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시편 09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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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1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 예화 말라크) -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왕이 되신다'로도 번역되는데 이것은 왕의 대관식 장면을 연상시키는 표현이다(삼하 15 : 10 ; 왕상 1 : 11 ; 왕하 9 : 13). 말하자면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시지만 이제 그의 왕국이 가시적으로 확립되고 그의 능력과 위엄이 충분히 현시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인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도래에 관해서는 요한계시록에서도 묘사되고 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계 11 : 15).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 고대 왕들은 흔히 그들의 찬란한 복장으로 때로는 고급 향수 냄새로(45 : 8) 범인(凡人)들과 구별됨을 나타내었는데 본구절은 하나님께서 그 탁월한 '권위'로 범인들과 구별되심을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권위'는 문맥상 온 땅과 만유의 왕으로서 그 권좌에 오르시는 하나님의 권위로 보면 되겠다. 본절 중반절은 하나님이 권위를 입으셨다는 사실, 곧 그가 왕이시라는 사실을 반복하되 특히 전쟁에서 승리하시는 왕이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능력'이란 표현을 끌어오고 있다. '능력을 입으시며'라는 표현은 종종 전쟁과 관련된 개념을 암시한다(18 : 39 ; 삼하22 : 40).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 - 세계 창조와 그 섭리적 통치뿐 아니라 그 속에 사는 인간들을 향한 공의의 통치자로서의 하나님의 속성을 강조하는 표현(96 : 10)으로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93:2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 '예로부터'에 해당하는 '메아즈'(* )의 문자적인 뜻은 '오래 전부터'이며 하반절의 '영원부터'(* , 마올람)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용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기자가 이말을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존재성과 대비시키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사용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문맥상 이 말 역시 영원성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본 구절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권은 인간이 알수 없었던 곧 창조 사역이 시작되던 바로 그 옛날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93:3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큰 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 여기서 '큰물', '물결' 등은 그 문자적인 뜻이 '물줄기', '강들'이나 시적인 평행법에서는 '바다'를 뜻하기도 한다(24 : 2 ; 렘 46 : 7, 8 ; 욘 2 : 3). 그리고 강이나 바다의 파도 혹은 그 소리는 적대 세력의 대항을 암시한다(Prowne). 그런데 기자는 그와 같은 세력의 행동을 묘사함에 있어서 계속해서 두 번은 과거시제를 사용하고 마지막은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사실은 개역 성경을 보아도 드러난다('높였고'...'높였고'...'높이나이다'). 문맥의 흐름은 영원한 하나의 통치권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악한 세력은 그 통치권에 대항하는 악한 세력을 암시한다. 바로 이 악한 세력이 하나님의 통치권에 대항하되 과거에는 물론 현재에도 계속 그 악한 도모를 일삼고 있음을 암시하기 위하여 기자는 이와 같은 시제변화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93:4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 - 3절에서 주석했듯이 전자는 하나님의 통치권에 대항하는 대적의 세력을 암시하고, 후자는 '미쉬베레 얌 아디림'(* )으로 그 문자적인 뜻이 강력한 바다의 파괴자들이며 이스라엘의 행보를 가로막았던 홍해를 암시한다(합 3 : 10). 홍해와 같은 자연 세력을 포함한 모든 대적보다 위대하신 하나님께서는 능히 그들의 대적 행위를 물리치며 그들을 정복하실 수있다(65 : 7 ; 욥 38 : 11).


=====93:5
주의 증거하심이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여 영구하리이다(* , 에도테카 네엠누 메오드 레베이트카 나아와 코데쉬 예화 르오레크 야밈) - 직역하면 '당신의 약속(증거)들은 매우 신실합니다. 오 여호와여 당신의 집도 마땅히 거룩합니다. 영원히'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문맥은 급박히 변하고 있다. 인간의 세력을 포함한 자연계의 통치를 통하여 드러난 하나님의 위엄이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자애로운 은혜와 예시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사실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다. 즉, 세계를 통치할 뿐 아니라 당신의 왕국을 설립하고 능력과 권세로 그 왕국을 영원히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동시에 확실하고 신실한 말씀을 통하여 그 백성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다스리고다고 약속하시고 또 직접 그들 가운데 임재하셔서 그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신다. 이처럼 약간은 장황한 내용을 간략한 두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기 때문에 본절의 내용 파악은 쉽지 않다.

 

 

 

   하나님의 엄위로우신 통치와 그 정당성에 대해 찬양하고 있는 본시는 첫째, 하나님
의 권위와 능력을 부각시키는 부분(1, 2절) 둘째, 세상 권력의 반역과 진압을  서술한
부분(3, 4절) 셋째, 하나님의 통치의 정당성을 찬양한 부분(5절)등으로  구성되고  있
다.
   이러한 내용으로 되엉 있는 본시의 저작 배경은 보통 세  가지로  제시되고  있다.   
1법궤를 시온으로 옮길 때, 하나님의 왕되심을 찬양하기 위해서 지었다는 학설이다(삼
상 6장). 이학설은 블레셋에 잠시 동안 빼앗겼던 하나님의 법궤가 이스라엘 땅으로 돌
아와서, 마침내 예루살렘에 안치되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블레셋의 신 바알을 압
도하셨다는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의 권능을 깊이 인식한 시인의 고백으로 본다.   2바
벧론 포로 귀환 직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회상하면서 저작했다는 학
설이다.  3바벧론의 왕의 즉위식을 모방한 '여호와 즉위시'라는 학설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고대 바벧론에서는 정월 초하루 말둑(Marduk) 신이 즉위하는 의식을  거행함으
로써, 그 백성과 만물을 통치하는 합법성을 부여받았다고 한다. 이런  이교(異敎)풍습
을, 바벧론 포로기를 보내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방해서 '여호와  즉위식'을  매년
정월 초하루에 거행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 중에서 마지막 세 번째 학설은  '하
나님의 엄위로우신 권능'에 대한 성격의 기본적 가르침을 벗어난 비교 종교학적  고찰
이므로 결코 수용할 수 없다. 하나님은 바벧론의 신과 같이 인간의  즉위식을  통해서
왕이 되신 분이 아니라 처음부터 '스스로 계신 분'이시다(출3:14).  그러므로  우리는
정확한 시기를 알 수는 없으나 본시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시인이 하나님만이  세
상의 통치자임을 고백하는 노래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본시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언약 백성을 구원하시고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광대하신 영광에  대한
'찬양시'(praise psalm)이다. 시인은 강대한 세상 세력 속에서도 완벽하게 구원  역사
를 진행시키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엄위에 대해 힘있는 어조로 선포하고 있다.
   한편 본시는 70인역(LXX)에 의하면 안식일 전날에 부른 찬양이라고 언급되고 있다.
즉 성전 예배의 제 6일에 사용된 시로소 하나님의 자연 통치가 아니라 역사에 대한 개
입이 드러남으로 조금 괴리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여호와의 왕되심을 찬양하고 있는 본시의 내용을 좀더 상론(相論)해 보자, 먼
저 시인은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세상의 군왕들과 비교함으로써 상대적인  우월감을
드러내는 차원에서 다루지 않고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造物主)라는  절대적인
관점에서 선포하고 있다(1, 2절). 세상의 군왕들은 모두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
서 출발하지만,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존재하신다. 또한 하나님은 세상의  주관자들을
제압하실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을 소유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께서  섭리
하시는 세계가 견고하고 안정되어 있다고 말한다. 물론 세상은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천지 만물과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지배아래 있으므로 결국 하나님의
의도대로 변혁될 것이다. 여기서 이러한 시인의 확신은 궁극적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상황과 입장을 예표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시인은 하나님께서 강력한 자연 세계와 세상 국가보다 더욱 위대하시다고
고백한다(3, 4절). 사실 세상의 군왕들은 스스로를 정대화시키면서, 신적인  존재임을
부각시키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징벌하시는 막대기로 쓰임을 받
은 바벧론이 스스로 교만해질 때, 페르시아(바사)를 통해 멸망케 하신 하나님의  섭리
에서도 잘 확인되고 있다. 세상의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왕되심을 드러내어 주는 교과
서로서(5절), 하나님의 통치의 합법성과 정통만을 보여줄 뿐이다. 아무리 두렵고 가공
할 위력을 갖춘 세상 세력도 결국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할  수밖
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유혹과 핍박을 받을 때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말고
온전히 극복해야 한다(요일 4:4-6). 하나님은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자연과  세계를
통치하시는 위대하신 여호와이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하나님의 집에 합당한 거룩함을  유지하도록  촉구하고  있다(5
절).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스5:2, 8;눅 2:49)은 언제나 성결하여 일체의  불의와
거짓은 멀리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교회는 영원히 존재
하며 하나님의 은총 아래서 완전한 구속을 맛볼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신약적 관점에
서 볼 때 하나님의 성전인 성도들의 거룩한 삶을 의미한다(고전3:16, 17). 그리스도인
들은 자신의 이기적 욕구나 본능에 의거하여 생활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인도를  통하
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할 것이다(고전2:13).
   이상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조금도 의심치 않고, 적극적으로 찬양하는 시인의  음서
을 들으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물이 통일되는 경륜을(엡1:9-12)  직접
체험한 자들로서 더욱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주권과 통치에 대해 찬양하
게 된다. 시인은 신약 시대의 성도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백산 이해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성령의 감동을 통해 하나님의 왕적 통치에 대해 찬미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폭포수처럼 부어주시는 성령의 시대에 서 있는 우리들은 범람하는 종교 다원주의와 뉴 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의 담콤한 유혹, 그리고 물질주의적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여호와 하나님만이 세상의 주인임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찬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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