로 하는 선포를 해오던 기자는 이제 그 도래의 긴장 속에서 본 시편의 독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그것은 세상의 악을 미워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악을 미워함으로써 여호와께 대한 사랑을 입증해 보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악을 미워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왜냐하면 악은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실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악을 미워해야 하며 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곳에는 참 하나님 사랑이 없다는 사실을 본 구절만큼 명확이 밝히고 있는 곳도 드물다(사 1:16-20;요일 1:6, 7과 비교하라). 성도의 영혼을...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 성경 여러 곳에서 이같이 말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볼 때에는 이 말씀이 항상 진리인 것 같지는 않을 때가 많다. 말하자면 성도는 악인으로 인하여 자주 핍박을 당하고 손해를 입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종말론적 의미에서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이다. 즉, 이제 하나님은 심판자로 이 세상에 임하실 터인데 그 심판 뒤에 성도는 영원히 악인의 손에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구원 이후 악인은 성도를 다시 핍박하거나 손해를 주지 못한다.

=====97:11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기쁨을 뿌렸도다 - 여기에서 '뿌리꼬'(* ,자레아)는 문자 그대로 '흩다', '분산시키다'를 뜻하며, 밭에 씨를 뿌리는 것을 연상시키는 용어이다. 이 용어는 성경에서 흔히 '심은대로 거두는' 법칙을 암시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의를 뿌린다거나(잠 11:18), 죄를 뿌린다거나(잠 22:8), 해악을 뿌리고(욥 4:8), 그에 상응하는 열매를 거둔다는 식의 언급 속에서 이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본절은 빛과 기쁨을 뿌리고 그 적절한 열매를 거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이 심판주로 임하시기 전까지는 의인의 삶의 환경이 암흑과 같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뿌린 씨앗이 당장은 눈에 안 보여도 열매를 맺기 위해 자라가듯이, 이미 빛과 기쁨의 씨앗이 뿌리워졌으므로 보이지 않지만 그 열매도 자라가고 있으며 따라서 이런 암흑은 기쁨을 맞기 전에 잠시 맛보는 암흑일 뿐이다. 현재 의인에게 혹 재앙과 환난이 따른다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평화와 숭리가 열매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한편 성경에서 '빛'은 종종 구원(27:1;사 9:2) 혹은 일반적 의미에서의 축복(118:27;사 58:8,10;60:1 참조)을 상징한다(Anderson).

=====97:12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 본 시편은 서두와 같이 기쁨에로의 초청으로 끝맺고 있다.
그 거룩한 기념(* , 레제케르코데쇼) - 본 문맥에서 이 용어는 분명히 그 거룩한 이름, 곧 '여호와의 이름'을 가리킨다(135:13;출 3:15). 그분의 모든 것, 그분의 인간을 향한 계획 등을 상기케 하는 이름, 그 이름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본절 상반절은 32:11 상반절과 거의 유사하며, 하반절은 30:4과 동일하다.

 

 

 

   본 시편은 95, 96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통치데 대한 찬양시로서, 96편이  하나
님의 자비로우신 심판에 대한 즐거움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반면 본 시편은  하나님
의 엄위로우신 심판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을 주는 분위기의 시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 위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설명함으로써, 하나님의  통치의  일반적인
모습을 기술하고 있다(1-6절;18:7-15;50:3-6;77:14-19). 하나님의 통치는 우상 숭배의
이방인이나(7절), 성실한 이스라엘인(8, 9절)을 막론하고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이며,
특별히 하나님의 궁극적인 통치를 기대하는 의인들에게는 커다란 기쁜의 요소가 될 것
이다(10-12절).
   본시의 저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70인역(LXX)은 이  시편
에 대해 표기(標記)하기를, "다윗의 시니, 그 땅이 회복된 때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들은 이 시편에 기록된 승리에 대해 다윗을 통한 하나님의 행사로  생각하였
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본 시편이 유다의 포로 이후에 있었던 하나님의 새로운  권
위를 드러낸다고 주장함으로써 다윗의 저작설을 거부한다. 그러나 이 시편을 포로  후
시대의 작룸이라고 하기에는 뚜렸한 난제가 있다. 왜냐하면 '유다'란 말은 남북국으로
갈린 시대에서만 나올수 있는 표현이므로 8절의 '유다의 딸들'이란 언급은 포로후  시
대에는 합당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저자나 기록 연대에 대하여 정확한 결론
을 내릴 수 없다. 다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어느 시인이 하나님의 왕권을 찬송하며  악
인의 심판을 기대하는 시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한편 본 시편은 하나님의 통치의 미래를 조망하는 것으로서 특별히 메시야에  관련
된 천국의 장래를 예언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사실은 본시가 내용적인 측면에 있어
서는 하나님의 통치의 일반적인 측면을 찬양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하나님의  현현'
(Theophany)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런 맥락에서 본 시
편의 내용을 특징적으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왕되심을 선언함(1, 2절)
   2 하나님의 현현(3-6절)
   3 하나님의 현현의 결과들(7-9절)
   4 하나님의 현현과 의인의 모습(10-12절)
   또한 본시의 두드러진 내용적 특징은 전개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다. 본시를  멸밀
히 관찰해 보면, 마치 구약 성경 전체의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전개  과
정이 역사적임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을 근거로 하여 내용을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
        |      A.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통치를 계시(1-6절)              |
        |        B. 하나님 경배에로의 권고(7절)                       |
        |        B'. 시온의 응답과 경배(8, 9절)                       |
        |       A'.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통치의 결과(10-12절)          |      
        +-------------------------------------------------------------+
   이제 이와 같은 개괄적인 관찰을 토대로 하여 본 시편을 구분하고 그 핵심적  사상
과 교훈을 살펴보고자 한다.

        1. 하나님의 통치를 선언함(97:1-2)
   본 단락에서 시인은 땅 위에 사는 사람들(96:1;98:4;100:1)에게 하나님의 왕국  설
립을 기뻐하라고 요청함으로써 하나님의 통치에 관한 소망을 표명한다. 아울러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의 근거는 철저히 하나님의 '의'(義)와 '공평'(公平)임을  선언하고  있
다.
   특히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스라엘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땅 위의 지역
으로확장되고 있음을 선언한다(1, 2a절)에서 시인은 하늘의 왕으로서 전피조물을 지배
하시는 하나님의 왕권(kingship)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
님의 왕권 행사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의'와 '공평'이다(2b절).  '공의'는
하나님의 통치의 원리 중 핵심적인 요소로서 천국보좌의 항구성(恒久性)에 대한  근거
가 된다.

        2. 하나님의 현현(97:3-6)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를 선언한 이제 하나님의 장엄한 통치 모습을 묘사한다. 하나
님의 통치는 소멸하는 불의 모습으로도 나타나는데, 진노하셨을 때에는 불로써 그  대
적을 멸하신다(21:9;50:3;79:5;89:46;히12:29;계20:9). 번개 불빛은 세상은 세상에 두
려움을 주는 원인이 된다. 심지어 하나님의 현현의 결과로서 하늘이 하나님의  오심을
선포함을 의미한다. 이어서 시인은 하나님의 현현의 결과로서 하늘이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선포한다고 진술한다. 이와 같은 표현은 땅에 의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출현
이 임박했음을 선언하는 암시를 보여준다.
   또한 하나님께서 세상의 공의를 선포하시는 모습은(6절)  1 세상의 악을 향하여 하
나님께서 '진노의 불'을 발하시는 것과(3절;50:3;사42:25;마13:20)  2 번개로  온세계
를 비추는것(4절;18:13;출19:16)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세상
에 있는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당신의 '영광'을 보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6절).

        3.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나님(97:7-9)
   온 땅에 선포되어진 하나님의 공의는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도록 요청한다.  반면
에 이방의 우상 숭배자들은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
들이 섬긴 우상이 헛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인의 확신은
심지어 우상들에게까지 하느님을 경배하라고 요청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럴 때 하나
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누릴 숭리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겨워할 것이다.  이제
모든 이방 족속들은 하나님께 대한 참된 경배를 드리기 위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와야
한다. 만약 계속해서 우상 숭배를 고집한다면(96:5;115:4-8;사42:17;45:16)결국  수치
를 당하게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우상 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이 세상에 오시는 날, 아
무 힘도 발휘할 수 없으며 결코 참된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없을 것이다(25:3;37:20;사
1:29;미3:7). 그러므로 헛된 우상을 찬양하는 행위는 아무런 가치가 없으면 오직 하나
님을 믿고 경배하는 태도만이 참된 가치를 제공해 준다(7a절).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하여 시인은 모든 우상들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경배하도록
요구한다(7b절). 여기서 우상은 누구를 가르키는가? 우리는 6절에서 '하늘'이  하나님
의 공의를 선포한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상은 분명히 하늘의 영역
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변절시키는 자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우상은 인간으로 하여
금 결국 허무하게(emptiness)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참된 기쁨을  누린다(8절).  이것은
하늘에 선포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땅에서의 반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
땅히 땅에 있는 모든 자들은 전 우주 만물 속에서 유일한 권세를  지니신  하나님만을
경배해야 할 것이다(9절).

        4.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통치의 결과들(97:10-12)
   본 단락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심판의 위엄을 묘사한 후 성도들이 지녀야  할  신앙
자세에 대하여 결론적인 권고를 하고 있다. 곧 시인은 앞 부분(1-9절)의 전망에  근거
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악을 미워하도록 교훈하고 있다(잠8:13). 이러한 권
고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기준을 성실히 순종하며 살라는 것이다. 이처럼 성실하게  생
활할 때에 성도는 악인에게서 구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의인은 자신들이 누리는 영
적 번영과 기쁨으로 인해 의로우신 하나님을 인정하여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드러야
할 것이다(27:1;36:9).
   특별히 9절에서 드러난 시인의 고백은 이 땅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실제적
인 실현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적 하나님 나라의 실현은 누구를 통하여 드러나
는 것인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 의해서 실현되는 것이다(10절). 그들의 지
혜로운 선택은 악의 감염을 멀리하며(1:1, 2)근본적으로 배척한다.  그러므로  의인은
하나님께서 땅 위에 임하실 지림의 날을 두려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심판의 날에 하
나님께서 그들을 악으로 부터 완전히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30:4;86:2). 이제  의
인에게는 두 가지 혜택(benefit), 즉 '빛'과 '기쁨'이 주어진다(11절). 여기서 '빛'은
구원과 승리의 복된 상태를 의미하고(사60:1-3) '기쁨;은 미래에 드러날 하나님의  온
전한 축복에 대한 기대를 말한다(11절). 하나님은 당신 백성을 다시 한번  새롭게  할
때 이미 땅 위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근거로 하여 완전한 미래의 하나님의 나라
를 건설하신다. 여기서 이르러 1절에서 말한 '땅'의 모습이 바로  '의인'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설명된다. 의인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비추시는 빛과 같은 존재로서(사42:6) 온 땅에 드러날 하나님의 통치를 실질적으로  확장시키는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
   이상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배울 수 있다.  1 하나님의 통치는  자연신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방치가 아니라 적극적인 개입과 간섭을 통해 이루어진다.  2 하나님의 통치는 언약 백성을 통하여 이 땅 위에서 구체적으로 시행된다.   3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와 공평의 홀을 가지고 친히 지상에서 재림하심으로써 궁극적으로 실현(consummation)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종국적인 구원의 소망을 동시에 자각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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