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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전장에서 대내적인 문제를 타개한 느헤미야는 이제 본장에서 또다시 외부의 적들의 음모와(1-4절) 모함(5-9절) 및 공갈, 협박(10-14절)에 직면하기에 이른다. 대대적인 기습공격의 무용성을 깨달은 산발랏 일당은 성벽 재건의 막바지 단계에 이르러 마지막 계교를 짜내었는데, 그것은 성벽 재건의 주동자요 책임자인 느헤미야를 암살하는 방법이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게셈 - 이들에 대해서는 2:10 주석 및2:19 주석을 참조하라.
나머지 우리의 대적 - 이들은 '산발랏'에 동조하여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방해하던또 다른 자들이다. 구체적으로는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을 가리킨다(4:7).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라 - 보통 '문짝'은 건축 공사를 할 때에 마지막으로 달게된다는 점에서 볼 때, 본 문구는 성벽 공사가 전반적으로 완료되기 일보 직전에 있었음을 나타낸다.

=====6:2
본절에 '도비야'라는 인물의 이름이 빠져있는 것은 본절의 두 인물이 '총독'혹은 '족장'(2:19)인데 비해 도비야는 다만 그 총독의 막료일 뿐이었기 때문이다(2:10).
오노 평지 한촌에서 - '오노 평지'의 '평지'(* , 비크아트)는 '나누다' 혹은 '쪼개다'의 뜻을 갖는 동사 '바카'(*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오히려 '계곡'으로 번역해야 적당하다(Fensham). 한편, '오노'는 예루살렘 북서쪽 약 32.4km 지점에 위치했다. 이곳은 그 당시로서는 사마리아와 아스돗 사이의 중립 지대로서(A.Alt), 완전한 이스라엘 땅이 아니었다. 바로 이 같은 점을 감안한다면, 산발랏 일당이'오노'를 느헤미야와의 면담 장소로 택한 것이 느헤미야를 이스라엘 영토 밖으로 꾀어내어 살해하려는 음모에 따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 촌에서'(* , 바크피림)에 대해서는 (1) 본절의 '바크피림'을 장소를 나타내는 전치사 '베'(* )와 고유한 지명 '하크피림'(* )의 합성어로 보고 '하크피림에서'라는 견해(Williamson, Myers, Rawlinson, Kidner, Schultz, Fensham), (2)'바크피림'을전치사 '베'(* )와 '마을'을 뜻하는 명사 '카파르'(* )의 복수가 합쳐진 것로보고 '여러 마을들 중의 하나에서'라는 견해(Keil), (3) '바크피림'을 전치사 '베'(*), 즉 '-와 함께'와 '케피림'(* ), 즉 '사자들'의 합성어로 보고 '사자들'이란 말로 암시된 '방백들과 함께'(겔 19:1-6)라고 해석하는 견해(Schirmann)등이 제시된다. 그러나 첫째, 산발랏 등이 '여러 마을들 중의 하나에서' 만나자고 함으로써느헤미야로 하여금 그 마을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할 경우 그로부터 의심을 덜받을 수 있으며 둘째, 본문에서 짐승의 이름과 방백들을 굳이 연관시켰다고 보기는힘들다는 점에서 볼 때, 두 번째의 견해가 보다 타당할것이다.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 - 고대 사회에서는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안심시켜서 제3의 장소로 불러 내어 거기서 죽이는 일이 흔했던것 같다(창 4:8;렘 41:1-3).바로 이러한 습속을 아는 느헤미야는, 외딴 곳으로 자신을 나오라는 대적들의 제안에어떤 혹막이 숨겨져 있었음을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느혜미야가 이처럼 재빨리 그 음모를 눈치 챈 것은, 느헤미야도 나름대로의 첩보망을 갖고 있었던 때문일 가능성도 크다(Fensham).

=====6:3
본절에서 느헤미야는 음모섞인 대적들의 제안을 완곡히 거절한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일 때문에 가지 못하겠노라 한 것 자체도 거짓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성벽 재건이 크게 진척된 것은 사실이었으나, 문을 달아서 작업을 마무리하는 일이 그무엇보다 시급했기 때문이다(1절).
어찌하여...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 본 문구를 통해 우리는(1) '오노'가 예루살렘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지대였다는 점과,(2) '오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적들의땅과 인근해 있었으므로 상대적으로 낮추어 언급했음을 알 수 있다.

=====6:4
대적들의 반복된 메시지의 전달은 그들이 성벽 재건의 방해를 위해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Myers).

=====6:5
종자(* ,나아르) - 이것은 산발랏의 하급 신하를 뜻할 것이다(4:16).
봉하지 않은 편지 - 고대의 공식 문서는 양피지 등에 기록된 뒤 끈으로 묶여 인장으로 날인되어 봉해졌었다. 이는 작성된 내용의 변조를 막아서 그 문서의 신빙성을 보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발랏 일당이 인봉치 않은 편지를 보낸 까닭은, 편지의 내용을 백성들도 알게 해서 놀라게 하며, 느헤미야로 하여금 자신들에게나오게끔 촉구하려는 데 있었다.

=====6:6,7
여기서는 산발랏의 다섯 번째 편지의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그 내용은 한 마디로느헤미야가 페르시아 왕실에 대해 모반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방 -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을 가리킨다(4:7).
가스무도 말하기를 - 이것은 '가스무'가 이방 사람들 사이에 떠돌던 느헤미야의모반 사실을 확증했다는 뜻이다(Fensham).'가스무'는 느헤미야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서 '게셈'으로 불리워지던 인물의 아라비아식 이름이다.
네가...모반하려 하여 성을 건축한다 - 느헤미야가 '성을 건축'했던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중심지인 예루살렘과 그 안에살던 백성들을 의적의 칩입으로부터 보호하려는데 있었다(1:3). 따라서 느헤미야가 모반을 꾀한다는 소문은 말할 나위도 없이대적들이 지어내어 퍼뜨린 완전한 허위였음이 분명하다. 휠씬이전에 있었던 성벽 재건의 시도도 바로 이와같은 허위 보고가 페르시아 왕실에 올려짐으로써 좌절되었었다(스 4:11-23). 바로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던 산발랏은 금번에도 그와 유사한 헛 소문을 퍼뜨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재건을 중지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선지자를 세워...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 이것도 산발랏의 거짓말이다. 사실 왕족도 아닌 느헤미야가(2:3), 스룹바벨과 같은 직계 왕족도(스 2:2) 왕에오를 수 없었던 포로 후 시대의 상황에서 스스로 왕이 되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여기에서 '네가 선지자를 세워'는 스룹바벨 시절에 생긴건축 사역의 재개를 위하여 활약했었던 학개 및 스가랴 선지자의 메시야의 도래에 대한 예언(학 2:22,23;슥 9:)을 알고 있었던 산발랏의 거짓말이다. 즉, 산발랏은 거의 1세기 전에 활동했던 선지자들의 메시아 예언을 왜곡시켜서, 느헤미야가 그 당시에는있지도 않았던 선지자의 도움을받아 왕에 오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헛된 주장을하였던 것이다.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 이에 관해서는 본 단락 주제 강해, '왕의 즉위와 관련된선지자의 역할'을 참조하라.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 본절에서 산발랏은, 자신이 느헤미야를 모반 혐의로 고소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시사함으로써 그를 협박하고 있다. 사실 (1)아닥사스다 왕 시대에는 페르시아 정복지 전역에 걸쳐서 모반이 끊이지 아니했었으며, (2) 특히많은 권력을 쥐고 있었던 술 관원들의 모반이 잦았었다(Fensham)는 점 등에서, 술 관원 출신이었던(1:11) 느헤미야가 모반을 하고 있다는 고소는 비록 그것이 무고(誣告)이기는했지만 아닥사스다 왕에 의해서 진실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산발랏은바로 이 점을 이용해서 느헤미야를 협박하려 드는 것이다.

=====6:8
본절에서 느헤미야는 단 몇 마디의 말로써 산발랏의 장황한 참소(6, 7절)를 기각시켜버리고 있다. 만일 산발랏의 무고가 아닥사스다왕에 의해서 받아들여질 경우 느헤미야가 곤란한 문제들에 직면할 가능성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담대할 수 있었던것은, 그가 하나님을 신뢰한 때문이었다(9절).
지어낸 것이라 - '지어낸'(* , 바다)은 구약성경 중 본절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나타나는 왕상 12:33에서는 자신의 입지를 강화할 목적으로 소견에 옳은대로 어떤계획을 세우는 것을 가리킨다. 그 밖의 성경 외적 문헌에서도 이 단어는 '거짓을 꾸미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Fensham). 따라서 여기서 이 단어는 '타인을 해롭게 할 목적으로 진실을 교묘히 왜곡시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6:9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발랏 일당의 집요한 심리전에의해서 낙심에 빠졌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었다(4:4). 이제 다시 산발랏은 느헤미야를 회유 . 협박함으로써, 그런 결과를 재차 얻으려고 했었다. 사실 이것은 성벽 재건을 신속히 추진하려고 애쓰던 느헤미야에게 큰 장애 요소였음에 분명하다.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즉, (1) 개역 성경처럼 하나님께 담대한 마음을 허락해 주실 것을 소원하는 기도로 봐야 한다는견해(Fensham, Rawlinson, Schultz, Keil, Battem, Kidner, NIV), (2) 기도의 대상인하나님이 언급되고 있지 않음을 근거로 해서 느헤미야 자신이 스스로 마음을 굳게 먹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Williamson, Myers, JB, 공동번역) 등이 있다. 그러나 본서 전체를 통해서 볼 때 느헤미야의 기도는 특별한 형식없이 필요한 상황에서 드려졌었다는 사실(2:4;4:4,5;5:19)등으로 미루어 위의 두견해 중 첫 번째의 것이 보다타당성이 있다.

=====6:10
본절에서부터 19절까지에서는 산발랏 일당의 또 다른 음모가 언급된다. 그런데 이음모에는 느헤미야 진영에 있는 사람, 더욱이 선지자가 가담하였다는 점에서 가히 충격적이다.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 - 이 사람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혀진 바가없다. 그러나 그는 성전에도 들어갈 수 있었던 신분의 소유자라는 본절의 암시로 볼때 제사장이었으리라 짐작된다(Bowman). 또한 그는 그 당시에 선지자 행세를 하기도했었다(12절).
두문 불출(杜門不出)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 본절의 '두문 불출'에 대해서는(1) 그 당시에 스마야가 부정(不淨)한 상태에 있었던 관계로 성전 봉사에 참여치 못했었음을 뜻한다는 견해(Rawlinson),(2)서원 이행을 위하여 근신하고 있었음을 뜻한다는견해(Schultz). (3) 스마야 자신처럼 은둔하지 않으면 느헤미야가 암살을 당할 위험이있음을 암시하려는 술수였다는 견해(Keil), (4)마치 슬픈 사건을 예견한 선지자가 그것으로 인해 비탄에 빠져있었던 것처럼 행동함으로써(사 20:2;겔 4:1-8). 느헤미야로하여금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끔 하려는 술수였다는 견해(Rudolph,illiamson),(5)마치 감금되어 있었던 것처럼 꼼짝하지 않음으로써 느헤미야로 하여금 스마야 자신을찾아 헤매도록 하려고 한 술수였다는 견해(Myers)등이 제시된다. 그러나 첫째, 스마야가 만일 부정한 상태에 있었거나 서원 이행을 위해 근신하고 있었다면 성전으로 가자는 제안을 하지못했을 것이라는 점과 둘째, 위의 '아추르'라는 단어가 구약 성경에서비탄의 상태를 가리키는데 사용된 적이 없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여러 견해 중(3)이나 (5)의 것이 가장 타당할것이다.
저희가 너를 죽이러 올터이니 - 이것은 산발랏 일당이 보낸 자객들이 느헤미야를암살하기 위해서 사마리아로 부터 올 것이라는 뜻이다. 대규모 공격은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에 의해서 쉽게 눈에 띄어(4:9, 22) 실패할 가능성이 많았던 반면, 느헤미야 개인에 대한 스마야의 암살 협박은 느헤미야에게 대단한 두려움을 안겨줄만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外所)안에 있고 - 이것은 산발랏 일당의 암살을 모면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피신하자는 스마야의 제안이다. 사실 살해 위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성전으로 도망가서 제단 뿔을 잡는것은, 모세 율법에 규정되어 있었다(출 21:12,13;왕상 1:50-53;2:28). 따라서 본절과 같은 스마야의 제안은 어느 정도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거기에는 음흉한 함정이 깔려있었다(12절 주석 참조).한편, '외소'(* ,토크)는 '-의 중앙'을 뜻하며, 구체적으로는 '성소'를 가리킨다(겔48:21). 즉, 성전 현관과 지성소의 사이이다(Rawlinson).
그문 - '성소'와 성전의 현관 사이의 잣나무로 만들어진 문이다(왕상 6:34).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 느헤미야의 공포심을 가중시키기 위한 반복이다. 스마야는 이미 자신의 경고 서두에서 '죽이러 올터이니'라고 말한 바 있다.

=====6:11
본절에서 느헤미야는 두 가지의 이유를 들어서 성전으로 피신하라는 스마야의 음모적인 권고를 거절한다.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 이것은 느헤미야가 성전으로의 피신을 거절한 첫째이유이다. 즉, 그는 페르시아 왕실로부터 임명된 총독의 신분으로서 생명의 위협이있다고 해도 몸을 숨기는 것은 타당치 않음을 그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느헤미야는내우외환(內憂外患)의 시련을 앞장서서 극복해야 할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비록 죽음이 눈앞에 닥쳐왔다 하더라도 초연함으로써 백성들의 모범이 되고자 했다(Rawlinson).
나 같은 몸이면...생명을 보존하겠느냐 - 성전으로의 피신을 거절한 두 번째 이유이다. 사실 모세 율법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자에게는 성전으로서의 피신을 허용하였다(출 21:12, 13). 그러나 그러한 피신은 특정한 경우에 제한되었으며, 외국인 특히이방 군대에 의한 경우는 포함되지 않았다(Fensham). 따라서 이 같은 상황에서의 성전으로의 피신은 제사장 이외의 사람은 성전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율법을범하는 행위였다, 율법은 이러한 범법자는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선언한다(민 18:7).

=====6:12
깨달은즉 - 느헤미야의 이러한 깨달음은 '스마야'의 음모섞인 권고를 듣는 즉시 있었을것이다. 즉, 느헤미야는 스마야가 자신에게 범법행위를 권하는 그 사실을 통해서그 즉시 그가 하나님의 참 선지자가 아님을 발견했던 것이다(Williamson). 참선지자의여부는 그의 메시지 및 행실를 통해서 분별될 수 있음(마 7:15-20)을 보여주는 좋은예라고 할 수 있다.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 '뇌물을 받고'(* , 세카로)는 원래 '고용하다' 혹은 '보답하다'는 의미로서 어떤 악한 일을 애써 해주는 대신 그에 대한삯을 받는 것을 가리킨다(신 23:4;삿 9:4;왕하 7:6). 그런데 혹자는 이 동사가 3인칭단수인 점과 산발랏이 도비야 다음에 언급되었다는 점을 들어서, 본 문구에 나오는 두사람 중 뒤의 '산발랏'은 필사자의 실수로 기록됐다고 보고 그 이름을 탈락시켜야 할것을 주장한다(Rudolph). 그러나 주어를 두 사람 언급하면서 단수 어미의 동사를 사용한 것은, 두 사람중 먼저 언급된 사람의 역할을 특별히 강조하려는 느헤미야의 의도때문인 듯하다(Fensham). 그렇다면 도비야는 거짓 선지자 스마야를 매수하는데 있어서계획부터 실행 과정까지 직접 담당했으며, 산발랏은 그것을 후원했다고 볼 수 있다.

=====6:13
느헤미야가 분석한 바, 곧 도비야가 스마야를 매수한 삼중적인 이유이다.
나를 두렵게 하고 - 도비야가 스마야를 매수하여 느헤미야에게 거짓 예언을 하게끔한 가장 큰 이유이다. 사실 산발랏이 보낸 자객이 밤 중에 느헤미야를 암살할 것이라는 경고는, 느헤미야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넉넉했다.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 이에 대해서는 11절 주석을 참조하라.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 이 같은 비방은, 만일 느헤미야가 '스마야'의 공갈에 심약(心弱)해져서 성전으로 피신하는 잘못을 범했을 경우 이루어졌을 것이다.

=====6:14
이러한 기도는 느헤미야가 얼마나 신앙적 인물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 즉, 그는이기도를 통해서 (1)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겸손한 마음을 보여주며, (2) 원수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갚지 아니하고 하나님 손에 넘기라는 율법의 정신을(신 32:35;시 94:1;롬 12:19) 이행하고자 했음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한편, 느헤미야에게 이처럼 많은 대적들이 있었던 까닭은(1) 산발랏이 일찍이 많은 사람들을 포섭해놓았고,(2) 또한 느헤미야가 상류층에 대해 엄격한 정책(5장)을 편 때문이었다(Fensham).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 이들이 누구이며 느헤미야에 대해 어떤 일을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이들은 본절의 언급처럼 '스마야'와 함께 느헤미야를대적했던 무리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도록 특별히 부르심 받은선지자들이 오히려 그뜻을 정면으로 거스린 일에 대해,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공의의심판이 임하기를 기도한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한편, 느헤미야가 이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치 않고 '스마야'의 행위에 대해서만 특별히 다른 까닭은, 스마야의 경우 그 대적 행위가 너무도 교활하고 사악하여 나머지 악한 선지자들의 계교를대표할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Williamson).

=====6:15
성 역사가 오십 이 일 만에...끝나매 - 요세푸스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데는꽤오랜 세월이 걸렸으리라고 보고 그 공사 기간을 '팔백 사십 일'이라고 주장한다(Ant. X i 5). 에발드(Ewald)같은 학자도 이러한 견해를 좆는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다수 학자들은 (1) 성벽이 없어서 예루살렘 거민이 당했던 참상을 잘 알고 있던(1:3;2:17) 느헤미야가 성벽 공사를 급히 서둘렀을 것이 뻔하며, (2) 맛소라 본문의기록을 고쳐야 할 사본학상의 근거나 이유가 전혀 없으며, (3) 요세푸스(A.D. 37-95)도 느헤미야 당시로 부터 무려 500년 이후의 사람이어서 느헤미야 당시의 상황에 대한정확한 정보를 갖지 못했을 것이며. (4)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사업과 거의 동시대에이뤄졌던 아테네의 성벽 공사도 단 한 달 만에 끝났었다(Vischer, Problem BibicalTheology, p. 606)는 점 등에 근거해서 본절의 '오십 이 일'을 맞는 것으로 본다.
엘룰월 이십오 일 - '엘룰월'은 양력으로는 8월,9월이지만 유대 민간력으로 12월이었다. 따라서 민간력으로 계산할 경우, 성벽 재건 공사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B.C.444년 그 해에 완공된 셈이 된다. 특히 이 공사는 민간력으로는 압월(11월)사일부터 엘룰월(12월)까지, 양력으로는 7월중순 경 부터 9월 중순까지의 덥기는 하나비가오지 않는 건기(乾期)에 시행된 고로 순조릅게 진행될 수 있었다.

=====6:16
우리 모든 대적 - 보다 구체적으로는 산발랏을 비롯한 이방 민족들의 지도자들을가리킨다(2:19).
사면 이방 사람들 - 그 지도자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본서에언급되고 있는 사마리아 사람, 암몬 사람, 아라비아 사람. 아스돗 사람(4:7) 이외에,베니게 사람과 수리아 사람 등도 포함될 것이다(Rawlinson).
두려워 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 나팔 베에이네이헴) - 이는 문자적으로 '그들의 눈 앞에서 넘어졌다'의 뜻이며, 그 구체적 의미는 '자신감을 상실했다'(NIV), '자존심을 손상당했다'(Williamson, Myers)이다. 수많은 장애 요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빠른 시기에 재건 공사가 완공된 것이 그들의 눈에가히 기적으로 보여졌음이 분명하다. 아무튼 이 같은 그들의 반응은, 끊임없이 느헤미야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렵게 하려고' 했던 그들의 시도(9, 13, 14)에 걸맞지않다. 사실 대적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협박하여 재건 사업을 중단하게 만들려고획책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반대로 더 큰 두려움을 그 대적들에게 임하도록 역사하셨다. 이는 곧 4:4에 기록된 느헤미야의 기도가 응답된 것이기도 하다. 한편, 이와 같은상황의 극적인 전환은 대적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증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6:17
본절에서부터 19절까지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선지자들(14절) 이외에도 느헤미야에 대한 또 다른 적대 세력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느헤미야는 여기서 이러한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성벽 공사가 단시간에 끝날 수 있었던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강조하고있다.
유다의 귀인들이...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 본절은 유다의 지도층 인사들이 느헤미야의 대적들과 내통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즉, '귀인들'(5:7)은 느헤미야에 관한 모든 정보를 여러 방식으로 탐지하여 그것을 도비야에게 신속하게 넘겼을 것이다.
도비야의 편지도...이르렀으니 - 이 편지의 내용은 (1)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 재건 공사에서 손을 떼게끔 내부 공작을 꾸미는 것, (2)느헤미야 개인 및 성벽 재건 상황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게끔 지령을 내리는 일을 가리킬 것이다(19절).

=====6:18
본절은 도비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부와 얼마나 깊이 밀착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이것은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지시켰던 에스라의 개혁(스 9,10장)이 이들에게 잊혀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 본절의 '아라'는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어떤 가족의 조상이다(7:10;스 2:5). 따라서 '아라의 아들'은 '아라의 자손'로 번역되어야 적절하다. 한편, '스가냐'는 3:29에서는 '동문지기'로 언급되고 있으며 그의아들은 성벽 재건에 참여하기도 하였다(3:29). 바로 그런 점에서, 스가냐 일가는 당시에 이스라엘 사회에서 상류층으로 분류됐을 것이 분명하다. 도비야는 바로 이 같은 유력한 가문과 정략적으로 결혼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중대시키려고 하였다.
도비야의 아들...므술람의 딸을 취하였으므로 - 도비야가 이스라엘 백성 중 유력한사람의 사위가 된 데이어서, 또한 유력한 사람과 사돈 관계를 맺었음을 말해준다. 본절의 '므술람'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에서 두 몫을 맡아 담당했던 제사장이었다(3:4, 30).
여호하난 -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의 뜻이다.
유다에서 저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 본 문구는 히브리 원문에는 본절의 초두에놓여 있다. 특히 원문에는 '왜냐하면'의 뜻을 갖는 접속사 '키'(* )가 있어서, 본 문구가 17절의 이유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편, '동맹한'(* ,, 바알레이 쉐부아)의 '바알레이'는 '주인이 되다' 혹은 '지배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바알'(* )에서 파생된 명사이고, '쉐부아'는 '맹세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 '쉬바으'(* )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그러므로 본절의 '동맹한'이라는 말은 '-을 주인으로 섬기겠다는 맹세'를 뜻한다. 따라서 본 문구는 유다 사람들 상당수가 도비야를섬기기로 하는 서약을 했다는 뜻임이 분명하다(NIV, Kohlenberger)추측컨대, 도비야가유다 사람들과 혼인 관계를 맺거나 동맹을 맺은 것은, 그가 산발랏의 고위 행정관으로서 예루살렘에 머물던 시절의 일이었을 것이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총독의 자격으로 오기 전까지는 산발랏이 유다 땅에 자신의 부하 도비야를 파견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을 듯하다(5:15 주석 참조).

=====6:19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 유력한 유대인들 중 도비야와 내통하고 있었던자들이 도비야와 느헤미야 사이에서 매개자 역할을 하였음을 보여준다. 무력으로 성벽재건을 중단시키고자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대적들은 이제 음해(陰害)의 방향을 수정하여 외면적으로 우호와 친선을 가장하기도 하고 위협하기도하는 등 여러 가지교묘한 방법을 동원하여 계속 교란책을 펴나갔다. 한편, '선행'이란 내통자들이 도비야의 좋은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로 이해될 수 있다. 그 중에는 도비야의 스마야에 대한 재화(財貨)증여(12절)가 뇌물이 아니고 자선이었음을 강조하는 내용도 포함될것이다(Rawlinson). 그들이 이같이 거짓말을 한 까닭은, 느헤미야로 하여금 도비야에 대한 경계심을 풀도록 하여 도비야의 성전 재건 방해 운동을 성공케 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나의 말도 저에게 전하매 - 이것은 내통자들이 느헤미야의 일거수 일투족을 탐지하여 도비야에게 보고했다는 뜻이다.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된 사실을 언급한 본서 전반부(1-7장)에서 그 핵심인  본장은
어려운 와중에서도 성벽 공사가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음을 서술한 대목이다. 그런데 본
장은 성벽 재건 공사 과정에서 야기된 방해자들의 훼방 사실 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성
벽이 완공될 당시 상황에 매우 어려웠음을 나타내고 있다. 즉, 본서는 성벽의 완공 사
실을 민족적이고 사회적인 방해 공작(4장), 경제적인 이스라엘의 내부 문제(5장)와 공
사 완료후 계속된 음모(17-19절) 사이에 위치함으로써 계속된 방해 공작과 연이은  문
제 속에서 그 공사가 완료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본장은 (1)느헤미야
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그린 장면(1-4절), (2)느헤미야를 역적으로 몰아 제거하려는 음
모를 서술한 대목(5-9절), (3)느헤미야를 범죄자로 망들어 없애려고 한 음모를 기록한
부분(10-14절), 그리고 (4)성벽 공사 완료(15, 16절) 후에도 게속된 음모의 내용을 언
급한 단락(17-19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본서 저자는 산발라의 음모가  끈질기
게 계속되었음을 강조함과 동시에 그 어려운 와중에서도 성벽 재건  공사가  여호와의
섭리로 인하여 완료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본장은 살해 음모, 역적으로 만들려는 음모(1-8절)-여호와께  대한
간구(9b절), 계속된 끈질긴 음모(10-13절)-하나님께 대한 구원의 기도(14절),  하나님
의 은혜와 섭리로 완성된 성벽 재건(15, 16절)의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느헤미야
는 자신이 집요하게 당한 방해 사실을 언급함과 동시에 그 방해의 음모가  점차적으로
노골화, 혹은 간교화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본서 저자는 이러한
방해 공작 와중에서 그것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여호와께 대한 전적인 신뢰뿐이
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본장에서는 음모 다음에는 꼭 자신이 간
구한 기도의 내용을 언급하는 것이다(9, 14절). 또한 이뿐만 이나라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하여 성벽 재건 완료 사실 속에 하나님의 섭리를 언급하는 것이다(16절).
   사실 느헤미야가 내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온 정력을 쏟는  중에도(5장)  산랄랏의
방해 공작은 결코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물리적인 힘을 이용하여  성벽  재건을
중단시키려는 계혹을 포기했던 것은 분명하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벽을 대부분
다 쌓았을 뿐만 아니라, 혹시 있을지도 모를 산랄랏 일당의 기습에 만반의 대비를  하
고 있었기 때문이다(4:15-23). 따라서 산발랏 일당은 군대를  동원하여서는  자신들의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알았기에 그 일당은 소극적으로 보이는 듯한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실상 본장에서 언급되는 산발랏 일당의 음모는 이스라엘 공동체에 치명상
을 입힐 수 있는 교묘한 방책이었다. 왜냐하면 이전의 음모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
대한 것인 반면(4, 5장). 금변의 음모는 오직 느헤미야만을 그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
에 즉, 산발랏 일당은 느헤미야를 이스라엘 공동체리 지도자 위치에 더 이상 있지  못
하게 하여 성벽 재건을 중단케 하려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방법은 오직  느헤미야
만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 성공 가능성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느헤
미야가 어떤 이유에 의해서든지 총독의 지위에 더 이상 있지 못하게 될  때  이스라엘
공동체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 자명하였다. 왜냐하면 당시 포로 귀환 이후 특별히  신
앙적이고 민족적인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느헤미야는 행정적이고 조직적인
면에 뛰어났으므로 그의 부재(不在) 상황은 이스라엘에게 있어 치명타였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악한 세력의 열심은 보통 의인들의 선한 열심을 능가하기 마련이다. 왜냐
하면 사악한 세력들을 늘상 악한 영들로부너 사주를 받기 때문이다. 악한 영들은 어떻
게 해서든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가로막으려고 한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의  멸망이
필연적인 것임을 익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막 1:24) 자신들의 모든 궤계 또한 실패
로 돌아간다는 사실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악
한 속성에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본장을 통하여 (1)거칠게 몰아치는 마귀의 공세보다도 오히려 그것
의 은밀한 유혹을 더욱 경계해야 하며(고후 11:14). (2)사단의 궁극적 패배를  굳건히
믿음으로써 어떠한 환난도 극복할 수 있음(롬 16:20; 밸전 1:6, 7)을 깨닫게 된다.

                    1. 느혜미야를 죽이려는 음모(6:1-4)
   본장에 건급된 네 가지 음모, 즉 살해 음모(1-4절), 역적으로  만들려는  음모(5-9
절), 범법자로 만들려는 음모(10-14절), 그리고 더욱 간교해지고 교활해진 음모(15-19
절) 중에서 첫 번째의 음모를 서술하고 있는 본문은 느헤미야를 죽여 없앰으로써 성백
재건을 중단시키려고 한 장면을 그리고 있다. 즉, 본문은 산발랏의  느헤미야  개인에
대한 노골적인 음모를 그린 대목으로 시스라엘 공동체에 있었던 직접적이고(4장) 간접
적인(5장) 방해 사실에 이어 계속된 훼방의 음모를 담은 부분이다. 이러한 본문은 (1)
음모가 시작된 시점을 성벽 재건의 경화 사실로 언급한 부분(1절), (2)전재된  음모를
기술한 장면(2절), (3)그에 대해 지혜롭게 대처한 대목(3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4)
끈질기게 계속된 음모를 언급한 구절(4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본서 저자는 산밤
과 그 일행이 펼친 음모의 실제성과 역사성을 드러냄과 더불어 그 음모가 끈질기게 계
속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사실 느헤미야가 살해되면 성벽 재건 공사가 중단되는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
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미 출중한 지도자가 없었을 경우 그들 스스로는 아
무것도 할 수 없음을 체혐하였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지도자가 없었을 때 성벽 재건
의 필요성은 절감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었다(1:1-3; 스 4:7-23). 또한  에스라
가 귀환하기 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당수가 이방 여인들과 통혼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했던 상황에 있었지만, 백성들 스스로는 그 같은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었다(스 9:1, 2). 그래서 음모자 산발랏 일당은 바로 그 점을 노렸던 것이다.  그
들의 생각으로는 느헤미야만 처치하면 유인 작전을 퍼서 느헤미야를 쥐도 새도 모르게
감쪽같이 죽이려고 하였다.
   한편 느헤미야가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오노 평지로 가지 않은 것은  결코  그의
편협성이나 소심함을 잔영하는 것이 아니다. 망닐 그들이 진정으로  평화를  원했다면
느헤미야는 그들의 요청에 부응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들의 궤계를 간파
하였다. 즉, 사악한 자들의 흉악한 속성을 알았던 그가 그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
았던 것이다. 만일 느헤미야가 그들의 유혹에 빠져들었다면, 과연 어찌되었을까? 하지
만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의 판단력을 지키심과 더불어 그의 생명까지 보호하셨다. 그
래서 하나님께선는 성벽 공사를 완성시키시려는 당신의 계획이 빗나감이 없도록  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본 단락을 통하여 (1)지도자에게는 항상 더 큰 마귀의 궤계가 뒤따
르며(삼하 11:1, 2;24:1), (2)성도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하찮은 듯 보이는 모든  사건
에까지 그 영적 배경를 살피려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벧전 5:8), 그리고 (3)문제에 대
한 안일한 해결 방식은 곧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지름길임(잠 1:32)을 깨닫게 된
다.

                    2. 느헤미야를 역적으로 몰려는 음모(6:5-9)
   정당한 명분을 들어 대적의 간계한 회담 제의를 거절한 장면(1-4절)에 이어지는 본
문은 사실 무근한 유어비어로 느헤미야를 무너뜨리고자 한 음모자들의 작당이  나오는
대목이다. 즉, 본문은 네 차례의 접촉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자 이제는 느헤미야를  역
적으로 몰아 성벽 재건 공사를 중단시키려고 한 부분이다. 이러한 내용의 분문은  (1)
역적으로 몰려고 꾸민 음모의 내용을 언급한 전반부(5-7절)와, (2)그  음모에  대하여
지혜롭고 담대하게, 그리고 여호와께 의뢰하는 신앙으로 대처한 사실을 기록한 후반부
(8, 9절)로 구성 되어 있다. 그래서 본서 저자 느헤미야는 이와 같은  구조의  내용을
통하여 집요하게 계속된 당시 대적자들의 음모를 드러냄과 동시에 자신이 가졌던 신앙
적 자세를 나타낸다.
   그런데 이와 같이 자신의 신앙심을 본문에 나타낸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의
미가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 즉, 첫째로는 산발랏 일당들의 음모가  집요하였을  뿐만
아니라 계속적으로 진행되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대
적하기가 힘들어 여호와의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또한 둘째로는  대적자들의  방해와
훼방은 여호와의 능력으로만 물리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저자
자신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다시 한번 요구한 것이다.
   당시 산발랏 일당은 느헤미야를 외딴 지역으로 불러내어 죽이려는  음모와  병행하
여, 그에 대한 헛솜다을 내서 그를 모략하여 총독의 직위에서 밀려나도록 하려고 애썼
던 것 같다. 사실상 이 같은 느헤미야에 대한 헛소문은 예루살렘 성벽을 증수하고  있
는 일과 관련하여 볼 때 얼마든지 사실처럼 들릴 수 있었다. 따라서 만일  그  소문이
아닥사스다 왕의 귀에 들어갈 경우 상당한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었다. 왜냐하면 비록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를 총애 하였지만, 항상 제국의 내의 반란 사건들로  골머리
를 앓고 있었던 그로서는 그러한 소문을 예사롭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
이다. 그래서 아닥사스다 왕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는 느헤미야의 반란 수문을  듣자마
자 군대를 파견하여 느헤미야를 압송하고 성벽 재건 공사를 중단시켰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번의 산발랏 일당의 음모는 느헤미야의 유다 백성들을 두렵게  하
기에 충분히 무서운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느가미야는 그와 같은 마귀의 궤계를 하나님께서 파하여  주
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선 그는 성벽  공사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완성케 하실 것임을 굳게 믿고 있던 터였다 바로 그 같은 믿음을 가졌기  때문
에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끝까지 보호하시리라는 사실 또한 믿고 있었다.  만
일 느헤미야가 그러한 믿음을 갖지 못하여 잣다과 관련한 헛소문을  잠재우기  위햐여
타협차 산발랏을 찾아갔다면(7절)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느헤미야는 필경 산발랏  일
당에 의하여 오노 평지의 한적한 곳에서 비참하게 살해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크신 권능에 의하여 모반과 관계된 헛
소문이 잠재워지기를 소원하였던 것이다. 즉, 그는 대적들의 허탄한 심중을 꿰뚫는 명
쾌하고 단호한 회신과 아울러 '바산의 힘센 소처럼'(시 22:12) 자신을 에워싸며  송사
하는 그들의 공격을 인하여 다시금 기도로써 재무장한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본 단락을 통하여 (1)세상 나라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공의보다는
인본 주의적 유익에 따라 운영될 수밖에 없으며(마 27:19-26), (2)신자들은 비록 애매
히 고난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적 수단보다는 하나님의 손을 의지함으로써  거기서
벗어날 수 있음(벧전 2:19)을 깨닫게 된다.

   *왕의 즉위와 관련된 선지자의 역할.   신정 국가였던  이스라엘의  왕은  '만왕의
왕'(딤전 6:15)이신 하나님의 뜻을 땅 위에서 실행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신적  대리자
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사명을 가졌던  선지
자의 지도를 받아야만 했다. 이러한 이유로 이스라엘의 왕은 즉위할 때무저  선지자의
지도 아래 있어야만 했다. 다시 말하면 왕의 즉위식은 선지자의 주도 아래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선지자가 최초로 하는  일은  왕에게  기름을  붓는  일이었다(삼상
16;13;왕상 1:45). 그래서 선지자는 기름을 붓는 상징적 행위를 통하여 (1)그가  하나
님에 의하여 임명된 왕임을 하나님의 대리자의 자격으로 공적 승인하며,  (2)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임재할 것을 기원하는 것이다(삼상 16:1-5 강해, '기름부므'의 영적 의
미). 그 다음에 선지자가 하는 일은 왕이 기름 부음 받았음을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왕상 1:34,35). 이러한 절차를 통해 왕은 신정 왕국의 공식적 통치자가 되었다. 본문
에 언급된 바와 같이 산발랏이 느헤미야를 모략하기 위하여 꾸며낸 헛소문 중에서 '선
지자를 세워...선전하기를'(7절)이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점을 엽두에 두고 한  것이
었다. 그래서 이 같은 유다의 관습과 규례를 익히 알고 있었던 듯한 대적자들이  이를
이용해 음모를 꾸민 것이다.

                    3. 느헤미야를 범법케 하려는 음모(6:10-14)
   성벽 재건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하여 오직 느헤미야 개인에 대해서만 음모를  펼친
사실에 대해 증거하는 본장에서 세번째 음모에 대해 기술하는 본문은 느헤미야를 궁지
에 몰아 범법케 하려는 것을 나타낸 장면이다. 즉, 본문은 느헤미야의 심복인 듯한 스
마야를 뇌물로 매수해 거짓 진언(眞言)케 함으로 죄를 짓게 만들려고 한 음모를  드러
낸 대목이다. 이러한 본문은 (1)그 음모의 내용(10절), (2)느헤미야의 슬기로운  대응
과 깨달음(11-13절), 그리고 (3)대적자들의 악행에 대해 여호와께 간구한  장면(14절)
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본서 저자인 느헤미야는 자신에게 있었던 음오의  삿마을
요약 형식으로 정리함과 더불어 그들의 음고가 점차적으로  교묘해지고  간악해졌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 당시에 산발랏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상당수의 오열(五列)들을 심어  놓았다.
추측컨대, 이 오열들은 느헤미야가 귀환하지 않은 시절, 즉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이
유다인들에게 행사될 수 있었던 시기에 포섭해둔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면서도 산발랏을 도와서 성벽 재건 사업을 중단시키려고 공작을 꾸몄던 것 같
다(14절). 즉, 그들은 느헤미야를 낙심케 하려고 애썼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선동하
여 느헤미야와 이간시키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공작 중 특이한 것은 거짓 선지자 스마야에 의한 것이었다.  거짓
선지자 스마야는 선지자로서 갖는 사역상의 특성을 이용하여 느헤미야를 올무에  빠뜨
리려고 하였다. 그가 집밖 출입을 일체 삼가한 채 집안에서 은거한  것은  느헤미야를
자신의 집으로 오게 하여 그를 유혹할 기회를 포착하기 위함이었다. 아무튼  느헤미야
가 출입을 금하고 있던 그를 찾아간 것은 그가 평소에 느헤미야 곁에서  중요한  일을
맡고 있었다는 좋은 증거일 것이다. 왜냐하면 느헤미야는 그를 꽤 신임했었을 뿐만 아
니라 그글 자신에게 꼭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했던것 같기 때문이다. 스마야는 바로 이
점을 이용하여 느헤미냐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일 수 있었다. 스마야는 자신이  하나
님으로부터 특별한 계시를 받은 양 은둔의 모습을 취함으로써(10절), 느헤미야로 하여
금 암살의 위협이 있음을 느끼게 하려고 시도하였다.
   사실 그 당시의 상황에서 느헤미야를 산발랏 일당이 암살하겨고 한다는 경고는  얼
마든지 사실로 들릴 가능성이 컸다. 더구나 느헤미야는 스마야를 쳬소에 신임해온  터
였기에 그의 경고를 들은 즉시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군대를 동원하여  느
헤미야를 살해하려는 일보다 밤중에 자객을 보내여 그를 암살하는 일은 어떻게 생각하
면 손쉽고도 성공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느헤미야가 도피처를  찾
은 일은 당연하였다. 그러나 실상, 도처에 산발랏의 하수인들이 깔려 있던 그  상황에
서 느헤미야가 도피처로 삼을 만한 곳은 성전밖에 없었다. 적어도 성전은 비록 잘못을
범한 사람일지라도,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도피처였다는 점에서 본다
면 더욱 그러하다(본장 강해, '도피처로서의 성전' 참조).
   그러나 바로 이것이 느헤미야에게 올무가 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느헤미야는 성전
으로 도피할 수 있는 자역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고자(1;4-11  강해,
'왕의 술관으로서의 느헤미야' 참조)였을 가능성이 크다(레 21;17-24;신 23;1).  그리
고 이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면 제사장들 외에는 평소에 아무도 성전에  들
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출 21;13, 14;민 18:7; 왕상 1:50-53). 그러므로 그의  성전
으로의 피신은 율법을 범하는 일이었다.
   스마야를 통한 산발랏의 음모는 바로 이 간은 점을 노리는 것이었다. 즉, 산발랏은
느헤미야를 범죄케 함으로써, 그의 인격을 실추시킬 뿐만 아니라 그의 정치적  영향력
오 상실케 하려는 계략이었던 것이다. 사실 느헤미야는 청저한 여호와 신앙에  근거한
윤리.도덕적 인품을 지녔기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더욱더  크게  행사해왔던
터였다(5;14). 그런데 그가 율법을 범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백성들은 그의  도덕성
을 의심함과 동시에, 그의 비겁성에 조소를 보내였을 것이다(11절).
   사실 그 당시의 상황에서 느헤미야가 성전 안으로 몸으 피하는 것은 그가 할 수 있
는 최선책이었음이 분명하다. 특히 느헤미야가 성전으로 몸을 피하지  않음로  암살을
당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철저한 신본주의자였던 느헤민야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  타당
치 않음을 알았다. 바로 이러한 신앙에 의하여 느헤미야는 위급하다고 판단된 상황 중
에서도 성전으로 피신치 않음으로써, 악한 세력들의 계략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느헤미냐가 그러한 태오들 취할 수 있었던 것은 진적으로 하나
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당신의 밸성을 보호하실 필요를 절감하고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 느헤미야가 산발랏 일당의 계략에 말려들지 않도록 그를 지
켜셨던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 같은 본 단락을 통하여 다음의 사실을 교훈받을 수 있다.  (1)사단
의 세력이 성도를 넘어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주된 무기는 거짓말이여(창  3:1-5;
요 8;44), (2)성도들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보다도 하나님의 법을 행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며(삼상 24;4-7;행 21:10-14), (3)당장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손해인
듯한 상황에서도 오직 믿음으로 법을 지키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크신 상급이 주어진다
는 것이다(창 26;14-22; 마 10;22). 그리고 (4)신앙에 근거치 않은  인간적인  호의는
자칫 마귀의 유혹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많음(신 13:6, 7)을 깨닫게 된다.

   *도피처로서의 성전. 고대 이스라엘에는 도피성(민 35:9-34) 이외에도  또  하나으
도피처가 있었다. 즉, 그것은 다름아닌 성전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성전의 뜰에  놓
여 있는 번제단의 제단 뿔을 손으로 붙잡음으로써 부지중에 범죄한 자들은 복수의  칼
을 피할 수 있었다(왕상 1:50-53;2:28). 이처럼 성전이 부지중에 범죄한 자들의  도피
처가 된 것이 언제 부터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도피성 제도가  원용(援用)되
고, 또한 제단 뿔의 특성이 중시되어 선전이 도피처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제 제단 뿔의 특성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왜 성전이 도피처로  이용
되었느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고대 중근동에서는 보통 제단 뿔이 (1)신성(神性)을 상징하며, (2)제단의 거룩성을
강조하며, (3)신의 능력을 상징하는(암 3;14) 것으로 인정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는 사람들의 이 같은 뿔에 대한 경외심을 이용하시어 당신께 대한 희생 제사때에 사용
하는 번제단에도 이방의 제단 뿔과 그 모양이 유사한 뿔을 그것의 네 모퉁이에 만들어
붙이도록 하였다(출 27;2;38:2;겨 43:15). 그리고는 (1)제사장들의  위임식(출29;12),
(2)통치자와 백성들의 속죄제(레 4;25, 30, 34), (3)속죄일(레 16:18) 때 등의 경우에
제물의 피를 바르도록 하셨다. 따라서 제단 뿔은 하나님에 의한 사죄의 은총이 임하는
것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성전을 도피처로 삼되 제단 뿌를 붙잡지 아니하고 성소로 피신하는 것은 절
대 불법일 수밖에 없었다(10,11절). 그렇다면 느헤미야를 성소로 피하라고 권유한  스
마야의 말은 거짓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율법의 규정에 어긋나는 예언적 권면은 거
짓 선지자의 두드러진 특징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본 단락 강해. '참선지자의  분별'
참조).

   *참 선지자의 분별.   이스라엘의 역사는 곧 선지자의 역사라고 할 마늠  선지자들
의 역할이 매우 중시되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그들이 하
나님의 특별한 백성으로서 선지자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만 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선지자의 역할이 중시됐던 만큼 그에 따라 이스라엘에는 역사적으로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이 펼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같은 점 때문에 하나님께서
는 성경의 곳곳에 거짓 선지자를 관별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여 놓으셨다.
   그 기준 중의 하나는, 선지자가 말한 예언의 성취 여부이다(신 18:20-22). 즉,  어
떤 선지자가 아무리 그럴 듯한 예언을 한다고 해도 그 예언이 역사적으로 성취되지 않
는다면 그는 분명히 거짓 선지자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기준은, 선지자가 누구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는냐의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의 예언서들을 기록한 모든 참 선지자들이 공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선지자의 진위(眞僞)를 분별케 해주는 세 번째 기준은, 선지자의 예언 내용
이 이전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지의 여부이다(신 13:1-5). 이 기준은  참
선지자를 구별하는 여러 가지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잊
다에 계시된 것과 일치한다는 것은 곧 다른 기준들을 충족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
다.
   마지막으로 참 선지자를 구별하기 위한 기준은, 선지자의 삶의 열매가  바른  지의
여부이다(마 7:15-20). 이 같은 기준은, 비록 거짓 선지자일지라도 얼마 동안은  바른
교훈을 말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따라서 성도들은 선지자의 교훈이 전에 계
시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한는지를 쉽사리 분간할 수 없을 때, 그의 삶을 우선  주시
해봄으로써 그 진위를 판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들은 구약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
다. 왜냐하면 세상 끝날이 다가오면 올수록 거짓 선지자들은 더욱 많이 출현하기 때문
이다(마 24;23, 24). 그러기에 위와 같은 척도들을 마귀와의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좋은 무기가 되는 것이다.

                    4. 성벽 재건 공사의 완료와 계속된 음모(6:15-19)
   본문은 집요하고도 끈질기게 계속된 음모와 헤방 속에서 성벽 재건이 완성되었음을
언급하는 장면이다.  즉,  본문은  느헤미야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150여  년  동안
(B.C.586-432) 훼파되어 있던 예루살렘 성벽이 52일 만에 드디어 완공된 사실을  증거
하고 있다. 그런데 본문은 (1)성벽이 완공되었음을 나타내는 전반부(15,16절)와,  (2)
도비야의 계속된 음모를 언급하는 후반부(17-19절)로 구성되어 있어 본서 자자의 본장
서술 의도를 나타낸다. 즉, 본서 저자 느헤미야는 끊이지 않는 음모와 방해 속에서 성
벽 재건 공사가 끝났음을 암시함과 더불어 공사 완료 후에도 느헤미야 자신에 대한 음
모가 계속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 느헤미야는 이
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그 대상으로 한 방해 요인을 앞장(4, 5장)에서 언급한  후,  자
신, 즉 개인적으로 다가온 음모 사실을 본장을 통해 일괄적으로 기술하는 것이다.
   그동안 산발랏은 끊임없이 음모를 꾸며서 성벽 공사를 중단시키려고 하였다.  어떤
때는 심리전을 이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낙담시킴으로써 성벽  재건을  중단시키려
하였다. 그래도 안 되자 그는 무력을 동원하려는 계획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느헤미야를 암살하려는 등의 음모를 꾸미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서 저자인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 공사가 완료되었음을 언급함으로써,  산
발랏과 그 일다의 모든 음모가 성공하지 못했음을 선언한다. 길이가 약 3km는 족히 되
었을 그 성벽을 그 짧은 기간에 완성했다는 사실은 가히 놀랄 만하다. 사실  느헤미야
의 주변에서 은밀히 그를 대적하며 성벽 재건을 방해하던 사람들이 좀 많았던가! 한마
디로 그 당시에 성벽 재건을 가로막던 방해 요소는 너무나도 많았었다.  그런  점에서
성벽 공사의 신속한 완공은 산발랏등의 대적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벽 재건이 반스디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을 지니셨기에  모든
악한 영들의 궤계를 물리치시고 성벽 재건을 마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밸성을 보호하시길 원하셨고, 또한 그 백성들을 통하여 당신의 영광이 계속적으로 온 세상에 비쳐지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느헤미야는 본문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한 것이다(16절).
   우리는 이 같은 본 단락을 통하여 (1)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눈에는 장애와  난관으로 비쳐질지라고 그 모든 것은 하등의 구애없이 반드시 성취되며(마 6;10), (2)성도의 성공 뒤에는 악의 대적과 방행는 언제든지 뒤따를 수 있다(고전 10:12; 밸후  3:17)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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