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레위기 0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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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 이 신(神)명칭은 레위기 전반을 통해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레위기가 특별히 언약의 백성이자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과 성결에 대해 취급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즉 '언약의 하나님', '구속주 하나님'이라는 뜻을 가진 '여호와'란신명칭은 특별히 '언약의 백성'과 관련하여 사용되어지는 신명칭인 만큼 레위기의 주제 및 내용에 합당하게 적절히 사용되어지고 있는 것이다(Lange).
회막(,오헬 모에드) - '만남의 천막'이란 뜻으로 특별히 회막(會幕)이란 용어는 하나님과 언약 백성 간의 만남의 장소로서의 기능을 강조한 말이다.실로 하나님께서는 이 '회막'을 통하여 인간들 사이에 최초로 거주하셨고, 또한 인간들과 만나셨다. 특히 여기서 회막을 통하여 인간들 사이에 거주하신 하나님의 거주는장차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요 1:14) 그리스도의 거주를 예표한다(The Preacher's Complite Homiletic Commentary). 한편 이 말이 성경 다른 곳에서는성막(출 26:9), 증거막(출 38:21), 법막(대하 24:6), 여호와의 전(출 23:19), 여호와의 장막(왕상 2:28)등으로도 표기된다.
부르시고(, 와이크라) -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부르시고'란 의미인데히브리 성경에서는 이 말이 첫 단어로 나온다. 아울러 '와이크라'란 단어는 각 성경의첫 단어를 대체적으로 그 책의 제목으로 삼던 히브리인들의 관례를 따라 본서의 히브리 성경의 제목으로도 사용된 말이다. 특별히 이 단어에서 '그리고'(and)란 뜻을 지닌 '와'( )는 의미상 출 40:33절에 이어지는 접속사로서 본서가 출애굽기의 후편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또한 '부르시고'에 혜당하는 '이크라'는 특별한 임무를 부여할 때나 중요한 사항을 전달하고자 할때(출 3:4; 19:3) 주로 사용되는 동사로서 부름받는 자의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반응을 구하는 동사이다.
일러 가라사대 - 자기 백성에 대한 왕의 자격으로서, 더 나아가 그들의 죄를 속(贖)해 주시는 구속주의 자격으로서 택함 받은 백성이 마땅히 지켜 행해야 할 생명의 법도를 지금 선포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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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자손 -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받을 대상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야곱의 혈통적 후손들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 중에는 출애굽 당시 결혼이나 신앙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이스라엘 공동체에 가입하여 함께 출애굽한 잡족(雜族)들이 많이 섞여있었기 때문이다(출 12:38,49). 이같은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구약 시대로부터 하나님의 구원대상에는 민족적 차별이 결코 적응되지 않았음을 깨달을 수 있다. 이러한 사실온 마침내 신약시대에 이르러 밝히 드러났는데, 곧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유대인과 이방인 간의 담을 완전히 헐어 버리셨던 것이다(갈 3:28).
너희 중에 누구든지 -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면 누구든지 하나님 백성의 자격으로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이것은 하나님께 예물 드리는 데, 남녀노소나 빈부귀천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예물( , 코르반) - 기본 동사 '카랍'( )은 '가까이 가져가다' 혹은 '바치다'란 뜻이다. 따라서 '예물'이란 인간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가지고 가서 바치는 '제물' 혹은 '선물'이란 의미이다(Lange, Hirsch)특히 이 말은 비단 번제 뿐 아니라, 모든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드리는 제물 및 선물(막 7:11)을 의미한다. 예물은 이처럼 드리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자만이 느낄 수 있는 참 기쁨을 누리게 해 준다. 이런 점에서 인간이 하나님께 바치는 모든 예물속에는 궁극적으로 그것을 바치는 인간을 유익케 하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한편 70인역(LXX)은 이 말을 '선물'이란 뜻의 '도론'( )으로 번역하고 있다.
생축 중에서 - 여기서 '생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헤마'( )는 간혹축으로 번역되는데(창 1:24; 6:7), 일반적으로 몸집이 큰 네발 짐승을 가리킨다(Keil). 특히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소'(牛)와 '양'(羊), 그리고 '염소'를 가리키는데 이는 14절의 '새'(鳥)와 분명 대조된다(Lange). 한편 예물을 반드시 '생축 중에서' 드려야 하는 이유는, 생축에게는 '피'가 있기 때문이고 이 피는 신약시대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 드려진 가장 완전하고, 실체적인 생축은 후일 베들레헴의 '외양간에서 태어나신'(눅 2:7)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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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졔( , 올라) - '피워 올리다','올라가다'란 뜻의 기본 동사 '알라'에서유래한 말로, 곧 번제(燔祭)란 희생 제물을 불에 태워 그 냄새를 하나님께 피워 올려야 하는 제사임을 암시한다. 또한 번제는 고대의 제사법 중 가장 일반적이고 오래된제사 형태로서, 모든 제사 중 가장 기본적이고 중심적인 제사이다. 한편 구약의 5대제사 중 번제가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등 다른 제사와 구별되는 번제만의 독특한 특성은 아래 도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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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할지니 - 안수(按手)는 피차간 서로 언합하여 하나기 됨을 상징하는 행위로서 안수의 목적은 자신이 가진 그 무엇을 타인에게 전가(轉嫁)시키시 위한 것이다. 따라서 제물에 안수하는 행위는 제물을 드리는 자가 안수를 통하여 그 제물과 하나됨을 나타내는 동시에 자신의 죄를 그 동물에게 전가시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제물 드리는 자는 자신이 직접 피를 흘리지 않고도 자신과 연합된, 안수받은 제물의 피흘림을 통해 자신의 죄를 속함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 제물 드리는 자는 자기 대신 처참히 죽어가는 제물의 모습을 통해 죄의 심각성과 속죄의 은총을 마음속 깊이 체험해야 했다. 한편 '안수할지니'에 해당하는 원어 '사마크 야도'( )는 '그가 자신의 손을-(위에) 얹힐지니'란 의미인데 원어상 그 말 속에는 두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다. 즉(1) 제물을 드리는 자가 '직접' 자신의 손을 제물 위에 놓아야 한다는 점과 (2) 제물 위에 손을 얹되 '힘껏 단단히 누르면서' 얹어야 된다는 점이다(Keil). 특히 이 점에 대해 유대 랍비들의 말을 빌리면, 제물을 드리는 자는 그의 양손을 희생 제물의 양 뿔 사이에 얹고 있는 힘을 다해 힘껏 눌러야 했다고 한다(Matthew Henry).
열납되어 - 이 말의 어근과 그 의미에 대해서는 3절(하반부) 주석을 참조하라.
속죄가 될 것이라( , 레카페르) - '속죄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파르'는 본래 '덮다', '가리다'란 뜻이다. 따라서 속죄가 된다는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 제물 드리는 자의 죄가 덮어지고 가리워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구약시대에 있어 이러한 동물의 피에 의한 속죄의 효능은 극히 일시적이고 제한적이었을 뿐, 근본적인 속죄의 효능은 가지지 못했다(히 10:1-3). 그러나 신약 시대, 모든 희생 동물의 실체이신 그리스도에게 이르러 이제 그 피로 말미암아 인간 속죄는 완전히 성취되고 완성되어 영원히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도말되어졌던 것이다(히 9:12; 10:10-18). 한편 본절은 번제에도 속죄제에서처럼 속죄의 효과가 나타남을 의미한다. 소제를 제외한 모든 제사가 피를 필요로 하는데, 그것은 인간의 죄악을 속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소제도 단독적으로는 드려지지 않았고, 다른 제사와 함께 드려졌기 때문에 결국은 피와 함께 드려지는 격이 되었다(7:12,13; 9:17). 따라서 이 모든 사실은 '제사'와 '피'와 '속죄'와의 긴밀한 연관성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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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앞에서( , 리프네예호와) - 문자적인 뜻은 '여호와의 면전에서'란 의미인데, 구체적으로 이 말은 곧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막문 앞 번제단 곁에서란 뜻이다.
수송아지( , 벤 바카르) - 직역하면 '소의 아들'이란 뜻인데, 이 말은 일 년된 송아지를 가리킬 때(9:2)와 성숙한 소를 가리킬 때(4:14), 공히 적용된 말이다(Lange,Keil).
잡을 것이요( , 솨하트) - 동물의 희생제사와 관련되어 주로 사용되는 이 단어는 특히 '처참한 살해'의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백성의 속죄를 위해 흠 없는 동물들이 대신 처참하게 살륙당했다는 사실은 장차 세상 죄를 짊어지실 어린 양으로서의(요 1:29) 그리스도께서 당하실 고난의 극치를 예시하여 준다(갈 3:13). 따라서 희생 제물을 드려 죄를 속함받는 자는 죽어가는 제물의 모습을 통하여 죄의 심각성을 철저히 깨닫는 동시에, 아울러 크신 속죄의 은총을 잊지 말아야 했다.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 - 제물의 피를 뿌리는 일은 오직 신적 명령에 의해 제사의 중보자로 지명된 아론의 자손 중 제사장된 자들만이 할 수 있었다. 후에 히브리 기자는 이러한 중보직을 그리스도의 영원한 대제사장직과 결부시켜 그 모형과 실체의 원리를 명확히 설파했다(혀 7;11-18).
단 사면에 - 즉 번제단 주위에. 여기에 피를 뿌림은 '생명의 죽음'을 상징하는 희생 제물의 피를 하나님 앞에 보임으로써 제물 드리는 자의 죄를 속함 받기 위함이었다(출 12:13).
뿌릴 것이며( , 자르쿠) - 기본형 '자라크'는 일반적으로 손가락이나 우슬초로서 피를 흩뿌릴 때 사용되는 동사이다(Lange). 그러나 여기서는 그릇을 사용하여 피를 담아 피가 단의 윗면에 떨어지지 않도룩 번제단 주위를 돌면서 조심스럽게 뿌리는 행위틀 가리킨다. 이처럼 피를 단 사면에 골고루 뿌리는 목적은 생명을 상징하는 희생제물의 피를 하나님 앞에 잘 보이게 함으로써 생명이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졌음을 나타내어 제물 드리는 자의 죄가 하나님께 속함 받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제사 규례상 례위인들은 일손이 바쁠 때, 제사장들을 도와 제물로부터 피를 받아 취할 수는 있었지만(대하 30:16), '피를 뿌리는 것'은 반드시 제사장들만이 할 수 있었다(Lange,K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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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을 벗기고 - 희생 제물의 가죽을 벗기는 이유에 대해 다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성결 의식의 한 행위로써 제물드리는 자의 후패한 겉모습을 완전히 제거하고 오직 진실한 내면적 부분만을 드린다는 뜻에서 가죽을 벗겼다고 볼 수있다. 둘째, 비록 짐승을 잡아 그 피를 흘리게 했다 할지라도 그 모습은여전히 살아있을 때의 형태를 유지하게 된다. 따라서 완전할 자기 희생을 상징하는 번제 정신에맞도록 하나님 앞에서 그 짐승의 형태를 아주 없애버리기 위해 가죽을 벗겼다고 볼 수있다. 여하튼 이 두 견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온전한 마음이담긴 '전적 헌신의 제사'임을 깨달을 수 있다. 한편 이렇게 벗겨진 짐승의 가죽은제사장의 몫이 되었는데, 이는 번제 희생물의 각 부위 중 제사장에게 돌아가는 유일한 몫이었다(레 7:8).
각을 뜰 것이요.( ... , 니타흐...리느타헤하) - 두 단어모두 '조각내다', '절단하다'란 뜻의 기본 동사 '나타흐'( )에서 파생된 말로 곧 '여러 조각으로 자르다'(cut-in pieces)란 의미이다. 이는 곧 짐승을 잡은 후뼈마디를 따라(삿 19:29) 그 고기를 여러 조각으로 잘라 나누는 것을 가리킨다. 이렇게 하는 일차적 이유는 희생 제물의 각 부위가 불에 잘 타도륵 하기 위함이었고, 이차적으로는 그 짐승의 모든 부위를 남김없이 하나님께 바친다는 전적 헌신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편 이처럼 희생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저미는 일은 제물 드리는 자의 일이었다(Keil, Lange). 왜냐하면 제사 규례상 '제사장은'이라는 말이 분명하게 명시가 되어 있지 않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번제물을 바치는 자의 행위로 간주해야하기 때문이다(International Biblical Commentary). 그러나 이에 반하여 혹자(Kalisch)는 이러한 일은 담당 제사장의 지시를 받는 레위인들의 일일 것으로 보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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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두고 - 번제는 오랜 역사를 지닌 제사 형태였으므로 번제단 위에 불을 지피는행위는 제사장들에게 익숙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성막 규례상 한번 지핀 불은 항상 꺼뜨리지 않고 유지해야 했으므로(6:12,13) 이 명령은 오직 번제단 제작 이후 첫 번제시에만 적용되는 말이다(Keil).
벌여 놓고 - 기본 동사 '아라크'( )는 '배열하다' 혹은 '순서대로 쌓아 올리다'란 뜻인데, 이처럼 하는 이유는 불에 나무가 잘 타도록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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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 페데르) - 살과 내장으로부터 떼어낸 희생 제물의 지방분(fat)을 가리킨다. 이것은 제단 위의 불을 더욱 잘 타오르게 하였을 것이다.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 이것은 희생 제물의 각 부분을 남김없이 태워 그 냄새를 여호와께 향기로운 제물로 드리기 위함이다(17절). 유대 랍비들에 의하면, 이때 희생물의 각 부분들은 그 짐승이 살아 있을 때 서 있는 모습과 똑같은 형태로 배열되었다고 한다(L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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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기 때문이고, 정갱이는 지면과 계속 접촉한 관계로 더러운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의 결례상 이러한 부위는 반드시 물로 깨끗이 씻어야만 했다(출 29:17).이것은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기 때문에 드리는 제물 또한 정결해야 한다는 사실을교훈한다.
불살라( , 힉티르) - '불태워 연기를 내다'란 뜻의 '카타르'( )에서 유래한 말로 제단에서 희생 제물을 태우는 일에 대해 사용되는 전문 제사용어이다(Lange,Keil). 특별히 이 말은 단순히 제물을 불에 태워 없애 버리는 것을 뜻하는 '사라프'( )와는 달리 그 연기와 김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기 위해 제물의 각 부위를 골고루 정성껏 불에 태운다는 뜻이다.
화제 - '불로 태워서 드리는 제사'(an offering by fire)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제사의 종류가 아니라 제사 드리는 방법이다.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 제사 드리는 자가 정해진 번제 규례를 따라 자발적인 순종과 헌신의 마음으로 제사를 드릴 때,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뜻이다(엡 5:2;고후 2:15;빌 4:18). 특별히 여기서 '향기로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니호아흐'( )는 '편안한'(Commfortable), '휴식의'(restful)란 뜻이다. 즉 이것은 희생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됨으로 말미암아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고,이제 안정되고 평화로운 안식의 상태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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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나 염소 - 제물로서 이 둘은 그 비중이 동등한 단위임을 나타낸다. 그러나 암컷은 수컷보다 비중이 한 단계 아래였다(4:22-28). 제사 예물 중 비중이 높고 낮은 것을 드리는 것은 그 사람의 경제적인 사정에 따라서(12:8), 또는 죄악의 경중에 따라서(4:3-28) 드려졌으나 하나님께서는 모두 평등하게 받으셨다. 곧 하나님 앞에 '제물 없이는' 결코 설 수 없었으며, 또한 하나님께 가져온 제물은 '크든 작든' 결코 멸시되지 않았다.
흠 없는 - 3절 주석 참조.
수컷으로 드릴지니 - 번제용 희생 제물이 소나 양 혹은 염소일 경우에는 반드시 수컷이어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성적(性的) 차별 의식에서 유래된 것은 아니다. 구약 시대 수컷은 암컷을 대표할 뿐 아니라 암컷까지도 내포하고 있는 말로 이해하여야 한다. 나아가 보다 실용적인 차원에서 번제 제물로써 수컷이 사용된 이유는, 암컷은 번식과 젖의 산출을 위해보다 많은 숫자가 필요한 반면, 수컷은 적은 수만 있어도 족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빈번히 드려야 하는 희생 제물로써 수컷을 사용토록 배려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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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북편에서...잡을 것이요 - 희생 제물을 잡는 장소로 번제단 북편이 채택된 이유는 성소의 구조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때 쉽게 이해된다. 즉 제단 동편은 재를 버리는 장소로 사용되었고(16절), 제단 서편은 물두멍이 있어 짐승의 도살 장소로서는 적당치 못했으며, 제단 남쪽에는 제단에 오를 때 필요한 계단이 없었다. 따라서 제단 북편에서 매일 계속되는 희생 제물을 잡기에 가장 적합하고 편리한 장소였다(아래 도표 참조). 한편 이처럼 단 북편에서 희생제물을 잡아 그 제물의 피를 제사장들이 단 사면에 뿌리는 행위는 소의 경우와 같았다. 따라서 여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1:5 주석을 참조하라.

===================================1:12
각을 뜨고 - 1:6 주석 참조.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 희생 제물의 각 부위를 잘 배열하여 쌓아 올린 나무 위에 벌여 놓음으로써 제사장은 각 부위를 골고루 그리고 남김없이 태워 그 연기와 김을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로 드렸다. 후대 전승에 의하면 제사장들은 희생제물을 나무 위에 벌여 놓을 때 각 부위를 그 짐승이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배열하였다고 한다.

=====================================1:13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기 때문에 드리는 제물 또한 정결케 하기 위해 가장 더러워지기 쉬운 부분, 즉 속찌꺼기로 더러워지기 쉬운 내장과 밖의 티끌과 먼지로 더러워지기 쉬운 정갱이를 깨끗이 씻어야만 했다.
그 전부를 - 곧 가죽을 제외한 동물의 모든 부분을 가리킨다. 번제이외 다른 제사에서는 제사장의 몫으로 동물의 다른 부위들도 할당되었으나 번제의 경우에는 가죽 이외 모든 부분이 번제단 위에서 불태워져야만 했다. 이것이 번제의 특징이다.
불살라 - 1:9 주석 참조.
향기로운 냄새니라 - 실제 고기 타는 냄새는 향기롭지 못하므로 이말은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여기 '향기로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니호아흐'( )는 '편안한', '안식의'란 뜻으로(출 29:25),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명령을 따라 그 방법대로 정성껏 희생 제물을 태우는 백성들의 순종의 모습을 기쁘게 여기시고 그 순종의 제사를 흠양하신다는 뜻이다. 아울러 이 말은 죄로 인한 진노가 멈추어 이제 하나님께서는 안정되고 평화로운 안식의 상태로 들어갔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한편 이 말에 해당하는 신약 용어 '오스메'( )는 자신의 온 생을 순종의 삶으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친 그리스도의 희생의 삶을 언급할 때 사용되었다(엡 5:2;빌 4:18;요일 2:2).

====================================1:14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 산비둘기는 비교적 몸집이 큰 비둘기로서 주로 숲속에 야생하는 새이며, 집비둘기는 보다 몸집이 작은 새를 가리키는데 일반 가정 집에서 사육되기도 했으나 야생하는 것도 있었다(사 60:8). 이러한 비둘기는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도 쉽게 구하여 먹을 수 있는 육류(肉類)였고 또한 제사용 제물이었다. 한편 이처럼 하나님께서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를 번제물로 바치라 한 것은 경제적인 사정이 어려워 소나 양, 염소 등을 바칠수 없는 자들을 위해서였다(12:8). 이것은 구속의 은혜에는 빈부 귀천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 준다.

====================================1:15
머리를 비틀어 끊고 - 여기서 '비틀어 끊고'에 해당하는 원어 '말라크'( )는 '찢다', '쪼개다', '짜르다'란 뜻으로서, 단지 비트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70인역이나 유대 랍비들의 해석처럼 머리를 몸통으로부터 완전히 절단해 버리는것을 의미한다(Keil,Lange,Matthew Henry).
단 곁에 흘릴 것이며 - 새의 피는 다른 소, 양, 염소의 경우와는 달리 그 양이 극히 적었기 때문에 그것을 그릇에 받아 제단 사면에 뿌리지 않고 단지 눌러 짜 단 곁에흘리기만 하였다.

===================================1:16
멱통과 그 더러운 것은 제하여 - 거룩하신 하나님께 바쳐질 제물로서의 청결성을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다른 희생 제물의 경우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깨끗이 씻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9절). 한편 여기서 '그 더러운 것'( ,노차타흐)은 새의 깃털(feathers)을 가리키는데(KJV, RSV), 곧 외부적 부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고, 멱통(모이 주머니)은 내부적 부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둘을 쓰레기장에 던져 버리라고 명령한 이유는 희생 제물의 겉과 속이 청결치 못하고서는 결코 거룩하신 하나님께 제물로 쓰여질 수 없음을 교훈하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우리들도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속과 겉이 정결한 '거룩한 산 제사'(롬 12:1)를 드려야 한다.
단 동편 재 버리는 곳 - 곧 번제단에서 타고 남은 희생 제물의 뼈를 긁어 모아 처리하는 곳을 가리킨다(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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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찢지 말고 - 아주 쪼개지 아니하고 단지 몸통을 반절 쯤 열어 젖히는 상태를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언약 체결시 아브라함의 제사에서도 나타난다(창 15:10). 아마 이와같이 하는 이유는, 새는 그 크기가 소나 양 등에 비해 훨씬 작았기 때문일 것이다.
번제를 삼을지니 - '번제'에 대하여는 1:3 주석을 참조하라.
화제 - 거제, 요제, 전제와 더불어 제사 드리는 4대 방법 중 하나로서, 곧 '불에태워서 드리는 제사'(a fire offering)를 가리킨다.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 9절과 13절에서 이미 언급된 말이다. 이것이 '새의 번제'에서도 똑같이 언급되는 이유는 제물의 가치 여하에 관계없이 제사 드리는 자의 정성과 헌신만 있으면 그 제사는 소나 양, 염소의 제사와 하등 다를 바 없이 하나님께 기쁘게 열납되어 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사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새의 제사가 제사장들에게 가장 힘든 예전(禮典)중의 하나였고 한다(Matthew Henry).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이처럼 새의 제물도 요구되어진 것은 당시 이방 종교의 제사 의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히브리 제사 의식의 독특한 특징으로서 그 신적 기원을 잘 보여 준다(Knobel). 즉 히브리 종교 의식상, 피뿌림으로 인해 죄를 속함받는 일에는 남녀 노소, 빈부 귀천의 차별이 전연 없었던 것이다.

 

 

  레위기의 대주제는 '거룩한 성결'이다. 곧 본서는 거룩하지 못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어떻게 교제를 할 수 있으며 또한 화목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하는데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구원과 직결된 지극히 중대한 문제이다. 본장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첫 해답으로서 번제에 대한 규례를 언급하고 있다. 즉 구약 시대에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희생 제사를 통해서였는데 그 희생 제사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그리고 속건제 등이 있다. 각기 독특한 규례와 의의를 가지고 있는 이 5대 제사 중 본장에서 다루고 있는 번제는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보편적인 제사로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희생과 헌신을 예표한다. 실로 번제는 타락한  우리 인간들과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해서 장차 십자가란 번제단 위에서 남김없이 물과 피를 쏟으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상징하고 있다(요 19:34). 아울러 번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아가야 할  우리 성도들의 올바른 신앙 자세를 생생히 깨우쳐 준다(롬 12:1).
  한편 이러한 번제의 제물로는 생축을 사용하였는데(1, 2절) 바치는  자의  신분이나 빈부 등에 따라 소(3-9절)나 양,염소(10-13절) 또는 새(14-17절)를 드릴 수 있었다.

  1. 생축으로 제물을 삼으라는 하나님의 지시(1:1,2)
  레위기 1장의 첫 부분은 출애굽기와 바로 연결된다. 이것은 회막 건립(B.C.  1445년 1월 1일)으로 끝을 맺는 출애굽기에 이어(출 40:17) 레위기 첫 부분은 이제  하나님의 지시로 건립된 그 회막을 어떻게 사용할 것이며 또한 그 회막  안(1절)에서  행하여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지시하고 있는 내용(2절)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깨달을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주도 면밀한 일의 진행을 감지할 수 있다. 태초 천지 창조 사역에서도 나타나듯이 여기 성막에  관한 사역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따라 당신의 방법대로 질서 정연하게 일을 진행시켜 나가는 질서의 하나님이심을 새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성도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지시로 시작되고 끝을 맺는 신본주의적(神本主義的) 삶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사실은 기독교가 결코 자연 종교가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계시에 의존하고 있는 계시 종교임을 아울러 깨닫게 한다. 따라서 오늘날 성도는 하나님의 계시가 특별히 기록된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멈추는 데에서 같이 멈추는 말씀 중심의 신앙 생활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

  *희생 제물로서의 생축의 의미.-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희생 제물로서는 반드시  생축(牲畜)이 필요했는데 그 이유는 구속사적으로 의미 심장하다. 그것은  희생  제사가 반드시 제사만을 위한 제사가 아니라 그 속에 깊은 영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 영적 의미를 명쾌히 지적한다. 즉 생축에게는 '피'가 있으며 또한 피만이 죽음과 속죄를 상징할 수 있는 유일한 증표(레 17:11/히 9:22)란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축의 피는 결국 신약 시대 그리스도의 보혈(寶血)을 예표하고 상징한다. 나아가 번제단 위에서 피를 흘리고 죽어간 구약 시대의 그  숱한 생축들은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고 죽으신 그리스도의 구약적 모형들로서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어야 했다. 이 사실을 바로 깨달을 때 번제용 생축 한 마리 한  마리의 죽음은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가슴 속에 벅찬 감사와 기쁨의 감동으로  깊이  와 닿을 것이다.

  2. 번제물이 소일 경우( 1:3-9)
  하나님께 소를 희생 제물로 드리는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때 제일 먼저 제물을 바친 자는 그 소의 머리에 안수를 해야 했다(3, 4절). 이는 곧 자신의 죄를 그 희생 제물에게 전가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나면 비로소  제사장들은 잡은 소의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리고(5절), 그 고기를 제단 위에서 태워  번제로  드릴 수 있었다(6-9절).
  한편 이상과 같은 본문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귀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첫째, 번제물이 반드시 '소'이어야만 된다는 것이 아니고 '소일 경우'라는 가정법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이다(3절). 이 말은 소 이외 양이나 염소 혹은 비둘기도 번제물로서 가능하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다. 동시에 이것은 번제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번제물을 바치는 자의 정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처럼 구약 시대로부터 대속의 은혜는 부자나 가난한 자를 막론하고 그 외양(外樣)에  임하지  않고 그 심령에 임했던 것이다. 둘째, 번제물을 드리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는 점이다(4-9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제사는 '순종의 제사'임을  뜻한다. 이러한 사실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라는 사무엘의 말을 통해서도 잘 입증된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는 구약의 5대 제사 정신이 함축된 영적 제사인 만큼(요 4:24) 더욱 순종의 원리가 적용된다.

  *번제에 대하여 - 번제는 고대의 제사법 중 가장 일반적인 제사였다. 이는 제사  드리는 자의 완전한 헌신을 상징하는데 이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종류 - 번제 중에는 매일 조석(朝夕)으로 계속 드려야  하는  상번제(常燔祭)와
특별한 때에 드리는 특별 번제가 있다. (2) 성격 - 번제는  자원제(自願祭)로서  생활
형편에 맞게 드려졌으며, 제사 드리는 자는 비둘기를 제외한 나머지 제물에는 직접 안수하고 그 제물을 죽였다. (3) 목적 - 일반적인 죄를 속함받고 하나님께 헌신과  봉사를 다짐할 목적으로 번제를 드렸다. (4) 방법 - 동물의 각(脚)을 뜬 후  화제(火祭)로 전부 태워 불살랐다. (5) 의미 - 첫째,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 조인들을 위해  십자가 상에서 온전히 자신을 산 희생 제물로  바친  그리스도의  전적  희생을  예표한다(마 26:39-44/막 14:36/눅 22:42/빌 2:5-11). 둘째, 성도와 관련하여 ; 그리스도의 희생을 본받아 성도 역시 하나님께 자신의 영육을 온전히 산제사로 전적 헌신해야 할 것을 상징한다(롬 12:1/엡 5:2).

  *향기로운 제사 - 본장에는 짐승을 잡아 화제(火祭)로 드릴 때 나는 냄새를  가리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고 칭한 부분이 몇 차례 나온다(9, 13, 17절). 그러나  실상 고기를 그 내장과 함께 불태울 때 나는 냄새는 결코 좋은 냄새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같은 말이 의미하는 진정한 뜻은 무엇인가 ? 그것은 곧 제물이 불태워져 그  냄새가 하나님께 상달될 때 하나님은 이를 백성들이 당신의 명령에 순종하는  표식으로  알고 기쁘게 받아들이신다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그 냄새를 가리켜 향기롭다고  표현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드린 자와 화해하셨으며 그를 만족히 여기신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신약은 당신의 몸을 산 제물로 바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를 가리켜 '향기로운 제물' 이라고 칭하고 있다(엡 5:2). 즉 그리스도께서는 전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자신을 십자가 상에서 친히 대속(代贖) 제물로 바치셨으니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 받으신 향기로운 제물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죽으셨으니 이제 우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참된 제사를 드릴 수 있다. 즉 이제는 우리도 친히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그분과 교제할 수  있으며 우리의 온 몸과 마음을 다해 그분께 헌신할 수 있는 진정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벧전 2:5).

  3. 번제물이 양이나 염소일 경우(1:10-13)
  번제의 제물로서 양이나 염소를 드리는 경우이다. 소와는 그 종류가 다르지만  이때도 그 제물은 공히 '흠없는' 수컷이어야 했다(10절). 그리고 그 드리는 방법 역시  소를 제물로 드릴 때와 마찬가지였다(11-13절).
  한편 여기서 소나 양의 경우는 경제적 능력의 차이 문제이지만, 흠(欠)이 있고 없는 제물을 고르는 문제는 정성과 마음의 문제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받으시기를 원하는 제사는 마음의 제사였음을 알 수 있다. 생각해 보라 ! 실로 전 우주의 창조자요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겨우 소나 양의 경제적 가치 문제에 연연하겠는가 ? 그러나 불행히도 향후 전개되는 성경 역사는 이 가장 평범하고도 단순한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사 1:11-17). 나아가 이 사실은 오늘날 한층 승화된 영적 제사를 드려야 하는 우리 성도들의 예배 자세를 뒤돌아 보게 만든다.

  *피 뿌림의 의미 - 피 흘림과 더불어 피 뿌림은 그 피가 갖는 독특한  성격  때문에
구속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즉 희생을 상징하는 피는 자체 내에 죽음과 생명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대속(代贖)의 유일 수단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창 9:4-6/레 17:11/히 9:22). '죄의 결과는 곧 죽음' 이라는 성경의 대 명제하에서 피는 불가불 죄와 관련하여 그 성격이 뚜렷이 규명된다. 곧 죄의 결과인 죽음을 상쇄(相殺)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뜻하는 피가 반드시 요구되었고 동시에 그렇게  요구된 희생의 피는 새생명으로 승화되어 대속받는 자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대속의 의의를 지니고 있는 피 뿌림의 제사는 결국 타락한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요 계획으로 마침내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인해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성취되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구약 시대 흠없고 순전한  모든  희생 제물의 피 뿌려짐은 곧 신약 시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예표하고 상징하는  것으로써 바로 오늘날 나 같은 죄인을 위해 흘려진 바 된 대속의 피였던 것이다.

  4. 번제물이 새일 경우(1:14-17)
  번제 제물로서 소나 양 또는 염소가 경제적으로 힘겨울 때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14절)로도 바칠 수 있었음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단 이때 그 드리는 방법에  있어서는 다른 경우와 조금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곧 그 제물에 안수함이 없이 바로 제사장에게로 가져갔다는 점(15절)과 취급 방법상의 문제였다(16, 17절).
  아뭏든 번제는 자원제(自願祭)였기 때문에 이처럼 누구든지 자신의 형편에 맞게  제물을 바칠 수 있었다. 비둘기를 제물로 삼았다고 하여 당하는 불이익은 전혀  없었다. 따라서 예물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다는 말은 전혀  성립될 수 없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로부터 누구든지 형편에 맞게 예물을 택하여 자원하여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나 성도들은 이러한 제사 정신을 본받아 결코 물질에 구애 받아 신앙 생활에 시험드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실제로 가난했던 예수님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는 산결례(産潔禮)로 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하나님께 바쳤었다(눅 2:24). 또한 예수님께서는 정성이 담긴 과부의 적은 헌금을 심히 기뻐하셨다(막 12:41-44).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예물은 어떠한 것이며 동시에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견지해야 할 헌금 정신 역시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깨우쳐 준다.

  *구약의 제사 속에 담긴 예배 정신 - 구약의 5대 제사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이다. 각기 독특한 특징과 규례를 가진 이 5대 제사들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 많은 인간으로써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 구약의 5대 제사 규례는 히브리서 곳곳에 명쾌히 지적되고 있는 바대로 옛(첫) 언약 하의 규례로서(히 8:7/ 9:1)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만 적용되는 모형적이고 예표적인 규례였다(히 8:5). 따라서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 성취된 구약의 제사 규례들은 더 이상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 그 문자적 구속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신약 시대라 할지라도 구약의 제사  규례들이 가지고 있는 그 법 정신마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각 제사 규례 속에  담긴 법 정신은 오늘날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 정신 속으로 복합 승화되어 우리 성도들이 어떠한 마음가짐과 어떠한 삶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할 것인지를 밝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1) 번제에 나타난 바 주님은 우리 성도들이 자신을 십자가 앞에 완전히 죽이는  온전한 희생과 헌신의 자세로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기를 원하신다(롬 12:1,2, 고전 15:31).
 (2) 소제에 나타난 바 주님은 우리 성도들이 늘 감사하는 마음과 죽도록 충성하는 자세로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기를 원하신다(살전 5:18/계 2:10).
 (3)  화목제에 나타난 바 주님은 우리 성도들이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 드리기를 원하신다(마  22:37-39).
 (4) 속죄제에 나타난 바 주님은 우리 성도들이 자신의 죄를 깊이 통회하고 진정  자복하는 겸허한 심령으로 오직 당신의 보혈만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기를 원하신다(마 11:28).
 (5) 속건제에 나타난 바 주님은 우리 성도들이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 116:12)하는 빚진 자의 심령, 즉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쳐도 하나님과 이웃에게 빚진 그 빚을 다 갚을 수 없다는  자세로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기를 원하신다(마 18:21-35/롬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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