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에스라 02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1 본장과 1장 과의 문맥 연결은 다소 어색하다. 왜냐하면 1장에서는 고레스가 성전 기명들을 세스바살에게 넘긴 사실이 기록된 반면에(1:8) 본 장 초두에는 스룹바벨의 인도 하에 포로민들이 귀환하는 장면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점은 스룹바벨과 세스바살을 동일인로 본다면 쉽게 해결된다(1:8 주석 참조).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 유다 사람들은 세 차례, 즉 B.C. 605년과 597년 그리고 586년에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그때 그곳으로 끌려갔던 사람들은 대부분 왕족및 귀족 그리고 제사장 계급 혹은 기술자 등이었다(왕하 24:14, 25:6, 7, 단 1:3).

자손 중에서. 이것은 바벨론에 살던 유대인들 모두가 돌아오지는 아니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놓임을 받고 … 돌아와. ‘놓임을 받고’는 원문에는 직접 나타나 있지 않은 번역자의 의도적 삽입 문구이다. 한편, ‘돌아와’(슈브)는 부당하게 빼앗긴 물건을 돌려 받을 때 사용되기도 한 단어이다(창 20:7, 출 21:34, 삼상 6:3, 삼하 9:7). 따라서 저자는 이러한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으로의 귀환이 지극히 당연한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예루살렘과 유다도 … 각기 본성.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의 행선지가 오직 예루살렘만은 아니었음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한 후 유다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았었다(느 3:2-19, 7:20-35). 한편 ‘도’(메디나)는 당시 유다가 독립 국가가 아닌 페르시아의 일개 피정복지였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단어이다(느 11:3). 아울러 이 단어는 유다가 인접 지역에 소속되었다가 그나마 그 자체의 행정단위로 새롭게 인정받은 상태임을 시사한다(Kidnr). 한편 ‘각기 본성’은 문자적으로 ‘각각의 그의 성읍’이란 의미이다. 즉, 원래 자신들의 조상들이 살았던 곳을 말한다.



2:2 본 절에 언급되어 있는 인물들은 유대인 공동체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자들인 듯하다(Fensham, 느 7:7).

스룹바벨. 이 이름의 의미는 ‘바벨론의 자손’, 혹은 ‘바벨론에서 태어났다’이다. 이 사람은 ‘스알디엘’의 아들이며(스 3:2, 학 1:1). 여호야긴 왕의 손자(마 1:12, 눅3:27)이다. 역대상 3:19에서 그가 ‘스알디엘’의 형제인 ‘브다야’ 의 아들로 언급되고 있는 까닭은, ‘스알디엘’이 후사없이 죽은 관계로 그의 동생인 ‘브다야’가 고대 히브리인들의 법을 좇아서 형의 아내와 결혼하여 ‘스룹바벨’을 낳은 때문이었을 것이다(신25:5-10). 이에 따라 ‘스룹바벨’은 실제적으로는 역대상 3:19의 언급처럼 ‘브다야’의 아들이지만, 법적으로는 ‘스알디엘’의 아들이 되는 셈이다.

예수아. ‘여호수아’라는 이름의 보다 후기 형태로서(Schultz), ‘여호수아’ 라는 이름과 마찬가지로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의미이다. 이 사람은 스룹바벨과 함께 성전 건축을 완료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5:2). 그의 중조부는 대제사장 스라야로서(대상 6:14).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살해당하였다(왕하 25:18-21). 한편 ‘예수아’의 부친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여호사닥’이다(3:2, 대상 6:15, 학 1:1).

느헤미야. ‘여호와께서 불쌍히 여기심’이란 의미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약 한 세기 후에 활약했던 ‘느헤미야’와는 별개의 인물이다(느 3:16, 7:7)스라야. ‘여호와께서 주관자가 되셨다’ 라는 의미이다. 느 7:7 에서는 ‘아사랴’로 나온다.

르엘라야. 느 7:7 에서는 ‘여호와께서 천둥을 치셨다’라는 의미를 갖는(Rudolph) ‘라아먀’로 나온다. ‘르엘라야’라는 이름의 의미는 밝혀져 있지 않다.

모르드개. 바벨론의 주신(主神) ‘말둑’에서 기원한 바벨론식 이름이다.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에 2:5)와는 동명 이인(同名異人)이다.

빌산. ‘묻는 사람’ 혹은 ‘그들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미스발. ‘수효’(數爻)의 의미로서, 느 7:7 에서는 ‘미스베렛’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비그왜. 페르시아식인 이 이름의 의미는 ‘행복스럽다’이다. 한 가족의 족장인 그는 바벨론에서 귀환하면서 약 2천 명의 자손을 데리고 왔다(14절, 느 7:19).

르훔. ‘자비로운’이라는 뜻이다. 느 7:7에서는 ‘느훔’으로 나온다.

바아나. ‘압제’(壓制)의 아들’이라는 의미이다. 평행 구절인 느 7:7과 외경 에스드라상 5:8 에서도 나온다.



2:3 바로스 자손. ‘바로스’가 언제 살았던 사람인지 또 어느 지파에 속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아무튼 ‘바로스’는 가계의 이름이다.



2:4 스바댜 자손. ‘스바댜’는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라는 뜻이다. 본서 8:8과 외경 에스드라상 8:34 에서도 나온다.



2:5 아라 자손. ‘아라’는 ‘여행자’라는 뜻이다. 느 7:10과 외경 에스드라상 5:10에도 나온다.



2:6 바핫모압 자손. ‘바핫모압’은 ‘모압의 통치자’라는 뜻이다. 이 사람은 모압 지방에서 관리 생활을 했었던 것 같다. 그의 자손으로서 바벨론에 남아 있던 200명이 에스라와 함께 귀환하기도 하였다(스 8:4).

예수아와 요압 자손. 당시 ‘바핫모압 자손’을 구성했던 두 가족인 듯하다. ‘예수아’는 대제사장 ‘예수아’와 동명 이인이다(2절). ‘요압’은 ‘여호와는 아버지이시다’라는 뜻이다. 그의 자손 중의 일부는 후에 에스라와 함께 귀환하였다(느 7:11).



2:7 엘람 자손. ‘엘람’은 ‘높은 지대’라는 의미이다. 이들은 고라 자손, 곧 레위인들이었던 것 같다(대상 26:3, 느 12:42).



2:8 삿두 자손. ‘삿두’는 그 의미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삿두 자손’ 의 일부는 이방 여인과 통혼하기는 했으나, 에스라의 신앙적 권면에 따라 그들과 헤어지는 결단을 내렸다(10:27).



2:9 삭개 자손. ‘삭개’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는 뜻의 이름으로서 ‘스가랴’의 축약형인 듯하다. 바로 이 ‘삭개’는 신약 시대의 ‘삭개오’라는 이름으로 변천하였다(마카비하 10:19, 눅 19:2). 이 이름은 느 7:14에도 나온다. 특히 외경 에스드라상 5:12에도 나오는데, 거기서는 ‘코르베’로 되어 있다.



2:10 바니 자손. ‘바니’는 ‘세우다’의 의미이다. 느 7:15과 외경 에스드라상 5:12에도 나온다. 그러나 느 7:15 에서 만은 ‘빈누이’로 되어있다.



2:11 브배 자손. ‘브배’는 ‘아버지와 같은’ 혹은 ‘자애로운’의 의미이다.



2:12 아스갓 자손. ‘아스갓’은 ‘하나님은 강하시다’ 의 뜻이다. 이 ‘아스갓’ 자손의 나머지는 에스라가 귀환할 때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다.



2:13 아도니감 자손. ‘아도니감’은 ‘주꼐서 일어나셨다’의 의미이다. 이 자손의 일부는 에스라와 함께 귀환하였다(8:13).



2:14 비그왜 자손. ‘비그왜’에 대해서는 2절 주석을 참조하라.



2:15 아딘 자손. ‘아딘’은 ‘즐거운’이란 뜻이다. 이 아딘 자손은 후에 에스라가 제창한 율법 준수 운동에 인(印)을 침으로써 참여하였다(8:6, 느 7:20, 10:16).



2:16 아멜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 히브리 원문대로 할 경우, ‘히스기야를 통한 아델 자손’으로 번역된다. 여기서 ‘히스기야’는 유다의 명군(名君) ‘히스기야’ 와는 별개의 인물이며 ‘아델 자손’은 42절의 ‘아델 자손’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그 의미는 ‘절름발이’ 혹은 ‘왼손잡이’이다.



2:17 베세 자손. ‘베새’는 ‘짓밟힌’이란 의미이다. 이 ‘베새 자손’ 은 레위인들로서, 성전에서 비교적 비천한 일을 담당했던 것 같다(49절).



2:18 요라 자손. ‘요라’는 ‘가을비’라는 의미이다(박윤선). 이 ‘요라’는 느 7:24에서는 ‘하립’으로 불리워졌다.



2:19 하숨 자손. ‘하숨’은 ‘넓은 코’라는 의미이다(박윤선). 이 ‘하숨’은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할 때 옆에 섰었던 ‘하숨’과는 구별되어야한다(느 7:22, 8:4).



2:20 깁발 자손. ‘깁발’은 ‘크다’란 의미이다. 느 7:25에는 ‘기브온’이라는 지명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깁발’을 ‘기브온’이 잘못 표기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부터 35절까지에서는 귀환자들이 출신지별로 구분되고 있다.



2:21 베들레헴 사람. ‘베들레헴’은 ‘떡의 집’이라는 의미이며 이 성읍은 유다 땅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베들레헴 사람’은 유다 지파의 후예들이다.



2:22 느도바 사람. ‘느도바’는 ‘떨어짐’이란 의미이다. 이 성읍은 ‘베들레헴’ 남동쪽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느도바 사람’도 유다 지파에 속했다.



2:23 아나돗 사람. ‘아나돗’은 베냐민 지파의 지경 중에서 레위 사람들을 위하여 할당된 6개 성읍 중의 하나였다(수 21:18). 이 ‘아나돗’이라는 지명은 가나안 족속의 여신 ‘아나드’(Anath)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이는 이 성읍에서 ‘아나드’여신에 대한 숭배가 성했었음을 암시한다. 또한 이 곳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고향이기도 하다(렘 1:1). 그 위치는 예루살렘 북쪽 약 4.8 km 지점이다.



2:24 아스마웻 자손. ‘아스마웽’은 ‘죽음은 강하다’란 뜻이다. 예루살렘 북동쪽 약 2.5 km 지점의 베냐민 직경에 위치해 있다.



2:25 기랴다림과 그비라와 브에롯 자손. ‘기랴다림’은 ‘여러 성읍 중의 성읍’의 의미로서, 베냐민 지경의 남단에 위치한 ‘기럇여아림’을 말한다(삼상 6:21, 7:1). ‘그비라’는 ‘마을’ 혹은 ‘작은 촌락’의 의미로서 그 위치는 기브온 서쪽 약 5 km지점이며, 베냐민 지파의 땅이다(수 9:17). 그리고 ‘브에롯’은 ‘우물들’이라는 뜻으로서, 그 위치는 기브온 남쪽 약 2.5 km 지점이다(Aharoni).



2:26 라마와 게바 자손. ‘라마’는 ‘높은 곳’이라는 의미이다. 그 위치는 예루살렘 북쪽 약 8.8 km이며,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이었다(수 18:25). 그리고 이곳은 초기 이스라엘의 선지자 사무엘의 활동 중심지였다(삼상 7:16,17, 19:18-24). 한편 ‘게바’는 ‘반석’이라는 의미이다. 이곳은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으로서(수 18:24,28) 예루살렘 북쪽 약 11 km 그리고 기브아 북동쪽 약 4.8 km 지점에 위치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직후 남국의 아사왕은 라마에서 가져온 돌로 이곳에 요새를 건설하기도 하였었다(왕상 15:22, 대하 16:6).



2:27 믹마스 사람. ‘믹마스’는 ‘감추어진’이란 뜻으로서 그 위치는 벧엘 동남쪽 약 9.6 km 지점이다.



2:28 벧엘과 아이 사람.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이다(창 28:19,22). 이곳은 예루살렘 북쪽 약 19.2 km 지점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그곳의 언덕 정상 가까이에는 매우 좋은 샘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거주지로 각광을 받았다. 한편, ‘아이’는 ‘무더기’ 혹은 ‘폐허’의 의미로서 그 위치는 벧엘 동남쪽 약 3.2 km 지점이다(수 7:2).



2:29 느보 자손. ‘느보’는 ‘놉’의 다른 지명이다. 우리가 이같이 봐야되는 까닭은 본 문단(21-35절), 특히 24-35절 베냐민 지경에 속한 성읍들만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느보’를 베냐민 땅에 있었던 제사장의 성읍 ‘놉’으로 본다(삼상 21:1). 이 성읍의 위치는 예루살렘 북쪽 4.2 km 지점이고 그 의미는 ‘번창해짐’이다.



2:30 막비스 자손. ‘막비스’는 그 지명의 뜻이나 그 성읍의 위치가 모두 불분명하다. 다만 베냐민 지파에 속했던 성읍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2:31 다른 엘람 자손. 이것은 7절의 ‘엘람 자손’과 동일시 되어 왔다. 그 까닭은 양쪽의 수효가 동일하게 1,254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같이 봐야 될 더 분명한 근거는 없다. 여기서 저자가 ‘다른’이라는 형용사를 특별히 사용한 까닭은, 7절의 ‘엘람’이라는 ‘인명’과 구별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성읍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2:32 하림 자손. ‘하림’은 ‘바친’, 혹은 ‘봉헌된’이란 의미이며 그 성읍의 위치는 분명치 않다.



2:33 로드와 하딧과 오노 자손. ‘로드’는 샤론 평야의 남쪽이며, 욥바 동남쪽 약 18 km지점에 위치해 있다. 한편, ‘하딧’은 ‘로드’ 북동쪽 약 6.2 km에 위치해 있고, ‘오노’는 ‘로드’의 북서쪽 약 10.8 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한편이 세 성읍들의 지명이 갖는 의미들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2:34 여리고 자손. ‘여리고’는 ‘향기의 도시’, ‘달(月)의 고을’ 그리고 ‘종려 나무의 성’등의 의미이다. 올브라이트(Albright) 교수는 그중에서 ‘달의 고을’ 을 맞는 것으로 보고 ‘여리고’라는 지명을 고대 셈족의 월신(月神), 야리(Yarih) 숭배와 관련시킨다. 한편 그 위치는 예루살렘 북동쪽 약 27 km 지점이다.



2:35 스나아 자손. ‘스나아’의 의미는 ‘가시가 많은’ 이다. 그 위치는 여리고 근방일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이 ‘스나아 자손’은 후에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에 조력하였다(느 3:3).



2:36 제사장들. 비록 이들은 레위 지파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담당하는 직분상, 그리고 그들의 특별한 신분상 따로 구별되어 언급되고 있다.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 이것은 스룹바벨과 함께 바벨론에서 돌아온 대제사장 예수아가 속했던 일족이었다. 여기의 ‘예수아의 집’은 ‘여다야 자손’ 이 대제사장의 가문임을 밝히기 위한 특별한 언급이다. 아울러 ‘예수아의 집’ 은 ‘여다야 자손’이라는 복합적 명칭은, 포로로 끌려가기 전의 바로 그 대제사장 가문이 포로 후의 대제사장 예수아의 혈통적 뿌리였음을 강력히 시사한다(Fensham). 한편, ‘여다야’는 ‘하나님이 아셨다’의 의미로서 그는 다윗에 의해서 두 번째로 제사장에 임명된 사람이다(대상24:7).



2:37 임멜 자손. ‘임멜’은 ‘어린 양’의 의미이다. 그는 다윗에 의하여 당시 24반차로 편성된 제사장 직책 중 16번째의 반차에 배정되었다. 그 이래로 그는 그 반차에 속하는 제사장들의 선조가 되었다. 포로 귀환 후 그의 후손인 ‘임멜자손’ 중 ‘하나니’ 와’스바댜’는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했다가 에스라의 개혁 조처에 따라 그녀들을 다시 내쫓기도 하였다(10:19, 20)


2:38 바스훌 자손. ‘바스훌’ 은 분명치는 않으나, 애굽어에서 파생된 이름으로서 ‘호루스(Horus) 신의 몫’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의 이 ‘바스훌’은 제사장 ‘임멜’의 아들로만 명시되어 있고, 역대상의 제사장들 명단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바스훌 자손’은 독립된 가문은 아니었으나, 포로 귀환 후 그 당시의 형편상 별도의 반차에 배정되었으리라 추측된다(Keil). 여기의 이 ‘바스훌 자손’ 중의 일부도 다른 자손들 처럼 이방 여인을 취하는 죄를 범하기도 하였다. 한편, 이들의 조상인 ‘바스훌’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그를 때리며 심지어 가두기까지 하였던 인물이었다. 예레미야는, 그가 바벨론에 끌려가서 거기서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있다(렘 20:1-6).



2:39 하림 자손. ‘하림’은 ‘바친’ 혹은 ‘봉헌된’의 의미가 있다. 이 ‘하림’은 다윗에 의하여 세 번째의 반차에 배정된 제사장이었다(대상 24:8). 이 사람의 후손도 에스라 시절에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하는 우(愚)를 범했다(10:21).



2:40 레위 사람. 모세 율법에 따르면 이들은 원래 일정한 기업올 받지 못한 채 다른 지파들중에 흩어져 살아야만 했다(민 35:2-7). 그러나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열되자, 북쪽 땅에 살던 레위인들이 남쪽 유다로 넘어왔고(대하 11:16), 이에따라 레위 사람들 전체가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만일 북국에 살던 레위인들이 남쪽으로 넘어오지 않았다면, 그들은 북국의 멸망과 함께 앗수르로 끌려가서 다시 본토로 돌아오지도 못했을 것이다(왕하 17:23).

호다위야 자손. ‘호다위야’ 는 ‘여호와는 뛰어나시다’ 라는 의미를 갖는’호드야’(느 7:43) 와 동일 인물이다.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 이들은 ‘호다위야 자손’에 속하는 두 자손들이다. 여기서 ‘예수아’는 추측컨대 히스기야 당시에 십일조를 관장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대하 31:15).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이다(2절).



2:41 노래하는 … 아삽 자손. 노래하는 것도 레위인의 직무 중의 하나였다(대상 25:1-7). 따라서 ‘아삽 자손’은 레위인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본서의 저자가 여기서 ‘아삽 자손’을 별도로 구분시켜 언급한 까닭은 그 직분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한편, ‘아삽’은 ‘모으는 자’ 혹은 ‘수집자’란 뜻이다. 이 사람은 다윗과 솔로몬 시절에 찬양의 제사를 주관하였고(대상 16:4, 5, 7, 37), 많은 시편을 짓는 등 이스라엘의 음악 발전에 현저한 공을 세운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네 아들과 함께 성전 봉헌식에 관계하기도 하였다(대하 5:12).



2:42 문지기의 자손들. 이 레위인들은 성전을 지키는 독톡한 직분의 소유자들이었다(대상 9, 17-17, 시 84:10). 그들의 다른 임무 중의 하나는 창고를 지키는 일이었다(대상9:26).

살룸. ‘보상된’ 혹은 ‘보상’의 의미이다. 이 사람은 렘 35:4에 언급되어 있는 ‘살룸’과 동일 인물이다. 그는 고레의 아들이었으며, 그의 가족들도 함께 문지기의 일을 하였다.

아델. ‘절름발이 혹은 ‘왼손잡이’란 뜻이다.

달문. ‘빛남’이라는 의미이다. 이 사람은 ‘살룸’의 형제였다(대상 9:17).

악굽. ‘추적자’라는 의미이다. 이 사람도 ‘살룸’의 형제였다.

하디다. ‘탐색하는 자’라는 의미이다.

소배. ‘포로로 데려가는’이라는 의미이다.



2:43 느디님 사람들. ‘느디님’은 ‘주어진 자들’이란 의미이다. 영어개역 성경(RSV)은 이를 ‘성전 수종자’(temple servant)로 번역하였다. 이들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많은 학자들은, 이들이 전쟁 포로의 후예들이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민 31:25-47). 한편 여호수아시대에 이스라엘에 의해서 멸망받기를 두려워한 나머지 여호수아를 기만했던 기브온 족속들은 나무 패며 물긷는 자들이 되었다(수 9:23-27). ‘주어진 자들’이라는 의미인 ‘느디님’ 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까닭은,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하나님께 완전히 드려졌듯이 (민 8:16), 이들도 레위인들을 돕도록 하기 위하여 그 레위인들에게 드려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8:20).

시하 자손. 이들도 혈통상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이 같이 볼수 있는 까닭은 이 이름이 이스라엘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며, 그 주변처, 즉 애굽이나 아람 계통 민족에게서 어느 정도 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수바 자손. ‘하수바’는 ‘날씬’의 의미를 갖는 아랍어 풍(風)의 이름이다. 따라서 이 사람도 혈통상으로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듯하다.

답바옷 자손. ‘답바옷’은 ‘도장’ 혹은 ‘반지’의 의미이다.



2:44 게로스 자손. ‘게로스’는 ‘발목이 굽은’의 의미이다.

시아하 자손. 이 사람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바논 자손. ‘바논’ 은 ‘구속’(救束)이란 뜻이다.



2:45 르바나 자손. ‘르바나’는 ‘옷을 입다’란 의미이다.

하가바 자손. ‘하가바’는 ‘여치’ 혹은 ‘메뚜기’란 뜻이다.

악굽 자손. ‘악굽’이라는 이름은 레위 사람들 가운데서도 발견된다(42절). 이것은 이 ‘악굽 자손’이 문지기의 직분을 수행하던 ‘악굽’ 가문의 레위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으리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2:46 하갑 자손. ‘하갑’은 ‘메뚜기’란 뜻이다.

사믈래 자손. ‘사믈래’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하난 자손. ‘하난’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는 뜻이다.



2:47 깃델 자손. ‘깃델’은 ‘건장한’이란 의미이다.

가할 자손. ‘가할’은 ‘잠복하는 자’라는 뜻이다.

르아야 자손. ‘르아야’는 ‘하나님께서 보셨다’란 의미이다.



2:48 르신 자손. ‘르신’이라는 이름은 ‘견고한’ 혹은 ‘안정된’의 의미로서, 이스라엘의 주변 민족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그 대표적 인물은 다메섹 왕 ‘르신’일 것이다(왕하 15:37, 16:5-9).

느고다 자손. ‘느고다’는 ‘구별된’의 의미이다.

갓삼 자손. ‘갓삼’은 ‘삼키는 자’의 의미이다.



2:49 웃사 자손. ‘웃사’는 ‘힘’이라는 의미이다.

바세아 자손. ‘바세아’는 ‘절름발이’라는 의미이다.

베새 자손. 이에 대해서는 17절 주석을 참조하라.



2:50 아스나 자손. ‘아스나’는 ‘나(Nah)에게 속한 자’란 뜻이다. ‘나’(Nah)가 애굽의 신임을 볼 때, ‘아스나’는 애굽 출신의 이스라엘인임이 분명하다.

므우님 자손. ‘므우님’은 에돔의 동쪽 그리고 사해의 동남쪽에 거주하던 소수 민족의 명칭이었다. 따라서 여기의 ‘므우님’은 그 소수 민족 출신의 이스라엘인임이 분명하다. 그 이름의 의미는 ‘거주’이다. 추측컨대 이들은 웃시야 왕의 정복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포로로 끌려온 자들일 것이다(Schultz, 대하 26:7).

느부심 자손. ‘느부심’은 이스마엘 족속의 한 분파였던 ‘나비스 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창 25:15).



2:51 박북. ‘병’(甁)이란 의미이다.

하그바. ‘구부러진’이란 의미이다.

할홀. ‘갈가마귀’란 뜻이다.



2:52 바슬릇. ‘껍질을 벗김’이란 뜻이다.

므히다. ‘노예로 산’이란 의미이다.

하르사. ‘벙어리의’ 혹은 ‘말이 없는’의 의미이다.



2:53 바르고스. ‘코스(Kos)의 아들’이란 뜻이다. ‘코스’가 아카디아 및 아람 계통의 신(神)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 ‘바르고스’는 이방인임이 분명하다.

시스라 자손. ‘시스라’는 ‘전장’(戰場)이란 의미이다. 이 이름은 이스라엘을 괴롭혔다가 사사 바락과 드보라에 의해 궤멸당했던 가나안 동맹군의 지도자 이름과 동일하다는 점에서(삿 4:1-22, 5:19-31), 이 ‘시스라’는 가나안족 계통의 사람이었다고 본다.

데마 자손. 이들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없다.



2:54 느시야. ‘뛰어남’이라는 의미이다.

하디바. ‘유년기에 포로로 잡혔다’는 뜻이다.



2:55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 이들의 일부는 틀림없이 가나안 원주민들의 후예일 것이다. 솔로몬이 그곳 원주민을 자신의 역군으로 삼은 바있기 때문이다(왕상 9:20, 21). 또한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들 중 상당수는, 솔로몬의 군대에 의하여 포로로 잡혀온자들의 후손들이었을 것이다(Fensham, Brockington). 이러한 견해는, 앗수르 왕 산헤립(B.C. 705-681)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강대국의 국왕이 타민족을 포로로 잡아다가 자신 혹은 자국의 신(神)에게 봉사토록 하는 것은 고대 중근동의 일반적 풍습이었다는 사실(Mendelsohn, Slavery in the Ancient Near East, Meyer) 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산헤립은 타민족과의 전투 중 한꺼번에 41 명을 붙잡아 가서 그들을 자신의 신 ‘자바바’(Zababa)에게 봉사토록 하였다고 한다.

소대. ‘배회하는’이란 의미이다.

하소베렛. ‘서기관’이란 뜻이다.

브루다. ‘분산’의 의미이다.



2:56 야알라. ‘야생 염소’란 의미이다.

다르곤. ‘거친’ 혹은 ‘엄격한’이란 뜻이다.

깃델. ‘건장한’이란 의미이다. 이 자손들은 ‘느디님 자손’들 가운데서도 발견된다(47절).



2:57 스바댜.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는 의미이다. 이와 동일한 이름이 4절에도 언급되지만 본 절의 ‘스바댜’ 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하딜. ‘동요’(動搖)란 뜻이다.

보게렛하스바임. ‘가젤 영양(아프리카와 서남 아시아에 서식하는 작은 영양)을 올무로 묶는 여자’란 의미이다. 이 이름은 ‘포케레트’과 ‘하츠바림’의 두 단어로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 ‘포케레트’ 는 분사의 여성형이라는 점에서, 학자들은 ‘보게렛하스바임 자손’을 ‘영양’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던 직업 여성의 후예들로 본다(Fensham, B.D.B)아미. ‘건축자’란 의미이다. 이 사람은 느 7:59 의 ‘아몬’과 동일 인물이다.



2:58 본 절은 ‘느디님 사람’(43-54절)과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55-57절)이 신분적 위치에서 동일함을 시사한다.

신복(에베드). 이것은 일반적 의미에서의 ‘종’을 가리킨다.



2:59 델멜라와 … 임멜에서 올라온 자. 이들도 역시 세스바살의 영도 하에 바벨론에서 함께 귀환한 자들이었다. ‘델멜라’는 현재의 ‘프톨레마이스’의 ‘텔마’를 말하는 듯하다. 이곳은 페르시아만 근처에 있으며 심각한 염분(鹽分) 피해로 인하여 현재는 폐허로 변해 있다. 그 지명의 뜻은 ‘소금의 언덕’이다. 한편, ‘임멜’ 은 ‘어린 양’ 이란 의미이다. 그러나 그곳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밝혀져 있지 않다.

그룹. ‘천사’란 뜻이다. 이곳은 현재의 ‘프톨레마이스’의 ‘치리파임’에 해당한다.

앗단. 이 단어의 의미는 ‘확고한’이며 느 7:61의 ‘앗돈’과 동일지역으로 추정한다.

그 종족과 보계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순수한 이스라엘 백성인지의 여부를 밝히는것은 매우 중요했다. 만일 이스라엘 혈통이 아닌 무리가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올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배교(背敎)의 자리에 들어서도록 만들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모세 율법을 통하여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금하신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출 34:12-16, 고후 6:14).

증거할 수 없으니. 여기의 ‘증거할’(하기드)은 ‘고하다’ 혹은 ‘보이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나가드’의 사역형으로서, 본질적인 문제를 분명히 풀어서 밝히는 행동을 가리킨다(삼상 8:18, 욥 33:23, 미 3:8, 6:8). 이때 델멜라 등에서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한 자들이, 자신들이 순수한 이스라엘 백성임을 증명치 못한 까닭은 (1)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살아오긴 했으나 실재로는 혈통상 이방인들이거나,(2) 실제는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자신들의 혈통이 어디에 속하는지를 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2:60 여기에 나와 있는 자손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名數)’에 포함되지 않았다(2-58절).

들라야. ‘여호와께서 자유롭게 하셨다’는 의미이다.

도비야. ‘여호화는 선하시다’란 뜻이다. 여기서 ‘도비야 자손’은 B.C. 586년의 예루살렘 몰락 이후 암몬으로 도망쳤던 유대인으로 추측되기도 한다(렘 41:15). 그러나 그 사실이 입증되지 못한 까닭에,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2절)에 포함되지 못한 것이다.

느고다. ‘구별된’의 의미이다. 비록 이 이름이 ‘느디님 자손’들 중에서 발견되기는 하지만(48절, 느 7:50), 본문의 ‘느고다’와는 상관이 없다.



2:61 제사장 중에는. 앞의 언급(59, 60절)이 일반 서민들의 경우였던 것과 약간 대조된다. 본 절에 언급된 자들은 스스로가 제사장의 후예들임을 주장하였다.

하바야 자손. ‘하바야’ 는 ‘여호와께서 숨기셨다’란 뜻이다.

학고스 자손. ‘학고스’는 ‘가시 나무’란 뜻이다. 이 자손들은 자신들이 다윗 시대의 제사장이었던 ‘학고스’(대상 24:10)의 후손들임을 자처하였을 것이다.

바르실래 자손. ‘바르실래’는 ‘강철’이란 뜻이다. ‘바르실래’라는 인물은 압살롬의 반역을 피하여 도피하던 다윗을 정성스럽게 도와준 사례가 있다 (삼하 17:27-29). 그러나 본 절의 ‘바르실래’는 그 사람의 사위이다. 그의 본래 이름은 알길이 없으나 그는 길르앗 출신의 ‘바르실래’의 딸과 결혼하면서, 장인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바르실래의 유산을 물려 받았을 것이다(민 27:4, 36장).



2:62 이 사람들이. 61절에 나오는 ‘하바야 자손’, ‘학고스 자손’ 그리고 ‘바르실래 자손’들을 가리킨다.

보계 중에서 …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한 고로. 세 자손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되었던 결정적 원인이다. 비록 그들은, 제사장들의 후손임을 주장했으나 그것을 문서상으로 증명하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성직을 박탈 당하고 말았다. 한편, ‘보계’(함미트야하심)는 문서화된 족보를 가리킨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족보 기록은 한 인간의 혈통적 뿌리를 밝혀 준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히 여겨졌었다(대상 5:17). 한편 ‘이름’(케타밤)은 ‘자신들에 대한 기록’의 의미이다.



2:63 방백이 저희에게 명하여. 혹자는 ‘방백’에 해당하는 ‘티르솨타’가 세스바살의 페르시아식 이름이라고 생각한다(Rawlinson). 그러나 이는 무리한 추측이다. 왜냐하면 (1) 이 ‘티르솨타’라는 단어 앞에는 정관사 ‘하’가 붙어 있으며,(2) 또한 이 단어는 느혜미야에게도 적응되었기 때문이다(느 8:9, 10:1). 그러므로 이 ‘티르솨타’는 페르시아 정부에 의해 임명된 고위 직책의 소유자를 뜻한다고 봐야할 것이다(Fensham). 그렇다면 결국 이 사람은 목백 세스바살, 곧 스룹바벨을 가리킨다.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그 당시에도 ‘예수아’라는 대제사장이 있었다(2절). 다만 여기서는 그 당시에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물어볼 수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추측컨대 ‘우림과 둠밈’의 판결 수단이 부착된 에봇(삼상 23:6, 9, 10)은 바벨론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또한 제사장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과정에서 없어져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에 따라 ‘세스바살’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림과 둠밈’의 판결 수단을 다시 찾으려고 노력한 듯하다. 그런 후에 ‘세스바살’은 ‘바르실래 자손’ 등의 혈퉁적 정통성을 하나님께 물어보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연대기적으로 본서 이후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성경 어디에서도 ‘우림과 둠밈’을 언급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스바살의 시도는 무위(無爲)로 끝났으리라 본다.

지성물을 먹지 말라. ‘지성물’(미코데쉬 하코다쉼)은 ‘가장 거룩한 중에서도 가장 거룩한 것’의 의미이다. 이것은 희생 제사후에 제사장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가리킨다(레 2:3, 10, 7:33, 34). 이는 특별히 구별된 거룩한 것이기 때문에 거룩히 구별된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었다. 따라서 본문은 단순히 제물의 분배에서 제외되는 것만을 의미치 않으며 제사장 역할 전체를 수행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2:64 회중의 합계 … 사만 이천 삼백 육십명. 본 절의 숫자는 3-60 절에 언급된 모든 숫자의 합인 29,818 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 같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어 왔다. (1) 3-60 절에서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람만을 다루었으나 합계를 낼 때는 그들과 함께 귀환한 북쪽의 열 지파에 속하는 자손들의 숫자까지 포함시켰다는 견해(Seder, Olam, Raschi, Ushei), (2) 3-60 절에서는 20세 이상의 성년 남자만을 나열하였으나 합계에서는 12세 이상의 모든 남자를 집계하였다는 견해(Mich). (3) 3-60 절에서는 20세 이상의 성년 남자만을 나열하였으나 합계에서는 어린이 및 부녀자들까지 집계했다는 견해(Williamson), (4) 합계 숫자는 느헤미야서의 그것(7:66)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정확한 것으로 보고 다만 3-60 절에 나열된 숫자 중에서 필사자의 오류가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Keil, Schultz)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어느것 중에서도 만족할 만한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Fensham).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회중’(카할)이라는 단어가 성년 남자는 물론 여자까지 포함할 수 있다는 점에서 (3)의 견해가 가장 무난해 보인다.



2:65 그 외에 노비가 칠천 삼백 삼십 칠 명. ‘노비’(아브데이헴)는 문자적으로는 ‘그들의 노예들’이다. 이들은 가축 등과 같은 재산과 함께 언급된다는 점에서, 위의 42,360명에 안들어감이 분명하다(Williamson). 한편 ‘칠천 삼백 삼십 칠명’은 이스라엘 백성의 총수 42,360명에 비하여 대단한 숫자이다. 전체 인구의 약1/6 에 달하는 노비들이 함께 귀환했다는 사실은, 유대인들이 노비들에 대해 비교적 관대 하였으리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신 24:14, 15 참조).

노래하는 남녀. 이들에 대해서는 (1) 노래하는 레위인들의 부족을 메꾸기 위해 고용되어 성전에서 레위인과 함께 여호와께 찬양했던 성가대라고 하는 해석(Rawlinson),(2) 성전 예배와 관계된 노래를 하는 자라기 보다는 부유한 자들이 흥을 돋우기 위하여 고용한 자들이라는 해석(Williamson, Schultz, Keil) 등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첫째, 이들은 제의적(祭儀的) 공동체의 수효에 포함되지 않았으며(64절) 둘째, 부자들이 오락을 즐기기 위해서 노래하는 남,녀를 고용하는 것이 고대 중근동의 관습(전 2:8)이었다는 점에서 둘째 견해가 보다 타당성이 있다. 만일 그렇다면 포로 귀환 직후의 이스라엘 공동체의 경제적 형편은 꽤 괜찮았음이 분명하다. 이 같은 상황은 약19년 후에 학개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의 그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학 1:6). 이 같은 상황악화는 끊임없이 계속되어진 극심한 천재(天災)때문이었을 것이다(학 1:10, 11).



2:66 말. 팔레스타인으로의 귀향 길은 말이 다니기에 적절한 평원 지대였으므로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로 산악 지대로 이루어진 팔레스타인에서 사용 되기에는 적절치 못했다(암 6:12).

노새. 번식력은 전혀 없으나 강한 적응성 때문에 팔레스타인과 같은 산악 지대에서도 짐 운반용으로 매우 적절한 가축이다.



2:67 약대. 팔레스타인 땅 안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은 짐승이나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는 귀로에 짐 운반용으로 유용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나귀. 귀인(貴人)들에 의해서 애용되었다(삼상 9:3).



2:68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 터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은 B.C. 586년 바벨론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에 의해 파괴되었다(왕하 25:10, 대하 36:19). 그러나 이것은 건축 때에 사용된 재료가 특별한 관계로(왕상 5:17), 비록 파괴된지 약 50 년이 지났지만 그 흔적이 역력했을 것이다. 그때 몇몇 족장들은 많은 다른 무리들보다 앞서서 성전 터에 도착한 듯하다.

하나님의 전을 그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이는 유대인들이 본토로 돌아온 가장 중요한 목적과 합치된다(1:2, 3). 한편 ‘그곳’은 (1)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 했던 모리아 땅(창 22:2, 대하 3:1)이었으며, (2) 다윗이 ‘인구 조사’라는 결정적 실수(대상 21:1)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제사 드렸던 오르난의 타작 마당(대상 21:18-22)과 동일 장소로서, 하나님에 의해 성전의 건축지로 지정된 곳이었다(대상 21:18, 19, 22:1).

예물을 즐거이 드리되.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의 건축을 위해서 많은 재물을 헌납한 것(출 35:5, 21-29)과 동일한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예물을 즐거이 드리되’(나다브)는 성막 건축을 위한 헌물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렸던 사실을 나타내는 말과(출 36:21) 동일하다.



2:69 역량대로(케코함). ‘노력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카하흐’에서 파생된 부사로서 자신이 바칠 수 있는 최대한의 분량 만큼을 가리킨다. 이 같은 자세는, 신약시대에 어려운 형편에 처했던 유대인들을 돕기 위해서 연보를 한 마게도냐 교인들의 헌금 원리와 동일하다(고후 8:3).

역사하는 곳간에 드리니. ‘역사’(멜라카)는 ‘봉사하다’ 혹은 ‘공급하다’의 의미인 ‘라아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일’, ‘사업’, ‘수고’, ‘부’(富)등의 여러 가지 뜻이 있다. 한편 ‘곳간’(오차르)은 ‘창고지기를 임명하다’의 의미를 갖는 ‘아차르’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단순히 ‘재물 창고’ 란뜻이 있다. 따라서 ‘역사하는 곳간’은 ‘성전 건축 사업의 수행을 위해 필요한 재화를 모아두는 창고’의 의미로 이해된다.

금이 육만 일천 다릭. 원래 ‘다릭’은 고대 페르시아에서 금의 무게를 잴 때 통용된 중량의 단위였으며 훗날에는 화폐의 단위로 쓰였다. 금과 1 다릭이 영화(英貨) 약11 파운드 정도였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육만 일천 다릭’은 약 671,000 파운드, 즉 한화(韓貨)로 대략 6억 7천만 원쯤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Pulpit Commentary).

은이 오천 마네. ‘마네’ 는 바벨론에서 주조된 은화로, 은화 1 마네는 약 34 달러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천 마네’는 미화(美貨)로 약 170,000 달러 정도 된다.

제사장의 옷이 일백 벌. 이것은 특별히 지어 바쳤을 것이다(삼상 2:19). 한편 ‘일백 벌’은 느헤미야서의 ‘육십 칠 벌’(느 7:72) 과 차이가 있다. 이는 본서의 기록자 에스라가 대략의 숫자만을 기록했기 때문일 것이다.



2:70 제사장들 … 느디님 사람들이 그 본성들에 거하고. ‘제사장 … 니디님 사람들’은 모두 성전 봉사와 직간접으로 관련되어 있는 자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예루살렘’을 본성으로 삼아야 했다. 그렇다면 여기의 ‘본성’은 예루살렘과 그 주변 마을을 가리킨다.

백성 몇. 제사장 및 레위인과 대조되는 서민들로서 예루살렘이 고향인 백성을 뜻한다(Fensham).

노래하는 자들. 레위인의 한 부류인 아삽 자손올 가리킨다(41절).

문지기들. 이들도 레위인의 한 분파 자손들이다(42절).

이스라엘 무리. 이들은 남쪽 지파와 함께 돌아왔을 북쪽 지파만을 의미치 않는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들 이외의 나머지 전부를 가리킬 것이다(2절, 3:1, 6:16, 17, 7:13, 8:29, 35)그 본성 들에 거하였느니라. 예루살렘이 고향인 자들과 성전 봉사에 관계하는 자들은 예루살렘에, 그 나머지 백성들도 자신들의 고향 땅으로 흩어졌음을 시사한다. 한편 ‘거하였느니라’(야쉬브)는 ‘쉬다’ 혹은 ‘거주하다’의 의미로서, 삶의 터전으로서 쉼을 얻으며 정착하는 것을 말한다(창 20:15, 수 21:2, 삼하 7:5).

 

 

 

   하나님께서 고레스라는 한 이방 왕을 도구로 사용해서 포로 생활을 하고 유다 백상
을 해방시키는 모습을 그리는 전장(前章)에 이어, 본장에서는 왕의 명령에 따라  이스
라엘의 고토(故土)로 귀한한 백성들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다. 즉, 본서 저자는 하나님
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심과 그에 대해 반응한  백성들의  모습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언한다. 이 같은 본장은 (1)지도자들과 일반  백성들의  명단(1-35
절), (2)제사장 및 레위 사람들의 명단(36-42절), (3)느디님 사람과 솔로몬 신복의 명
단(43-58절), (4)계보가 불분명한 사람의 명단(59-63절), 그리고 (5)돌아온 자들의 총
수와 그들이 드린 물품의 내역(64-70절) 등으로 구분된다.
   고레스가 내린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귀환 명령은 , 강제적 구속력을  갖는  '명
령' 그 자체라기 보다는 차라리 '허락'이라고 봄을 타당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바벧
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자유로운 판단  여하에  따라서
팔레스틴으로 귀환할 수도, 혹은 그대로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었다.
   이러한 허락이 고레스 왕으로부터 내려졌을 때, 바벧론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벅찬 기끔과 아울러 심리적 갈등에 사로잡히게 됐을 것이다. 먼저, 그들은 물질적  희
생을 각오해야 했다. 만일 그들이 바벧론에 계속 살면 자신들이 닦아 놓는 사업  기반
을 근거로 해서 상당한 수익을 누리며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팔
레스틴으로 돌아간다면, 그와 같은 무형 자산과 때로는 토지와 가옥 등의 고정 자산도
포기해야 했다. 둘째로, 그들은 가족과의 이별을 각오해야 했다. 물론 온 가족이 함께
팔레스틴으로 돌아간다면 문제는 간단했다. 하지만 그곳의 원주민들과 결혼하여  살던
사람들에게는 이 문제가 결코 쉽지 않았다. 셋째로, 그들은 육신의  고생을  각오해야
했다. 먼저 그들은 바벧론에서 팔레스틴까지의 약 2,400Km 이상의 광야길을  통과해야
만 했다. 특별한 교통 수단이 없던 당시 상황에서 노약자를 이끌고  물건들을  휴대한
채 그 먼 거리를 지난다는 것은 쉽사리 엄두가 안 나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B.C.
586녕의 바벧론 군대의 공격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곳에 예루살렘 성전 및 성벽을  재
건해야 했으며, 자신들의 거처도 신축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포로로 끌려가기 전에 활약했던 선지자들의 중요한 예언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예언의 내용대로라며, (1)오직 약속의 땅  팔레
스틴으로 돌아가는 자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사 10:20-23; 렘 31:7,8; 롬  9:27),
(2)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는 자에게는 번영이 보장되었다(렘 23:3,4; 슥 8:12). 그래서
바벧론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팔레스틴으로 귀한할 경우 영육안의  축복
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을 거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눈으로도 볼 수 없고 손
으로도 만져지지 않는 미래의 것을 바라보면서(히 11;1) 눈에 보이는 많은 현재의  것
을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한편, 그들의 이와 같은 믿음의 결단은 마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를 의지하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던 것과 같다(창 11:31; 12:1,4;행 7;2-4; 히 11:8), 이러한  이유
로 인해 바벧론을 떠나 팔레스틴으로 귀한한 사람들은 가히 우리들의  믿음의  선진들
(히 11:2)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 같은 본장에서 (1)신앙은 하나님의 선물이기도 하지만(엡 2:8,9)사
람의 편에서 본인의 결단이며(요 1:12; 행 16:30,31 롬 10:10), (2)하나님 나라에  들
어가기 위해서는 물질 손실을 포함한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행
14:22).

                    1. 지도자들과 일반 백성들의 명단
   B.C. 537년 스롭바벧의 지도하에 단행된 제 1차 귀환 때의 귀환자들의 명단이 언급
된 보장에서 그 첫 번째 대목에 해당하는 본문의 귀한을 인도한 지도자들의 이름과 일
반 백성들의 숫자가 나타나 있다. 이 같은 본 단락은 (1)이스라엘 백성들의 귀환을 주
도한 지도자의 명단(1,2절), (2)가계(家系) 관계가 확인된 평면의 명단(3-19절), 그리
고 (3)본적을 통해 분류된 평민의 명단(20-25) 등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출애굽 당시 모세가 백성들을 이끌고 지도한 것과 같이 금번의 제  2출애굽
을 지도한 영도자는 '스롭바렘'과 '예수아' 등이었다. 그중 '스룹바벧'은 다윗 가문의
후예로서(대상 즉, 그는 왕적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함께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지도를 받으며 옛날과 같은 독립 국가를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한편 또
다른 지도자 '예수아'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가문을 갖고 있었다. 즉, 그 또한  대제
사장의 직계 자손이었기에 백성들을 이끌만한 추분한 자격이 있었다.
   한편 지도자들의 인도에 의해서 팔레스티느오 귀환한 일반 백성 중의 한 무리는 자
신들의 보계(譜系)를 잊지 않았던 자들이었다(3-19절), 그래서 그들은 본장에서  씨족
중심으로 분류되어 나타나고 있다. 사실 이들이 자신들의 보계를 잊지 않고  기억  및
보관했다는 것은 대더한 의미를 갖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대부분은 이방 땅 바벧
론에서 태어났고, 극히 일부는 아주 어린 나이에 부모의 손에 이끌려  바벧론에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부모가 자신들에게 알려준 보계를 잊지 않고  기
억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이같이 자신들의 보계를 기억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
다. 즉, 그들은 비록 자신들이 바벧론으로 끌려와서 살고 았지만 때가 차면 본토로 돌
아가게 되리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렘 25:11)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귀
환한 백성들 중 이들은 자신들의 보계를 잊지 않고 기억했던 것이다. 한편 보서의  저
자 에스라는 바로 그와 같은 믿음의 인물들을 귀환자 명단의  첫머리에  올려놓음으로
써, 후세의 신앙인들의 신앙의 귀감(龜鑑)으로 삼고자 한 것 같다.
   평신도 중의 두 번째 무리는, 비록 자신들의 보계는 잊었지만 자신들의 조상이  살
던 고향을 알고 있던 자들이었다(20-35절). 비록 이들이 자신들의 보계를 분명히 알고
있지는 못했을지라고 조상들의 고향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은, 자신들이 약속의 땅으
로 돌아갈 필요성 혹은 그 가능성을 인식했다는 증거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들 또한 어느 정도는 신앙을 소유한 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귀환한 백성들 중에 이같이 자신의 계보와 조상들의 고향을 알고 있는 자들
이 있었다는 것은 민족의 순수성과 선민 사상의 특수성과 연관시켜 볼 때 중요한 의미
를 지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팔레스티으로 돌아와서 첫  번째로  이루어야
될 과업은 여호와 종교의 순수성을 보존하는 것이었기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백성들
중에 여호와 종교를 가진 사람의 후손과 그렇기 못한 사람을 분리시키는 일이  선행되
어야 했다. 특히, 부모의 신앙이 후손의 신앙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던 고대  사회에서
(딤후 1:5), 이 같은 방식으로 여호와 종교가 혼합주의화되는 현상을 막는 것은  지당
하였다. 또한 이 뿐만 아니라 극히 위험한 혼합주의 종교가 성행하던 그 당시  팔레스
틴의 상황에서는(4:2)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러므로 본 단락의 명단에 올랑  있는
귀환자들은 순수한 여호와 종교의 신본자들로서,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경이 있는 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우리는 본 단락을 살펴보면서 간과치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즉,  그
것은 왜 본서의 저자 에스라가 일반 백성 귀환자들을 지파별로 분류치 아니했을까  라
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지파의 구별이 특별한 의미가 없
었다. 왜냐하면 북국 이스라엘의 10지파 백성들은 남국 유다의 두 지파 백성들이 바벧
론으로 끌려가기 약 136년 전에 이미 앗수르 땅으로 강제 이주되어서(왕 18:11) 그 당
시에는 혈통의 순수성이 거의 상실된 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서의 저자  에스라는
본 단락을 지파대로의 구별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기록한 것이다.
   바로 이 같은 본 단락에서 우리는, (1)평신도들은 영적 지도자들의 신적 권위를 따
라서 순종해야 하며(민 16:1-10; 딤전 4:12), (2)모든 신자들은 신앙적 전통을 무시해
서는 안되며(딤후 1:5;3:14), (3)아름다운 행위는 말씀에 근거한 미래에 대한  분명한
소망이 있을 때만 나타남(히 11:26, 40)을 깨닫게 된다.
   
   *북 이스라엘 10지파 백성들의 존재.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이 죽고 그의 아들 르
호보암이 등극할 즈음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다(왕성 12장). 그때 이스라엘 백성 중 열
지파는 북이스라엘, 나머지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는  남유다에  편입되었다(왕상
12:21). 그런데 그 두나라는 역사적으로 서로 우호 혹은 적대 관계를 반복하던 중  북
국 이스라엘은 B.C.722년 앗수르 왕 살마에셀에 의해서 멸망되어 그 백성들 중 상당수
가 앗수르 땅으로 끌려가고 말았다(왕하 17:23). 따라서 팔레스틴 땅에는 남국 유다의
두 지파만이 남게 되었다(왕하 17:18). 그러나 남국의  두 지파도 결국 바벧론 왕  느
부갓네살에 의해 멸망되어 B.C 586년에 바벧론 땅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12지파 전체가 타국 땅에서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남유다의 두 지파
백성들에게는 특별한 조서가 내려져서(1:1-3) 자신들이 살던 팔레스틴 땅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북국의 열 지파 백성들이었다. 왜냐하면 본서나 느헤미야서
는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하등의 실마리도 제공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약  성
경의 다른 부분들은 이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는 약간의 단서들을 제공한다.
   첫째, 우리는 앗수르로 끌려간 북국의 열 지파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에서
끊겨졌다고(10:8) 보아야 한다. 이유인즉, 앗수르로 끌려가지 아니하고  일부  남았던
북국 백성들이 여오와께로 돌아와서 회개할 경우 끌려간 자신들의 친척들을  하나님의
자비로 인하여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었는데도  그러기를  거절했기  때문이다(대하
30:6, 9, 10). 따라서 우리는 앗수르로 끌려간 열지파 백성들 분만 아니라 그 남아 있
는 백성들에게도 여호와께 대한 신앙이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둘째, 우리는 북국 지파의 백성들 중 극히 일부는 히스기야의 권면에 따라 남국 유
다로 넘어와서 여호와를 참 하나님으로 믿는 신앙인으로 살았음을  알아야  한다(대상
9;3; 대하 30:11).
  셋째, 우리는 앗수르로 끌려가 살던 북국 지파 백성들 중의 경건한 무리는 바벧론에
끌려가 살던 남국 지파 백성에게로 편입됐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겔  37:16,
19).
   결국 이와 같은 성경적 근거들을 통해서 볼 때 북이스라엘의 10지파 백성들은 포로
로 잡혀간 곳에서 동화되어 살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귀환할 때
유다 땅으로 돌아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기에 바벧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드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12지파 대부분으로 이루
어졌다고 추축할 수 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완전히 멸절될 것 같았던 북쪽의 열  지
파에 대해서도 부분적으로나마 구원의 손길을 뻗치셔서 이스라엘이라는 언약 공동체에
자남게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환경이나 상황에서도 당신께서 택한 백성
에 대해서는 궁극적으로 구원을 이루시는 것이다(롬 8:30,39).

                    2. 제사장 및 레위 사람의 명단(2:36-42)
   바벧론에서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지도자들과 평민들의 명단을 기록한 앞 단락(1-35
절)에 이어, 여기서는 바벧론에서 귀환한 성직자들의 명단을 적고 있다. 이러한 본 단
락은 (1)제사장의 명단을 언급한 전반부(36-39절)와, (2)레위 사람의  명단을  기록한
후반(40-42절)로 구분된다. 그런데 분문의 후반부는 레위 사람들이 맡았던 고유 직무,
즉 제사 업무를 도와주는 역할(40절), 찬양대의 역할(41절), 성전 문지기의 역할(42절
0에 따라 그 자손들을 세분해서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을 재건하고자 귀환한(1:5)  제
사장들의 총수는 4,289명이었다. 그런데 이 숫자를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 전체 합계인
42, 360명(64절)과 비교해 보면 백성 약 10명당 제사장 한 명 꼴이 된다. 그러나 제사
장이 이같이 많은 것과는 달리 제사장의 직무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 레위 자손을 합해
보면 341명에 불과하다. 이는 당시 귀환한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심적 갈등을  반영
한 듯하다. 왜냐하면 제사 업무를 직접 담당했던 제사장들과는 달리 그  일을  도와준
레위인들에게는 귀환의 의미와 여호와께 대한 신앙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이해되재 않
았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성전 제사가 절대적으로 중시되던 구약 시대에 있어서 제사장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였다. 그런 까닭에 제사장은 특별한 계층으로 분류되었고, 일밤 평민들보다  더
좋은 생활 여건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바벧론으로 끌려간 뒤에는 팔레스틴
에서와 같은 생활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바벧론에 정착하고 살
았음에도 불구하고 제사장직에 대한 자부심과 아울러 여호와께 대한 신항으로 쉽게 귀
환을 경정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레위인들은 제사장의 일을 육신의 수고를 통하여 돕는 직부를 수행하던 자
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심이 약화된 레위 자손들에게는 귀환의  의미가  비교적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다 땅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곳에는
자신들의 땅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바벧론에서의 정착 또는 그들의 삶을 영유시켜  주
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살펴볼 때 이때 귀환한 레위인들의 신앙심은 대단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본서 저자는 이 같은 훌륭한 믿음의 소유자들을 우리에게 자세히 소개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유혹과 환난도 헤쳐나갔던 믿음의 사람들을 현대
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레위인들의 직무에 따라 귀환한 수를 나타
낸 것이다.
   이 같은 본 단락에서 우리는 (1)신앙 생활에 있어서 일시적 갈등은 언제든디, 어느
시대든지 있을 수밖에 없으며(벧전 1:6), (2)참된 신앙인은 맡겨진 사명에 대한  분명
하고도 충성스러운 책음 의식과 확신있는 믿음에 거한다는 사실(고전 4:2; 히11:25)을
깨단게 된다.

                    3.느디님 사람과 솔로몬 신하의 자손 명단(2:43-58)
   유대인 귀환자 명단을 기술하는 가운데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숫자를 언급한 전단
락(36-42절)에 이어지는 본문은 성전에서 막일을 하던 사람들의 자손과 천한 일을  하
던 사람들의 자손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부문은 느디님 사람들의 자손을 적은 전
반부(43-54절)와 솔로몬 신하들의 자손을 기술한 후반부(55-58절)로 구성되어 있는 바
이들은 서로간에 많은 공통점을 지녔기 때문에 연이어 기록한 듯하다.
   사실 이 사람들은 모두 혈통상으로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리 속에 포함된 것은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서 전쟁 포로로  끌려
옴으로써였다. 이스라엘 정부에서는 이들의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서  소위  '느디님
사람'으로 불리는 자들을 성전 봉사에 참여시켰고, '솔로몬 신복'으로 불리는  자들은
궁궐에서 일하도록 했다. 이 같은 이유로 인해 그들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와서 함
께 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 마디로 말해서 그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대접을 받지 못하던  부류였
다. 그러기에 오히려 그들에게는 바벧론에서의 생활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벧론 생활을 포기하고 유다 땅으로  귀환하였다.  이유인
즉, 귿르은 여호와의 종교가 참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오직 이
스라엘이라는 언약 공동체 안에만 구원이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이유
에서, 그들은 살아 있는 믿음의 소유자들이었다(약 2:17, 26). 그래서 본 단락은 그들
이 이스라엘 백성들 틈에 끼어서 귀환했음을 선언하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서 저자는 본문에서 앞 단락에 언급된 일반 백성들의 숫자를 통해  나타내
려고 한 의도를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즉, 앞단락(3-35절)에서 저자는 일반  백성들이
가졌던 신앙의 열심에 대해 그들의 명단을 앞부분에 둠으로써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본문에서 또한 이스라엘 백성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이들을  언급함으로써  그들의
신앙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서 저자는 이 같은 위대한  본보기를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물질과 명예를 신(神)으로 삼는 이 험악한 시대를 믿음으로 헤쳐  나가
게끔 하려는 것이다.
   이 같은 본 단락에서 우리는 (1)인간의 관점에서 불행하게 보이는 일 모두가  진정
한 불행이 아니며(행 16:19-34; 롬 8;28), (2)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외면의 문제가 아
닌 내면의 문제에 관계됨(살전 5:16)을 깨닫게 된다.
   
                    4. 계보가 불분명한 사람의 명단(2:59-63)
   여호와 종교의 순수성을 지키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둘 수밖에 없었던 그 당시  상황
에서 자신의 계보를 분명히 밝히지 못하는 사람들이 언약 공동체에  들어간다는  것은
심히 곤란하였다. 이같은 자신들의 계보를 알지 못한 사람들은 일반 백성들 중에도 있
었고, 제사장 자손들 중에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떤 이유로 인해 종족의  계보에
서 빠졌는지 알 수는 없으나 아마도 바벧론에 거주할 때 이방 여인과 결혼하여 난  자
손이거나 혹은 자신들의 계보를 중요치 않게 여긴 자들의 후선이었기 때문에 그  계보
를 잊은 듯할. 그러기에 그들은 한 망디로 말해서 신앙적 열정이 부족했던 사람들이라
할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문의 권리는 가문 등록부에 의해서 입증되었다.  그래서
국가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지방 권헌드에 의해서 기록 보관되던 등록부에 의해서 확일
될 수 있었다(대상 5:17). 그러나 이스라엘이 국가로서 멸망당한지는 오래였다.  그로
므로 그 당시에는 가문에서 보관해야 하는 공인된 가문 등록부를 통해서만 자신의  고
계가 확인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여기에 언급되고 있는 사람들은 가문이 보관해야 하는 등록부를 잃어버렸
음이 분명하다. 결국 그것은, 그들이 본토로 돌아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거나
거기에 대한 소망이 없었던 결과라 할 수 있다. 비록 어떤 부류는(61절) 자신의  불분
명한 조상의 이름을 내세워서 자신의 계보를 증명하려고 시대했지만, 그것은 어불성설
(語不成說)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그  능력에  있음을(고전
4:20), 그들이 알지 못한 연고였다.
   아무튼 본서 저자는 여기서 준비없이 신앙 생활을 하려고 했던 한 부정적 본보기를
위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본 단락에서 우리는 (1)신앙인들은 항상  주
님의 때를 긴강하여 준비해야 하며(마 25:1-13), (2)신앙적 준비가 없는 그리스도인은
결정적인 때에 수치를 당함(고전 3:15)을 깨닫게 된다.
   
                    5. 귀환자와 재산의 합계(2:64-70)
   귀환자들의 명단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는 귀화자들을  특징별로  구분해서
그 숫자를 언급하였다. 이에 이어지는 본문은 본장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바벧론에서
귀환한 자들의 총계와 그들이 함께 가져온 소유물의 총계가 언급되고 있다.  이  같은
본 단락은 (1)모든 귀환자와 소유물의 총계(64-67절), (2)성전 재건을 위한  백성들의
헌신(68-70절) 등으로 구분된다.
   본 단락의 64절에 나오는 백성들의 총수는 1-63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모든  숫자의
합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얼마간의 차이는 오랜 세월 동안 원본의 필사(筆寫)
가 거듭되면서 원본은 분실되고, 남아 있는 사본들에게서 생긴  필사자들의  오류라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리고 그 차이는 심각하지 않다는 점에서 결코  문
제가 될 수 없다. 특히 여기서의 합계가 바벧론에 거주하던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 소수만이 팔레스틴으로 귀환했음을 강조하는 데 저자의 의도가 있음을  고려할  때
더욱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편 그들의 소유물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이 같은 규모는 백성들이  바벧론
을 떠나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팔레스틴으로 귀환하게 된 것은 철저하게  종교
적 목적 때문이었다. 즉, 그들은 자신들끼리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해서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 귀환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몸  '사
만 이천 삼백 육십'도 하나님께 바쳐질 예물이었으며, 그들의 모든 소유물 또한  그러
했다.
   아무튼 본 단락에서 본 저자는 귀환한 백성들의 신앙적 열심을 보여 주는 데  주력
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귀환한 백성들의 자세한 숫자와 총수, 그들이 드린  예물에 대해 철저히 언급하는 것이다.
   이 같은 본 단락에서 우리는 (1)신실된 신앙의 소유자는 자신의 몸을 포함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소유로 여기며(고전 6:20; 벧전4:10), (2)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최우선 과제는 주의 일임(고전 4:2)을 깨닫게 된다.


Articles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