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1
최상의 복 받을 자-여호와의 집을 사모하는 자 만군의 여호와 - 하늘과 땅의 모든 세력들을 다스리시는 무소 불위(무소불위)의 절대적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칭호이다(3, 8, 12절;80:4). 주의 장막이...사랑스러운지요 - '주의 장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미쉬케노테카'(* )로서 '당신의 장막들'(thy tabernacles, KJV)이라는 복수이다.여기서 '장막'(* , 미쉬칸)이란 '주거', '막사'란 뜻을 가진 말로서 흔히 '성막'이란 말로 번역되기도 했다(78:60;출 40:2, 35, 36, 38;민 9:15, 17, 18). 본문에서는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안치한 장막이나(삼하 6:17), 솔로몬이 지은 하나님의성전(왕상 6:1-8)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저자가 본문에서 이를 복수로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성전(또는 성막)의 세분화된 건물이나 부속 건물들을 포함하는 의미에서이거나(Alexander), 혹은 하나님의 성전(또는 성막)에 대한 강조적 표현에서(Anderson) 언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저자가 하나님의 장막을 극히 사랑하는것으로 표현한 것은 그곳이 하나님이 임재하여 거하시는 처소가 되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전의 지성소 내에 안치된 법궤 위의 속죄소 위에 임재하시어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통치하시고 그들로부터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다(출 25:18-22; 왕상 8:13, 29).
=====84:2
내 영혼 - '영혼'(* , 네페쉬)이란 영혼, 산 것, 생명, 자아, 인간, 욕구, 감정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 말로서 이 단어 자체만으로 인간을 가리킬 수 있으나 본문에서는 하반절의 '내 마음과 육체'란 말과 함께 인간의 전존재를 암시하는 의미로쓰여졌다 할 수 있다(VanGemeren, Anderson).
여호와의 궁정(宮庭)을 사모하여 - '궁정'이란 히브리어로 '하초체르'(* )로서 '마당', '뜰'을 의미하는데, 성경에서는 많은 곳에서 '뜰'로 번역되었다(65:4;출27:9, 12, 13, 17;40:8, 33;대상 23:28;28:12).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성전(또는 성막)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저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대한 경외심이 가득한 나머지 하나님의 성전 뜰에 이르러 그분을 경배하고 경외코자 소원하고 있다.순례자들은 성전을 방문할 때 성전 뜰에서 거하였다 한다(65:4, Anderson).
내 마음 - '마음'(* ,레브)이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약 850번 나타나는데 이는 인간의 지적이며(83:5), 의지적인(141:4) 측면에 강조점이 두어진 인격의 좌소(seat) 또는 인간의 전인격을(27:3;77:6;102:4, Anderson)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본문에서는 전문(前文)의 '내 영혼'과 후문(後文)의 '육체'란 말과 함께 인간의 전존재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육체(* , 바사르) - '바사르'(* 신선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살', '몸'등을 뜻한다. 이는 사람과 동물들이 만들어지게 된 육체적인 질료(물질)를 뜻하기도 하며(창 40:19) 인간의 몸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이나(79:2;109:24), 인간 또는 인류를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된다(136:25;145:21;창 6:12;사 40:5).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 '죄악'의 히브리어 '아온'(* )은'아와' (* , 구부리다, 왜곡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악', '사악함' 등을 뜻하는데,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그릇되게 행동한 불의들을 가리킨다(the iniquity,KJV,RSV).한편'사하시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나사'(* )로서 '들어올리다', '받아들아다' , '감당(담당)하다' (출 28:38;레 10:17;민 18:1,23;30:15) 등의 뜻을 갖는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속죄 제물의 희생에근거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감당하신다는 뜻으로서 곧 그들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의미이다.
덮으셨나이다(* , 카사) - 이는 '(눈을 해치는 것을) 덮는다'는 뜻을 내포하는 말이다(Kissane).이로 볼 때 본문은 하나님께서 당신외 희생 제물의 구속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당신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온전히 가리우시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한편,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에 의해 죄 를 온전히 제거하시사 기억조차 아니하시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히 9:12 ;10 :11-18).
=====84: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 이는 저자가 하나님을 절대적 권능자와통치자로서 갈망하며 사모하는 마음으로 부르짖는 말이다. 특히 '나의 왕'이란 이스라엘에 왕이 있었지만 참된 왕, 통치자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말이다. 한편, 히브리원문상으로 본문은 본절 끝에 나온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를 후대의 첨가 구절로 보지만(Kraus, Wanke) 고대 역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24:10;68:24 참조).
주의 제단에서(* , 에트 미즈베호테카) - 직역하면 '당신의 제단들에서'(at thy altars, RSV)로서 복수이다. 따라서 '주의 제단들'이란 성전(또는성막)의 번제단(출 27:1-8)과 분향단(출 30:1-6)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것들은 각각하나님의 성소의 앞뜰(출 40:6, 29)과 지성소의 맞은편 성소 안(출 30:6;40:5)에 놓여졌었다. 그런데 본절 내용에 대해 혹자는 '제단들 안에서'(in the alters) 혹은 '제단에서' 보금자리를 만든다는 말로 이해하나(Kissane), 이는 무리한 해석이다. 왜냐하면이 제단들은 하나님의 성전의 거룩한 것들로 외부 존재들이 함부로 드나들거나 취급할수 없었기 때문이다(출 30:25-29;민 1:51;3:5-10). 오히려 이는 그 근접 구역, 즉 성전 건물들의 벽 주위(처마 같은 곳)에서 집과 보금자리를 얻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Anderson). 한편, 본문에서 주의 제단이 암시하는 바는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하는 희생 제물의 대속 및 기도라 하겠다(Alexander). 참새...제비 - 참새는 구약 성경에서 본절에 언급된 횟수를 합쳐 3번 언급되는데(102:7;잠 26:2), 신약 성경에서 보면 싼값에 팔려지는 것으로서(마 10:29, 31;눅12:6, 7) 하찮은 존재를 암시하는 듯하다. 이럴 경우 본문은 하찮은 참새도 주의 제단에서 제집을 얻는다는 비유로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기자의 간절한 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겠다. 제비 또한 참새와 유사한 의미를 나타내는 듯하다.
=====84:4
주의 집에 거하는 자 - 하나님의 성전(성막)에 거하여 하나님께 봉사하는 제사장들이나 찬송하는 레위인들 또는 특히 고라 자손이 참여했던 문지기들을 뜻할 수 있다(대상 23:5;25, 26장, Rawlinson). 그러나 이외에도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특권을 지닌 모든 자들을 뜻할 수도 있다(Anderson).
복이 있나이다(* , 아쉬레이) - 이는 복수의 표현으로서 행복의 충만함, 다양함 등의 뜻을 암시할 수도 있다(1:1, Alexander).
=====84:5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시온의 대로'란 '메실라'(* )로서 '시온'이란 말이 없고 단지 '대로'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쌓아 올리다'란 뜻인 '살랄(* )에서 유래되었음을 볼 때, 자연적으로 다져진 길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든 길을 뜻한다 하겠다(Alexander). 문맥상 하나님의 성전으로 나아가는 길을 암시하는 것으로서(Mowinckel), 그 마음에 이런 길이 있어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사모하는 자를 지칭하는 것같다.
=====84:6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 '눈물 골짜기'는 히브리어로 '베아메크 하바카'(* )로서 '바카의 골짜기'(the valley of Baca, KJV, NIV, RSV)란 뜻이다. 그러나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 영역본 LB, RV는'바카'(* )를 '베카'(* , 울음)로 보고 '울음의 골짜기'(the valley of Weeping)로 번역하고 있으며(Anderson), 70인역(LXX), 탈굼역(Targum), 시리아역, 벌게이트역(Vulgate) 등도 이와 유사하게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바카'를 '울다', '통곡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로 보는 데서 연유한다. (2) 혹자는 이를 삿 2:4, 5의 '보김'과 같은 뜻으로 이해하여 '눈물의 골짜기'를 뜻하는 의미로 본다(Clarke). (3) 또 다른 이는 '바카'가 건조 지대에서 자라는 발삼나무(balsam tree)를 뜻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Kidner). 이 나무는 건조 지대에서 자라나 나무 자체에서 눈물과 같은 물을 떨어뜨린다 한다. 이중에서 어느 한 견해롤 배타적으로 취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들 모두 나름대로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봄이 나을 것이다. 즉, 본문은 이곳이 거칠고 물이 크게 부족한 곳임을 나타내줌과(the thirsty valley, NEB, Anderson, Calvin) 아울러 고통스러운 곳을 상징한다(Alexander, VanGemeren) 하겠다. 하나님의 전(殿)을 사모하는 자들은 이런 곳도 은혜 가운데 무사히 통과하여 간다는 것이다.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 전문(前文)의 거칠고 황무한 곳(또는 고통스러운 곳)에 웅덩이를 파 빗물을 받는 곳을 만든다는 뜻인지, 아니면 그곳이 비로 인해물 웅덩이의 곳이 된다는 뜻인지, 또는 그곳에서 물 웅덩이를 발견하게 된다는 뜻인지정확한 의미를 규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5절의 '마음에 대로가 있는 자'는 어렵고 힘든(삭막한) 상황도 기쁨과 생기가 넘치는 상황으로 변화시킨다는 사실이다.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 '이른 비'(* , 모레)는 경우에 따라서 '교사'(잠 5 : 13 ; 사 30 : 20) 또는 '이른 비'(욜 2 : 23)를 뜻할 수 있으며, '은택' (* ,베라카)이란 모음에 따라 '축복'과 '못'(저수지)을 의미할 수 있는 바, 본문은 대개 다음 세 가지로 해석되어 진다. (1) 비가 또한 못들을 덮는다. (2) 교사가 축복으로 옷입혀진다(Alexander, Clarke). (3) 비가 축복으로 그것(눈물 골짜기)을 덮는다. 이중에서 (3)이 가장 무난할 듯하다. '이른 비'는 팔레스틴 지방에서 10-11월에 내리는 비로서 밭의 파종과 경작을 가능케 하며 흔히 하나님의 은택으로 상징된다(신 11:14;약 5:17). 본문은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복된 삶을 살게 됨을 암시한다.
=====84:7
힘을 얻고 더 얻어(* - , 메하일 알 하일) - 직역하면 '힘으로부터 힘에로'(from strength to strength, KJV, RSV)이다. 이는 지속적으로 힘을 얻는 것을 뜻하는 듯하다.
시온 - 78:68 주석 참조.
=====84: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야곱의 하나님 - 본절에서부터는 기자의 간절한 간구가 시작 된다. 이 간구는 앞에서 언급한 복, 곧 하나님과 교제함으로써 누리는 축복에 근거를 둔 것이다. 또한 여기 나오는 하나님의 칭호들 또한 이러한 간구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이 칭호들은 하나님의 영원성, 자존성(自存性), 절대 주권, 언약에의 신실성 등을 암시한다.
=====84: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 , 마기네누 레아 엘로힘) - 직역하면 '우리의 방패, 보소서, 하나님'의 뜻이다. 혹자는 '우리의 방패'를 '보소서'라는 동사의 목적어로, 후문(後文)의 병행 구절로 보기도 하지만(Behold our shield, God, RSV, VanGemeren, Tate, Anderson), 이는 하나님을 비유하는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11절, Alexander, Rawlinson). AV, RV 등도 70인역(LXX)과 탈굼역(Targum) 등을 따라 이를 하나님과 동격인 호격으로 취하고 있으며, 11절에도 하나님을 방패에 비유하고있다. 하나님을 '우리 방패'로 묘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분이 되심을 나타낸다. 특히 이 말이 본절에서 맨 앞에 언급된 것은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주의 기름 부으신 자...살펴보옵소서 - '주의 기름 부으신 자'에 대해 혹자는 다윗왕을 지칭한다고 본다(Calvin, Alexander). 그러나 굳이 다윗 왕으로만 국한시키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며, 이스라엘 왕을 가리킨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할 것이다(Anderson, Rawlinson, Tate). 따라서 본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심으로써 결국 이스라엘을 형통케 해주십사하는 간구이다.
=====84:10
내 하나님 문지기 ( * , 히세토페프 베베트 알로히) - 직역하면 '내 하나님의 집의 입구에 서는 것'(the standing at the entrance of the house of my God)을 뜻한다(Anderson). 이는 레위인으로서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는 문지기 직무자를 뜻하기보다는(왕하 12:9;23:4;렘 35:4)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성전(또는 성막) 입구에 서서 들어가기를 간구하는 자를 뜻하는 것 같다(Anderson). 키드너(Kidner)도 본문과 관련하여 언급하기를 '문지기'란 대상 26:1, 12 등에 공식적으로 위임된 직임인 문지기와는 다르며, 이 말은 동사로서 '문지방에 서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84: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본문 서두에는 원인을 나타내는 불변사 '키'(* , 왜냐하면, For, KJV, RSV)가 언급되어 잇다. 따라서 본절은 저자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께 경배드리기를 갈망하는(10절) 이유를 설명해 준다. 한편, 본문의 '해와 방패'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며 활력을 베푸시는 분이 되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시적 표현이다(9절). 성경에서는 이외에도 그리스도를 해로 비유한 적이 있다(말 4:2).
영화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카보드'(* )로서 '무거움', '풍성함', '찬란함' 등을 뜻한다. 이말은 흔히 아름다우신 속성 중 하나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쓰여지는데(출 24:16, 17;33:18-23;겔 1:28),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결과들 또는 그 결과의 외적 표현들을 뜻하는 것 같다(Alexander).
=====84:12
만군의 여호와 - 80:4 주석 참조.
의지하는 - 이는 히브리어로 '바타흐'(* )로서 근본 뜻은 '(피난하기 위해) 서둘러 가다'이며, 이에서 상징적으로 '신뢰하다', '의뢰하다'의 뜻이 유출된다. 이는 어려움과 환난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또는 곤핍한 상황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의뢰하는 것을 함축한다.
본 시편에는 인간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취할 수 있는 최고의 복이 제시되어져 있
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나아가는 것이요(요14:6). 하나님께 기도하
기 위하여 믿음으로 성전을 향하여 간다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
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일단 나아가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최상의 복락을 누릴 수 있다. 비록 이 땅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삶이 대단히 괴롭고 힘
든 일일지라도 하나님을 사모하고 겸손히 무릎끊는 행위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특별히 우리는 본 시편의 성취(fulfkllment)를 신약 속의 '그리스도 안'(
)의 개념에서 발견하게 된다. 나사렛 예수는 바로 그 개념을 드러내신 분이시며(요일
1:2)하나님의 현조의 결정체이다(요1:145).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
는 공동체를 통해서 높임을 받으신다. 더나아가 본 시편은 마지막에 있을 '새예루살
렘'과 하나님과의 영적인 연합에 대한 기대가 드러나 있다(계21:3,10이하).
한편 본 시편이 쓰이게 된 시대는 확실치 않으나 '주의 궁정'이 언급되고 있는 것
으로 보아서(1-4절, 10절)포로 이전 시기가 분명하다. 그러므로 왕정 시대 기간 중 장
막절과 같은 큰 절기에 행해진 예루살렘 순례(巡禮)와 관계된 노래로 보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 좀더 내용과 관계하여 살펴보면 본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부른 곡으
로 볼수 있다.
또한 본 시편의 저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고대 학자들 (Calvin,
Hengstenberg, Delitzsch)은 이 시의 저자를 다윗이거나 또는 다윗의 정신을 계승한
고라의 자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본시가 내용과 표현에 있어서 42-49편과 유사
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본 시편의 최초 저자는 예루살렘으로 순례하기 위해 온 제사
장이었으며, 이 시편을 보관한 자는 고라의 자손이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본 시편은 여러 가지 다양한 형식과 주제를 한꺼번에 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 시편의 지배적인 주제(theme)는 무엇보다도 시온 성소 (Zion sanctuary) 의
영광스러움 (1,7절)에 대한 시인의 간절한 소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시인은 '예루
살렘 성전'에 대한 가절한 열망(1절)으로 인하여 점차 성전으로 가까이 가고자 하는
노력이 구체화된다(4절). 그러나 5절 이후에는 이러한 소망이 가시적인 예루살렘 성소
가 아니라, 상징적인 시온의 성소를 갈망하는 개인적인 차원으로 전환된다. 이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시인은 단순히 예루살렘 성소로의 순례가 주는 즐거움에 국한되지 않고
시온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나라를 대망하면서 본시를 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본 시편의 단락을 구분하고 그 단락의 핵심 내용과 교훈을 살펴보면 다
음과 같다.
1. 전능하신 하나님의 궁정에 대한 열망(84:1-4)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자의 대표자라고 볼 수 있는 시인은 본연에서 성전에 들
어가기를 심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막(74:7;76:2;132:5, 7)에 대
한 찬양을 시작한다. 시인의 마음과 육체가 간절히 성전을 갈망하는 근거는, 하나님께
서 살아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구주로서 마땅히
모든 이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다.
시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에 대한 사랑(1절)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의 성전, 곧 궁정은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상징이었다. 그러므로 성전을 순례하
는 경배자들은 며칠 동안 여기서 기숙하였다(2절;43:3). 여기서 시인은 육체적으로는
가시적인 예루살렘 성전을 강망하면서도 영혼으로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간절히
원한다(16:8). 시인의 유일한 관심은 바라는 복을 주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께만
고정되어 있다(3절).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뛰어넘는 능력을 소유하신 분
이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을 불행에서 행복으로, 고통에서 자유로, 죽음에서 생명으
로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이시다. 동시에 그분은 '생존하시는 하나님'(2절;42:2)이시다.
시인의 이러한 표현은 다음의 두 가지 사실로 구체화되어진다. 하나님께서는 1 전능하
신 하나님의 왕되심을 경험하고 2 간절히 열망하는 자들의 삶에 축복을 주신다(3,4
절).
성전을 회상해 보면서 시인은 새들이 성전 처마에 보금자리를 만든 사실을 그려본
다(3절). 이러한 연약한 동물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제단에 의지하여 안위를 얻는 모습
을 보면서 시인은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광범위한 형태로 드러나는지를 지적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현존을 상징하는 성전을 사모하는 태
도는 축복을 얻기 위한 가장 근원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다.
본 단락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깨달을 수 있다. 1 하나님의 백성들
은 하나님의 임재의 가시적 장소인 교회에 대한 신실한 열망을 가져야 한다. 2신자에
게 있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활보다 더 행복하고 즐거운 것은 없다.
2. 순례자들에 대한 축복(84:5-7)
성전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밝힌 시인은 이제 예루살렘 성전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
순례를 행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선언한다(신16:16). 성전을 찾음으로써 자신의 믿
음을 나타내는 자에게는 영광스러운 특권과 커다란 유익이 있다고 말한다. 즉 순례자
들은 하나님의 축복에 의해 놀라운 힘과 능력을 얻는다는 것이다.
특별히 시인은 하나님의 성전 밖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시인
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든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한다(5절).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
은 오직 하나님을 피난처러 삼아 자신들의 모든 필요를 공급받을 수 있다. 여기서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라는 독특한 표현이 지칭하는 것은 4절의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
하리이다'와 관련하여 다음의 3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1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를
가리킨다. 2 예루살렘의 안과 주위를 행진하는 것을 가리킨다. 3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자체를 가리킨다.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든지 우리는 하나님을 모든 것으로 삼고 즐
거워하는 자들의 복된 삶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6,7절에서 시인은 순례여행을 묘사하고 있다. 눈물 골짜기는 고통과 난관의
길을, 많은 생은 긴 여행으로 지친 순례자들을 위해 파놓은 물웅덩이를 뜻한다. 이와
같은 고통 속에서도 순례자들은 이른 비(율2:23)를 통하여 힘을 얻게 된다. 이렇게 힘
을 얻은 성도들은 결국 시온 산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감사와 찬송을 드리게 된다.
본 단락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깨달을 수 있다. 1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기 위하여 노력하는 자들은 실제로 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체험을 갖게 된다. 2
하나님을 체험한 자는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여 은혜를 받게 된다.
3. 왕되신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함(84:8-9)
이제 그렇게도 간절히 열망하던 하나님의 처소에 도달한 순례자는 언약 백성들을
보호하는 방패이시며 만왕이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만군의 주가 되시며 야곱의
하나님이 되신 여호와는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언제나 주시기를 원하는 분이시므로 순
례자의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된다.
본 단락에서 시인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으심을 받은 언약 백성의 지도자인 '왕'
을 위해 기도한다. 왕은 백성들의 대표자이며 동시에 보호자이다(9절). 여기서 보호자
의 차원에서 소개된 하나님의 역할이 11절에서는 좀더 명확하게 진전되어 서술된다
(89:18). 비록 왕이 백성의 보호자(protector)일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축복에 의존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시인은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으심으로써
그분의 선하심을 지상에 확장시키시도록 기원한다.
한편 어떠한 국가적인 비극이 본시의 역사적 배경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 수
는 없으나, 그 사건이 왕과 백성들을 크게 괴롭힌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므
로 시인은 하나님을 '전능하신 분'으로 강조하여 선포함으로써 현재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도는 특별히 '야곱의 하나님'
(8절)이란 외침으로 연결되는데,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신 언약의 하나님을
회상하며 현재의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하는 것이다
(20:1;24:6-10)
본 단락을 통하여 우리는 1 기도드릴 때에는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간절한 사모가
있어야 하며 2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의 간구보다는 주로 공동체적인 맥락의 중보 기
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4.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여 얻는 복(84:10-12)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한 시인은 이제 왜 자신이 시온에 가기를 간절히 소원하는지
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시인이 성소에 가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라고 확산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궁정에 대한 깊은 사랑을 확인하면서
여기서 오랫동안 머물기를 소원한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거하시면서 의인들을 축복
하고 보호하시며(3:3)은혜와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16:2;34:10). 그러므로 시인은 하
나님의 복을 받기 위한 필요 조건이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 있는 것임을 다시
한번 재인식한다.
또한 시인은 하나님의 존재의 위대함에 대하여 노래한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단
하루가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는 많은 날들보다 귀중하다고 고백한다. 세상에서 명
예와 부귀를 얻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시는 혜택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하나님은
자신을 친히 '해'와 '방패'로 드러내셨다. 여기서 '해'는 회복의 시대에 대한 상징인
데(사60:19;말4:2)흔히 '빛'또는 '광명'이란 단어로 사용된다(사60:1, 3). 하나님께서
는 축복의 표현으로써 '은혜와 영화'를 주신다. 은혜란 언약 백성들과 더불어 하나님
의 '영광'을 나누는 생활이며, 그 결과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충만한 경험이다
(23:6;출33:19).
시인은 결론적으로 다시 한번 위대한 왕이신 하나님을 바라본다. 본시의 서두에서
시인은 전능하신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한 간절한 소원을 표현했었다(1, 2절). 이제 시
인은 본 시편 끝을 맺으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권고한다. 인간은 하나님 안
에서 피난처를 발견할 때 참행복과 기쁨을 소유할 수 있다.
본 단락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신자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유일하신 기름부음을 받으신 중보자(mediator)이시기 때문이다. 2 신자가 하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태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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